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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스토리텔링

라이트 형제 이야기

by 문촌수기 2017. 2. 26.
학력도 돈도 없던 시골 형제의 집념, 하늘을 날다

어수웅 기자 | 2017/02/25 03:02
라이트 형제ㅣ데이비드 매컬로 지음ㅣ박중서 옮김ㅣ승산502쪽ㅣ2만원

이 책을 읽기 전에 두 가지 의문이 있었다.

라이트 형제의 이야기는 지구 반대편 한국인도 대부분 알고 있다. 하늘을 날고 싶었던 인간의 꿈. 최초의 유인동력(有人動力) 비행에 성공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형제랄까. 모두에게 익숙한 이야기를 어떻게 쓰면 이런 열광이 이어질까.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머물렀던 9개월(2015년 5월~2016년 2월)도 긴 시간이었지만, 수많은 독자의 글쓰기 욕망을 자극했다는 점이 더 놀랍다. 24일 현재 미국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는 무려 5020개, 그것도 매편 짧지 않은 분량의 독자 리뷰가 올라 있었다.

또 하나는 의문이라기보다 편견에 가까울 것이다. 상대적으로 '아메리칸 드림'에 더 어울리는 인물이 아닐까. 100년 전 미국인의 성공 스토리가 2017년의 대한민국에서 과연 유효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데이비드 매컬로(84)의 '라이트 형제'는 그 의문과 편견을 풀어준 독서 체험이다. 우선 작가에 대한 소개부터. 미국 대통령 존 애덤스와 해리 트루먼에 대한 전기로 두 번이나 퓰리처상을 받았다. 읽어보니 이유를 알겠다. 꼼꼼한 자료 조사에 바탕을 둔 매혹적인 이야기꾼. 스토리텔링은 뛰어나지만 고증이 아쉽다거나, 자료와 정보는 풍부하지만 정작 이야기가 지루한 책들을 떠올리다 보면, 이 작가의 예외적인 퓰리처상 2회 수상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형 윌버(왼쪽)와 동생 오빌.

형 윌버(1867~1912)와 동생 오빌(1871~1948). '라이트 형제'는 총 3부로 이뤄져 있다. 1903년 12월 17일의 역사적 비행을 다룬 2부가 가장 극적이지만, 매컬로의 핵심 메시지는 형제의 성장 과정을 다룬 1부와 성공 이후의 겸손에 주목한 3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전기는 형 윌버의 연설문 인용으로 첫 문장을 시작한다. "어떻게 해야만 인생에서 성공할 수 있는지 젊은이에게 조언을 하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좋은 아버지와 좋은 어머니를 고른 다음, 오하이오주에서 인생을 시작하라."

'선택의 주체'와 '좋은 부모'에 주목할 것. 자식이 부모를 고를 수는 없으니, 이 표현은 윌버의 유머 감각일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부모는 어떨까. 1부가 보여주는 형제의 성공 비결은 지적 호기심, 그리고 안정적인 가정에 있다. 형제의 아버지 밀턴 라이트는 부(富)와는 담을 쌓았던 개신교 순회 성직자. 그러면서도 개방적 세계관의 소유자였다.

늘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크리스천이지만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였던 로버트 잉거솔의 저서 역시 필독 리스트에 포함시켰다. 형제는 스스로의 판단으로 교회 출석을 중단했고, 아버지는 이마저도 받아들였다. 성실함, 노력, 과감한 결단력 등 형제가 지닌 미덕 역시 부모의 모범 덕이었다는 게 매컬로의 판단이다. 물론 전기 작가의 희망 사항이 아니라, 부모 자식, 그리고 형제자매가 주고받은 수백 통 편지 등 자료 제시를 통해서였다.

오하이오는 미국 북동부의 한적한 주(州). 하지만 라이트 형제는 대도시보다 시골 마을에서 이 미덕들이 더 소중한 가치로 대접받는다고 믿었다. 인용문의 마지막 문장은 결국 고향에 대한 형제의 자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꾸준한 바람과 안전한 모래 해안이 비행의 관건이었다. 힘들게 찾아낸 적소(適所)는 고향 오하이오 데이턴에서 무려 1100㎞ 떨어진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외딴 마을 키티호크. 1903년, 형 윌버가 활공기에 혼자 올랐다. /승산

3부의 방점은 성공을 거둔 뒤에도 멈추지 않았던 성실과 겸손에 있다. 고향인 오하이오 데이턴에서 열린 성대한 환영 행사를 취재한 뉴욕타임스 기사를 보자. 형제를 밀착 취재한 이 특파원 기사를 보면, 매시 10여분 동안만 잠시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뒤 나머지 50분은 작업실로 돌아가 소매를 걷어붙이는 풍경이 시간대별로 기록되어 있다. 명성을 열망하지 않고 늘 겸손할 것. 오하이오에서 가장 높게 평가받는 자질 중 하나였다고 한다.

자전거 제작에서 시작해 동력 비행기를 만들어낸 라이트 형제는, 냉정하게 말하면 아마추어 애호가였다. 전기의 매혹적인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다. 영웅으로의 미화나 과장이 아니라, 무수히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아마추어. 바람에만 의존했던 글라이더에서, 모터를 장착하고 성공하까지의 그 수많은 실패들. 이들이 금의환향했을 때, 고향 마을 신문인 데이턴 데일리 뉴스는 이렇게 적었다.

"돈이 발언권을 갖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들은 이제 과연 가난한 소년이 혼자 힘으로 상업이나 산업이나 과학 분야에서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겠느냐며 의문을 제기했었다. 이 축하 행사는 이런 모든 말들을 단숨에 날려보냄으로써 인류의 노력을 다시 한 번 드높인다. 이 행사는 야심만만한 젊은이에게 말해준다. 너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고. 천재에게는 계급도 조건도 상관이 없다고."

100년 전 미국뿐만 아니라, 지금 이 땅의 우리에게도 교훈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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