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의 가람배치

    송광사의 배치는 신라의 의상대사(625∼702)가 210자 7언시를 도식화한 '화엄일승법계도'의 도표처럼 수십 여 동의 건물이 얽히고 설키어 비를 맞지 않고도 다닐 수 있다한다. 또한 일반적인 사찰과는 달리 송광사의 가람 배치가 많은 점에서 특이하다. 먼저, 대웅전 뜰에는 불탑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절의 가장 중심이 되며 최고의 전당인 대웅전 뒤에는 다른 전각이 없는 것이 보통인데 송광사의 대웅전 뒤에는 국사전, 수선사, 설법전 등의 선원(禪院, 참선수행공간)전각이 높은 석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이는 승보사찰 송광사의 위상을 떨치고, 보조국사의 수선(修禪) 정신을 잘 표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법보사찰 해인사의 대웅전 뒤에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판고가 자리하고 있고, 불보사찰 통도사의 대웅전 뒤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을 두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화엄일승법계도란 무엇인가?

  의상(義湘:625~702)이 화엄학의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을 서술한 그림시.

 

 

법계도는 의상(義湘:625702)이 중국에 유학하여 중국 화엄종 조사 지엄(智儼)에게 수학할 때인 668년에 창작되었는데, 화엄의 진리에 대하여 서술한 책을 불사른 후 타지 않고 남은 210개의 글자를 가지고 게송을 짓고 법계도를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에서 시작하여 본래부동명위불(本來不動名爲佛)’로 끝나는 7() 30()의 게송(偈頌)으로 법계연기사상의 요체를 서술하였는데, 중앙에서부터 시작하여 54번 굴절시킨 후 다시 중앙에서 끝나는 의도된 비대칭(非對稱)의 도형이 되도록 하였다.

법계도의 형태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모습을 취한 것은 석가의 가르침이 하나의 진리인 것을 상징한 것이고, 많은 굴곡을 둔 것은 중생의 근기에 따라 가르침의 방편이 달라지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또 첫글자인 ()’과 끝 글자인 ()’ 두 글자는 각기 수행방편의 원인과 결과를 나타낸 것으로서, 이 두 글자를 중앙에 둔 것은 인과(因果)의 본성이 중도(中道)임을 보인 것이다.

법계도의 게송은 18구까지 진리의 실재를 서술한 자리행(自利行)’과 다음 4구의 진리의 공덕을 서술한 이타행(利他行)’ 그리고 나머지 8구의 진리를 증득하는 과정을 서술한 수행(修行)방편(方便)’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 일순간이 영원과 상통하는 화엄사상을 밝히고, 부처님의 공덕이 중생을 구제함을 찬양하며, 수행하여 진리를 깨달으면 중생이 본래 부처란 것을 노래하고 있다.

 

皇甫瑾暎 나름대로 [義相華嚴一乘法性偈] 해설

法性圓融無二相

諸法不動本來寂

無名無相絶一切

證智所知非餘境

眞性甚深極微妙

不守自性隨緣成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

九世十世互相卽

仍不雜亂隔別成

初發心時便正覺

生死涅槃常共和

理事冥然無分別

十佛普賢大人境

能入海印三昧中

繁出如意不思議

雨寶益生滿虛空

衆生隨器得利益

是故行者還本際

叵息妄想必不得

無緣善巧捉如意

歸家隨分得資糧

以陀羅尼無盡寶

莊嚴法界實寶殿

窮坐實際中道床

舊來不動名爲佛

법성원융무이상

제법부동본래적

무명무상절일체

증지소지비여경

진성심심극미묘

불수자성수연성

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

일미진중함시방

일체진중역여시

무량원겁즉일념

일념즉시무량겁

구세십세호상즉

잉불잡란격별성

초발심시변정각

생사열반상공화

이사명연무분별

십불보현대인경

능입해인삼매중

번출여의불사의

우보익생만허공

중생수기득리익

시고행자환본제

파식망상필부득

무연선교착여의

귀가수분득자량

이다라니무진보

장엄법계실보전

궁좌실제중도상

구래부동명위불

법과 성은 두루 통하여 두 모습이 아니며

모든 법은 부동하여 본래 고요하나니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어 일체를 다 끊었네

깨우침으로 알 뿐이지 다른 경계는 없다네.

참 성품은 매우 깊어 지극히 미묘한데,

자성을 지키지 않고 인연에 따라 이뤄지네.

하나 안에 모두요. 많음 안에 하나라.

하나 곧 모두요. 많음이 곧 하나라.

하나의 티끌 속에도 시방 세계가 담겨있고

모든 티끌 속에도 또한 이와 같네.

헤아릴 수 없는 먼 겁이 곧 한 생각이요,

찰라의 생각이 곧 헤아릴 수 없는 겁이로다.

구세(유한) 십세(무한)가 서로 곧 같음이여.

이에 섞여 어지럽거나 분별을 이루지 않나니

처음 일어난 그 마음이 곧 바른 깨우침

생사와 열반은 늘 함께 어울리며,

이치와 현상은 드러나지 않아 분별함이 없네.

시불 보현과 같은 대인의 경계라

능히 해인 삼매 가운데에 들어가네.

불가사의한 여의를 자주 나타내나니

중생을 이롭게 하는 보배 비는 허공을 채우고

중생은 자기 그릇을 따름에 이익을 얻나네

이런 까닭에 수행자는 그 뿌리로 돌아가네

망상을 쉴 수 없다면 필히 얻지 못하니

인연에 따름없이 훌륭한 솜씨 여의를 잡고서

본가로 돌아와 분수를 따르고 자량을 얻네.

이 다라니 다함이 없는 보배로써

법계를 장엄하시니 참다운 보배의 전당이라.

마침내 실제의 중도를 자리 삼아 앉아서

예로부터 부동하시나니 부처라 이름하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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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불이(一心不異)

인문학과스토리텔링 2017.10.05 15:53 Posted by 文 寸 문촌

해는 뜨지도 않았고 지지도 않았는데 不出日不沒

세상 뭇사람들 헛되이 말하기를 - 世衆人妄說

'여기서 먼저이고 저기가 나중이며, - 是先而此後

동에서 뜨고 서로 진다고 하네. - 西兮  - 문촌, 황보근영

영원한 마음은 무명의 인연을 따라 변화하여 무상한 마음을 만들지만, 그 영원성은 항상 그대로이고 변화되지 않는다. (如說 常心隨無明緣變作 無常之心, 而其常性恒自不變)

또 이 하나의 마음은 무명의 인연을 따라 변화하여 무수한 중생의 마음을 만들지만, 그 하나의 마음은 영원하고 그 자체는 둘이 아니다. (如是 一心隨無明緣變作多衆生心, 而其一心常自不二)

  <열반경>에서 말하듯, ‘일미(一味)의 약()이 그 흘러가는 곳을 따라 여러 가지 다른 맛으로 변화되지만 이 약의 진미는 산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그와 같은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또 비록 마음의 본체는 본래 정한 것이고, 단지 인연을 따라 움직이게 되는 것이라면 생사에는 시초가 있다고 하는 과오는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대승기신론소별기>, 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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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선생님, '상선약수'라더니, 현자들은 진리를 말하면서 '물'에 비유를 많이 하였다.

- 원효> 대승기신론소 에서
심생멸에 대한 해석 - [별기] p91 - 파도의 비유

"움직이지 않는 물이 바람이 불어 움직이듯, 움직임과 고요함이 비록 다르기는 해도 물의 본체는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고요한 물에 의해서 그 움직이는 물이 있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니 그 도리 역시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불생불멸은 위의 여래장을 말한다. 생멸하지 않는 마음이 움직여 생멸을 만들고, 서로 버리거나 떨어지지 않으므로, '더불어 화합되어 있다'고 이름한다. 그래서 다음 문장에서 '큰 바다의 물이 바람으로 인해 파도를 일으키듯 물의 모습과 바람의 모습은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한 것과 같다. 여기서 물의 움직임이 바람의 모습이고, 움직임의 습기[濕]는 물의 모습이다.


파도는 인가, 바람인가?

 

- 지눌> 수심결에서 p433 
돈오점수에 대한 이해 - 얼음의 비유

경에 말씀하시기를 '이치로는 홀연히 깨닫는 것으로 깨달음에 의지해서 녹이려니와 실재로는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므로 차롈 사라진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규봉(圭峰)스님도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이치를 깊이 밝히고 말하기를 '얼음 언 못이 순전히 물임을 알지마는 햇빛을 받아야 녹고, 범부가 곧 부처임을 깨닫지마는 법의 힘을 빌어 익히고 닦아야 한다. 얼음이 녹아 물이 풍족히 흘러 물을 대고 씻는 공덕을 나타내 망상이 사라지면 마음이 영통(靈通)하여 신통 광명의 작용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이 얼음덩어리는 산인가, 바다인가?

 

맹자와 고자의 인간 심성에 대한 이야기
노자의 상선약수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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