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영화포스터

비주얼씽킹+맵수업 2018.06.28 09:03 Posted by 文 寸 문촌
이 그림이 뭘까요?...

SPIRITED AWAY?? 
이건 더욱 모르겠구요.
아? !
어디서엔가 본듯한 인상!

바로 센과 치히로에서 본 슬픈 얼굴이군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영화 포스터를 아주 단순하게 작게 픽토그램 같이 디자인하여 표현한 포스터랍니다.
본래 포스터를 볼까요?

미니멀 영화 포스터가 재미있네요.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머리속으로 상상하며, 스토리로 끌고가는 묘미가 있네요. 비주얼씽킹수업에서 단원의 핵심요점, 수필ᆞ소설ᆞ시 한편도 이런 픽토그램 식의 표현을 해보는 것도 의미와 재미가 있겠어요.
<더보기>
미니멀 영화포스터

논어5-부자의 갑질과 무교호례

인문학 고전과 교육 2018.06.27 20:36 Posted by 文 寸 문촌
05. 부자의 갑질과 무교호례(無驕好禮)

  05부자의 갑질과 무교호례.hwp

 

▣ 읽기 : 가난과 부유에 대한 공자의 답변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묻기를,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는 자는 어떻습니까?" 하니,
공자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괜찮다. 하지만 가난하지만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 예를 갖추는 자만 못하지."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자공왈 “빈이무첨, 부이무교, 하여?”)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자왈 “가야, 미약 빈이락, 부이호례자야.”)    - [학이]편

  나는 어릴 때 가난하게 살았다. 이웃에 부잣집 아이가 있었다. 나 보다 조금 어린 그 아이는 종종 바나나를 들고 골목에 나타났다. 가난한 우리들에게 바나나란 천국의 음식과 같이 귀한 것이었다. 같이 놀던 친구들이 우르르 그 아이 앞으로 몰려가서 ‘한 입만, 한 입만’하며 입을 벌리며 따라 다닌다. 나는 속으로 침을 삼켰지만 그 모습을 들키기 싫었다. 그렇게 비굴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것도 동생뻘 되는 아이한테.....‘저 자식, 다 먹고 나오지, 저걸 왜 들고 나와?’ 자랑하듯 들고 나온 그 놈이 실은 부럽기도 했지만 또 한편 엉덩이를 차버리고 싶었다.
   가난하게 살다보면 남에게 얻어먹기 위해서 아첨해야 하며, 부유하다보면 남들 앞에서 어깨가 올라가고 으스대는 것이 다반사이다. 보통 그렇게들 살아간다. 그러니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자존심을 지키니 잘했다고 할 수 있으며,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살필 줄 알고 체면을 지키는 일이니 가상한 사람이다. 어느 누구도 가난하고 천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나 빈천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아첨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살아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스승(공자)은 “괜찮다. 그것은 옳은 짓이다.” 라고 했다.
  그러나 스승은 그것보다 더 품격 있는 삶을 가르치신다. “가난하지만 인생을 즐길 줄 알고, 부유하지만 예를 잊지 않아야 한다.”(貧而樂 富而好禮ㆍ빈이락 부이호례). 재물이 많고 적음에 세상의 뜻을 두지 않고 그 큰 도리와 삶의 목표에 뜻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가난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를 찾아가는 즐거움을 바꾸지 않은 안회처럼. 겸손함과 어진 성품, 예의와 양보 그리고 나눔을 실천하는 자세로 갖는 것이다. 이러한 품격에 도달한 사람이야 말로 현명한 사람이고 삶과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생각하기 : ‘가난하여도 즐길 수 있는 일/것’[貧而樂]은 어떤 것일까?”

▣ 안중근의 논어 유묵, 따라쓰기
     빈이무첨 부이무교ᆞ빈이락 부이호례

“가난하되 아첨함이 없으며, 부유하되 교만함이 없다.” -<학이>편
*안중근 의사 유묵
*동경도립 로카기념관 소장
“가난하더라도 인생을 즐길 줄 알고, 부유해도 예의 지키기 좋아한다.” -  <학이>편
*안의사를 존경하여 그의 글씨체를 흉내내어 씀.

▣ 뉴스거리 : 부자의 갑질
  부자나 높은 사람들 중에는 참으로 못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갑질 행위가 그들을 못난 사람으로 만든다. 특히 근래 모 항공사 회장의 두 딸들이 연달아 갑질 논란을 일으켜 뉴스의 초점을 받고 있다. 몇 해 전에는 큰 딸의 갑질 논란으로 그룹 회장인 아버지는 “자식 교육을 잘못시켰다”다며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또 둘째 딸의 갑질 행위로 국민들이 비난과 원성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어릴 적부터 부자로 살면서 잘못 배웠기에 교만을 부려서 온 국민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있으며, 얼굴을 못들고 다니는 꼴이 되었다. 가문의 수치가 되었고, 회사에도 큰 오명을 끼쳤다. 나라의 망신이라며 항공사의 이름[社名]에서 나라 이름을 빼고, 비행기에 그려진 태극마크[Logo]를 지우라며 국민청원이 들어가고 있다.
  남의 일이 아니다. 겸손하기는 어려워도 매사에 교만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더 훌륭한 일은 정말 예의를 좋아하는 부자가 되어야 한다. 부이호례(부자이면서 예의를 좋아한다)는 어떤 행동일까? 어떤 모습일까? 그렇게 예의를 실천할 때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안중근 옥중유묵 <빈이무첨, 부이무교> 임서
   ~ 잘 써지는 못했지만, 수업교실에 게시하여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흠모하면서 <논어>읽기를 하였다.

논어4-공자의 삶ᆞ나의 삶

인문학 고전과 교육 2018.06.27 20:24 Posted by 文 寸 문촌
04. 공자는 이런 삶을 살았다.

04공자 삶의 단계와 나의 삶.hwp

▣ 읽기 : 공자의 인생 단계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자왈 “오십유오이지우학, 삼십이립,
 사십이불혹, 오십이지천명, 육십이이순,
 칠십이종심소욕, 불유구.”) 
         - <爲政第二> LY02-04 위정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하였고, [지학]
서른 살에 자립하였으며, [이립]
마흔 살에 사리에 의혹하지 않았고, [불혹] 
쉰 살에 천명을 알았고, [지천명]
예순 살에 귀로 들으면 그대로 이해하였고, [이순] 
일흔 살에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 [종심]”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나의 인생, 생생하게 상상하기

3. 길에서 읽는 논어ㅡ안중근 의사의 삶과 유묵

03안중근과 논어-견리사의.hwp

 

▣ 그의 정의로운 전쟁
  1909년(31세) 3월 2일 안중근은 김기용, 강기순, 백남규 등 11인과 동의단지(同義斷指)동맹을 결성하였다. 3월 5일에는 총기를 휴대한 약 300명의 의병을 이끌고 수청 방면으로부터 합십마 부근으로 이동하는 등 의병활동을 하다 이튿날 일진회 회원 박모를 응징하였다. 그해 4월 10일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 병탄안을 찬성하였으며 7월 10일에는 일본 정부 각의에서 의결되고 일본 국왕은 그날로 재가하였다.
  그해 10월 9일 이토는 일본 국왕을 만나 3, 4주간 예정으로 만주를 여행한다는 계획을 알리고 18일 중국 다렌에 도착한다. 블라디보스톡에 머물던 안중근은 이 소식을 듣고 우덕순을 만나 이치권의 집으로 함께 돌아와 이토 히로부미 처단 계획을 합의한다. 10월 22일 안중근, 우덕순, 류동하는 하얼빈에 도착하였다. 이때 이토는 아침 뤼순을 출발하였다.
  드디어 역사적인 날. 10월 26일 아침 6시 30분경, 안중근은 새 양복과 모자를 쓰고 묶고 있던 집을 나선다. 7시경에 하얼빈에 도착하여 이토가 오기를 기다린다. 9시경 이토를 실은 열차가 하얼빈역에 도착하여 약 15분간 열차 안에서 코코프체프와 환담하였다. 9시 15분에 이토 히로부미는 하차하였다.
  9시 30분경 러시아 의장대를 사열하고 일본인 환영단으로 향하던 이토에게 당당하게 다가가 ‘저자가 필시 이토일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권총 세발을 발사하여 명중시켰다. 이후 곧장 그를 수행하던 사람들에게도 부상을 입혔다. 안의사는 죄 없는 수행원들까지 부상을 입힌 것에는 비통한 일이라고 재판장에서 말하였다. 그러나 이토의 얼굴을 확실히 알지 못하여 혹시라도 잘못 쏘았다면 일이 낭패가 되기에 그 주변인들이 이토라 여겨서 총을 발사하였다고 하였다. 그는 냉혈한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그는 정의로운 선비였다. 
  러시아 헌병이 안중근을 덮치자 그는 쓰러지면서 권총을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만국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러시아 말로 “코레아 우레”를 외친 다음, 하늘을 향해 “대한 만세”를 목이 터져라 세 번 외쳤다. 10시에 이토는 하얼빈 역에서 절명하였다. 그는 뜻을 이루었다.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고, 완성하는 것은 하늘의 뜻에 달려있다(謀事在人, 成事在天)”이라 하였는데, 하늘의 뜻도 안의사와 함께 하였던 것이다. 본시 이 글은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이 사마의의 군대를 화공(火攻)으로 물리치려 했으나 소나기가 내려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탄식하며 했던 말이다. 그러나 안중근은 자기의 의거는 하늘의 뜻이었음을 밝히고 정당성을 부여하며 뤼순 옥중에서 먹을 갈아 이 글을 썼다.
  러시아 당국은 안중근을 일제에 인도하기로 결정하였다. 11시 55분에 거사를 함께 했던 우덕순 조도선도 피체되었다. 11월 1일 뤼순으로 압송되고 11월 3일 오전 10시에 연루 혐의자 9명과 함께 뤼순 감옥에 수감되었다.
  1910년 2월 7일부터 14일까지 중국 여순(뤼순)의 관동도독부 고등법원에서 안중근 의거에 대한 여섯 차례 공판이 열렸다. 2월 7일 1회 공판장에서 안중근은 “3년 전부터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이등을 포살코자 했으며, 이 의거는 개인적인 원한이 아니라 한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서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결행한 것이다”라고 진술하였다. 2월 9일 오전 9시 50분 제 3회 공판이 개정되었다. 여기서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의 죄악’ 15개조를 설명하였다. 그러나 재판장에 의하여 중지 당하였다. 3월 26일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 되었고, 10월 26일 순국하였다.
    
▣ 서울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
  2004년 안중근의사숭모회와 광복회의 요청을 받아 안중근 의사기념관이 새로 건립되었다. 항일 독립 정신과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얼을 새겨볼 수 있는 역사 교육현장이다. 안중근의사기념관은 단지동맹을 한 12명의 열사를 기리기 위해 12개의 큐브 모양으로 디자인되었다. 겉으로 보면 열둘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하나의 건물이다. 열둘은 하나를 위하고 하나는 열둘을 위한다. 그 하나는 대한독립이었다. 그리하여서 열두동지는 손가락을 끊고 피를 찍어 '大韓獨立(대한독립)'쓰고 맹세했다.  

  이곳에는 안중근 의사가 뤼순감옥소에 갇힌 이후 옥중에서 쓴 유묵과 자서전 등 수십 점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유묵은 약 200여 점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나 40여 점만이 발견되었다. 의사의 필체에서 대장부 기운을 느낀다. 군자와 선비의 인품이 신언서판(身言書判)에 달렸다고 하는데, 안 의사의 휘호를 보면 바로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앙홀을 중심으로 3개의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및 체험전시실이 구비되어 있다. 전시실에는 안의사 초상화와 생애와 독립운동 등 관련 역사와 사진ㆍ건국공로 훈장과 서한ㆍ공판 당시 신문 보도 내용ㆍ유명 인사 휘호 등이 전시되고 있으며, 학생들의 역사체험 공부를 위해 잘 구비되어 있다. 기념관 내부에는 사단법인 안중근 의사 숭모회 사무실이 있어 안중근 의사에 대한 각종 유물과 자료를 발굴 수집하고 매년 기념식과 학술 심포지엄, 애국순례, 서예 백일장 등의 행사를 개최한다. 기념관 밖에는 안의사의 동상과 유묵 글을 돌에 새겨 정원을 꾸미고 있다. 주변에는 서울시 교육연구정보원, 백범광장이 인접해 있고, 그 아래로 한양도성의 성곽이 복원되어 있다. 이 성곽길을 따라 내려오면 숭례문이 있다.

▣ 안중근 의사의 옥중 유묵
안중근의 유묵(遺墨)은 현재 실물이나 사진으로 50여점이 확인된다. 이중 국내 소재는 26점으로 모두 국가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한 개인의 작품으로 놓고 볼 때 국가보물로 가장 많이 지정되어 있고, 미술 시장에서 거래되는 작품가격으로도 가장 높다.
  안중근의 유묵은 모두 사형 선고일(1910. 2. 14)에서 순국(1910. 3. 26)까지 라는 점, 수신자가 모두 일본인이라는 점은 역사상 어떤 다른 사람의 경우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사례다. 특히 내용이 동양고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현실고발이나 감계와 같이 자기 체험이나 자각으로 걸러낸 것이라는 점에서 안중근의 유서이자 또 다른 자서전인 《안응칠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옆의 ‘견리사의(見利思義) 견위수명(見危授命)’ - 이익을 보거든 의로움을 생각하고, 나라의 위기를 보거든 목숨을 바치라 - 유묵새김돌 사진은 안중근 의사기념관 앞에 전시되어 있는 《논어》명구의 안중근 유묵글이다. 
  안중근 의사로부터 유묵을 건네받은 사람은 모두 일본인이다. 이들은 여순 옥중 취조 검찰관, 대련세관 세무관, 뤼순 감옥 간수, 경관, 전의(典醫), 경시, 경호책임 헌병, 경수계장, 뤼순초등학교 교사, 일본 교토 정심사 사형수 교화승 및 여타 일본인들이다.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일본인 입장에서는 그들의 최고 지도자를 사살한 사람을 글씨를 받는다는 것이다. 또한 안의사의 입장에서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당시 이런 정황에 대해 그는 《안응칠 역사》에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동양평화론》을 저술하고 있을 그 때 법원과 감옥의 일반관리들이 내 손으로 쓴 글로써 필적(筆跡)을 기념하고자 비단과 종이 수백 장을 사 넣으며 청구하였다. 나는 부득이 자신의 필법이 능하지도 못하고, 또 남의 웃음거리가 될 것도 생각지도 못하고서 매일 몇 시간씩 글씨를 썼다.”
  그렇다면 안중근은 어떤 마음에서 무슨 까닭으로 이들에게 글을 써서 주었을까?
원수까지 반하지 않을 수 없었던 안중근 의사의 인품과 정신세계의 위대성을 읽을 수 있다. 여기서는 그의 유묵 중에서 《논어》의 글을 모두 모아서 그의 인생관과 세계관 등 그의 정신세계를 조망하며, 그로부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마땅한가라는 교훈을 얻고자 한다. 글씨는 그 사람의 인격이다. 그는 가히 군자 중의 군자이며 대인 중의 대인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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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거리]-“이 때(구한말 또는 일제강점기)의 나라면 어떻게 살았을까?”
 
▣ [토론하기]-“정의를 위하여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옳은 일인가?”

안중근 옥중유묵(견리사의) 임서
~ 이 족자를 교실에 걸어두고 설명한 다음 수업을 하니, 아이들이 더 감동적으로 받아주어서 감사했다.
~ 젊은 시절, 기회를 붙잡아 배워두길 참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며 '이건 참 잘했구나'는 생각이 드는 것이 많아지도록 살아야 겠다.

논어2-공자와 논어

인문학 고전과 교육 2018.06.26 19:15 Posted by 文 寸 문촌

02. 공자의 삶과 논어의 가르침

02공자와 논어-군자고궁.hwp

인류의 스승, 공자의 삶을 그림으로 읽다.

  공자 (孔子 BC 552~BC 479)를 나타내는 가장 간단한 다섯 개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춘추시대, 유학 또는 유교, 공구, 중니. 논어’이다. 풀이하면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로서, 유교의 개조(開祖)이다. 이름은 구(丘)이며, 자(字)는 중니(仲尼)이다. 그의 사상이 집약된 책이 바로 《논어(論語)》이다. 공자(孔子)라고 할 때의 ‘자’는 존칭으로 스승이라는 뜻이다.

  공자는 노(魯)나라의 창평향(昌平鄕) 추읍(현재의 山東省)에서 하급무사 숙량흘(叔梁紇)과 그의 내연의 아내 안징재(顔徵在)와의 사이에 태어났다. 어머니 안징재는 공자를 낳을 당시 10대의 어린 소녀였다. 60세가 넘은 숙량흘은 안씨의 셋째 딸을 후처로 맞이한 것이다. 아버지는 매우 힘이 세었으며 제(齊)나라와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그의 탄생에서부터 죽음까지 많은 일화를 남겼는데, 그의 삶을 표현한 그림으로 공자의 일생을 살펴본다.

1> 균천감성(鈞天感聖) : 공자가 태어날 때 방에서는 하늘의 노랫소리가 들여오고 공중에서는 하늘이 성자의 탄강을 축복하여 화락한 노래 소리를 보내노라는 말이 들여왔다.

2> 조두학례(俎豆學隷) 공자는 5, 6세 때 항상 제사놀이를 즐겼으며, 친구들에게 제사방법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3> 직사위리(職司委吏) : 20세에 처음으로 창고 회계를 담당하는 위리라는 벼슬을 하였다. 회계가 정확했다고 한다.

 

4> 문례노담(問禮老聃) : 공자 나이 34세 때 제자 남궁경숙과 함께 주나라의 노담에게 찾아가 예를 묻고 가르침을 청했다.

 

공자, 노자를 만나다(문례노담 일화) - “나는 새는 잘 난다는 것을 알고, 물고기는 헤엄을 잘 친다는 것을 알며, 짐승은 잘 달린다는 것을 안다. 달리는 짐승은 그물을 쳐서 잡을 수 있고 헤엄치는 물고기는 낚시를 드리워 낚을 수 있고, 나는 새는 화살을 쏘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용이 어떻게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 위로 올라가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오늘 나는 노자를 만났는데, 마치 용과 같은 존재였다.”

5> 협곡회제(夾谷會齊) : 50세 때. 노와 제가 협곡에서 회담을 할 때 공자가 단으로 올라 왼편의 제경공을 질타하는 모습.

6> 광인해위(匡人解圍) : 56세 때. 위나라에서 진나라로 가는 길에 광 땅에서 포위되었다가 풀려났다.~재진절양(在陳絶糧)

7> 공자귀노(孔子歸魯):68세 때 노나라 대부 계강자가 공자를 초빙하여 노나라로 돌아와 제자 교육과 고전 정리에 전념하였다.

 

8> 치임별귀(治任別歸) : BC.479년 공자가 세상을 떠나자 제자들은 노성 북쪽에 있는 사수가에 장사지내고 정식으로 삼년간의 심상을 입었다. 자공만은 6년 동안이나 무덤을 떠나지 않았다.

 

논어, 삶ㆍ사람ㆍ사랑의 길을 가르치다.

어떤 이는 말한다. 논어논어가 아니라, ‘논인(論仁)’이라고. 이 말은 논어에서는 사람됨의 길을 가르치는데 그 중핵적인 가치와 최고의 덕목이 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 인() 뿐이랴? ()도 예()도 신()도 지()도 하물며 학()과 군자(君子)도 많이 언급되고 강조되었으니 굳이 논인(論仁)이라고만 말할 수 없겠다. 차라리 논인(論人)’, 사람됨을 말하다라고 말하는 것이 옳겠다.

 

논어20, 이름과 약호

<學而第一> LY01 학이 <爲政第二> LY02 위정 <八佾第三> LY03 팔유

<里仁第四> LY04 이인 <公冶長第五> LY05 공야장 <雍也第六> LY06 옹야

<述而第七> LY07 술이 <泰伯第八> LY08 태백 <子罕第九> LY09 자한

<鄕黨第十> LY10 향당 <先進第十一>LY11 선진 <顔淵第十二>LY12 안연

<子路第十三>LY13 자로 <憲問第十四>LY14 헌문 <衛靈公第十五>LY15 위령공

<季氏第十六>LY16 계씨 <陽貨第十七> LY17 양화 <微子第十八> LY18 미자

<子張第十九> LY19 자장 <堯曰第二十> LY20 요왈

○ 《논어, 최고의 덕 인()을 가르치다.

()이 최고의 덕목이며 중핵의 가치가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무엇보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덕목이다. 물론 글자 하나를 가지고 빈도가 높다고 해서 그 문장과 경전의 핵심이 그 글자라는 것은 아니다. 가령, 필자가 논어에서 인()과 예() 그리고 군자(君子) 등을 검색하여 출현빈도를 조사해보았다. ()109, ()24, ()75, ()118, ()38, ()65, 군자(君子)107회였다. ()는 인()보다 8회나 더 많이 출현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가 논어의 중핵적인 가치라고는 할 수 없다. 단순히 안다, 알았다의 지(知天命)모른다, 몰랐다의 부지(人不知而不慍)에서 쓰인 는 가치로서의 덕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ㆍ예()ㆍ학()ㆍ군자(君子)’가 공자나 그의 제자들 입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고 언급되었던 가치들임은 부정할 수 없다.

둘째, 구문적으로 보아도 ()은 여러 덕목들 중 상위의 덕목이다. 적어도 중심이 되며 가장 포괄적인 덕목이다. 다음 글을 보면 사람다움에 이 으뜸이고 예악은 버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사람 : 인은 사람다움이다(仁者人也)

2) 사랑 :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仁者愛人)

3) : 인은 일과 사람 관계에 대한 성실 충실이다. (誠實忠實)

○ 《논어, 군자(君子)를 가르치다.

공자는 천하를 주유하면서 많은 수난을 당한다. 그 수난 속에서도 그는 뜻을 굴하고 세상에 아첨하지 않았다. 수많은 수난 중, 그 절정은 소위 재진절양(在陳絶糧’[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자가 초()나라 소왕(昭王)의 초빙을 받고 가는 중이었다. 초나라를 가려면 진()나라와 채()나라를 지나가야만 했다. 진나라와 채나라는 공자가 초나라에 입국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 공자가 초나라에 등용되어 강국이 되면 인접한 두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군사를 보내 공자 일행을 포위했다. 시간이 흐르자 식량이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제자들 중에 병에 걸린 환자가 속출했다. 그러나 공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태연한 모습으로 시를 읊고 거문고를 연주했다. ‘재진절양은 그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제자들에 둘러싸인 공자가 땅바닥에 앉아 있다. 공자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평소와 다름없이 제자들에게 수업을 하고 있다. 공자가 시를 읊자 제자들이 진지한 자세로 듣는다. 그들을 포위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저 한가롭게 소풍 나온 사람들의 야유회 장면을 그린 것 같다. ‘재진절양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운명을 향해 고개 숙이는 일이 없는 철학자의 평정심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런 공자를 제자라고 모두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위기에 처해서도 한가롭기만 한 스승을 보고 화가 난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불평하였다.

군자도 곤궁해질 때가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군자는 곤궁함을 굳게 버티지만, 소인은 곤궁해지면 아무 짓이나 한다.”  (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 군자고궁 소인궁사람의)

논어위평공 편에 나오는 얘기다.

이런 수난의 사건들은 공자가 69세에 고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14년 동안 계속됐다. 그러나 공자는 천하에 도가 행해지고 봉건적인 예악질서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자신의 신념을 결코 저버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의 이상과 목적은 이상적인 봉건질서의 주창이었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본분을 다하는 것이 이상적인 사회라 여겼다.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공자는 끊임없이 성군(聖君)을 찾아다녔고 정치적 출구를 모색했다. 공자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난했다. 이것은 공자가 유랑 중에 견뎌야만 했던 또 다른 환란이었다.

 

 

 


논어를 읽다.1

인문학 고전과 교육 2018.06.26 17:13 Posted by 文 寸 문촌
세상살다보니, 교과서 공부 기억은 별로 나지않고, 한권의 책ᆞ시 한편ᆞ한문장 진리가 큰 울림을 주고 삶의 등대가 되곤 했답니다.
도덕ᆞ윤리의 경전이라는 <논어>를 꼭 읽혀 주고 싶었습니다.
다 읽을 여유는 없어서 윤리 수업과 연계, <논어> 에서 주제를 선정하여 활동지를 만들고, 같이 읽기ᆞ생각하기ᆞ생각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주제는 행복, 빈부, 정의, 죽음, 학문, 우정, 군자, 인(사랑)

 

1. ‘씽킹맵을 활용한 논어읽기와 나의 삶

01씽킹맵과 논어.hwp

내 친구들과 논어를 읽으면서 씽킹맵으로 생각을 만들어 정리하고, 친구들과 생각을 나누도록 했습니다.

씽킹 맵(Thinking Maps) : 미국의 데이비드 하이엘(Dr. David Hyerle)박사가 인간의 사고 유형과 사고과정을 8가지로 분류하여 도표화하는 기술로 제안된 

[논어와 씽킹맵] - 예시

길 위의 인문학 강의 - 산본고, <인문고전 통통!!, 마음 통통!!> 

강좌 갈무리 활동 ~ 인상깊고 가고 싶은 장소 한장면 / 감동적인 한 문장

학생들 활동 모습과 결과물

 

 

길 위의 인문학 6강, 삶의 길 여유당에 묻다.

                                          / 산본고 인문고전통통

길 위의 인문학 5강, 목멱산 자락길에서 만난 안중근 / 산본고 ~ 인문고전 통통! 강좌



길 위의 인문학 4강, 낙산 자락길에서 읽는 죽음  / 산본고 ~ 인문고전 통통! 강좌

 <친구들 활동모습> Before I die, I Want 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