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길에서 읽는 인문학

11. 죽음의 친구, 잠 -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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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과 죽음은 어느 면에서 많이 닮았다. 자다가 깨어나지 않으면 죽은 것이다. 선(線)으로 비유하자면 잠이 점선이라면 죽음은 실선이다. 그런 의미에서 잠은 작은 죽음이다.
 
▣ [읽기] : 공자의 낮잠 훈계 - [05 공야장]에서

   공자에게는 제가가 많았다. 제자들은 제각기 재능이 있었다. 그 중에 재여(宰予)라는 제자는 언변이 뛰어났다. 그러나 행실이 좀 더디고 게을렀던 모양이었다. 재여가 낮잠을 자자 공자가 말했다.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더러운 흙으로 된 담장은 흙손으로 다듬을 수 없다. 내가 재여를 어찌 나무라겠는가?”

○ 宰予晝寢, 子曰, “朽木不可雕也, 糞土之牆 不可杇也, 於予與何誅?” 
   (재여주침, 자왈, 후목불가조야, 분토지장 불가오야, 어여여하주)

  공자가 이어 말했다. “전에 내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 말을 듣고서 그 행동을 믿었는데, 지금은 그 사람 말을 듣고서 그의 행동을 살펴보게 되었다. 이것은 재여로 인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 子曰, “始吾於人也, 聽其言而信其行.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 於予與改是.”   (시오어인야, 청기언이신기행, 금오어인야, 청기언이관기행. 어여여개시)

   오늘날에는 밤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또한 낮 노동에 지친 사람들이 잠시 눈을 붙이는 낮잠은 결코 게으르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밤중에 오락에 빠지거나 나쁜 습관으로 하릴없이 낮잠을 자는 것은 게으름의 상징으로 본다. 당연히 해가 났을 때에 부지런히 공부하거나 일을 하며, 해가 지면 들어가 쉬고 먹고 자야할 일이다. 그런데 공자의 제자인 재여가 한 낮에도 잠에 자주 빠져 있으니 게으르다고 야단칠 만하다. 게다가 언변은 뛰어난데 행실에 못 미치니 성실하지 못하다고 평가받을 만도 하다. 예나 지금이나 언행(言行)이 일치하는 사람을 성실하다고 여긴다. ()이라는 글자를 나누어보면, [언ㆍ]한 바를 반드시 이룬다[성ㆍ]’는 의미다.
  
낮잠을 게으름의 소치로 보는 또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 [더하기] : 목어 이야기]
 불가에는 공부하다 죽어라라는 말도 있다. 그만치 용맹 정진하여 수행할 것을 가르친다. 그런데 옛날에 한 젊은 스님은 출가하여 수행을 열심히 하지 않고 틈만 나면 햇살 좋은 곳에서 졸았다. 스승의 야단과 질타에도 게을러 낮잠을 일삼았는데, 불행하게도 그만 병이 들어 일찍 죽었다. 그는 죽은 뒤에 이 세상에서 지은 업보로 물고기로 환생하였다. 그러나 괴이하게도 그 물고기 등짝에 한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나무 때문에 물 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풍랑이 칠 때마다 나무가 흔들려 햇살에 익은 등살이 찢어지고 피를 흘리는 심한 고통을 늘 겪으면서 살았다. 몇 년을 그렇게 지내면서 참회와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는데 마침 스승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고 있었다. 물고기는 스승 앞에 가서 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스승은 이를 가엾게 여겨서 수륙재(水陸齊)를 베풀고 물고기를 해탈하게 하였다. 이때 물고기 등짝에서 자란 나무를 베어다가 목어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절에 걸어두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절에 가면 법당 근처에 범종각을 두고 그 안에 불전사물(佛典四物)’이라하여 범종, 법고, 운판, 목어를 매달아 놓는다. 예불을 드리기 전에 불전사물을 울려 의식을 알리며 동시에 지옥 중생과 물짐승, 들짐승, 날짐승을 제도한다. 템플스테이 기회가 있다면 꼭 새벽예불 때 범종각에 불전사물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기도해보길 권한다. 가슴 벅찬 경건함과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 一日不作 一日不食 ( 일일부작  일일불식)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고 말씀하시며, 선불교의 규범을 정한 백장스님의 청규(淸規)에 따르면, 물고기는 잠을 잘 때도 눈을 감지 않으므로 수행하는 사람은 밤낮으로 쉬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라는 뜻으로 목어를 만들었다한다. 목어를 울리면 물속에 사는 모든 중생들과 수중 고혼(孤魂)들이 제도된다고 한다. 목어의 형태도 처음에는 단순한 물고기 형태에서 차츰 머리가 용을 닮은 형상으로 변하여 지금은 입에 여의주를 문 형태를 취한 것도 있다. 또한 목어의 형태가 둥근 것으로 변해 경(經)을 읽을 때 박자를 맞추는 데 사용되었는데 이것이 목탁(木鐸)이다. 수행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스님들이 지니고 다니는 가장 대표적인 불구(佛具)이다.

 

 

▣ 참고 : 불전사물(佛殿四物) – 범종, 법고, 목어, 운판
                 > 산사로 가는 길 홈페이지 - 금당의 뜰안 - 범종루
    참고 : 성북동 인문학 산책 길에 
      [최순우 옛집]에 들리면 뒷뜰에서 '오수당(午睡堂)' 현판을 단 방을 볼 수 있다. 
      단원 김홍도의 글씨 그대로 현액하였다. 말 그대로 '낮잠 자는 집'이다.
                   http://munchon.tistory.com/996 

 


▣ 쓰기 :  
              朽木不可雕也ᆞ후목불가조야
    

               一日不作 一日不食 ᆞ일일부작 일일불식

▣  생각만들기와 생각나누기 : 잠과 죽음이 다른 점은? 잠과 죽음이 닮은 점은?

 

○ 낮잠에 대한 나의 명언
                                      
○ 죽음에 대한 나의 명언
                                      
○ 친구들의 명언
                                      

10. 죽음에 대하여.....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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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기] : 공자의 사생관
  제자 계로가 스승 공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귀신을 섬겨야 합니까?"  이에 스승은 되묻는다. "사람 섬기는 일이냐? 귀신 섬기는 일이냐?" 그 물음을 분명히 파악하기 위함이며 제자에게 자기 물음에 다시 깊이 생각해보게 함이다. 이에 제자는 "감히 죽음을 여쭈는 것입니다."
  사람 섬기는 일은 산 이에게 하는 일이고, 귀신 섬기는 일은 죽은 이를 받들어 제사 드리는 일을 뜻하는 것이다. 이에 공자님께서 명답을 내 놓으신다. 아니 답이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한 본질을 파악하라는 더 큰 의문을 제자에게 던지신다.

○"삶을 알지 못하는 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未知生 焉知死)-11선진편
                                                    
  과연 공자는 삶도 알지 못하고 더더욱 죽음도 알지 못하였을까? 계로와 공자님의 말씀에 정자(程子, 이천)은 이렇게 주석한다. "낮과 밤은 생사의 도리이다. 생의 도를 알면 사의 도를 알 것이요, 사람 섬기는 도리를 다하면 귀신 섬기는 도리를 다할 것이니, 삶과 죽음, 사람과 귀신은 하나이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이다." (死生人鬼 一而二 二而一者也)
  생사의 문제를 과연 공자는 알았을까 몰랐을까? 그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다만, 우리들로 하여금 삶에 충실하고 가까운 사람들-부모 형제 친구 이웃-에게 도리를 다하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은연히 말씀하신 것이다. '죽음을 모르신다' 하셨지만 모르신 것은 아닌 것 같다. 공자는 제자 안회의 죽음에 통곡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 하늘이 날 버렸구나. 하늘이 날 버렸구나”
(噫! 天喪予, 天喪予!)-11선진편

  안회는 살아서 학문을 좋아했건만 평생을 가난하게 살다가 너무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버렸다. 그런 제자가 안 되었기에 너무나도 불쌍해서 통곡하신 것이겠다. 죽음 이후가 기쁨이고 안락이라면 그렇게 불쌍하진 않았을 것이다. 죽음은 현재와의 영원한 단절이고 사라짐인가 보다.
  공자님께서는 이렇게도 말씀하셨다.

○"아침에 도를 들을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朝聞道, 夕死可矣)-04이인편


  대체 도(道)가 무엇이길래 죽어도 좋다 했을까?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는 도(道)는 무엇일까?



▣ [생각만들기] :  나에게 죽음이란?     나에게 도(道)란?

  TED 강연으로 크게 알려진 캔디 창(Candy Chang)은 도시를 좀 더 편안하고 명상적인 장소로 만드는 예술가, 디자이너, 그리고 도시 설계자이다. 그녀는 2009년 사랑하는 어머니를 갑자기 여의게 되고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왔던 시간에 대해 깊이 감사하게 되고, 잊고 살았던 삶의 의미를 찾으며 중요한 것을 잃지 않고자 했다. 그래서 친구들의 도움으로, 버려진 집 담벽에 ‘Before I die, I want to ~(나 죽기 전에 무엇을 하기를 원한다)’라는 낙서판을 만들었다. 무엇을 기대해서가 아니었다. 그냥 죽음 앞에서 삶의 중요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묻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게 방치된 공간은 희망과 꿈을 다시 찾게 해주는 사색적이고 건설적인 공간으로 변했다. 이 낙서판은 전 세계적으로 번져 갔다. “나 죽기 전에, 나는 완전한 나 자신이 되고 싶다.(Before I die, I want to be completely myself.)” 등등.
  그녀는 말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것 중 두 가지는 시간(Time)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Relationships with other people)입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사람들은 꺼리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당신의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죽음에 대한 고찰은 삶을 명확하게 해줍니다.” 
(Thinking about Death clarifies your Life.)


▣  [생각만들기와 나누기]
: 버킷리스트와 ‘Before I die, I Want to ~  ’ 쪽매맞춤과
  삶과 죽음의 가치를 드러내는 일언명구(一言名句, 캐치프레이즈)  

  죽음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쳐 준다. 죽음에게 삶의 길을 물어보자.

 

▣ [더하기] : ‘Before I die, I want to ~’ (나 죽기 전에,  ..을 원한다.) 

 

09. <세한도>에서 읽는 군자의 절의(節義)

09세한도와 논어.hwp

읽기 : <세한도>속의 이야기

<세한도>(국보 180)는 제주도에 유배 온 지 5년이 지난 추사(秋史) 김정희가 나이 59(1844) 때 그린 것이다. 척보면 그다지 잘 그렸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안견, 겸재, 단원, 혜원 등 내노라는 전문화가의 그림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이지, 아마추어인 선비들이 그린 문인화 중에서 최고봉으로 손꼽을 만하다. 특히 이 그림이 담고 있는 심의(深意)를 알고 나면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보물(국보 180)이 되었다.

죄를 짓고 귀양 간 사람을 자주 찾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여라도 당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까 두려울 것이다. 방문이 잦았던 여러 제자들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발걸음이 점차 뜸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관(譯官)이었던 제자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은 통역관으로 청나라로 다녀올 적마다 귀한 책들을 구해서 스승에게 보내드렸다. 이에 스승은 제자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하여 고마움을 전하고자 그림을 그려서 주었다. 그림 속에는 자신의 처한 상황과 제자의 한결같은 마음을 그려내고 기록하였다. 이 그림이 세한도이다.

  세한도는 그림과 글자로 크게 두 개 영역으로 나누어 있다. 그림은 반듯하게 자란 세 그루 잣나무, 세파에 휘어지고 늙은 한그루의 소나무 아래에 허술하게 지어진 집이 한 채 보인다. 추운 때라는 세한(歲寒)’이라는 화제가 없어도 참으로 써늘한 기운과 찬바람이 불어온다. 집도 낯설다. 우리의 와당도 아니고 초당은 더욱 아니다. 낯선 지붕 뿐 아니라 둥근 창도 낯설다.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집이 아니라 빈 축사나 창고와 같다. 갈필(渴筆)로 그린 소나무는 메마르게 늙어있고 잎이 다 떨어지고 줄기가 꺾인 상태에서 겨우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빈 집과 소나무는 마치 추사 자신을 그린 듯하다. 그렇다면 추운 겨울철에도 푸른 잎을 간직한 채 곧게 뻗어 있는 세 그루의 잣나무는 누구일까? 허물어 질듯 한 빈집을 바로 곁에서 든든하게 받쳐주는 가운데의 잣나무는 외로울 적에도 곁을 떠나지 않고 귀한 책들을 보내 왔던 제자 이상적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왼쪽의 두 그루 잣나무는 누구란 말인가? 유배당한 죄인을 멀리 않고 차와 그림으로 교유를 이어간 초의선사와 소치 허유이지는 않을까? 억지 추측이지만 나름 재미있는 상상도 해본다.

그림의 오른쪽에는 예서체로 세한도(歲寒圖)’라며 화제(畫題)를 쓰고, 제자 이상적에게 이 그림을 준다는 의미로 예서의 기운을 간직한 해서체로 우선시상(藕船是賞)’완당(阮堂)’을 썼다. ‘우선이에게 드리네. 완당이이라는 뜻이다. ‘우선(藕船)’은 제자 상적의 호이다. 그림과 글씨를 감상하다가 눈길을 왼쪽으로 가면서 자칫 놓치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꼭 눈여겨 보고 가야할 곳이 있다. 바로 가장 오른쪽 하단의 붉은 색 장무상망(長毋相忘)’ 유인(遊印) 낙관(落款)이다.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뜻으로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정을 새겼다. 나에게도 이렇게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며 약속한 제자가 있었던가? 스승이 있었던가? 그런 친구 있었던가?

이 그림은 보면 볼수록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를 강조한 추사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림을 보았으니 이제 그림의 사연을 적은 발문(跋文)을 읽어보자.

  지난해에 두 가지 <만학>, <대운> 책을 부쳐왔고, 금년에는 <우경문편>이라는 책을 부쳐왔는데, 이는 모두 세상에 흔히 있는 일이 아니요. 머나먼 천리 밖에서 구한 것이며, 여러 해를 걸쳐 얻은 것이요, 일시적인 일이 아니다. 더구나, 세상은 물밀듯이 권력만을 따르는데, 이와 같이 심력을 써서 구한 것을 권력 있는 사람에게 주지 않고, 바다 밖의 한 초췌하고 메마른 사람에게 주었으니,  세상 사람들이 권력자에게 추세하는 것과 같구나. ......(중략)...........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날이 차가워진 이후라야 소나무 잣나무는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 고 하였다. 송백은 사철을 통하여 시들지 않는 것으로서, 날이 추워지기 전에도 하나의 송백이요 날이 추워진 후에도 하나의 송백이다. 성인이 특히 세한을 당한 이후를 칭찬하였는데, 지금 군은 전이라고 더한 것이 없고, 후라고 덜한 것이  없구나. 세한 이전의 군을 칭찬할 것 없거니와, 세한 이후의 군은 또한 성인에게 칭찬 받을 만한 것 아닌가? 성인이 특별히 칭찬한 것은 한갓 시들지 않음의 정조와 근절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또한 세한의 시절에 느끼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 (후략) - 완당(阮堂) 노인(老人)이 쓰다.

 

[나의 세한도] ~ 세한도 패러디 하기

 

08. 비주얼 씽킹으로 표현하는 논어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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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 비주얼 씽킹(Visual Thinking)이란?

 글과 그림을 함께 이용하여 생각과 정보를 표현하거나 기록하는 것

보여주는 생각’=> 그림으로 생각하기, 생각의 시각화, 시각 사고법

나에게 비주얼 씽킹이란? __________이다.

왜냐하면? ____________________이기 때문에.

나의 생각> 비주얼 중요할까, 씽킹이 중요할까?’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비유해봅니다. 비주얼은 손가락이며, 씽킹은 달 입니다. 그렇다고해서 결코 달이 목표가 될 수는 없죠. 달은 수업에 사용되는 소재(요리재료)에 불과합니다.

 

Why > 비주얼 씽킹은 왜 필요한가?

읽는 시대에서 보는 시대로, 이미지 중심의 훑어보기 문화, 데이터의 단순화된 정리와 정보의 빠른 이해가 요구되는 사회, 한 장의 사진이나 이미지가 주목 받는 SNS 세상, 우뇌가 발달되고 나아가 창의 융합형 인재가 성공하는 세상, 남다른 개성과 창의성으로 생각을 정리 표현하기

 

Why > 비주얼 씽킹의 효과는?

비주얼 씽킹은 '생각의 그림'입니다. 그림은 마음 속 그리움을 보여주는 것이구요.

How > 비주얼 씽킹 언어를 표현하는 틀 : 8개의 씽킹맵(Thinking Maps)
그리고 다양한 형식의 맵핑 활동지

실습1>비주얼 씽킹 언어 : 글자, 숫자, 기호, 인물, 배경(시공간), 사건, 글상자, 화살표 등

실습2 > 핑거맵 두들링(손가락 그림 그리기) : 오행(五行)과 오상(五常)

오행(五行) : 동양 철학에서 우주 만물의 변화양상을 5가지로 압축해서 설명하는 이론. 5행이라는 것은 인간 사회의 다섯 개 원소로 생각된 ((((()의 운행변전(運行變轉)을 말한다. ()이라는 것은 운행의 뜻이다. ~참조: 오행 상생상극도

오상(五常) : 유교에서 ()ㆍ의()ㆍ예()ㆍ지()ㆍ신()의 다섯 가지 기본적 덕목이다.

실습3 > 스몸비(Smombie) 경고 캠페인과 논어의 교훈

미국의 경우, 지난 10년 동안 스몸비 관련 사고로 응급실을 찾은 사례가 10배나 증가했다. 국내에서도 2016년에 발생한 스몸비 관련 사고는 1360건으로 2011년보다 배 이상 늘었다.

호주보행자위원회는 광고대행사인 'DDB 시드니'에 공익광고 디자인을 의뢰했다. 딜런 해리슨(Dylan Harrison)이 이끄는 창의적인 디자인팀은 "한눈팔지 마라멈춰라, 보아라, 들어라, 생각하라"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각각 소녀, 소년, 어린이를 등장시킨 3부작 신문 광고와 TV 동영상 광고를 디자인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02/2017060203135.html

 "Don't Tune Out." - 한 눈 팔지 마라.

Stop-멈춰라.    Look-보아라.

Listen-들어라. Think-생각하라.

4개의 동사는 현대인들에게 반성적 삶을 촉구하는 도덕적 명령이기도 하다.

아래의 친구는 기특하게도 내가 이야기 하는 것을 귀담아 듣고 활동지에 기록하였다.

    *멈추라 ~ 자연훼손, 물질만능, 탐욕과 시기와 다툼을...
*보아라 ~ 자연의 아름다운과 세상 사람들의 고통을
*들어라 ~ 이웃과 친구의 말을, 아기의 웃음 소리를, 진리의 말씀을
*생각하라 ~ 내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그리고, 실천하라(Do !)

 

07. 돈과 도(), 참된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07돈과도-진정한 행복.hwp

[읽기] 빈부(貧富)와 길[]

인생은 한방이다.’이라는 허망한 생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노린다. 심지도 않고 경작하지 않은 채 수확하고자 한다. 은이들도 사이버 도박, 로또(lotto), 비트코인(bit coin)에 빠져 헤매고 있다. 돈도 청춘도 건강도 다 잃어버리는 절망의 젊은이들이 없기를 바란다.

子曰 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 得之 不處也,

貧與賤 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 得之 不去也

(자왈, 부여귀 시인지소욕야 불이기도 득지 불처야
빈여천 시인지소오야 불이기도 득지 불거야) - [이인04]편에서

부귀는 사람들이 바라는 바이나, 로써(정상적인 방법으로) 얻지 않았으면 처하지 말며, 빈천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바이나, 로써(정상적인 방법으로) 얻지 않았다면 버리지 않아야 한다.”

子曰 志於道 而恥惡衣惡食者 未足與議也

(자왈, 지어도 이치악의악식자 미족여의야) - [이인04]편에서

에 뜻을 두고서, 허름한 옷과 거친 음식을 부끄러워하는 사람과는 를 의론할 수 없다.”

飯疎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반소사음수 곡굉이침지 낙역재기중의 불의이부차귀 어아여부운) - [술이07]편에서

  “나물밥 먹고 맹물 마시며 팔을 굽혀 베고 자도 즐거움이 또한 그 속에 있다.
옳지 못한 부귀는 내게 있어서 뜬구름과 같다

      나쁜 방식으로 부를 얻어서는 절대 안 되며, 가난 또한 나쁜 방식으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도(正道)를 따라 부귀를 얻고 빈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그러나 세상의 일이 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이 있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처지가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가난을 부끄러워하는 사람과는 함께 진리의 길을 걸어 갈 수 없다. 일단사 일표음(一簞食 一瓢飮)’할지라도 도를 찾아가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겠다는 안회(顔回)와 같은 사람은 되기 어렵지만, 헤진 옷을 입고 거친 밥을 먹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소인배는 되지 말아야 한다.

[생각만들기] 부정하게 부귀를 얻는 방식은 뭘까?

()에 뜻을 두고 부귀를 얻는 방식은 뭘까?

물질적 풍요와 도덕적 삶의 행복 > 모둠활동

[생각 더하기] ○안중근의 유묵 ~ 불인자 불가이 구처약
   子: ", 樂, 仁者安仁 智者利仁"
    어질지 못한 자는 오랫동안 곤궁함에 처할 수 없으며, 장구하게 즐거움에도 처할 수 없다. (인자가 인을 편안히 여기고, 지자가 인을 이롭게 여긴다.)-이인편0402

 

06. 소확행(小確幸)과 안빈낙도(安貧樂道)

06소확행과 안회의 안빈낙도.hwp

2018 트랜드 : 소확행(小確幸)

세상 많은 사람들, 돈을 행복의 기준으로 여기고 있다. 돈이 많으면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고, 나누어 줄 것도 많아서 좋다. 그러나 돈은 쉽게 얻지도 못하고 남들 같이 많이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남과 비교하다보면 늘 내가 덜 가진 것 같다. 그래서 더 많이 갖기를 바란다. 돈은 내가 많이 가지면 남의 것은 줄어들고, 남이 더 많이 가지면 내 것이 줄어든다. 결국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커지게 된다. 돈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고 사건이 발생하고 불행해지는 경우도 많다. 결국 돈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반면 행복의 기준을 마음에 두는 사람도 있다. 마음은 아무리 나누어도 내 것이 줄어들지 않는다. 생각하기에 따라 마음은 쉽게 키울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다. 2018 트랜드로 소확행이라는 말이 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얻자는 말이다. 크고 멀리 있는 행복을 쫓는 것이 아니라, 내 가까이에 쉽게 얻을 수 있는 행복이 있다. 그것이 소확행이다.
 
노자는 만족을 아는 자가 부자이다[知足者富].”라고 했으며, 예수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했다. 논어에서 소확행을 찾고, 가난하지만 참 행복을 누리는 자는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본다.

노자 <도덕경> '지족자부(知足者富)'

공자의 수제자, 안회의 안빈낙도(安貧樂道)

공자에게는 많은 제자가 있었다. 그중에서 공자는 안회(顔回)를 특별히 사랑하였다. 안회의 자()가 자연(子淵)이라서 흔히 안연(顏淵)으로 불린다. 논어속에서 공자는 안회에게 한결같이 칭찬하고 있었다. 편애한 것이 아니라 칭찬을 들어 마땅할 만큼 덕행이 바르고, 학문을 좋아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안회는 30일에 아홉 끼 밖에 못 먹었을 만큼 가난하게 살았으며, 공부에 열중한 나머지 스물아홉에 백발이 되었으며, 결국은 영양실조에 걸려 일찍 죽고 말았다. 공자는 안회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세상이 나를 버렸구나 세상이 나를 버렸구나.(, 天喪予 天喪予ㆍ희, 천상여 천상여).” 라며 탄식하였다.

子曰 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
不改其樂 賢哉, 回也 -논어6 옹야편.

(자왈, “현재 회야. 일단사 일표음, 재루항 인불감기우, 회야. 불개기락 현재, 회야.)

   어질도다, 안회여. 한 소쿠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누추한 곳에 지내면서도 다른 사람은 그 근심을 견디어내지 못하거늘 안회는 즐거움을 잃지 않는구나. 어질도다 안회여.”

 

어느 누가 대소쿠리에 담긴 깡보리밥, 표주박에 담긴 물 한모금, 허물어지고 누추하기 짝이 없는 오두막살이를 좋아하겠는가? 비록 안회라 할지라도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안회가 그렇게 가난하게 살았어도 ()를 찾아가는 즐거움을 바꾸지 않았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뜻이 더 높고 큰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