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진 삶

이런저런 이야기 2018.07.04 20:40 Posted by 文 寸 문촌
꽃 핀다는 것은?

세상은 처절하고
생명은 질기다.

참 모진 삶
그렇게 꽃을 피운다.

우리의 고찰, 7곳의 산사가 우리나라 13번째의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지난 30일 오후(한국시각) 바레인에서 회의를 열어, 지난해 한국이 신청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7곳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확정했다. 등재목록에 오른 산사는
경남 양산 통도사, 경북 영주 부석사, 충북 보은 법주사, 전남 해남 대흥사, 경북 안동 봉정사, 충남 공주 마곡사, 전남 순천 선암사다.
모두 7~9세기 산속에 세워져 지금까지 법맥이 이어져온 절들이다. (한겨레 기사일부 발췌)

이들 산사는 특정 종교만의 재산과 사찰로 국한해서 생각하지 말며,
우리 모두가 이해하고 아끼며 보존해야 할 소중한 문화이다.

어릴 적부터 산사는 삶이었다. 엄마와 형님을 따라 자주 들리고 불전에 절하고 불공도 드렸다. 산과 절이 하나였고, 삶과 신앙이 한 울 안에 있었다.
그러다가 한일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 뜻 있는 선생님과 [@산사로 가는 길ᆞhttp://www.korearoot.net/sansa] 홈페이지를 제작했다.

그리고 같은 교과의 선생님과는 여름방학을 맞아 해인사 4박 5일 템플스테이에도 참여하였다.
종교와 관계없이 뭘 제대로 알아야 불교 사상을 가르칠 것 아닌가?
시작부터 하심ᆞ차수ᆞ안행ᆞ묵언(下心ᆞ叉手ᆞ雁行ᆞ默言)의 4계명을 받았다. 세상의 직업과 지위는 산사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나의 마음은 가장 낮은 곳에 두어야 한다. 무엇보다 좋은 일은 묵언 수행하는 것이었다.
특별히 명을 받아, 천주교 신자이면서 참여하게 된 동기를 묻기에 "하느님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계신다기에 이 산사에도 있는가 찾기위해서 왔다"고 하였다. 마지막 수계식에서 각명(覺明, '깨우쳐 밝다') 법명을 얻었다.
이제 '각명 요셉'이 되었다.
수료식에 나에게 "그래, 하느님은 찾았습니까?"라며 재차 소감을 묻기에,
"이 산사에도 하느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교회에서도 부처님이 계신지 찾아보겠다."고 하였다.
참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세계유산이 된 7곳의 산사 중에 통도사, 부석사, 법주사는 해인사, 송광사, 범어사, 수덕사 등과 더불어 나의 [산사로 가는 길] 홈페이지의 주인공들이다.
  선암사, 봉정사, 대흥사는 [산사로 가는 길]보다 1년 전(2001년)에 제작된 나의
@한국사상 현장순례ᆞ
(http://www.korearoot.net/sasang) 길에서 찾았던 도량이다.

부석사는 원효의 도반이자 라이벌인 의상대사의 주석지이다.
선암사는 보조국사 지눌과 쌍벽을 이루는 대각국사 의천의 도량이다. 이곳에는 의천의 진영(보물 1044호)이 보존되어 있다. 특히 송광사로 넘어가는 산 길 속의 추억, <@가는 길입니다.http://munchon.tistory.com/m/135'>은 지금도 아름다운 화두가 되어 흐르며, 송광사에서 만난 우뢰와 불전사물의 울림은 천지인 묘합의 멋진 하모니였다.

봉정사는 퇴계 이황 선생님을 뵈러 하회마을에서 도산서원 가는 길에서 지나칠 수 없는 곳이기에 들렀다.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극락전이 단아하게 앉아 있고, 가까운 곳에 퇴계의 제자 김성일의 학봉종택도 있기 때문이다.

전라도 해남의 대흥사는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제자이자 조선 다도의 중심에 있는 초의선사(일지암)를 뵙고자 찾아갔다.
또한 이곳은 초의의 동갑절친 추사 김정희의 유배길 일화가 있으며, 서도가들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서산대사(표충사)의 호국불교 성지이기도 하다.

~추사는 제주도 유배길에 대흥사의 초의에게 들러 대웅보전의 현판 글씨를 보고, 당장 떼라고 하였다. 유배가 풀려 돌아오는 길에는 다시 걸라고 하였단다. 누구의 글씨길래? 무엇이 그의 태도를 고치게 하였을까? 어떤 이는 이야기는 허구라고 하였다. 일리가 충분히 있다.

마곡사는 백범 김구가 명성왕후 시해 사건의 범인인 일인을 타살하고 옥에 갇혔다가 탈옥하여 은거한 곳으로 더욱 알려졌다.
@마곡사에서 김구를 만나다.

12. 길에서 읽는 논어
                     
: ‘나라다운 나라’, 사직단(社稷壇)에서 읽다.

12나라다운나라와 무신불립.hwp

사직단은 바로 국토와 식량의 근본인 땅과 곡식을 신()으로 섬기며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토지()의 신을 사()라 하며, 곡식의 신을 직()이라 한다. 좌묘우사(左廟右社)의 배치 양식에 의거하여 국왕이 거처하는 법궁(정궁)을 가운데 두고 동쪽(임금의 왼쪽)에 종묘를, 서쪽(임금의 오른쪽)에 사직단을 세우고 국가의 안녕을 기원드린다. 그래서 '종묘사직'이라 함은 곧 국가의 상징이 된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라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상징성에 따라 사직단은 네모난 모양을 하고 있다. 한 나라의 주권은 백성에게서 나온다. 그 백성이 편안히 거처하고 배불리 먹고 살기 위해서는 국토가 안정되고 식량이 풍부해야 한다. 그래서 땅과 곡식은 백성들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며나라를 다스리는 정치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맹자는 말했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百姓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그는 참으로 위대한 민본주의 사상가이다

孟子曰, “百姓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맹자왈,    백성위귀, 사직차지, 군위경 - 맹자[진심장구] 

     숫자로 읽는 사직단(社稷壇)

서울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10분 정도 걷다보면 사직단이 나온다. 사직단의 이해와 의미를 더 새기기 위해 숫자로 사직단을 이야기해본다. 사직단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기 위해서는 사직단 북쪽에 있는 종로 어린이 도서관에 올라 창으로 내려다보거나 뜰에서 바라봐야 한다. 육안이든 사진이든 사직단의 모습에서 가장 먼저 보이고 떠올리는 숫자는 4이다. 온통 사각형이다. 사신문에 사유문 그리고 그것을 연결한 담장, 그리고 사단과 직단의 사각제단. 사각형은 땅을 상징한다. 하늘은 원으로 상징된다. 어떤 사람은 먼저 8을 떠올렸다. 문이 여덟 개란다. 바깥의 네 개 신문(神門)과 안의 네 개의 유문(幽門)을 말한다.

  다음 보이고 떠올린 숫자는 당연 2이다. 동편이 사단이고 서편이 직단이다. 사단은 토지신의 제단이고, 직단은 곡신의 제단이다. 위에서 말한 북신문 양쪽의 예감도 두개이다.

  다음 숫자는 쉬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찾을 수 있다. 길이 세 개 있다. 북신문으로 들어가는 향축로, 서신문으로 들어가 판위에서 향축로와 만나는 어로, 그리고 신실에 보관되었던 태사(太社)ㆍ태직(太稷)ㆍᆞ후토(后土)ㆍᆞ후직(后稷)의 신위가 제단으로 걸어오는 신위로 이렇게 3개의 길이 있다. 또 두 제단은 1미터 정도의 높이로 3단으로 축석되어 있다. 위는 하늘이요. 아래는 땅이며 가운데 두터운 돌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 아래로부터 지()ㆍ인()ㆍ천()일 때, 사람(백성)이 가장 귀중하다는 의미이다. 맹자의 말씀에 견주면 사직[]ㆍ백성[]ㆍ임금[]’ 순이다. 제단으로 오르는 사방의 계단도 계단석이 3개씩이다자세히 보면 또 있다. 북방에 위치한 북신문만 삼문(三門)이다. 그렇게 정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도성과 도읍과 궁성 등 모든 문은 남문이 정문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수원화성의 정문은 남문인 팔달문이 아니라, 북문인 장안문이 정문이다. 이는 임금님이 계신 한양도성이 수원의 북쪽에 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사직단의 주인인 사신(社神)과 직신(稷神)은 하늘(Heaven)에 있으며, 그 하늘은 ()에 있기 때문에 북문이 정문인 것이다. 물론 모든 나라 모든 도읍의 사직단이 한결같이 정문이 북문이라는 것은 자신하지 못하겠다.

  3보다 더 찾기 어려운 유일한, 정말 유일한 1이 있다. 바로 사단 위에 반구형의 돌이 박혀 있다. 석주(石主)라 한다. 있으니 찾아보라고 하며 힌트를 주면 찾을 수 있다. 전국의 수백 사직단 중에서도 없는데, 이곳이 바로 나라의 중심이란 뜻으로 유일하게 있다 보니 돌의 주인이라 하여 석주라 한다. 사단(社壇) 위에는 직경 30센티미터 정도의 둥근 돌이 남쪽 계단 쪽에 박혀있었다. 사직단 안내도 그림에서도 자세히 보면 구분하여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이걸 묻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고 한다해설사의 말씀에 의하면, 사직단은 지방 군현에도 있었으니 조선 땅에 400여 개 정도가 있었다 한다그런데 이 곳 한양의 사직단에서만 유일하게 이 돌이 있다는 것이다이 돌을 석주(石主)라 한다. 석주(石柱) 아닌가 되물었지만, 주인 주()가 맞다고 하면서 한양의 사단(社壇)과 석주가 바로 조선 땅의 중심이며 그 주인이라는 것을 상징한다는 것이다직경 30센티이며 깊이는 75센티 정도로 땅에 묻혀 있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감추어져 있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눈으로만 세상을 판단해선 안 된다. 그 숫자는 5이다. 사단 아래에는 오방색의 흙으로 채워져 있다고 한다. 오방색이란 청백적흑색의 4방색에 중앙을 상징하는 황색의 흙으로 사단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또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다. 국토의 상징인 사단(社壇) 위를 덮고 있는 흙은 일반적인 흙으로 덮여 있지만, 그 안에는 오방색에 따라서 청토(), 백토(), 적토(), 현토() 그리고 황제를 상징하는 황토(중앙)로 다섯 구역을 나눠 채워져 있다고 한다하지만 곡식의 상징인 직단에서는 겉과 속이 똑같이 일반적인 흙으로 채워지고 덮여 있단다그러나 정사각형의 제단이 한 나라의 국토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 오행(五行) 오방(五方)을 다 가졌으니 우주를 상징하기도 한다.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 하지만, 사각형은 우주를 상징하기도 한다. 여기서 나는 의문점이 떠올라 엉뚱한 질문을 드렸다사단에 채워진 오방색의 흙은 매우 흥미롭다. 사단이 국토의 상징이니 흙으로 채워졌다는 것은 매우 합당한 이치다. 그렇다면 곡식의 상징인 직단에서는 흙 위에 곡식을 심던가 곡식을 상징하는 풀이라도 자라도록 해야 하지 않는가?” 라고 물었다웃으면서 말씀하시길, 결국 흙이 있어야 곡식이 자라니 '()'이 근본이란다.  

  이제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숫자를 이야기하려 한다. 그것은 나라는 무엇인가’ ‘정치의 근본은 무엇인가를 묻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바로 0을 제시한다. ‘무신불립을 이야기 한다.

4

2

3

1

5

0

사각제단
사신문
사유문

두개의 제단
사단-직단

삼문형식의
북신문
3개의 길
3단 축석

사단의
석주
(石主)

사단의
오방색 흙

무신불립
(
無信不立)

무신불립(無信不立),‘나라다운 나라를 위하여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나라를 다스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다. 이에 공자는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라고 하였다. 첫째는 먹는 것, 경제다(足食ㆍ족식). 둘째는 자위력, 즉 군대다(足兵ㆍ족병). 셋째는 믿음, 곧 백성들의 신뢰이다(民信之ㆍ민신지).” 자공이 다시 물었다. 그중에서 부득이 하나를 뺀다면 어떤 것을 먼저 빼야 합니까?” 공자는 군대[]를 먼저 빼라고 하였다. 자공이 다시 물었다. 또 하나를 부득이 뺀다면 어떤 것을 빼야 합니까?” 공자는 경제[]를 빼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였다.

옛날부터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죽어 왔다. 그러나 백성들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를 제대로 세우는 것이 아니다.

子曰, 無信不立 자왈, 무신불립  - 《논어안연12.07
 
   
이처럼 무신불립(無信不立)’은 믿음과 의리가 없으면 개인이나 국가가 존립하기 어려우므로 신의를 지켜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단 벗 사이의 신뢰를 이야기하는 붕우유신(朋友有信)만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나라다운 나라를 다스리는데도 신뢰가 으뜸이다. 이후에 제경공이라는 사람이 공자에게 정사를 물었다. 이에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어버이는 어버이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臣臣 父父子子]”라고 답하였다. 이제 계강자(季康子)라는 사람이 공자에게 정치를 물었다. 공자 대답하기를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이다.[政者正也]” 참으로 간단하고 쉬운 대답이다. 공자에게 도()라는 진리를 이렇게 단순한데,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실천하기를 어려워한다.

君君臣臣 父父子子 군군신신 부부자자  - 논어안연12.11

政者正也 정자정야  - 논어안연12.17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누구나 자기다움을 잃어버리면 제 자리에 바로 설 수 없다. ()이라는 글자는 사람[]과 말씀[]’이라는 글자로 만들어졌다. 사람의 말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며, 자기에게 주어진 직책과 이름[]에 걸맞게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충실하다는 것은 거짓됨이 없이 자기 최선을 다하는 것[盡己之謂 忠]’이며, 바로 정명(正名ㆍ바른 이름ㆍ이름다움)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신(無信)이면 정명(正名)을 잃은 것이다. 부모도 자식들에게 믿음을 잃어버리면 자식들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선생님도 학생들에게 신의를 잃어버리면 교탁에 서기가 부끄러울 것이다. 하물며 나라의 정치 지도자가 국민들로부터 신의를 잃어버리면 어떤 지경이 될까? 어떻게 제대로 정치하며,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

생각 만들기 : 내가 바라는 나라다운 나라?

 

자문우답(自問友答)> 나의 새로운 의문점, 친구에서 구하다. 

自問 :

友答1 :

友答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