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팝송으로 배우는 영어, Pops English(팝스 잉글리시)의 부지영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Paul McCartney (폴 매카트니)의 ‘Silly Love Songs’의 가사에 관해 전해 드렸는데요. 한심한 사랑노래나 만든다는 비판에 시달리던 폴 매카트니가 이에 대한 응답으로 만든 노래라고 말씀드렸죠? Beatles (비틀즈)의 동료였던 John Lennon (존 레논)도 이같이 폴 매카트니를 비판하는데 선봉에 섰던 사람이었습니다. 존 레논은 평화를 사랑하는 반전 운동가로서, 그같은 사상을 노래에 담기위해 노력했는데요. 1971년에 발표된 ‘Imagine (상상해 보세요)’는 그런 존 레논의 생각이 잘 표현된 노래로, ‘peace anthem (평화를 상징하는 노래)’로 알려져 있습니다. 팝송으로 배우는 영어 ‘팝스 잉글리시’, 오늘은 존 레논의 대표곡인 ‘Imagine의 가사를 해석해 보고, 또 노래에 얽힌 사연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절 듣습니다. 이제 1절 가사 해석해 보죠.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하려고만 하면 쉬운 일이랍니다.
(그러니까 마음 먹으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란 뜻이죠?)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우리 아래 지옥도 없고
위에는 그저 하늘 만이 있는

(여기서 하늘은 천국을 의미하는 하늘 나라가 아니라 그냥 물리적인 의미의 하늘입니다. ‘하늘과 땅’ 할 때의 하늘이죠.)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for today

모든 사람이
그저 오늘을 위해 서로 나누며 사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앞날을 걱정할 필요없이 사람들이 함께 나누며 사는 모습을 상상해 보란 뜻이죠? 여기서 John Lennon은 ‘sharing for today’라고 했지만 요즘에는 ‘living for today’라고 많이 합니다.)

1절 가사 해석해 봤는데요. 어떻습니까? 평화롭고 푸른 하늘이 연상되면서 마음이 밝아지는 것 같죠? ‘Imagine’, 이 노래는 존 레논이 1971년에 발표한 같은 이름의 앨범에 수록된 곡인데요.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명곡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지난 2004년 음악전문지 ‘Rolling Stone (롤링 스톤)’이 설문조사를 통해 뽑은 가장 위대한 노래 3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 노래는 원래 존 레논이 혼자서 작사, 작곡한 걸로 알려졌었지만, 최근에는 레논의 아내였던 오노 요코가 기여한 사실이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레논이 1963년에 쓴 ‘I’ll Get You’라는 노래 가사에 보면 ‘Imagine I’m in love with you, it’s easy cause I know. (내가 당신과 사랑에 빠졌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건 아주 쉬운 일이랍니다. 왜냐하면 난 그걸 알거든요.) 라는 구절이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노 요코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쓴 시에 보면 ‘Imagine a raindrop. (빗방울을 상상해 보세요.)’, ‘Imagine the clouds dripping. (구름이 뚝뚝 떨어지는 걸 상상해 보세요.)’ 란 표현이 나옵니다. 실제로 존 레논은 죽기 얼마 전 노래의 바탕과 가사는 오노의 생각이었다고 인정했습니다.

자, 이제 2절 들어볼까요?

2절 가사 해석해 보겠습니다.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나라란 게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랍니다.

(상상하기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랍니다. hard, 딱딱하다는 뜻도 있지만 difficult와 같은 의미로 어렵다는 뜻으로도 쓰이죠?)

Nothing to kill or die for

누군가를 죽여야 할 일도, 무엇인가를 위해 죽어야 할 이유도 없는

(여기서 die for는 무엇인가를 위해 죽는다는 뜻이죠. ‘He died for his country.’하면 ‘조국을 위해서 숨졌다’는 뜻입니다. 목숨을 바칠 만큼 조국이 소중하다는 뜻이죠? ‘die for’는 무엇인가 몹시 갖고 싶다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우리도 그런 말 자주 쓰죠? ‘그거 갖고싶어 죽겠어’라구요. ‘I’m dying for some ice cream.’ 하면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죽겠어, 아이스크림 너무 먹고 싶어’란 뜻입니다. 또 die는 명사로 주사위라는 뜻도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주사위 하나를 말할 때도 보통 복수형인 dice를 많이 쓰는데요. 미국 사람들이 그렇게 쓰는 경우는 드물구요. 주사위 한 개만 있을 때는 단수형인die를 씁니다. ‘Where’s the die?’ 하면 ‘주사위 어디 있어? 주사위 어디 갔지?’ 하는 뜻입니다. 하지만 게임을 할 때 주사위를 한 개 갖고 하는 경우는 드물죠. 보통 두 개, 즉 한 쌍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요. 그렇기 때문에 단수형인 die 보다는 복수형인 dice를 더 많이 듣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 형판, 찍어내는 틀도 die라고 하는데요. 이 때die의 복수는 ‘dies’ 입니다. 염료, 또는 염색하다는 뜻의 ‘dye’는 발음은 같지만 철자가 틀린 경우입니다. )

And no religion too

그리고 종교란 것도 없는

(독실한 종교인들은 이 구절을 부를 때 ‘And one religion too’, ‘하나의 종교 만이 있는’ 이라고 고쳐서 부르기도 한다고 하네요.)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peace 앞에 in을 붙이면 평화 속에, 평화롭게라는 뜻입니다. 반대로 ‘in war’ 하면 전쟁중이다, 싸우고있다는 뜻이죠?)

2절 가사 해석해 봤는데요.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이상향을 꿈꾸던 존 레논과 아내 오노 요코는 만우절인 1973년 4월 1일 이상향을 뜻하는 ‘utopia (유토피아)’에서 본 따 ‘Nutopia’라는 나라를 세웠습니다. ‘뉴토피아’는 ‘Imagine’ 노래처럼 모든 사람들이 싸우지않고 아무 근심없이 사는 나라인데요. 레논과 오노는 ‘뉴토피아’ 건국 선언문에서 ‘뉴토피아에는 땅도 없고, 국경도 없으며, 여권도 없고, 오로지 사람들 만이 있을 뿐이다. 뉴토피아에는 우주의 법칙 외에는 아무런 법규도 없다. 뉴토피아 국민은 모두 나라를 대표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뉴토피아를 안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누구나 뉴토피아 시민이 될 수 있다’라고 썼습니다. 존 레논과 오노 요코는 뉴토피아 국기와 국가를 만들기도 했는데요. 먼저 후렴 듣고 계속 알아보겠습니다.

(후렴)
You may say that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be as one

당신은 내가 몽상가라고 말할 지 모르지만
   (당신은 내가 꿈꾸고 있다고 말할 지 모르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 혼자 만은 아니랍니다.
언제가 당신도 동참하길 바래요.
그러면 세상은 하나가 될 거에요.

존 레논과 부인 오노 요코가 ‘뉴토피아’라는 나라를 세우고 국가와 국기도 만들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뉴토피아 국기는 아무런 문양도, 도안도 없이 그저 흰 색입니다. 두 사람은 기자회견에서 뉴토피아 국기를 흔들었다고 하는데요. 그냥 흰 티슈를 흔들었다고 합니다. 레논은 1973년에 11월에 발표한 ‘Mind Games (심리조작)’ 이란 제목의 앨범에 뉴토피아 국가를 수록했는데요. 이 곡을 틀면 단지 6 초 동안 침묵이 흐를 뿐입니다. 침묵이 흐르는 동안 각자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생각하면 그 노래가 바로 뉴토피아 국가라고 하네요. 존 레논과 오노 요코는 유엔에 뉴토피아를 회원국으로 가입시켜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답니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뉴토피아 웹사이트가 있는데요. 존 레논이 영주권 문제로 미국 정부와 대립했던 문제를 다룬 ‘미국 대 존 레논’이라는 기록영화가 있었죠. 이 영화 제작사인 ‘Lions Gate Entertainment (라이온스 게이트 엔터테인먼트)’가 www.joinnutopia.com이란 웹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자, 이제 3절 들어보죠.

3절 가사 해석해 보겠습니다.

(3절)
Imagine no possessions
I wonder if you can
No need for greed or hunger
A brotherhood of man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세요.
    (소유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세요.)
당신이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욕심을 부릴 일도, 배고플 이유도 없는
한 형제처럼  모든 사람들이
함께 나누며 사는 세상을 상상해 봐요.

(후렴)
You may say that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be as one

당신은 내가 몽상가라고 말할 지 모르지만
   (당신은 내가 꿈꾸고 있다고 말할 지 모르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 혼자 만은 아니랍니다.
언제가 당신도 동참하길 바래요.
그러면 세상은 하나가 될 거에요.

소유가 없는 세상, 욕심도 없고, 배고픈 사람도 없는 세상, 그런 세상이 있다면 정말로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노래 덕분에 존 레논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평화의 상징으로, 거의 우상처럼 숭배를 받고 있죠. 하지만 존 레논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말로만 평화를 부르짖었을 뿐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는 건데요. 특히 ‘소유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세요’라는 구절이 도마에 오르고 있습니다. 비틀즈에 비판적이었던 영국 방송인 Robert Elms(로버트 엠스)는 ‘맨하탄의 호화주택에 모피코트 만을 위한 온도조절이 되는 옷장을 갖추고 사는 사람이 무소유를 주장한다니 위선’이라고 공격했구요. 가수 Elvis Costello (엘비스 카스텔로)는 ‘The Other Side of Summer (여름의 한편)’란 제목의 노래에서 ‘Was it a millionaire who said ‘Imagine no possessions’?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해 보세요’라고 말한 사람이 백만장자가 아니었던가요?) 라고 비꼬았습니다. 막상 좋은 생각을 해도 실천에 옮기기란 쉽지 않죠. 하지만 이런 생각 조차 못하고 욕심 때문에 서로 싸우고 살인까지 저지르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 쪽으로 보면 생각을 했다는 자체 만으로도 점수를 받을 만 한 것 같습니다.

종교와 내세에 대한 부정, 소유에 대한 부정, 또 국가와 민족주의에 대한 부정이 담겨있는 존 레논의 노래 ‘Imagine’…. 이 노래는 평화를 상징하는 노래로 시위나 특별한 행사때 많이 불리우죠. 미국의 WABC 라디오 방송은 히트곡 중심의 음악방송에서 뉴스토크 방송으로 형식을 바꿀 때 마지막 곡으로 이 노래를 틀기도 했구요. 이 노래는 ‘Amnesty International (국제사면위원회)’는 공식노래이기도 합니다. 또 이란의 한 좌파 정당은 회의를 시작할 때 마다 이 노래를 부른다고 합니다.

존 레논이 ‘Imagine’을 작곡할 때 사용했던 피아노가 현재 세계각지의 참사 현장을 돌고 있는데요. 이 피아노는 영국 가수 George Michael (조지 마이클)이 소유하고 있는데 인간의 정신을 주제로 한 기록영화와 사진집 촬영을 위해 순회중에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케네디 대통령 살해현장,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살해당한 현장, 태풍 카트리나로 큰 피해를 입은 뉴올리안스시, 얼마전 대규모 총격사건이 발생한 버지니아 공과대학 등지를 돌고 있습니다.

‘Imagine’ 노래는 존 레논 외에도 다이애나 로스, 돌리 파튼, 존 바에스 등 많은 유명 가수들이 불렀는데요. 지난 2003년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전 총리의 80회 생일축하 공연에 참석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이 노래를 불러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죠. 클린턴 전 대통령은 당시 이스라엘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던 10대 가수 Liel (리엘), 또 유태인 어린이 40명, 아랍 어린이 40명과 함께 이 노래, ‘Imagine’을 불렀습니다. 처음에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좀 어색했는지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다가 나중에 큰 소리로 부르는 걸 들을 수 있는데요. 팝송으로 배우는 영어, ‘팝스 잉글리시’, 오늘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노래 솜씨를 함께 감상하면서 이 시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스크랩 함 : 팝스잉글리쉬 >
 https://www.voakorea.com/a/a-35-2007-06-06-voa14-91263689/1306281.html

이 땅에 평화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 평화를 만들어가는 음악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화해, 음악이 만들어낸 기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오랜 역사 속에서 서로 반목하는 사이다. 두 민족 사이에는 감정의 골이 깊이 패여 있어서 서로 한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스라엘 출신의 세계적인 명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팔레스타인 출신인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는 민족적인 원한으로 인해 뜻을 같이 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오랜 우정을 이어가고 있었고, 양국의 평화를 위한 큰 그림을 그려나갔으니 바로 <다니엘 바렌보임과 서동시집 오케스트라>가 그것이다.


1999년에 시작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The West-Eastern Divan Orchestra)'는 바렌보임에게 '평화의 지휘자'라는 별칭을 안겨 주었다. 이 오케스트라는 서로 반목하는 사이인 이스라엘과 시리아, 레바논 및 팔레스타인 등 중동 출신 젊은이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2011년 광복절에는 임진각에서 평화 콘서트를 열어 분단국가인 한반도에 화합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였다.

마음의 장벽을 뛰어넘은 아름다운 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이름인 '서동시집'은 괴테의 시에서 따왔다. 동양과 서양이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교류해야 한다고 괴테는 서동시집에서 말했다. 바렌보임 역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서로를 편견 없이 바라보고 교류해야 한다고 보았다.
서로 불구대천의 원수인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출신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함께 앉아 하나의 소리를 내기 위해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고 눈을 맞추는 순간을 카메라는 포착한다. 그것은 국적, 종교, 문화, 생각이 다른 젊은이들이 아름다운 하모니를 완성해가며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왜곡된 이미지를 벗고 진짜를 발견해가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중략)
이 영화는 음악을 통해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이해하고 화해(knowledge is beginning)하며 끝내는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보여준다. '음악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화해의 시작이 될 수는 있다'고 바렌보임은 말했다. 음악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시킬 수 있는 수단이라는 바렌보임의 이 믿음은 단원들에게도 전해져 그들을 바꾸어 놓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에게 발탁되어 배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워크숍에 참여한 연주자들은 점차 이 수업이 음악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자신이 점점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 변화를 받아들인다.

이해와 화해(knowledge is beginning) 
"팔레스타인 사람은 모두 배관공이거나 정비공인 줄 알았"던 이스라엘 연주자와 "이스라엘 사람들은 인간으로도 안 보였다"는 팔레스타인 연주자가 한 자리에 모여 연주를 한다. 그들이 서로 부딪혔을 건 안 봐도 뻔하다. 그들은 음악으로 증오의 장벽을 부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못했다. 민감한 정치 문제가 나올 때면 카메라 앞에서 '스톱'을 외치기 바쁘다. 그런 그들이 분쟁지역인 팔레스타인의 수도 '라말라'에서 공연을 한다. 이스라엘 출신 단원들에게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지만 그들은 용기를 내어 적지인 라말라로 가서 공연을 함께 했고, 이를 본 팔레스타인의 한 소녀는 '이스라엘에서 온 것들 중 군대와 탱크가 아닌 것은 최초였다'고 말했다고 한다.

발췌> 오마이스타, 다큐영화 <다니엘 바렌보임과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보고, 이승숙. 17.02.12

끝나지 않은 제주43사건

19473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43일에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9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민관군 등 3만 여명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제주 43사건은 한국 근현대사에 큰 고통을 남긴 상처이다. 아직도 그 상처는 다 아물지 못하고 응어리도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제대로 된 이름도 없이 그냥 제주 43’으로도 부르고, ‘제주 43사건으로도 불린다. 한마디로 정리하기에 참으로 복잡하다. 그래도 21세기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시대를 꿈꾸면서 제주 43사건의 상처를 그냥 묻어버리고 지울 수는 없다. 고통 받은 영령과 유족과 지역주민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빌며 위로하지 않을 수 없다.

제주43사건의 과정 주요 일지

1947. 3. 1 : 미군정 시절, 3·128주년을 맞아 제주북국민학교에서 기념식을 마치고 군중은 시가행진을 하였고, 관덕정 앞 광장에서 구경하던 어린아이가 기마경찰이 탄 말에 차여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사고수습과 사과 없이 지나가는 기마경찰을 쫓아 일부 군중이 돌멩이를 던지며 쫓았고, 이를 경찰서 습격으로 오인한 경찰이 군중에게 총을 발포하여 6명이 사망하고 6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는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강경 진압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유투브] 3.1절 발포사건 70주년
https://www.youtube.com/watch?v=FFAZZRzANW4&t=28s

1948. 4. 3 : 새벽 2시를 전후하여 350명의 무장대가 미군정 치하의 도내 24개 경찰지서 가운데 12개 지서를 일제히 공격하였고, 경찰과 서북청년회 숙소, 독립촉성국민회와 대동청년단 등 우익단체 요인의 집을 습격하였다. 이로 인하여 경찰 4명과 민간인 8, 무장대 2명이 사망하였다. 무장대는 경찰과 우익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 남한 단독선거 및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조국의 통일 독립, 반미 구국투쟁을 무장봉기의 기치로 내세웠다. 이때부터 폭력은 다른 폭력을 불러오고 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지면서 방화와 탈취와 살인과 학살로 이어졌다. 분노의 골은 더 깊어졌다.

1948. 5. 10 남한 단독 선거에서 제주도는 투표수 과반수 미달로 무효 처리되었고, 미군정은 강경진압을 계속하면서 623일에 재선거를 실시하려고 하였으나 이마저도 무산되었다. 이후 남쪽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같은 해 99일에는 북쪽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던 해, 1017일 제주 해안선으로부터 5이외의 지점 및 산악지대의 무허가 통행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폭도배로 인정하여 총살에 처할 것이라는 포고문을 발표하였다. 포고문에서 언급한 해안선으로부터 5이외의 지점은 한라산 등 산악지역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해변을 제외한 중산간 마을(한라산 해발 200m~600m사이의 지역) 전부가 해당하여 통행금지란 결국 거주를 금지한다는 의미였다. 1117일에는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1949. 1. 17 토벌대에 의한 북촌사건이 발생하여 주민 약 400명이 학살되었으며, 10. 2 군법회의 결과 사형 선고된 249명이 총살되고 제주 비행장 인근에 암매장 되었다. 이후 1950. 6. 25부터 1953. 7. 27까지 동족상잔의 6.25 전쟁 중에도 제주 43사건은 진행되었다.

 

1954921: 한라산 금족(禁足)지역이 전면 개방되면서 19473·1절 발포사건과 19484·3 무장봉기로 촉발되었던 제주4·3사건은 77개월 만에 비로소 막을 내리게 된다.

 

제주4·3사건으로 인해 제주지역 공동체는 파괴되고 엄청난 물적 피해를 입었으며, 무엇보다 깊은 상처로 남아있는 참혹한 인명피해를 가져왔다. 2000년에 4·3특별법 공포 이후 4·3사건으로 인한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청산하고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21세기를 출발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며, 2003년에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발간되었다. 20051월에 제주도는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되었고 2014년에서야 '43희생자 추념일'이 국가기념일로 결정하였다.

차마 입에 올리기에 쉽지 않은 사건.
상처가 치유되어야 하는데,
과거는 청산되어야 하는데,
기억하고 싶지 않고
입에 올리기에도 두려워
그냥 묻어두고 썩기를 바라고
모진 바람에 날려 말라버리기만 기다렸던 이름이다.
그래서 이름없이 제주 4.3이라고,
억지로 이름하여 제주 4.3사건이라고 했다.
늦었지만 이제야 찾았다.
제주 4.3 평화공원.

[비설(飛說)]ᆞ변병생 모자 조형물
   49년 1월, 눈 내리는 날 봉개면 한라산 중산간지대. 토벌대의 작전이 시작되었다. 두살배기를 업고 토벌대에 쫓겨 달아나던 어머니(당시 25세, 봉개동 주민 변변생)가 총에 맞았다. 피를 흘리면서 발을 끌면서 걸어가다가 무릎을 꿇었다. 등 뒤에 아기도 총을 맞았을까 살피다가 그만 끌어앉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리고 모녀는 눈밭에 묻혀버렸다. 슬프디 슬픈 이야기(悲說-비설)이다. 
  그 뒤로 산수국이 피멍같이 피어있다.  

 이 슬픈 이야기[비설悲說]의 주인공인 봉개동 주민,
                 
변병생 모녀에게 추모의 시를 지어 바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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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에 산수국이 많이 피었다. 다 못한 슬픈 이야기를 간직한듯 하다.

죽어가면서도 엄마는 아기를 재우는 자장가를 부른다. 웡이자랑~ 웡이자랑~
나선형으로 조성된 비설 조형물을 맴돌듯이 찾아 들어가면서 음각되어있는 웡이자랑 자장가를 읽어본다. '웡이자랑 웡이자랑~' 후렴구에 젖어 나도 모르게 자장가가 되었다. 두 눈에서 눈물자국이 떨어진다.   

 

"'웡이자랑 웡이자랑. 우리 아긴 자는 소리.  
놈의 아긴 우는 소리로고나. 웡이자랑 웡이자랑~~
자는 건 잠소리여 노는건 남소리여"
 

"웡이 자랑 웡이 웡이 자랑 자랑 웡이 자랑 /
우리 아기 잘도잔다 남의 애기 잘도 논다 /
자랑 자랑 자랑 / 도지밑에 검둥개야 앞마당 노는개야 /
자랑 자랑 자랑 / 우리애기 공밥주고 우리애기 재워주렴 /
자랑 자랑 자랑 / 웡이 자랑 웡이 자랑 웡이 자랑 자랑 웡이 자랑 자랑"

 

제주4.3사건 행방불명희생자 위령단

위패에 모셔진 영령들, 그리고 찾지못한 행불자 희생자들....
제주도 사람 다 죽인 것 아냐?
"...섬 하나가 몬딱 감옥이었주마씸, 섬 하나가 몬딱 죽음이었주마씸...."  

전쟁도 아닌 상태에서 정부에 의해, 공권력에 의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수 있을까? 지옥이 따로 없었겠구나.  

[위령제단]

[위령탑과 각명비]

[귀천]-조형물 : 희생된 어린아이, 학생, 성인이 저 세상 갈 적에 입고간 수의를 조형하였다.

위령탑에서 바라본 귀천 조형물과 위령제단

[4.3평화 기념관]

제주4.3평화공원 전경도

 

 

  아름다운 세상을 희망합니다.
  전철에서 참 포근한 장면을 보았어요. 누구의 생각인지, 작지만 이런 예쁜 생각이 세상을 보다 살 맛나게 아름답게 만들어주네요. 임산모가 저 자리에 앉아 저 인형을 안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상상이 커지면서 내가 저 자리에 앉아 저 인형을 안고 있었습니다.
  삶에 숭고한 가치를 가져다 주는 것은 죽음이라며, "Before I die, I want to~"에 답해보라고 아이들에게 주문했습니다. 지금말고 일주일 동안 화두로 잡고, 다음 수업 시간에 말해보자고 했습니다.
  잠시후, 침묵을 깨고 한 학생이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죽기 전에 뭘 하고 싶습니까?" 나도 고수들 같이 답하지 않고 되물어 보려다가, '옳거니!' 라고 반기면서 이렇게 답했습니다.
   "나는 죽기 전에, 임신을 하고 싶다."
    아이들이 경악을 하면서 나를 일제히 바라봅니다. "헐?~뭐라고요? 어떻게요? 왜요?" 눈빛이 다양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일은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이지 않을까요? 그 일에 나도 동참해보고 싶어서요. 과학이 발달하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다음 생에라도 엄마되길 기약하고, 상상의 세계에서라도 간절히 바라며 아기를 가진 엄마들을 축복하고 지켜주고 싶습니다.
  "비었다고 함부로 앉지마라. 아기엄마를 위한 자리란다." 사진을 보여 주었습니다.

참고 <논어> 죽음의 문제ㅡBefore I 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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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다가 '성학십도' 병풍을 비치해 놓고 있다. 율곡학파는 '고산구곡도(高山九曲圖)' 병풍이었지만, 퇴계학파는 '성학십도' 병풍을 지니는 것이 전통이었다. 내가 지니고 있는 성학십도 병풍은 서예가의 손으로 쓴 붓글씨가 아니고 도산서원에 보관되어 있었던 성학십도 목판본에다가 먹물을 발라서 찍어낸 것이다.

퇴계학파는 아니지만 이 병풍을 거실에 쭉 펼쳐 놓고 있으면 문자의 향기가 서서히 집 안에 퍼지는 것 같다. 그 병풍 앞에 방석을 놓고 앉아 있으면 퇴계 선생의 '철학 그림'인 십도(十圖)가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혼자서 차를 한잔 끓여 마시면서 눈을 감고 있으면 머릿속으로 들어온 그림들이 다시 아랫배로 내려가는 듯한 착각을 한다. 그러면 만족감이 온다. '아! 나는 조선 유학의 전통을 아직 잊지 않고 있다'는 보수적 자존심이다.

이번에 한형조(60) 교수가 '성학십도' 해설서를 내놓았다. 퇴계가 평생 공부한 내용을 참기름 짜듯이 압축한 결과물이 성학십도라서, 일반인들은 그 내용과 맥락(context)을 깊이 있게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수재라고 소문난 한 교수가 성학십도를 떡갈비 만들 듯이 잘게 씹어서 책을 낸 것이다. '해묵은 사상이 현대의 우리에게 아무런 자양도 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이다.

'외래의 관점들이 본격 검증도 거치지 않은 채 그저 밀려왔다가 유행처럼 다시 썰물로 빠져나간다. 우리는 무엇에 기초하여 문화적 이상을 세우고 문법을 만들어 갈 것인가!'는 탄식에 나도 아주 공감한다. 성학십도의 핵심은 9장 '경재잠(敬齋箴)'이다. 선비 정신의 핵심은 존중과 배려에 있다는 내용이다. 나와 타인, 자연에 대한 존중과 배려 말이다.

그게 경(敬)이다. 지금도 88세 된 퇴계 종손은 종택을 찾아오는 10대 후반의 학생들과 이야기를 할 때에도 항상 무릎을 꿇은 자세이다. 상대방에게는 편히 앉으라고 권한다.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무릎 꿇는 자세가 평생 습관이 되어 익숙하다고 한다. 경재잠의 정신이 400년 넘게 그 후손에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 1151
"그리스神 계보는 줄줄 외면서… 삼국유사는 왜 안 읽나요"
문화 유석재 기자
입력 2018.08.07 03:01
삼국유사ㅡ스크랩
문체부 장관 지낸 최광식 교수 '삼국유사의 신화 이야기' 펴내

최광식(64)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맡고 있던 2010년, '그리스의 신(神)과 인간' 특별전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초등학생 아이들이 그리스 신 계보를 줄줄 외우는 거예요. 아~ 이것 참, 답답하더라고요. 우리나라에도 신화가 있는데 그건 통 모르고 말이죠…."

그가 말하는 '한국 신화의 보고(寶庫)'는 바로 '삼국유사(三國遺事)'다. "서양문화의 뿌리가 그리스·로마 신화라면, 우리 민족문화는 그것을 '삼국유사'에 실린 건국 신화와 시조 신화에서 찾아야 합니다." 최 교수는 최근 단행본 '삼국유사의 신화 이야기'(세창출판사)를 냈다. 고려대출판부에서 박대재 교수와 '점교 삼국유사'(2009), 역주본 '삼국유사'(전 3권·2014)를 내고 '읽기 쉬운 삼국유사'(2015)를 쓴 데 이어 네 번째 '삼국유사' 작업이다.

최광식 교수가 도깨비 문양 고구려 와당의 복제품을 들고 활짝 웃었다. '삼국유사'는 우리 토착 신앙이 불교와 어떻게 융합됐는지 잘 보여주는 사료다.
/장련성 객원기자

왜 '삼국유사'인가? "흔히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고 '삼국유사'는 야사(野史)로 봅니다. 하지만 이 구도는 잘못됐습니다." 일연 스님은 고대의 역사와 불교, 신화와 설화·향가를 비롯한 민족의 문화유산을 남기고자 '삼국유사'를 썼다는 것이다. "무미건조한 '사기'에 비해 '유사'는 생동감이 넘치는 인간의 모습과 감칠맛 나는 정서가 담겨 있지요."

이를 깨달은 것은 고려대 사학과 학생 시절 '두 책을 비교하라'는 과제를 수행하면서였다. 그는 '삼국유사'를 평생 공부하겠노라 마음먹고 석사 논문을 썼는데, 당시 그의 논문을 둘러싸고 '이걸 과연 역사학 영역으로 봐야 하느냐'를 논의하는 학과 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이번 책 '삼국유사의 신화 이야기'에서 최 교수는 "신화란 단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다"고 말한다. 그는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살았던 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상징적으로 반영하고, 문화의 원형을 보여준다"고 했다. 신화에 나타난 '코드(code)'를 잘 들여다보면 실제 역사가 보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단군신화는 사실상 그 아버지 환웅이 중심이 된 '환웅 신화'인데, 신단수에서 세상을 연 일종의 천지창조 신화 속에서 곡식과 쑥·마늘을 가진 '농경 세력'의 등장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토착 세력인 호랑이는 수렵 종족, 곰은 수렵에서 농경으로 전환하는 단계의 종족을 상징하고 있다.

"신라의 석탈해와 가야의 허황옥 신화는 해양 세력의 유입을 보여주는 단서이지요. 김알지 신화는 발달한 철기와 제련 기술을 지닌 북방 세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주인공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천강(天降) 신화를 북방계, 알에서 태어났다는 난생(卵生) 신화를 남방계로 나눠 '한국 신화는 대부분 남방계'로 본 과거 일본인 학자들의 견해를 반박했다. 부여·고구려·신라·가야 모두 '천강'과 '난생'의 요소가 혼합돼 있다는 것이다. 중세에 이르러 신화는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갈리는데, 왕건 신화에는 '용'이 등장하는 반면 견훤 신화의 주인공은 '지렁이'로 격하된다.

문화재청장과 문체부 장관을 지낸 최 교수는 장관 시절 만난 작가들이 '우리나라엔 스토리텔링의 원천이 없다'고 푸념하면 정색을 했다고 한다. "'삼국유사'는 좀 읽어 보고 말씀하시죠!"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던 시절엔 "'삼국유사'가 없었더라면 무엇을 가지고 고조선·부여·발해가 우리 역사라고 할 수 있었을지 아찔했다"고 했다. 최 교수는 '삼국유사'의 다섯 번째 작업으로 오는 가을 제자들이 쓴 다양한 분야의 논문집을 낼 계획이다.

추사의 경지 ㅡ스크랩

인문학과스토리텔링 2018.08.13 09:00 Posted by 文 寸 문촌
ㅡ이내옥 미술사학자·'안목의 성장' 저자.

조선시대 서화의 역사를 보면 궁극에는 추사 김정희로 수렴한다. 추사는 당시 동아시아 최고 지성으로서 모든 것을 갖춘 인물이었다. 55세에 뜻하지 않은 제주 유배를 겪는데, 쓰라림으로 점철된 그때부터가 진정한 추사 예술과 정신의 시기였다.
추사는 자부심이 대단해 오만에 가까웠다. 거기에 원한과 분노의 불길이 끼얹어졌다. 그러나 유배가 길어지면서 그것도 서서히 녹아내렸다. 여기에서 문인의 지조와 절개를 표현한 '세한도'가 나왔다. 그림 속 나무는 나무가 아니고, 집은 집이 아니다. 그것은 오만과 분노의 껍데기를 뚫고 들어가 마주친 자아의 처절한 고독이고, 그 강력한 주장이다. 동양 회화는 문인화의 두 거장 황공망과 예찬이 출현해 그 극점을 찍었다. 그로부터 500여 년이 지난 뒤 추사가 그들에게 필적하는 작품을 낸 것이다.
추사는 제주 유배에서 9년 만에 풀려났다. 다시 북청으로 유배돼 2년여를 보내고 돌아와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북청 유배 어간에 그린 '불이선란도'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쓴 '판전' 글씨는 '세한도' 단계에서 더 깊은 경지로 나아갔다. '불이선란도'는 '세한도'에서 보이던 강력한 자기주장이 사라지고, 평생 추구했던 서예 정신 '괴(怪)'의 완성이었다. 일부 자부심의 찌꺼기가 남아 있긴 하지만, 자비의 눈으로 자신을 관조하고 있다. '판전' 글씨에 이르러서는 죽음을 예감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해탈의 경지를 보여준다. 지금껏 추구해온 예술을 부정하고 초월하여 진정한 자유를 실현했다.
추사는 숨을 거두기 사흘 전까지도 일상생활을 이어갔다. 불교 수행의 높은 경지였다. 당시 추사는 간화선(看話禪·화두를 사용해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선)을 격렬히 비판했다. 간화선으로는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추사의 주장에 대해, 한국 현대불교는 답을 해야 할 처지이다.
http://m.chosun.com/news/article.amp.html?sname=news&contid=2018080700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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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유력 일간지 신문 지면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산사를 소개하면서 '한국산사의 구조' 를 소개하였다. 그림을 보는 순간, 눈을 비볐다.
 "어, 이거 내 그림 아닌가?"
너무 비슷하고 닮았다.
이 정도면 표절이 아닌가?
그 문제는 차치하고 반갑고 자랑스러웠다.
분명 내 홈페이지를 보고 참조해서 그렸을거다. 안 그러면 이렇게 비슷할 수 없다.

http://m.chosun.com/news/article.amp.html?sname=news&contid=2018080901928에서

산사로가는길(2002) 홈페이지
나의 산사로 가는 길 홈페이지,
첫페이지의 <가상사찰탐방> 플래시 배너 창 그림이다.

어린이로 살아가기.

인문학과스토리텔링 2018.08.10 14:05 Posted by 文 寸 문촌
어릴 때는 어서 어른이 되고 싶었다. 춥고 배고팠기 때문이다. 커서 어른이 되면 돈을 벌거고, 그러면 배고프지도 춥지도 않을거라 여겼다.
이제 어른이 되니 어린이가 되고 싶다.
돈이 있으니 이제 춥거나 배고프지는 않다. 그렇지만 늘 어깨가 무겁다.
내일을 걱정하며 내 일을 어깨에 달고 산다.
걱정없이 '지금'을 살아가는 어린 아이가 부럽다. 그 아이들에게는 '내일은 없다.'
어릴 때는 동화책을 읽지 않았다. 읽을 책도 없었고, 읽을 시간도 없었다.
이제 어른이 되어 동화책을 찾아 읽는다.
시간은 없지만 억지로 짬을 만들어낸다. 어른으로 할 일을 일단 내일로 미룬다. 눈물도 흘리고 웃기도 한다.

어린이로 돌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엄마놀이'를 즐기는 아내 덕분에 나도 점점 어린이가 된다. '새 엄마' 격인데,  '새엄마놀이'는 안해서 다행이다. 참으로 고맙고 사랑스럽다. 이렇게 서로에게 길들여 지나보다.
피터팬으로 살아가기? 가출할까?
소공녀로 살아가기? 늘 기품있게?

성냥팔이 소녀는 늘 가슴아프고 눈물이 난다. 오늘도 어딘가에 성냥을 팔러 다니는 소녀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예수님과 칸트와 카르멘이 교차되어 연상될까? 이 연상을 어린이가 상상할 수 있을까?

오늘도 행복하기
♡어린 아이 마음으로
http://munchon.tistory.com/830
♡시인의 눈으로
http://munchon.tistory.com/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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