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캠프에서 담소 중에
이중섭 화백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는 그의 생을 너무나 '신산하다'했습니다.
'辛酸, 맵고 시다'  정말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의 그림에는 긍정과 희망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의 그림 중, '벚꽃 위의 새'를 이야기하면서, 달빛 아래에 앉아 커피필터지에  수채물감으로 끄적였습니다.
아?, 이 집 안주인이 매화꽃을 무척 좋아한다기에, '야매(野梅)'라 농하면서 벚꽃 대신 '야매꽃에 앉은 새'라 제목하며 그렸습니다.
세상사 알고보면 다  '그래서 그랬구나'
고개 끄덕이게 됩니다. 꽃 잎 지는 까닭은 모두 제 향기로 나비를 부른 탓입니다.
슬캠지기 조 선생님이 반기며 이 낙서를 받아주셨네요. 별거도 아닌 것을 받아주셔서 제가 고맙습니다. '그냥'이라며 장난삼아 낙관을 대신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그래서 그랬구나"를 끼적였습니다.

슬로우 캠프에 매화꽃잎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떨어져 있습니다.
도회지에서 사람과 일에 지친 안주인이 이곳으로 들어와서 매화 그림을 '미친듯이' 그렸답니다. 설매, 홍매, 황매에 청매, 야매(夜梅ᆞ野梅)까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잎 그림자까지 슬캠에 내려 앉아 있습니다. 그랬더니 슬캠이 온통 매화도가 되었네요.
어디 대가가 따로 있나요? 
여기 매화천지 슬로우 캠프에서는 절로 이야기 꽃을 피웁니다.

슬로우 캠프 010-2237-2116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운학리 614-3
아? 수주면이 '무릉도원'으로 개명했답니다.

슬로우 캠프

이런저런 이야기 2018.09.30 13:49 Posted by 文 寸 문촌
슬로우 캠프
오랫만에 다시 찾았습니다.
고향은 아니지만 고향같이 늘 기다려주고
가고 싶을 때  찾아 갈 수 있는 곳이라 고맙기 그지 없습니다.
맑은 공기, 푸른 산하, 조용한 산골, 정겨운 계곡.
동네 이름도 무릉도원면(영월군 수주면) 운학리 입니다.
너와지붕의 황토방에서 하룻 밤 묵고 쉬었다오니 심신이 가벼워집니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혼자서 며칠은 쉬었다와도 좋겠네요. 산책도 낮잠도 독서도 별밤도 벌레소리도 차를 우리고 사색하기도 기타치며 노래불러도 다 좋네요.
슬로우 캠프 소개드려요. 010-2237-2116

객실은 라르고, 아다지오, 안단테 3개동
화장실 물론 동마다 따로 있구요.

라르고에는 객실 방이 두개에 거실ᆞ주방까지..

캠프장 바로 아래는 계곡물이 흐르고요.

독서를 즐기고 담소도 나누며 기타치고 노래도 부를 수 있는 카페 공간도 넓습니다.

슬캠지기 조선생님, 이선생님 인연에 감사하며 '도리성혜(桃李成蹊)' 졸필 휘호를 드렸더니, 황송스럽게도 라르고 거실 입구 좋은 자리에 걸려있네요.
'복숭아와 오얏은 말 아니하여도, 찾아오는 이들이 많아 그 아래에 저절로 길이 생긴'답니다.
구름 창이 열리더니 달이 내려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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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1916-1956), 한국  최고의 화가
그의 그림에서 분단과 이산의 상흔을 읽는다.
한민족 정체성 3대 키워드
'소ᆞ가족ᆞ어머니'
이 셋에 더해 진 '긍정'이다.

하나. 백의민족, 한민족을 닮은 흰소.
1955년, <흰 소>ㅡ 저 오른쪽 앞 발에 진취가 있다. 이중섭은 자화상을 그린 것이며 민족을 그린 것이다.

둘.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1954년, <길 떠나는 가족>
ㅡ다시 만나 행복한 가정을 가꿀 것을 희망하고 있다. 그의 아내는 야마모토 마사꼬, 일본 사람이다.
일제시대에 만나 사랑하고 해방되기 직전 결혼하여 북한 원산에서 살다 한국전쟁 중에 두 아이를 데리고 서귀포 부산 피난 생활을 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살면서 이중섭과 헤어졌다. 전쟁은 가정의 행복을 앗아갔다. 그래도 이중섭은 꿈을 꾼다. 언젠가 다시 만나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1954, 가로 64.5㎝·세로 29.5㎝). 이중섭이 일본인 아내 이남덕 여사와 아들 둘이 탄 소달구지를 이끌고 있다. 생이별한 가족과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고 싶은 바람을 경쾌한 움직임과 색채로 표현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셋. 한국전쟁 중 북녘 원산에 홀로 두고 온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어머니의 생사도 모른다. 어머니는 두 손주와 며느리를 중섭과 함께 피난가라며 부랴부랴 등을 떠 밀었다. 다시 만날 것이라며 그림도구만 챙겨 떠나온 것이 영원한 생이별이 되었다. 전쟁과 분단은 가족을 해체 시켰던 것이다. 북에 두고 온 어머니를 생각하면 평생에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이었다.
1956년, <돌아오지 않는 강>
마릴린 먼로의 주연의 영화 제목과 같다.
어머니는 아들이 돌아 올 것을 기다릴텐데, 가지 못하는 자신에게 가학하듯이 아들이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다. 흰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어머니는 저 만치서 돌아오는데 창을 열고 기다리던 아들은 그리움에 지쳐 있다.
이 그림을 그린 같은 해에 이중섭은 생을 마감하였다. 어쩌면 저 세상에서 어머니를  기다리려나 보다.

산♡고 고전통통 6강
길 위의 인문학 교실,
추사의 세한도와 군자의 절의 정신
감동적인 인문학 현장과 나의 의미

산♡고 고전통통 5강
(길 위의 인문학 교실)
목멱산 자락 ㅡ 장충단
을미사변과 일제의 만행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안중근 유묵

산♡고 고전통통ᆞ
4강ᆞ낙산자락 길
~운수 좋은 날과 소확행
~죽음에 대한 단상
모둠 자유필기

산♡고, 고전통통ᆞ인문학 교실
3강ᆞ북악산자락, 성북동 골목길 인문학
위안부, 최순우 옛집, 방우산장, 길상사, 심우장 이야기
모둠활동지ㅡ자유필기

산♡고, 고전통통ᆞ인문학 교실
2강ᆞ인왕산 자락과 서촌 골목길
사직단 민본정치, 이상과 구본웅 우정,
수성동 계곡과 인왕제색도 진경산수화,
윤동주의 자화상과
우물 속의 나의 자화상
모둠 자유 필기

산♡고, 고전통통ᆞ인문학 교실
1강. 인문학과 길
1. 인문학이란?
2. 왜 길인가?
모둠 자유필기

14. 어떻게 공부할까? : 도산서원에서 얻는 학습·붕우의 즐거움

14길에서읽는논어-도산서원에서얻는학습붕우즐거움.hwp

 퇴계 이황 선생과 도산서당

도산서당(陶山書堂)은 퇴계 선생께서 직접 설계하였는데 무척 소박한 모습이다. 이 건물이 지어질 당시 퇴계 선생은 멀리 외직에 계셨고, 공사 책임자인 법련 스님에게 편지를 통해 건물설계를 지시하였다한다. 스스로 기거하시며 독서와 사색을 즐기신 도산서당과 후학들이 기숙하는 농운정사로 이루어졌다.

서당 앞을 출입하는 곳을 막아서 사립문을 만들고 이름을 유정문(幽貞門)이라고 하였다. '유정'이라 한 것은 주역'이도탄탄 유인정길'(履道坦坦 幽人貞吉, 도를 실천하는 길이 탄탄하니 숨은 선비가 곧고 길하리라) 의 뜻이다.

서당은 선생께서 이곳에 기거하시며 독서와 사색을 즐기며 연구하시던 거실이다. 당사는 두 채로 이루어졌는데 암서헌과 완락재라 한다. 선생께서는 이름의 까닭을 이렇게 말하신다.

"정사년(1557)에서 신유년(1561)에 이르기까지 5년 만에 당사(堂舍) 두 채가 되어 겨우 거처할 만하다.  당사는 세간인데, 중간 한 간은 완락재(玩樂齋)라 하였으니, 그것은 주선생(주자)의 명당실기(名堂室記), '완상하여 즐기니, 족히 여기서 평생토록 지내도 싫지 않겠다.'라고 하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동쪽 한 간은 암서헌(巖棲軒)이라 하였으니, 그것은 (주자의) 운곡(雲谷)의 시에, '(학문에 대한) 자신(自信)을 오래도록 가지지 못했더니 바위에 깃들여[巖棲] 조그만 효험이라도 바란다.'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 [도산잡영]에서

이황 선생님은 매화를 참으로 사랑하셨다. 도산서당 동편에 작은 연못을 파서 '정우당(淨友塘)'이라 하고, 그 곁의 샘을 '몽천(蒙泉)'이라 불렀으며, 그 몽천 위쪽에 단을 쌓고 그 위쪽에 절우사(節友社)라는 화단을 쌓고 매화(), (), (), 국화()를 심어 벗 삼으며 지내셨다. 매화, 대나무, 소나무는 겨울을 이겨낸다 하여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한다. 정우(淨友)깨끗한 친구란 뜻이고, 절우(節友)'절개를 지키는 친구'란 뜻이다. 그 중에 특히 매화를 아껴 '매형(梅兄)'이라 불렀다. 선생님은 엄격하고 도리를 소중히 여기는 원칙주의자의 모습을 가지셨지만 한편으로는 애정과 감흥을 느끼며 자연을 사랑하시는 낭만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매화를 사랑한 선생님의 [매화음·梅花吟]은 이렇게 노래하였다.

    밤 기운 차가워라 창을 기대앉았더니
   두둥실 밝은 달이 매화가지에 오르누나.
   수다스레 가는 바람 불어오지 않더라도
   맑은 향기 저절로 동산에 가득한 걸.

농운정사(隴雲精舍)에서 읽는 논어1구절

농운정사는 도산서당과 함께 지은 것으로 제자들이 기숙하면서 공부하던 곳이다. 모두 여덟 칸으로 된 공()자형 건물로 공부방이 시습재(時習齋)이며, 침실이 지숙료(止宿寮)이며, 낙동강의 맑은 흐름을 볼 수 있는 마루는 관란헌(觀瀾軒)이라 이름 붙였다. 자형의 집은 '공부(工夫)한다'는 공()자에서 따온 것이며, 시습재는 논어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에서 가져온 말로, 배우고서 때때로 그것을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뜻이며, 관란헌은 맹자관수유술 필관기란(觀水有術 必觀其瀾)’에서 따온 말로, 물을 바라보는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여울목을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지숙료는 머물다 잠자는 집이라는 뜻을 가진 주자(1130~1200)의 시 제목에서 따왔다. 주자의 <무이정사 잡영ㆍ武夷精舍 雜詠>12수 중 4번째 시문(詩文)<지숙료止宿寮>를 옮겨 읽는다. 찾아오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故人肯相尋) / 함께 띠 집에서 잔 적이 있네.(共寄一茅宇) / 빈한한 산골짜기에 머물렀다 가니(山水為留行) / 힘들이지 않고 정성스레 한 끼 대접했네.(無勞具鷄黍)”

역락서재(亦樂書齋)에서 읽는 논어1구절

서원 경내로 들어가면서 시사단에 눈을 빼앗기어 하마터면 역락재를 놓칠 뻔했다. 선생님 61세에 완공을 본 도산서당은 당시 선생의 공부방인 도산서당과 학생 기숙사인 농운정사 뿐이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계속 늘어나면서 기숙사는 비좁게 되었다. 마침 제자 정지헌이 어린 나이에 입학하게 되는 데 그 부친이 서당 사정을 이해하고 퇴계선생님을 존경하는 사은의 표시로 기숙사를 지어 드렸다. 그래서 일명 동몽재(童蒙齋)라 한다. '역락'(易樂)논어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 不易樂乎), 벗이 있어 스스로 먼 길을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에서 따온 말이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 而不慍, 不亦君子乎?” - 학이01.01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도산서원에서 읽는 논어

서원은 오늘날의 지방사립대학과 같은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이다. 서원의 가장 기본적인 건물 배치는 전학후묘(前學後廟)라 하여 앞은 학당(공부하는 곳)이며 뒤는 사당(존현을 제향하는 곳)이 있다. 도산서원은 전교당과 동재, 서재의 학당이 있고 그 뒤로 상덕사라는 사당이 있다.

전교당과 동·서재 - 강학(講學)의 배움터

 

도산 서원의 중심이 되는 주강당 전교당(典敎堂, 보물 제210)은 각종 회합과 공부가 이루어지는 주배움터이다. 이곳에 들어가려면 서원의 외삼문인 진도문(進道門)으로 들어간다. ‘()에 나아간다.’는 뜻이다. 문으로 들어가면 학문의 길이며, 문 밖으로 나가면 세상의 길이다. 들어가던지 나가던지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어느 길이든 사람의 도리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흔치않게 정면 4칸 측면 2칸의 짝수 칸으로 이루어진 전교당의 '도산서원' 편액은 선조의 사액(賜額)으로 한석봉의 글씨이다. 실내 중앙에는 전교당, 정조대왕이 지으신 제문과 전교(傳敎)를 달아두었고 서벽에는 한존재(閑存齋)의 현액이 있다. 병산서원의 강당인 입교당과는 달리 동쪽에 있을 원장실을 생략하고 마루를 넓게 사용하게 만들었다. 한존재는 바로 원장실로서 '한사존성(閑邪存誠)'에서 유래하였다.

회합과 강당인 전교당의 계단 아래에 좌우로 마주보는 건물이 있다. 바로 유생들이 기거하는 방으로 동재가 박약재(博約齋)이고, 서재가 홍의재(弘毅齋)이다.

박약재는 논어박학어문, 약지이례(博學於文, 約之以禮)’의 준말로서, 학문을 널리 배우고, 예로써 자신을 절제하라는 뜻이다. 홍의재 역시 논어사불가이 불홍의(士不可以不弘毅)’에서 가져온 말로, '()'은 크고 넓은 마음이며, '()'는 굳세고 결단 있는 의지를 말한다. 선비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많이 사랑하는 정조(正祖)대왕의 호는 홍재(弘齋)이다. ‘군자의 도량은 넓어야 한다는 것으로 논어에서 얻은 호이다.

子曰, “君子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弗畔矣夫!” - 옹야07.25(자왈, 군자박학어문, 약지이례, 역가이불반의부)

曾子曰, “士不可以不弘毅  - 태백08.07

(증자왈, 사불가이 불홍의)

 

학습의 의미 ~ “배움[]만 있고,
             
익힘[]이 없으면 공부가 아니다.”

>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음(선생님의 것), > 자기 주도적인 복습(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