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사 가을에는
단풍이 참 곱습니다.
산책나온 이웃의 두수녀님 얼굴에
미소가 피었네요.
뒷짐지고 행지실로 올라가시는
법정스님께서
무슨 말씀을 건내셨길래,
저리도 평화로울까요?
성모님을 닮았다는
관음보살님은 들으셨겠죠.

관음보살상을 조각한 천주교인 최종태 화가는
"이 억겁의 시간에 우리 두 손(법정스님과 나)이 잠깐 하나로 만나서 이 형상을 만들게 되었다"고 말했답니다.

'이 억겁의 시간에 우리 두 손이 잠깐 하나로 만나..' 이 말씀 속에서 경외감을 느껴요. 우주의 나이 137억년, 여기에 우리의 삶 100년은 정말 눈깜짝할 사이죠.
'우리 두 손'을 손(手)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가는 '손님'으로 읽으면 더더욱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우주의 손님이 되어 만난 우리의 인연에 감동하고 감사합니다.

<8년 전 봄날의 관세음보살상>
'관세음 성모상'이라 이름해도 좋다.

"세상 사람들 바람을 다 들어주시고
굽어 살피셔서 부처님께 천주님께 전구하소서.
나무 관세음 보살님, 아베 관세음 성모님"

성북동 가을 길을 따라 걷는다.
'시인의 방ㅡ방우산장'의 의자에 앉아 잠시 시를 읊는다. 그리고 추억을 그린다.

"꽃이 지는데 바람을 탓하랴.
...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ㅡ 조지훈의 <낙화> 중에서.

그렇다. 지난 봄에 꽃이 지더니
이제  물들었던 잎이 진다.
세상사가 그렇다.
다 가야 할 때가 있다.
그러니 누구를 탓하랴?

  조지훈 시인은 이 곳 성북동에 살면서 박목월,  박두진 등과 함께 청록집을 출간하였다. 이른바 청록파 시인들이다.
조지훈 시인이 살던 그 때 그 집은 지금 없지만 시인을 기념하고자 성북동 142-1번지 가로길에 조지훈 '시인의 방ㅡ방우산장(放牛山莊)' 표지 기념 조형물이 설치되어있다.
   시인은 자신이 기거했던 곳을 모두 ‘방우산장(放牛山莊)’ 이라고 불렀다. 이는 그가 1953년 신천지에 기고한 '방우산장기'에서 '설핏한 저녁 햇살 아래 내가 올라타고 풀피리를 희롱할 한 마리 소만 있으면 그 소가 지금 어디에 가 있든지 내가 아랑곳할 것이 없기 때문' 이라고 말한 것에서 연유하였다. 즉, 마음속에 소를 한 마리 키우면 직접 키우지 않아도 소를 키우는 것과 다름없다’ 는 그의 ‘방우즉목우’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참고로 보조국사 지눌의 호는 목우자(牧牛子)이며, 만해 한용운의 당호는 심우당(尋牛堂) 임을 같이 알아두면 더욱 흥미롭다. 대체 그 놈의 소가 뭐길래, 찾고 키우고 놓아둔다는 걸까?
  기념 조형물을 '폴리'라고 한다. 폴리(Folly)'란 건축학적인 본래의 기능을 잃고 조형적인 의도와 장식적 역할을 하는 건축물을 뜻한다.  근래 도시의 거리에는 그 동네의 자랑스런 사람과 이야기를 찾아 이런 도시조형물(urban folly)을 설치해 가고 있다.
   성북동의 방우산장 조형물은 파빌리온 형의 대리석벽과 창호지없는 격자문이 시인이 살았던 집 방향으로 열려있고, 그 위로 우리 전통 가옥의 처마와 그 아래에 마루가 있으며 마당같이 조성된 곳에는 의자들이 놓여 있다. 시인의 방이라 여기고 둘러앉아 시인의 시 한 수 읊으면 제격이다. 대리석벽 바깥면에는 시인의 절창인 <낙화>시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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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성당

길 위의 인문학-문사철 인문학 여행 2018.11.25 18:57 Posted by 文 寸 문촌
'한국의 바티칸'이라 별명하는 성북동 나들이. 길상사와 짝을 지어 성북동 성당을 찾는 의미는 크다. 성북동 성당은 좀 특별하다. 성전이 지하에 있다.
초기교회 카타콤바를 연상시킨다.
그래서인지 더욱 차분하고 경건하다.
유리 성화도 특별하다.
전통적인 스테인글라스 성화기법이 아니고, 우리 정통의 민화풍에 우리 옛 조상들을 그렸다. 얼핏보기에 불경이야기를 그린 듯 하기도 하다.
성모상도 조선의 어머니인 듯.

카타쿰바(Catacumba)는 고대 로마인들의 지하 공동묘지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웅덩이 옆’이라는 뜻이다. 로마인들은 지하 공동묘지가 로마 성문 밖 언덕과 언덕 사이에 조성했기에 카타쿰바라 불렀다. 로마인들은 카타쿰바를 ‘네크로폴리스’(νεκροs πολιs-죽은 이들의 도시)라 은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피해 이 죽은 이들의 도시에 숨어들어와 부활 신앙을 고백하고 기도하며 미사를 봉헌했다. 최초의 교회 공동체가 이 카타쿰바에서 형성된 것이다.
  교회가 세워지면서 죽은 이들의 도시는 더는 어둠의 공간이 아니었다. 부활을 기다리는 희망의 안식처로 바뀌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더는 네크로폴리스라 하지 않고 ‘치메테리움’(cymeterium-기다리는 곳, 안식처)이라 불렀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치메테리움 곧 카타쿰바 내부를 구원과 부활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장식하고 이곳이 단순히 박해의 피난처가 아니라 산 이와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 공간임을 고백했다.
  서울 성북동성당은 마치 카타쿰바를 연상시킨다. 북악산 동편 자락에 터 잡은 성북동은 예부터 아름다운 바위 언덕들과 맑은 시내로 산자수명(山紫水明)한 마을이었다. 성북동성당은 이 마을 중턱 움푹 들어간 양지바른 곳에 자리하고 있다.
  성전 역시 역설적이다. 지하에 있다. 어둡지만 편안하다. 제대를 중심으로 양 측면 각 4개의 창에 색유리화가 장식돼 있다. ‘예수 성탄’, ‘성모 승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한국 순교자’, ‘부활하신 그리스도’, ‘생명나무인 십자가’, ‘최후의 만찬’, ‘성 김대건 신부’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다. 모두 ‘구원’과 ‘부활’을 이야기한다. 성체를 중심으로 구원과 부활을 상징하는 색유리화가 장식된 지하 공간. 이 공간을 가득 채우는 하느님 찬미의 기도 소리가 더없는 희망과 안식을 준다. 그래서 성북동성당은 카타쿰바, 치메테리움을 참 많이 닮았다.
ㅡ 가톨릭 평화신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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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저축이 되지 않는다.

이런저런 이야기 2018.11.20 11:39 Posted by 文 寸 문촌
"행복은 저축이 되지 않는데."
아내가 라디오에서 들었다며 내게 전한다.
'아내에게 저축되었으니 이 행복한 말을 나눌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괜한 딴지로 달리 생각해본다.
아니다. 설령 저축되고 기억되어도 내게 전하고 나눌 때 행복한 것이니 이 말이 맞는 말 같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러니깐, 지금 사용하라는 거다. '아끼다 ×된다'는 말이 이 말이구나." 감탄했다.
행복은 감정이니 지금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이다. 누릴 수 있을 때 행복한거다. 가을 산책 길의 행복을 찾아 누린다.

고맙다. 아직도 꽃 피어 있어서

물들어 가는 것이 꽃 보다 예쁘구나.

갈대, 너를 볼 적 마다 
가야 할 때를 알게 되는 가을을 느낀다.
다들 고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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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낭송 - Love, George Herbert

이런저런 이야기 2018.11.19 16:04 Posted by 文 寸 문촌

 http://www.korearoot.net/song/HarrieReading-Love-GeorgeHerbert.mp3

                내가 참 좋아하고 존경하는 '두복'님(필명)의 시 낭송입니다.


           

Love(3) - George Herbert -

Love bade me welcome: yet my soul drew back,
Guilty of dust and sin.
But quick-eyed Love, observing me grow slack
From my first entrance in,
Drew nearer to me, sweetly questioning
If I lacked anything.

"A guest," I answered, "worthy to be hers":
Love said, "You shall be he."
"I, the unkind, ungrateful? Ah, my dear,
I cannot look on thee."
Love took my hand, and smiling did reply,
"Who made the eyes but I
?"

 

 
사랑(3) - 조지 허버트 -
 
사랑은 열렬히 나를 환영했다. 
그러나 내 영혼은 주춤했다. 
죄 많은 몸인 것을 의식하고서.

그러나 눈치빠른 사랑의 신은 처음 들어서면서부터
망설이는 것을 보고서
내게로 더 가까이 다가와 상냥하게 물었다,
“무엇이 부족한 것이 있느냐고?”

“여기에 있을 만한 손님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자,
사랑은 말했다, “그대가 그런 사람이라”고.
“불친절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제가요? 아, 님이여,
저는 당신을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사랑의 신은 내 손을 잡고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나 이외 누가 눈을 만들었는가?”고.

“주님, 옳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망쳤습니다.
그러니 수치에 걸맞는 곳으로 가게 해 주십시오.”
사랑의 신은 말했다. 
“그 책임을 누가 졌는지 그대는 모르는가?”고.
“님이여, 그러면 제가 섬기겠습니다.”
이에 사랑의 신은 “앉아 이 식사를 맛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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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문학관과 시인의 언덕에서
꼭 봐야 할 것을 한장의 그림으로 재구성하였다.
 문학관의 입구는 전면도이다.
그 내부와 제2, 3전시실은 조감도이다. 제1전시실 안에는 시인의 고향에서 가져온 정(井)자형 목조 우물이 있고, 좌우벽으로 윤동주의 삶을 정리한 자료와 사진 그리고 시집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제2전시실은 작은 꽃밭으로 꾸며지고 하늘을 담고 있는 열린 우물이 되었다. 판자로 깔린 복도를 따라 제3전시실로 들어간다. 닫힌 우물 속 같이 캄캄한 제3전실에서는 후쿠오카 감옥에서 옥사한 윤동주 시인의 삶과 시 세계를 영상으로 감상하게 된다. 천장 모퉁이에서 한줄기 햇살이 들어온다.
영상감상을 마치고 문학관 왼쪽 계단을 디디며 시인의 언덕으로 오른다. 닫힌 우물 위에 별뜨락 카페가 있다.
  구절초가 애절하게 피어있는 '시인의 언덕'에는 '시인 윤동주 영혼의 터' 표지석이 있고 남산을 조망하는 곳에는  서시비가 있다.

<윤동주 문학관과 시인의 언덕 조감도>

 한양도성 사대문과 사소문에서 북소문인 창의문 만이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창의문의 물받이 돌은 연잎 모양으로 살아있는 듯 하다. 노새를 탄 양반은 부암동으로 넘어갈 모양 이다. 겸재의 <창의문> 그림에서 길을 빌려왔다.

겸재 <창의문>

<청운아파트ᆞ수도가압장의 재구성>
~지금의 청운공원과 시인의 언덕에는 옛날, 청운아파트가 있었다. 오래된 아파트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윤동주 문학관'이 건립되었다. 문학관이 좁은데다 물도 새어 들어와서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땅에 묻혀 있던 두개의 물탱크를 발견하였다. 이 콘크리트 물탱크가 오늘날의 윤동주문학관의 '열린 우물'과 '닫힌 우물'으로 재구성되었다.
두개의 우물은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과 생애를 담은 감동적인 이야기의 현장으로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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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불루ᆞ사이불치

한국문화유산의 길 2018.11.17 10:03 Posted by 文 寸 문촌
검이불루 화이불치
(儉而不陋 華而不侈)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저자인, 유홍준 교수가 백제 궁궐 건축미를 평한 말이다.
이 말은 한국미를 한마디로 평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경주 불국사에서도 느낄 수 있다.

검이불루, 석가탑.
단순하면서 안정된 조형미는 한복을 단아하게 차려 입은 양갓집 규수같다.

화이불치의 다보탑.
수려한 미모에 눈을 뗄 수 없다. 볼수록 기품이 돋아 함부로 말을 건낼 수도 없다.

인왕산 자락의 수성동 계곡을 찾았다.
겸재의 <수성동도>와 <인왕제색도>를 이야기하고 모방하면서 가을에 물들어가는 '인왕추색 수성동도(仁王秋色 水聲洞圖)'를 나름 그려 보았다.
열 아홉살에 왕비에 오른 지 칠일만에 폐위된 단경왕후는 매일같이 인왕산에 올라 궁궐에 있는 또래의 진성대군(중종)을 바라보며 그리워하였다. 둘은 열 세살에 결혼하였으니 부부이기 전에 절친이었다. 왕비의 치마가 아직도 치마바위에 걸려있다. 계곡에 흐르는 바람과 물소리 만이 애한과 시름을 씻겨내고 있다.

겸재의 <수성동도>.
드론을 띄워 촬영한 영상을 그린 듯힌다.

겸재의 <인왕제색도>
 ㅡ 초여름에 내린 장맛비가 그친 후에 인왕산을 그렸다.  수성동도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는 단선관점(single angle)으로 그렸다면, 인왕제색도는 복선관점으로 그렸다. 송림에 둘러진 친구의 집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며 그렸고, 인왕산 봉우리는 아래에서 위로 올려보며 높여 그렸다. 암벽사이로 세 개의 폭포수가 흐른다. 실제로는 있지않을 폭포이다. 왼쪽의 폭포수가 수성 계곡으로 흐른다. 그 나머지는 운무로 가렸다.

 그림 속의 주인공 친구는 겸재와 그림과 시로 우정을 나눈 사천 이병연이다.

<수성동 계곡의 재구성 이야기>
38년이 된 낡은 아파트 철거 중에
널판지 돌, 기린교 발견.
겸재 정선의 <수성동도> 그림 속 주인공.
조선의 돌다리로서, 현장에 옛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다리.
천 억원 그 이상의 가치.
겸재의 진경산수화, <수성동도> 재현
"진면목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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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시험장, 참 고운 감사의 쪽지

교단 이야기 2018.11.16 11:28 Posted by 文 寸 문촌
우리 매력홀릭고에서도 수능시험 잘 치루었습니다.
뒷정리를 하는데, 한 고사실 책상위에
다음과 같이 과자 하나와 쪽지가 놓여 있었어요.
"어쩜 이렇게 고운 마음을 가졌을까?"
'복 받으라'  기도 드리며,
이런 아이들을 길러내자고 다짐해봅니다.
♡ ♡ ♡ ♡ ♡
"자리를 빌려줘서 정말 고마워요.
이 교실 이자리에서 수능시험을 본 학생입니다.
이렇게 깨끗한 책상을 빌려줘서 편안히 시험 볼 수 있었어요.
학교가 정말 예쁘네요.
즐거운 학교 생활하고 맛있게 드십시오!"
♡♡♡♡♡
작은 쪽지 하나!
오늘 하루가 행복해집니다.

우리 학교 학부모님들과 성북동 인문학 산책을 나섰다.

한성대 입구역 6번출구 버스정류장 뒤에 앉아있는 한중 위안부 소녀상에서 부터 출발하여, 조지훈 시인의 방, 방우산중 조형물에서 그의 시 '낙화'를 같이 낭송하며 소를 풀어 두는 방우의 의미를 새겼다. 그리고 횡단보도 건너 최순우 옛집에 들러 오수당 뒤뜰 마루에 앉아 달콤한 낮잠이야기를 나누고 뜨락있는 한옥집의 정취를 느꼈다.

다시 되돌아 나와 조지훈 시인의 집터 앞을 지나고 성북동 성당 쪽으로 길을 오른다. 예쁜 빵집과 꽃가게를 지나간다.

성북동 성당, 전깃줄이 없다면 전경이 참 예쁠텐데..

오르막 길 좌우로 소위 회장님 댁 같은 저택들이 있고, 낯선 국기가 걸린 대사관저들도 많다.
드디어 길상사에 도착했다.

마리아상을 닮았다는 관세음보살상 앞에서 종교의 일체화를 위해 애쓰신 법정스님의 뜻을 새기고 법정스님의 영정을 모셔둔 진영각을 찾아 수필 《무소유》를 읽었다.

그리고 길상사 시주보살인 김영한 길상화 보살님의 사당을 찾아 백석 시인과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 를 읊었다.

길상사를 나와 길을 잠시 내려온다.
작은 슈퍼 가게  옆으로 난 골목길을 오르면서 복자 피정의 집과 덕수교회를 찾아간다. 이태준의 수연산방 앞에 있는 작은 식당 이향을 찾아 점심밥을 먹었다.
단호박 약선밥에 정성어린 나물반찬이 신선이 먹는 보양음식이 되었다.

기운을 더하여 다시 길을 오른다.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아래에 국화정원이라는 간판을 내건 한옥의 한식당이 보였다.

길 왼편 넓은 터에 한용운 만해 스님이 앉아 계신다. 그 옆자리에 앉아 잠시 대화를 나누듯 기념 촬영도 하고 심우장을 찾았다. 심우장 뜨락에서 일제시대, 조선의 유일한 땅 심우장의 의미를 새기고, 독립운동가 김동삼의 장례식과 조지훈의 시 '승무'를 꿰어 이야기 나누었다.

심우장은 북정마을 안에 있다.
북정마을 골목은 두사람이 나란히 걷기에 비좁다. 어느 집 담위에 부추꽃이 피었다. '게으런 농부만이 볼 수 있다'는 귀한 꽃이다.
북정마을 위에 시인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가 새겨진 성북동 비둘기 쉼터가 있다. 온기가 남은 돌에 부리를 닦는 비둘기 같이 잠시 둘러앉아 오늘의 인문학 산책을 되돌아보며 의미를 반추해보았다.

북정마을 중심지인 마을버스정류장에서 오늘의 산책을 마무리 지었다.
북정마을을 올라 백악산을 넘어가면 북촌이 나오고, 백악마루 너머에는 창의문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