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고 고전통통 6강
길 위의 인문학 교실,
추사의 세한도와 군자의 절의 정신
감동적인 인문학 현장과 나의 의미

산♡고 고전통통 5강
(길 위의 인문학 교실)
목멱산 자락 ㅡ 장충단
을미사변과 일제의 만행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안중근 유묵

산♡고 고전통통ᆞ
4강ᆞ낙산자락 길
~운수 좋은 날과 소확행
~죽음에 대한 단상
모둠 자유필기

산♡고, 고전통통ᆞ인문학 교실
3강ᆞ북악산자락, 성북동 골목길 인문학
위안부, 최순우 옛집, 방우산장, 길상사, 심우장 이야기
모둠활동지ㅡ자유필기

산♡고, 고전통통ᆞ인문학 교실
2강ᆞ인왕산 자락과 서촌 골목길
사직단 민본정치, 이상과 구본웅 우정,
수성동 계곡과 인왕제색도 진경산수화,
윤동주의 자화상과
우물 속의 나의 자화상
모둠 자유 필기

산♡고, 고전통통ᆞ인문학 교실
1강. 인문학과 길
1. 인문학이란?
2. 왜 길인가?
모둠 자유필기

인문학이 무엇일까? 인문(人文)이 무엇일까? 사람의 무늬라 한다.
사람 가슴에 그 사람의 직책을 나타내는 무늬, 문양이다. 후에, 무늬 문(文)이 '글. 문장'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대신 무늬 문(紋)이라는 글자가 따로 만들어졌다.
그 사람이 맡은 바 직책은 곧 그 사람됨이다. 사람됨은 바로 그 사람다움이다. 군군신신 부부자자라는 정명(正名)이며 다움의 사상이다.
오늘 이음학교, "길 위의 인문학' 강의시간에 교사됨을 나타내는 교사의 무늬를 그려보자고 했다. 교사문(文)에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끝나지 않은 제주43사건

19473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43일에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9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민관군 등 3만 여명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제주 43사건은 한국 근현대사에 큰 고통을 남긴 상처이다. 아직도 그 상처는 다 아물지 못하고 응어리도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제대로 된 이름도 없이 그냥 제주 43’으로도 부르고, ‘제주 43사건으로도 불린다. 한마디로 정리하기에 참으로 복잡하다. 그래도 21세기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시대를 꿈꾸면서 제주 43사건의 상처를 그냥 묻어버리고 지울 수는 없다. 고통 받은 영령과 유족과 지역주민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빌며 위로하지 않을 수 없다.

제주43사건의 과정 주요 일지

1947. 3. 1 : 미군정 시절, 3·128주년을 맞아 제주북국민학교에서 기념식을 마치고 군중은 시가행진을 하였고, 관덕정 앞 광장에서 구경하던 어린아이가 기마경찰이 탄 말에 차여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사고수습과 사과 없이 지나가는 기마경찰을 쫓아 일부 군중이 돌멩이를 던지며 쫓았고, 이를 경찰서 습격으로 오인한 경찰이 군중에게 총을 발포하여 6명이 사망하고 6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는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강경 진압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유투브] 3.1절 발포사건 70주년
https://www.youtube.com/watch?v=FFAZZRzANW4&t=28s

1948. 4. 3 : 새벽 2시를 전후하여 350명의 무장대가 미군정 치하의 도내 24개 경찰지서 가운데 12개 지서를 일제히 공격하였고, 경찰과 서북청년회 숙소, 독립촉성국민회와 대동청년단 등 우익단체 요인의 집을 습격하였다. 이로 인하여 경찰 4명과 민간인 8, 무장대 2명이 사망하였다. 무장대는 경찰과 우익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 남한 단독선거 및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조국의 통일 독립, 반미 구국투쟁을 무장봉기의 기치로 내세웠다. 이때부터 폭력은 다른 폭력을 불러오고 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지면서 방화와 탈취와 살인과 학살로 이어졌다. 분노의 골은 더 깊어졌다.

1948. 5. 10 남한 단독 선거에서 제주도는 투표수 과반수 미달로 무효 처리되었고, 미군정은 강경진압을 계속하면서 623일에 재선거를 실시하려고 하였으나 이마저도 무산되었다. 이후 남쪽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같은 해 99일에는 북쪽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던 해, 1017일 제주 해안선으로부터 5이외의 지점 및 산악지대의 무허가 통행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폭도배로 인정하여 총살에 처할 것이라는 포고문을 발표하였다. 포고문에서 언급한 해안선으로부터 5이외의 지점은 한라산 등 산악지역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해변을 제외한 중산간 마을(한라산 해발 200m~600m사이의 지역) 전부가 해당하여 통행금지란 결국 거주를 금지한다는 의미였다. 1117일에는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1949. 1. 17 토벌대에 의한 북촌사건이 발생하여 주민 약 400명이 학살되었으며, 10. 2 군법회의 결과 사형 선고된 249명이 총살되고 제주 비행장 인근에 암매장 되었다. 이후 1950. 6. 25부터 1953. 7. 27까지 동족상잔의 6.25 전쟁 중에도 제주 43사건은 진행되었다.

 

1954921: 한라산 금족(禁足)지역이 전면 개방되면서 19473·1절 발포사건과 19484·3 무장봉기로 촉발되었던 제주4·3사건은 77개월 만에 비로소 막을 내리게 된다.

 

제주4·3사건으로 인해 제주지역 공동체는 파괴되고 엄청난 물적 피해를 입었으며, 무엇보다 깊은 상처로 남아있는 참혹한 인명피해를 가져왔다. 2000년에 4·3특별법 공포 이후 4·3사건으로 인한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청산하고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21세기를 출발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며, 2003년에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발간되었다. 20051월에 제주도는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되었고 2014년에서야 '43희생자 추념일'이 국가기념일로 결정하였다.

차마 입에 올리기에 쉽지 않은 사건.
상처가 치유되어야 하는데,
과거는 청산되어야 하는데,
기억하고 싶지 않고
입에 올리기에도 두려워
그냥 묻어두고 썩기를 바라고
모진 바람에 날려 말라버리기만 기다렸던 이름이다.
그래서 이름없이 제주 4.3이라고,
억지로 이름하여 제주 4.3사건이라고 했다.
늦었지만 이제야 찾았다.
제주 4.3 평화공원.

[비설(飛說)]ᆞ변병생 모자 조형물
   49년 1월, 눈 내리는 날 봉개면 한라산 중산간지대. 토벌대의 작전이 시작되었다. 두살배기를 업고 토벌대에 쫓겨 달아나던 어머니(당시 25세, 봉개동 주민 변변생)가 총에 맞았다. 피를 흘리면서 발을 끌면서 걸어가다가 무릎을 꿇었다. 등 뒤에 아기도 총을 맞았을까 살피다가 그만 끌어앉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리고 모녀는 눈밭에 묻혀버렸다. 슬프디 슬픈 이야기(悲說-비설)이다. 
  그 뒤로 산수국이 피멍같이 피어있다.  

 이 슬픈 이야기[비설悲說]의 주인공인 봉개동 주민,
                 
변병생 모녀에게 추모의 시를 지어 바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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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에 산수국이 많이 피었다. 다 못한 슬픈 이야기를 간직한듯 하다.

죽어가면서도 엄마는 아기를 재우는 자장가를 부른다. 웡이자랑~ 웡이자랑~
나선형으로 조성된 비설 조형물을 맴돌듯이 찾아 들어가면서 음각되어있는 웡이자랑 자장가를 읽어본다. '웡이자랑 웡이자랑~' 후렴구에 젖어 나도 모르게 자장가가 되었다. 두 눈에서 눈물자국이 떨어진다.   

 

"'웡이자랑 웡이자랑. 우리 아긴 자는 소리.  
놈의 아긴 우는 소리로고나. 웡이자랑 웡이자랑~~
자는 건 잠소리여 노는건 남소리여"
 

"웡이 자랑 웡이 웡이 자랑 자랑 웡이 자랑 /
우리 아기 잘도잔다 남의 애기 잘도 논다 /
자랑 자랑 자랑 / 도지밑에 검둥개야 앞마당 노는개야 /
자랑 자랑 자랑 / 우리애기 공밥주고 우리애기 재워주렴 /
자랑 자랑 자랑 / 웡이 자랑 웡이 자랑 웡이 자랑 자랑 웡이 자랑 자랑"

 

제주4.3사건 행방불명희생자 위령단

위패에 모셔진 영령들, 그리고 찾지못한 행불자 희생자들....
제주도 사람 다 죽인 것 아냐?
"...섬 하나가 몬딱 감옥이었주마씸, 섬 하나가 몬딱 죽음이었주마씸...."  

전쟁도 아닌 상태에서 정부에 의해, 공권력에 의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수 있을까? 지옥이 따로 없었겠구나.  

[위령제단]

[위령탑과 각명비]

[귀천]-조형물 : 희생된 어린아이, 학생, 성인이 저 세상 갈 적에 입고간 수의를 조형하였다.

위령탑에서 바라본 귀천 조형물과 위령제단

[4.3평화 기념관]

제주4.3평화공원 전경도

 

 

어제 유력 일간지 신문 지면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산사를 소개하면서 '한국산사의 구조' 를 소개하였다. 그림을 보는 순간, 눈을 비볐다.
 "어, 이거 내 그림 아닌가?"
너무 비슷하고 닮았다.
이 정도면 표절이 아닌가?
그 문제는 차치하고 반갑고 자랑스러웠다.
분명 내 홈페이지를 보고 참조해서 그렸을거다. 안 그러면 이렇게 비슷할 수 없다.

http://m.chosun.com/news/article.amp.html?sname=news&contid=2018080901928에서

산사로가는길(2002) 홈페이지
나의 산사로 가는 길 홈페이지,
첫페이지의 <가상사찰탐방> 플래시 배너 창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