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시인 이상과 이상한 화가 구본웅.인왕산 자락에 또 한쌍의 화중유시 단짝
<이상의 집>

계단에 앉아 이상 영상을 보다.

이상(1910~1937)과 구본웅(1906~1953)은 종로 토박이입니다. 이상은 사직동, 구본웅은 필운동, 두 사람 다 인왕산 자락에서 태어나 누상동 신명학교를 함께 졸업한 친구입니다.
척추장애와 독특한 화풍 때문에 ‘한국의 로트레크’로 불린 구본웅은 이상의 초상화를 그렸고, 천재시인 이상은 구본웅을 위해 시를 썼습니다.
인왕산 자락 쉼터에 자리한 구본웅의 그림과 이상의 시를 보며 우정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화가 구본웅이 그린 이상의 얼굴. ‘친구의 초상’(1935년 작)이란 제목이 붙은 이 작품에서 구본웅은 반항적인 예술세계를 펼쳤던 이상의 성격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삽화가였던 행인(杏仁) 이승만(1903-1975)선생이 그린 '이상과 구본웅'.

한국의 로트렉이라 불린 화가 구본웅(1903-1953). 이상의 단짝 친구였다.
[시인의사랑-이상과 금홍⑤끝]금홍이의 몸에서는 멜론 냄새가 났다? - 아시아경제 [시인의사랑-이상과 금홍⑤끝]금홍이의 몸에서는 멜론 냄새가 났다? - 아시아경제 - https://www.google.com/amp/amp.asiae.co.kr/2017/06/02/2017060217312128318.amp.html

권영민 교수의 문학 콘서트: 한국 근현대 예술가들의 삶과 문학으로 배우는 인간 (공)저: 권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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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숲길 이야기

길위의인문학-서울한양도성 2017.11.01 22:32 Posted by 文 寸 문촌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서시비를 지나 서시정으로 내려오면 인왕산 자락길이 시작된다. 여기서 왼쪽 갈래길이 인왕산 숲길이다. 인왕산 숲길은 나무계단으로 오르락 내르락 하며 인왕산 자락의 인문학 이야기를 전해준다.

[http://inwangsansupgil.com/인왕산 숲길 이야기] 


윤동주 문학관ㅡ영혼의 가압장

시작부터 끝까지 걸어가는데 1시간 30분 이상이 걸린다.

나막신과 거문고

대금명인 정약대와 나막신 이야기

인왕산의 어진 호랑이 이야기

이빨바위~위턱의 튼튼한 이빨을 보는 듯하다. 오복의 하나인 치복을 빈다.

인왕산 자락에서 꽃피운 위항문학

잠시 머물러 다과담소 나누기

가온다리~가온은 중심을 뜻한다. 흔들리는 다리, 흔들리는 세상 위에서 중심을 잡다.

시인 이상과 화가 구본웅 이야기

QR코드영상>이상과 구본웅 이야기

황소 화가 이중섭과 길떠나는 가족

화가 이중섭ㅡ박노수 미술관 앞 골목길에 잠시 살았던 이중섭. 가족을 처가 일본으로 보내고 가족을 그리워하며 꽃으로 장식된 소달구지 타고 즐겁게 여행을 떠나는 그림을 그렸다.
화가 이중섭 이야기

청계천 발원지 수성동 계곡, 도룡뇽과 가재 가족도 서울에 살고 있다네요.

인왕산 수성동계곡과 기린교. 정선의 그림 수성동도 그대로 인 듯, 아닌 듯.

안평대군의 비해당이 있던 곳. 아버지 세종대왕은 셋째 아들인 안평에게 새벽부터 밤까지 게으름없이 오직 한사람을 섬기라며 지어진 당호이다.

QR코드 영상> 안평대군ᆞ기린교 이야기

QR코드영상>비해당사십팔영시

비해당~그 터가 이 바위 계곡 위로 추정된다.

수성동계곡과 옥인동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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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25일에 개관한 <윤동주문학관>과 2009년에 조성된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놓치지 말고 보면 남들보다 더 큰 의미와 재미를 얻게 되는 것이 있다.

1. 제2전시실 외벽의 송판무늬 노출콘크리트 : 창의문로에서 바라본 윤동주문학관 현판벽. 목질감을 가진 콘크리트가 따뜻하게 느껴진다. 

2. 상수도 가압장 펌프시설물 유지 : 제1전시실에서 창의문로 쪽 출구를 나가면 바닥에 문학관 이전의 상수도가압장 펌프시설물 일부를 보존하여 남겨서 기념하고있다. 창의문에서 내려오면서 윤동주문학관을 내려다 보았다. 경복궁으로 내려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뒤에 보이는 배너 현수막 자리쯤에 있다.

3. 제1전시실 목조 우물 : 시인의 생가에서 우물 목판을 발견하여 가져와 이곳에 시설하였다. 모습 그대로 우물 정(井)자이다. 더불어 시인의 고향마을 학교에서 가져온 나무의자는 닫힌우물 안에 있다.

4. 9개의 전시대 : 제1전시실, 시인채에서 윤동주의 삶과 시세계를 읽게 된다. 특히 시인의 '히라누마 도오쥬' 창씨 개명의 연희전문학교 학적부 사본과 육필원고 영인본은 발걸음을 오랫동안 머물게 한다.

5. 우물이 된 하늘, 꽃밭이 된 우물 : 열린 우물에서 올려다 보는 하늘은 윤동주의 시 '자화상'을 비추고 있다. 열린 우물 바닥에 봄이 되면 키 작은 꽃이 핀다.

6. 열린 우물과 닫힌 우물의 물때 흔적 :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는 듯, 어떤 화가의 그림, 어떤 디자이너의 채색보다 시인의 우물을 잘 그려내었다. 자연이 인공에게 준 선물이다.

7. '닫힌 우물' 속으로 들어오는 한줄기 햇살 : 암흑으로 새어들어오는 희망의 햇살 속에 감동의 영상이 상영된다. 그 암흑은 후쿠오카 감옥소를 연상시키며 시인의 고통과 절명을 느끼게 된다. 한줄기 햇살은 생에 대한 시인의 간절한 희망과 시인이 간직한 밝고 아름다운 영혼을 연상시킨다.



자화상 속의 시어들을 그림으로 그려보았다. '우물, 달, 구름, 하늘, 바람, 가을'
그리고 '추억처럼 사나이'. 나에게 물어본다. "나는 나의 자화상을 어떻게 그려낼까?"

8. 한 눈으로 내려다 보는 윤동주 문학관 : 윤동주문학관을 나와 시인의 언덕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멈추어 뒤돌아보면 3개의 전시관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열린 우물과 닫힌 우물 천정에 난 개구부와 닫힌 우물 위에 있는 별뜨락 카페도 내려보게 된다. 가던 길에서 뒤를 돌아보고 오르던 길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것 또한 인문학을 하는 자세이다. 다른 시선에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9. 시인의 언덕, '윤동주 영혼의 터' : 윤동주 묘역에서 가져온 흙을 뿌리고 표지석을 세웠다. 시인의 육신을 만나는 듯하다.

10. 서시비에서 바라보는 서울과 정선의 '장안연우' 속 한양 : 그림 속의  남산ᆞ관악산을 보면서 눈 앞의 남산ᆞ관악산을 찾아본다. 그림 속 '남산위의 저 소나무' 대신에 남산타워가 솟아있고, 불꽃모양의 관악산 연봉은 세파에 뭉글어져 얌전해보인다.  

시인의 언덕에서 고개를 동쪽으로 돌려 바라보는 한양도성의 주산(主山) 백악산 전경은 단정한 삼각형(tri-angel) 모습은 한양도성의 조산(祖山)인 삼각산(tri-horn)의 이름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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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영혼의 터

길위의인문학-서울한양도성 2017.10.31 10:09 Posted by 文 寸 문촌
윤동주 시인의 언덕 위에는 <시인 윤동주 영혼의 터>가 있다. 시인의 <서시> 시비로 가는 잔디풀밭 가운데 있다보니 눈에 잘 들어오지는 않는다. 찾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찾을 수 있다.
2009년 가을, 청운공원에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조성되고, 윤동주문학사상 선양회와 함께 한 84명의 문인들이 중국 용정을 찾아 시인이 묻힌 북간도  공동묘지에서 흙을 한 줌씩 가져와 뿌린 자리이다. 시인의 넋을 그래도 가장 가까이에 만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언덕 위에 구절초가 한창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다 져버리니 시인의 넋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물티슈로 흙먼지를 덮고 있는 '그'를 깨끗이 닦아드리고, 하늘소 벗님들과 함께 묵념을 드렸다.

윤동주문학과을 나와 왼쪽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시인의 언덕이다. 문학관 담벽에 바람을 피하여 아직 피어있는 구절초가 애절하게 어여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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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같이 귀한 보배를 모아두었다'는 집옥재는 경복궁 산책에 점안(點眼)을 찍는 멋을 가져다 주었다.
고궁박물관에서 만나 근정전ㅡ사정전ㅡ강녕전ㅡ경회루ㅡ교태전ㅡ아미산ㅡ자경전ㅡ향원정ㅡ건천궁 산책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들리는 대한제국 황실의 도서관인 집옥재는 아주 특별하다.


경복궁 수많은 전각들이 있지만 집옥재는 건축양식이 좀 낯설다. 바로 중국풍의 벽돌로 벽을 만들었다. 처마의 선도 다소 직선적이다.


강사포를 입고 통천관을 쓴 고종황제의 모습. 
1897년 새로 정한 통천관의 양을 보면 관은 오사(흑색)으로 만들고 전후를 각 12량으로 하였고 그 12량 가운데에 5채옥(황. 청. 백. 주. 흑)을 순서대로 꿰어 장식하였고 중앙에 옥잠도를 꽂았고 홍색의 조영끈이 달려 있다. 대한제국이전에 왕과 왕세자는 강사포에 원유관을 썼다.

집옥재 현판과 주련
<집옥재> 글쓴이가 '미원장'이다. 북송서예가인 '미불'을 일컫는다.

<여섯개의 주련>
쇄윤함고 운기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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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담장과 굴뚝은 그 자체가 예술이며 보물이다. 꽃과 글자가 그림이 되었다.

교태전 정문, 양의문 양쪽에는 글자가 새겨진 아름다운 벽돌 담장이 있다. 실은 양의문입구기둥이 아니라, 강녕전의 굴뚝이다. 왼쪽 굴뚝에는 '만수무강'이, 오른쪽 굴뚝에는 '천세만세'가 세로로 새겨졌다. (아래)

교태전 뒤 담장

자경전 서쪽 꽃담장 ㅡ 낙강(만세)만년장춘

마지막 글자는, 봄 춘(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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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굴뚝은 그 자체가 예술이며 보물이다. 꽃과 글자가 그림이 되었다.

<강녕전 굴뚝>
교태전 정문, 양의문 양쪽에는 글자가 새겨진 아름다운 벽돌 담장이 있다. 실은 양의문입구기둥이 아니라, 강녕전의 굴뚝이다. 왼쪽 굴뚝에는 '만수무강'이, 오른쪽 굴뚝에는 '천세만세'가 세로로 새겨졌다.

위ᆞ만수무강(疆) ㅡ 아래ᆞ천세만세(千世萬歲)

<교태전 굴뚝ᆞ아미산>
경회루연못을 만들기 위해 파낸 흙을 교태전 뒤어 쌓아두었다가 후원 정원을 만든 곳이 아미산이다. 아미산에는 네개의 굴뚝이 있다. 굴뚝은 그 자체가 최상급 예술 조각품이다.

<자경전 굴뚝>
경복궁 자경전 뒤의 굴뚝에는 많은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
그것도 백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 살아있다.

굴뚝을 아름답게 장식한 벽 가운데에는 십장생이 양각되어있다. 해, 산, 달 또는 구름, 물, 바위 등 우주 자연의 무생물체들과 소나무, 불로초, 거북이, 학, 사슴 등 오래 사는 생물들이 있다. 그외 다산을 상징하는 포도와 과거 삼과를 연이어 급제하기를 바라는 연꽃ᆞ연잎ᆞ연과도 있다. 위에는 학이 있고  귀신얼굴도 있다.
아래에는 쇠를 먹고사는 '불가살이'라는 상상의 동물도 있다. 나쁜 기운을 물리치며 말그대로 죽지않는다고 믿어졌다.

자경전 굴뚝, 십장생도 옆면에는 박쥐가 붙어 있다. 그의 습성대로 거꾸로 매달려있다.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어 복을 빈다. 박쥐, 복(蝠)과 행복, 복(福)의 발음이 같아서 그렇게 상징한다. 중국에서는 박쥐 복자의 발음과 부유할, 부(富)의 발음이 같아서 박쥐가 '부'를 상징한다. 같은 동양이라도 조금씩 그 상징하는 바도 다르다.

문화는 상징이다. 동양은 박쥐를 복을 가져다준다며 좋게 보고 있지만 서양은 사악한 악마와 같이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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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의 조화 읽기>

정도전을 경복궁을 디자인하고 궁궐문들과 전각들의 이름을 지어주면서 음양 조화, 자연 묘합의 가치를 담았다. 좌우로 대칭되는 궁궐문과 전각들에서 음양 조화의 현판을 찾아 읽는 것도 경복궁 산책의 큰 묘미이다. 인문학 산책의 묘미란 바로 길 위에서 글을 얻는 것이다. 
 -
경복궁의 음양조화 현판 
양(하늘/동방/좌측/봄) - 음(땅/서방/우측/가을)
* 궁  문 : 건춘문 - 영추문
* 근정문: 일화문 - 월화문
* 근정전 회랑 기둥 주춧돌 : 둥글고 네모지다 - 천원(天圓)지방(地方)
* 사정전: 만춘전 - 천추전
* 강녕전: 연생전(延生殿) - 경성전(慶成殿)
* 양의문(兩儀門): 태극의 양의 - 양의(陽儀)와 음의(陰儀)
   [그림 : 태극-양의(음효와 양효)-사상(노음,소음,소양,노양)

[최하단-8괘:(땅)-(산)-(물)-(바람)-(번개)-(불)-(연못)-(하늘)] 

* 교태전(交泰殿): '천지교태(天地交泰)' ~ "하늘(양)과 땅(음)이 어울리니 태평하다." 는 의미로 <주역> 태(泰)괘에서 유래한다.
태괘의 모습은 곤(坤)괘가 위에 있고, 건(乾)괘가 아래에 있다.


* 아미산(峨嵋山): 낙하담(落霞潭) 함월지(涵月池)
    ~ 낙하담은 저녁 해가 떨어져 노을이 지는 연못이며, 함월지는 달을 품은 연못이다.


 <작은 보물들 찾기>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볼 수없다. 남들이 눈 여겨 보지 않아도 귀한 것들이 있다. 하늘소 벗님들과 경복궁 나들이, 혼자서는 힘들어도 벗님들과 함께 작지만 귀하고 재미있고 소중한 것들을 찾아 얘기를 나누었다. 오래전, 고궁박물관 기념품 가게에서 재미난 것이 눈에 띠었다. 그래서 구입하여 읽다가 이번 하늘소 벗님들 나들이에 사용하였다. 경복궁의 작은보물들 찾기를 위해 카드 18장을 골라내고 각자 두개씩 고르게 했다. 그리고 그 보물카드의 현장을 찾아 본인이 설명하기로 했다. 학생시절로 돌아가 체험학습을 하는 셈치고 놀았다. 다들 노안으로 보물카드의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흥겹게 공부 놀이를 즐기면서 산책을 하였다.
학교의 아이들 데리고 다니면서 이렇게 공부해도 되겠다.
  

 <경복궁 자경전 굴뚝>

* 십장생도 속의 일로연과(一老蓮果) : 과거 길에 나가 연달아 초시, 소과, 대과 과거에 급제하라는 일로연과(一路連科)의 의미를 담고 있다.
* 불가살이(不加殺伊)~말 그대로 죽지 않는다고 믿어졌으며, 곰의 몸, 코끼리의 코, 무소의 눈, 소의 꼬리, 범의 발을 가졌다. 쇠를 먹고 살며 사악한 기운과 전염병을 물리친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박쥐, 복(蝠) ~ 한자로 음이 복(蝠)이라서 복(福)을 불러오는 상서로운 짐승으로 여겼다. 대체로 복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 것을 희망하여 거꾸로 매달린 모양으로 새겨져 있다. 하지만 교태전 뒤의 아미산 굴뚝에 새겨진 두마리 박쥐 문양은 위의 것은 아래로 향하고 아래의 것은 위를 보며 있다.  


경복궁 북문, 신무문 - 홍예문 안에는 현무가 그려져 있다. 북방의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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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광무 원년) 고종은 경운궁으로 환궁하여 그해 8월 17일 광무(光武)란 연호를 쓰기 시작하고10월 3일 황제 칭호 건의를 수락하였다. 고종은 자주 의지를 대내외에 널리 표명하고 땅에 떨어진 국가의 위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반드시 제국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였으며, 10월 12일 원구단(園丘團)에서 상제(上帝)님께 천제를 올리고 국호를 대한제국이라 고치고 황제를 자칭하면서 즉위하였다. 대한제국이 선포되자 각국은 대한제국을 직접으로, 간접으로 승인하였다. 그중 제정 러시아와 프랑스는 국가 원수가 직접 승인하고 축하하였으며 영국, 미국,독일도 간접으로 승인하는 의사를 표시하였다.[5] 그러나 당시 열강 대부분은 대한제국의 성립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제위에 오른 고종은 그 직후인 11월 12일 미루었던 명성황후의 국장(國葬)을 치렀으며, 과거에 청에 사대하던 관계를 상징하던 영은문을 허물고 그 자리에 독립문 건립에 추진하여 11월 20일에 완공하여 조선의 자주독립을 원하고 있었다.
고종은 경운궁으로 환궁하고서 입법기관인 교전소를 설치하고 원로대신 다섯 명과 더불어 박정양과 이완용, 서재필, 탁지부 고문 영국인 존 브라운, 법부 고문 샤를 르장드르를 위시한 외국인 고문관들을 교전소 부총재와 위원으로 배정했으나 교전소 위원이 친미개화파와 외국인이 과반수를 차지하자 원로대신들이 꺼리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다.

서울대 이태진 명예교수 ㅡ
"대한제국은 무기력하지 않았고, 고종은 무능한 황제가 아니었다"
http://v.media.daum.net/v/20171011173625646?f=m&rcmd=rn

환구단 ㅡ 황제국 선포 후 하늘에 제사드린 환구단의 황궁우와 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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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자락 비우당

길위의인문학-서울한양도성 2017.10.10 21:38 Posted by 文 寸 문촌

낙산 동쪽 자락 비우당(庇雨堂),

조선의 백과사전인 <지봉유설>의 저자,  실학자 지봉 이수광이 살았던 집터이다. 집터는 한양도성을 이루고 있는 동.서.남.북 봉우리 중 가장 낮은 서쪽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 동쪽 상산 줄기에 위치하고 있다. 
이수광은 조선중기 실학자의 선구자로 세차례에 걸쳐 사신으로 중국을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조선은 물론 중국, 일본, 유구, 베트남 등 중국 주변국은 물론 영국, 포르투갈 등 서양세계를 비롯한 다양한 내용을 담은 백과사전 성격의 ‘지봉유설(芝峰類說 )’을 저술하였다. 그는 일찍이 관직에 나아가 이조참판까지 역임하고, 명나라에 사신을 세번씩이나 다녀올 정도로 고위층에 해당하는 인물이었지만, 그가 살았던 작은 초가집은 당시 그가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집터에는 이수광이 살았던 집을 복원해 놓고 있는데 부엌 1칸, 방2칸으로 이루어진 조선시대 전형적인 서민가옥 형태를 하고 있다. 원래 이수광의 외가쪽 인물로 청백리로 널리 알려졌던 유관이 살았던 집을 이수광이 고쳐지어 살았다고 전해지는 집이다.  현재의 가옥은 최근에 옛모습을 복원한 것으로 실제 초가집과는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조선시대 한양에 거주했던 선비들이 소박하게 살았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집터 뒷편에는 단종비 정순왕후가 폐위된 뒤 빨래를 했던 곳으로 전해지는 자주동샘과 거북모양의 바위가 남아 있다.

비우당, 서울 종로구 창신동
비우당은 ‘비를 가리는 집’이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실학자인 지봉 이수광(1563~1628)이 살던 곳이다. 낙산 동쪽 상산의 한 줄기인 지봉 아래 있었는데 이수광의 호 지봉이 여기에서 나왔다. 원래는 창신동 쌍용2차 아파트 자리에 있었는데 서울시에서 낙산공원을 조성하면서 이곳에 복원하였다. 조선 초기의 청백리로 명성이 높은 유관이 이곳에서 살았는데 지붕이 새자 손수 우산을 받치고 살면서 부인에게 “우산 없는 집은 어떻게 견딜꼬?”라 농담을 하였다는 ‘유재상의 우산’이라는 고사가 생겼다. 이곳은 외손인 이수광 집안으로 상속되었는데, 그 집이 임진왜란 때 소실되자 이수광이 집을 새로 짓고 그 이름을 비우당이라 하였다. ‘동원비우당기’에 이러한 사연을 자세히 적었다. 이수광은 비우당에 살면서 이 일대의 여덟곳을 ‘비우당 팔경’이라 하고 시를 읊었다. 동지세류에서 흥인문 바깥의 못가에 핀 버들이 봄바람에 버들개지를 날리고 꾀꼬리가 지저귀는 모습을 노래하였으며, 북령소송에서는 북악의 산마루가 낮에도 늘 어둑한데 푸른 솔 그림자가 집에 드리운 것을 보고 동량으로 쓰이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였고, 타락청운에서는 아침마다 누운 채 낙산의 구름을 마주하면서 한가한 구름처럼 살고 싶다고 하였다. 아차모우에서는 아차산에서부터 벌판을 지나 불어오는 저녁비를 노래하였다. 전계세족에서는 비가오고 나면 개울에 나가 발을 씻고 개울가 바위에 드러눕는다고 하였고, 후포채지에서는 지봉과 상산의 이름에 맞추어 상산사호처럼 살고 싶다 하였다. 암동심화에서는 복사꽃 핀 꼴짜기에서 나비를 따라 꽃을 찾아가는 풍류를 말하였고, 신정대월에서는 맑은 정자에 올라 술잔을 잡는 흥취를 말하였다. 비우당이 있던 곳은 조선시대 자지동이라 불렀다.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가 폐위되어 영월로 간 단종을 기다리면서 이곳에 와서 빨래를 하였는데 빨래가 붉은 빛으로 염색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 위쪽에 거북바위가 있었다. 정순왕후가 단종이 탄 거북이를 타고 승천하는 꿈을 꾸었는데 아침에 보니 이 바위가 나타났다는 전설도 전한다. <출처:서울시청>

한양도성 낙산정상에서 동으로, 왼쪽에 한성대, 오른쪽에 쌍용2차아파트 담장 사이로 난 길을 내려오면 아파트단지 정문 가까이에서 자주동샘 안내 이정표가 보인다. 이 내리막길을 50여 미터 쯤 내려오면 비우당이 있다.

낙산정상에서 북으로 바라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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