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성북동 길.
이 봄 비에 꽃 떨어질까 저어한다.
다행히 바람은 잔잔하고 비는 가늘다.
덕분에 세상은 고요하고, 공기는 맑다.
조지훈 시인은 이 곳 성북동에 살면서 박목월,  박두진 등과 함께 청록집을 출간하였다. 이른바 청록파 시인들이다.
조지훈 시인이 살던 그 때 그 집은 지금 없지만 시인을 기념하고자 성북동 142-1번지 가로길에 조지훈 '시인의 방ㅡ방우산장(放牛山莊)' 표지 기념물이 설치되어있다. 이런 표지 기념물을 '폴리'라고 한다. 폴리(Folly)'의 건축학적 인 본래의 기능을 잃고 조형적인 의도와 장식적 역할을 하는 건축물을 뜻한다.
파빌리온 형의 벽에는 창호지없는 격자문이 시인이 살았던 집 방향으로 열려있고, 그 위아래로 우리 전통 가옥의 처마와 마루가 있다. 오른편 바깥면에는 <낙화>시가 새겨져 있다.
시인은 나의 심정을 눈치챈 듯, 낙화에 눈물을 훔친다. 오늘 같이 봄비 오는 날, 낭송하기에 제 맛을 내는 시이다.

<방우산장>ᆞ시인의 방

 낙화(落花)  -   조지훈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성북동142-1번지

한성대역 6번 출구(평화의 소녀상)에서 부터 마을버스 4-5번 째 정류장 가까이에 있다. 
봄비 오는 성북동 나들이.
한성대역 5번 출구의 나폴레옹 제과점에서 만나 시작한다. 예전에는 2층에서 한양도성 낙산성곽이 훤하게 보였는데 이제 낯선 건물이 눈길을 가로 막았다. 그림책인가, 어디서 본듯 한 건물 형태이다. 마술사 같은 화가인 에셔의 그림에서인가? 바벨탑 축소판인가?

나폴레옹 제과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버스 정류장에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특별하다. 한복을 입은 한국의 소녀상 옆에 친구가 앉아 있다. 치바오 바지를 입은 중국의 소녀상이다. 이 소녀상은 2015년 10월에 건립되었다한다.
마음 착한 이가 소녀들에게 모자를 씌우고 목도리를 둘러주었다. 한국의 소녀상 뒤로는 할머니 그림자가, 중국의 소녀상 뒤로는 지나온 발자욱이 찍혀있다. 두주먹은 단단한 각오로 움켜쥐고 있으나, 맨발의 두 발은 불안한 듯 땅을 딛지 못하고 있다. 오른쪽의 빈의자는 누구의 자리일까? 동남아의 위안부 소녀의 자리이기도 하며, 곁에서 늘 위로가 되어 줘야할 나의 자리이기도 하다.

흔히 인문(人文)의 어원을 '사람의 무늬'이라 할 적에 무늬란 곧, 소녀상 뒤로 난 할머니 그림자, 그림자 속의 하얀 나비와 같은 문양이며, 그리고 두 주먹, 두 발, 어깨 위의 저 새와 같은 상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인문학은 바로 그 사람이 만들어 낸 무늬ᆞ문양ᆞ상징에 문사철의 의미를 부여하고 찾아가는 것이다.
소녀상의 상징과 의미를 이야기한다. 그 순간 소녀상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삶이 되고 사람이 된다.
한편 괜한 시비를 삼아본다. 공감이라는 착한 동기에서 비롯되었지만 소녀상에 모자와 목도리를 씌운 행위는 과연 잘한 일일까? 위안부 소녀의 고통을 상징하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가렸으니 결과적으로 소녀상을 왜곡한 것은 아닐까? 오늘따라 비가 오니 차라리 젖은 모자와 목도리를 벗기고 우산을 함께 서야하는 것은 아닐까?

봄비는 가시나무도 이렇게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게 하는구나.

도ᆞ道란 무엇인가?

길위의인문학-서울한양도성 2018.04.06 10:31 Posted by 文 寸 문촌
그놈의 도(道)가 무엇이길래,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했을까?
공자의 도,
노자의 도,
동중서의 오상지도를 듣는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던 공자. 그에게 도란 무엇일까?  공자는 제자들 앞에서,
 "삼아. 나의 도는 하나로 통한다."( 參乎 吾道 一以貫之)라고 했다. 그 말씀이 무슨 말인지 제자들이 의아했다. 스승이 떠난 자리에서 증자는 "선생님의 도는 충과 서일뿐이라"(夫子之道 忠恕而已矣)라고 하였다. 중심을 잃지 않고 자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충(忠ᆞ中心)이요.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서(恕ᆞ如心)이다.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타인에게 베풀지 않는 것이다." 도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가 만나는 사람 사이에 있다.

그러나, 도를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노자는
"도를 도라고 규정하여 말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늘 그러한 상도(常道)를 어떤 이들은 영원불변의 도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규정되고 단정되고 고정되어 판에 박혀 석고상이 되어버린 죽은 도가 아니다. 오히려 늘 변하고 늘 살아 움직이는 도이다.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여럿이 될 수 있는 열린 도이다. "서울 가는 길, 이 길 밖에 없다"라고 말하는 '가도(可道)'는 거짓말이다. 서울 가는 길이 어디 한 길 뿐이랴?

다만, 늘 그러한 상도(常道)의 움직임은 '거꾸로' 가는 것이다. '반대로" 가는 것이다. '돌아가는' 것이다.
변증법적 정반합의 반(反ᆞ안티테제)이 있어야 지양(止揚)의 발전이 있다. 정(定ᆞ테제)만 있고 반이 없으면, 그 정(定)은 고정된 부동이요 죽은 것이다. 하늘 아래 완전하고 절대적인 진리와 법칙과 제도가 어디있는가? 모순을 지적하는 반(反)이 있어야 발전이 있다. 그 발전의 과정이 도이며, 도의 움직임이다. [反者道之動]
늘 물음표를 던져라.
삐딱하게 받아들여라.
다르게 바라보라.
다르게 생각하라.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 자연은 그것이 도(道)의 작용이라고 가르치고 있다.[弱者道之用]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을
이제 반대로 받아들여라.
그 길이 도(道ᆞThe Way)이다.

○○고 학생들 대상으로 인문학 강의를 시작했다.
제1강ㅡ인문학, 길을 걷다. 길에 묻다.
인문학은 무엇인가?
문(文), 무늬, 직책
  ~"나의 꿈ᆞ직책을 무늬로 그려보자."
"인간다움ᆞ사람다운 사람이란?"
왜 '길'(道)인가? 도는 무엇인가?
공자의 길, 노자의 길, 퇴계와 윤동주의 길,
그리고 나의 길은?
한양도성과 맹자의 사단ᆞ동중서의 오상


김구선생, 스님되시다.

길위의인문학-서울한양도성 2018.02.15 13:37 Posted by 文 寸 문촌
백범 김구선생이 삭발수계하고 스님이 되어 수행하셨다는 마곡사에 들렀다.
그 곳을 들리기전에 선생이 즐겨썼다는 <답설야중거>오언절구 행서를 임서했다.

답설야중거ᆞ불수호란행
금일아행적ᆞ수작후인정
"눈 덮인 들 가운데 걸어 갈 적에
함부로 걷지말라.
오늘 내가 남기는 발자욱
뒷 사람의 이정표가 되나니."

서산대사의 시라고 알려졌지만 이양연의 시라는 것이 정설이다.
한겨울 아침이라 찾는 이 없는 가운데 절마당 한가운데 한가로운 사미인양, 삽살개가 반갑게 길 손을 맞아준다.
내 가는 길을 돌아보게한다.

주 금당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광명전이고 그 뒤에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보전이 있다.

큰 삽살개가 대광명전 앞 마당에서 나를 맞아준다.

해방이후 마곡사를 다시 찾은 김구선생과 일행들

마곡사 시절 김구선생이 생활했던 심검당

대광명전 왼편에 김구선생을 위한 백범당이 있다. 찬바람 들어갈까, 주인 허락받지 않고 결례될까 저어하여 방문을 열어보지 못했다. 언제 따뜻한 날이 오면 다시 올 날있겠지라며 미룬다.

이상한 시인 이상과 이상한 화가 구본웅.인왕산 자락에 또 한쌍의 화중유시 단짝
<이상의 집>

계단에 앉아 이상 영상을 보다.

이상(1910~1937)과 구본웅(1906~1953)은 종로 토박이입니다. 이상은 사직동, 구본웅은 필운동, 두 사람 다 인왕산 자락에서 태어나 누상동 신명학교를 함께 졸업한 친구입니다.
척추장애와 독특한 화풍 때문에 ‘한국의 로트레크’로 불린 구본웅은 이상의 초상화를 그렸고, 천재시인 이상은 구본웅을 위해 시를 썼습니다.
인왕산 자락 쉼터에 자리한 구본웅의 그림과 이상의 시를 보며 우정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화가 구본웅이 그린 이상의 얼굴. ‘친구의 초상’(1935년 작)이란 제목이 붙은 이 작품에서 구본웅은 반항적인 예술세계를 펼쳤던 이상의 성격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삽화가였던 행인(杏仁) 이승만(1903-1975)선생이 그린 '이상과 구본웅'.

한국의 로트렉이라 불린 화가 구본웅(1903-1953). 이상의 단짝 친구였다.
[시인의사랑-이상과 금홍⑤끝]금홍이의 몸에서는 멜론 냄새가 났다? - 아시아경제 [시인의사랑-이상과 금홍⑤끝]금홍이의 몸에서는 멜론 냄새가 났다? - 아시아경제 - https://www.google.com/amp/amp.asiae.co.kr/2017/06/02/2017060217312128318.amp.html

권영민 교수의 문학 콘서트: 한국 근현대 예술가들의 삶과 문학으로 배우는 인간 (공)저: 권영민

인왕산 숲길 이야기

길위의인문학-서울한양도성 2017.11.01 22:32 Posted by 文 寸 문촌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서시비를 지나 서시정으로 내려오면 인왕산 자락길이 시작된다. 여기서 왼쪽 갈래길이 인왕산 숲길이다. 인왕산 숲길은 나무계단으로 오르락 내르락 하며 인왕산 자락의 인문학 이야기를 전해준다.

[http://inwangsansupgil.com/인왕산 숲길 이야기] 


윤동주 문학관ㅡ영혼의 가압장

시작부터 끝까지 걸어가는데 1시간 30분 이상이 걸린다.

나막신과 거문고

대금명인 정약대와 나막신 이야기

인왕산의 어진 호랑이 이야기

이빨바위~위턱의 튼튼한 이빨을 보는 듯하다. 오복의 하나인 치복을 빈다.

인왕산 자락에서 꽃피운 위항문학

잠시 머물러 다과담소 나누기

가온다리~가온은 중심을 뜻한다. 흔들리는 다리, 흔들리는 세상 위에서 중심을 잡다.

시인 이상과 화가 구본웅 이야기

QR코드영상>이상과 구본웅 이야기

황소 화가 이중섭과 길떠나는 가족

화가 이중섭ㅡ박노수 미술관 앞 골목길에 잠시 살았던 이중섭. 가족을 처가 일본으로 보내고 가족을 그리워하며 꽃으로 장식된 소달구지 타고 즐겁게 여행을 떠나는 그림을 그렸다.
화가 이중섭 이야기

청계천 발원지 수성동 계곡, 도룡뇽과 가재 가족도 서울에 살고 있다네요.

인왕산 수성동계곡과 기린교. 정선의 그림 수성동도 그대로 인 듯, 아닌 듯.

안평대군의 비해당이 있던 곳. 아버지 세종대왕은 셋째 아들인 안평에게 새벽부터 밤까지 게으름없이 오직 한사람을 섬기라며 지어진 당호이다.

QR코드 영상> 안평대군ᆞ기린교 이야기

QR코드영상>비해당사십팔영시

비해당~그 터가 이 바위 계곡 위로 추정된다.

수성동계곡과 옥인동아파트
2012년 7월 25일에 개관한 <윤동주문학관>과 2009년에 조성된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놓치지 말고 보면 남들보다 더 큰 의미와 재미를 얻게 되는 것이 있다.

1. 제2전시실 외벽의 송판무늬 노출콘크리트 : 창의문로에서 바라본 윤동주문학관 현판벽. 목질감을 가진 콘크리트가 따뜻하게 느껴진다. 

2. 상수도 가압장 펌프시설물 유지 : 제1전시실에서 창의문로 쪽 출구를 나가면 바닥에 문학관 이전의 상수도가압장 펌프시설물 일부를 보존하여 남겨서 기념하고있다. 창의문에서 내려오면서 윤동주문학관을 내려다 보았다. 경복궁으로 내려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뒤에 보이는 배너 현수막 자리쯤에 있다.

3. 제1전시실 목조 우물 : 시인의 생가에서 우물 목판을 발견하여 가져와 이곳에 시설하였다. 모습 그대로 우물 정(井)자이다. 더불어 시인의 고향마을 학교에서 가져온 나무의자는 닫힌우물 안에 있다.

4. 9개의 전시대 : 제1전시실, 시인채에서 윤동주의 삶과 시세계를 읽게 된다. 특히 시인의 '히라누마 도오쥬' 창씨 개명의 연희전문학교 학적부 사본과 육필원고 영인본은 발걸음을 오랫동안 머물게 한다.

5. 우물이 된 하늘, 꽃밭이 된 우물 : 열린 우물에서 올려다 보는 하늘은 윤동주의 시 '자화상'을 비추고 있다. 열린 우물 바닥에 봄이 되면 키 작은 꽃이 핀다.

6. 열린 우물과 닫힌 우물의 물때 흔적 :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는 듯, 어떤 화가의 그림, 어떤 디자이너의 채색보다 시인의 우물을 잘 그려내었다. 자연이 인공에게 준 선물이다.

7. '닫힌 우물' 속으로 들어오는 한줄기 햇살 : 암흑으로 새어들어오는 희망의 햇살 속에 감동의 영상이 상영된다. 그 암흑은 후쿠오카 감옥소를 연상시키며 시인의 고통과 절명을 느끼게 된다. 한줄기 햇살은 생에 대한 시인의 간절한 희망과 시인이 간직한 밝고 아름다운 영혼을 연상시킨다.



자화상 속의 시어들을 그림으로 그려보았다. '우물, 달, 구름, 하늘, 바람, 가을'
그리고 '추억처럼 사나이'. 나에게 물어본다. "나는 나의 자화상을 어떻게 그려낼까?"

8. 한 눈으로 내려다 보는 윤동주 문학관 : 윤동주문학관을 나와 시인의 언덕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멈추어 뒤돌아보면 3개의 전시관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열린 우물과 닫힌 우물 천정에 난 개구부와 닫힌 우물 위에 있는 별뜨락 카페도 내려보게 된다. 가던 길에서 뒤를 돌아보고 오르던 길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것 또한 인문학을 하는 자세이다. 다른 시선에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9. 시인의 언덕, '윤동주 영혼의 터' : 윤동주 묘역에서 가져온 흙을 뿌리고 표지석을 세웠다. 시인의 육신을 만나는 듯하다.

10. 서시비에서 바라보는 서울과 정선의 '장안연우' 속 한양 : 그림 속의  남산ᆞ관악산을 보면서 눈 앞의 남산ᆞ관악산을 찾아본다. 그림 속 '남산위의 저 소나무' 대신에 남산타워가 솟아있고, 불꽃모양의 관악산 연봉은 세파에 뭉글어져 얌전해보인다.  

시인의 언덕에서 고개를 동쪽으로 돌려 바라보는 한양도성의 주산(主山) 백악산 전경은 단정한 삼각형(tri-angel) 모습은 한양도성의 조산(祖山)인 삼각산(tri-horn)의 이름을 닮았다.

윤동주 영혼의 터

길위의인문학-서울한양도성 2017.10.31 10:09 Posted by 文 寸 문촌
윤동주 시인의 언덕 위에는 <시인 윤동주 영혼의 터>가 있다. 시인의 <서시> 시비로 가는 잔디풀밭 가운데 있다보니 눈에 잘 들어오지는 않는다. 찾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찾을 수 있다.
2009년 가을, 청운공원에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조성되고, 윤동주문학사상 선양회와 함께 한 84명의 문인들이 중국 용정을 찾아 시인이 묻힌 북간도  공동묘지에서 흙을 한 줌씩 가져와 뿌린 자리이다. 시인의 넋을 그래도 가장 가까이에 만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언덕 위에 구절초가 한창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다 져버리니 시인의 넋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물티슈로 흙먼지를 덮고 있는 '그'를 깨끗이 닦아드리고, 하늘소 벗님들과 함께 묵념을 드렸다.

윤동주문학과을 나와 왼쪽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시인의 언덕이다. 문학관 담벽에 바람을 피하여 아직 피어있는 구절초가 애절하게 어여쁘다.

'옥같이 귀한 보배를 모아두었다'는 집옥재는 경복궁 산책에 점안(點眼)을 찍는 멋을 가져다 주었다.
고궁박물관에서 만나 근정전ㅡ사정전ㅡ강녕전ㅡ경회루ㅡ교태전ㅡ아미산ㅡ자경전ㅡ향원정ㅡ건천궁 산책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들리는 대한제국 황실의 도서관인 집옥재는 아주 특별하다.


경복궁 수많은 전각들이 있지만 집옥재는 건축양식이 좀 낯설다. 바로 중국풍의 벽돌로 벽을 만들었다. 처마의 선도 다소 직선적이다.


강사포를 입고 통천관을 쓴 고종황제의 모습. 
1897년 새로 정한 통천관의 양을 보면 관은 오사(흑색)으로 만들고 전후를 각 12량으로 하였고 그 12량 가운데에 5채옥(황. 청. 백. 주. 흑)을 순서대로 꿰어 장식하였고 중앙에 옥잠도를 꽂았고 홍색의 조영끈이 달려 있다. 대한제국이전에 왕과 왕세자는 강사포에 원유관을 썼다.

집옥재 현판과 주련
<집옥재> 글쓴이가 '미원장'이다. 북송서예가인 '미불'을 일컫는다.

<여섯개의 주련>
쇄윤함고 운기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