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13 도산서원에서 읽는 논어

인문학 고전과 교육 2018.07.10 17:33 Posted by 文 寸 문촌

13. 길에서 읽는 논어: 도산서원에 깨닫는 학습의 기쁨

13도산서원에서 읽는 논어.hwp

퇴계 이황 선생과 도산서당

  도산서당(陶山書堂)은 퇴계 선생께서 직접 설계하였는데 무척 소박한 모습이다. 이 건물이 지어질 당시 퇴계 선생은 멀리 외직에 계셨고, 공사 책임자인 법련스님에게 편지로 통해 건물설계를 지시하였다한다. 스스로 기거하시며 독서와 사색을 즐기신 도산서당과 후학들이 기숙하는 농운정사로 이루어졌다.

  서당 앞을 출입하는 곳을 막아서 사립문을 만들고 이름을 유정문(幽貞門)이라고 하였다. '유정'이라 한 것은 주역'이도탄탄 유인정길'(履道坦坦 幽人貞吉, 도를 실천하는 길이 탄탄하니 숨은 선비가 곧고 길하리라) 의 뜻이다.

  서당은 선생께서 이곳에 기거하시며 독서와 사색을 즐기며 연구하시던 거실이다. 당사는 두 채로 이루어졌는데 암서헌과 완락재라 한다. 선생께서는 이름의 까닭을 이렇게 말하신다.

"정사년(1557)에서 신유년(1561)에 이르기까지 5년 만에 당사(堂舍) 두 채가 되어 겨우 거처할 만하다.  당사는 세간인데, 중간 한 간은 완락재(玩樂齋)라 하였으니, 그것은 주선생(주자)의 명당실기(名堂室記), '완상하여 즐기니, 족히 여기서 평생토록 지내도 싫지 않겠다.'라고 하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동쪽 한 간은 암서헌(巖棲軒)이라 하였으니, 그것은 (주자의) 운곡(雲谷)의 시에, '(학문에 대한) 자신(自信)을 오래도록 가지지 못했더니 바위에 깃들여[巖棲] 조그만 효험이라도 바란다.'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 [도산잡영]에서

  이황 선생님은 매화를 참으로 사랑하셨다. 도산서당 동편에 작은 연못을 파서 '정우당(淨友塘)'이라 하고, 그 곁의 샘을 '몽천(蒙泉)'이라 불렀으며, 그 몽천 위쪽에 단을 쌓고 그 위쪽에 절우사(節友社)라는 화단을 쌓고 매화(), (), (), 국화()를 심어 벗 삼으며 지내셨다. 매화, 대나무, 소나무는 겨울을 이겨낸다 하여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한다. 정우(淨友)깨끗한 친구란 뜻이고, 절우(節友)'절개를 지키는 친구'란 뜻이다. 그 중에 특히 매화를 아껴 '매형(梅兄)'이라 불렀다. 선생님은 엄격하고 도리를 소중히 여기는 원칙주의자의 모습을 가지셨지만 한편으로는 애정과 감흥을 느끼며 자연을 사랑하시는 낭만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매화를 사랑한 선생님의 [매화음(梅花吟)]은 이렇게 노래하였다.

      밤기운 차가워라 창을 기대앉았더니

     두둥실 밝은 달이 매화가지에 오르누나.

     수다스레 가는 바람 불어오지 않더라도

      맑은 향기 저절로 동산에 가득한 걸.

 

농운정사(隴雲精舍)에서 읽는 논어11절과 맹자

농운정사는 도산서당과 함께 지은 것으로 제자들이 기숙하면서 공부하던 곳이다. 모두 여덟 칸으로 된 공()자형 건물로 공부방이 시습재(時習齋)이며, 침실이 지숙료(止宿寮)이며, 낙동강의 맑은 흐름을 볼 수 있는 마루는 관란헌(觀瀾軒)이라 이름 붙였다. 자형의 집은 '공부(工夫)한다'는 공()자에서 따온 것이며, 시습재는 논어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에서 가져온 말로, 배우고서 때때로 그것을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뜻이며, 관란헌은 맹자관수유술 필관기란(觀水有術 必觀其瀾)’에서 따온 말로, 물을 바라보는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여울목을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지숙료는 머물다 잠자는 집이라는 뜻을 가진 주자(1130~1200)의 시 제목에서 따왔다. 주자의 <무이정사 잡영ㆍ武夷精舍 雜詠>12수 중 4번째 시문(詩文)<지숙료止宿寮>를 옮겨 읽는다. 찾아오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故人肯相尋) / 함께 띠 집에서 잔 적이 있네.(共寄一茅宇) / 빈한한 산골짜기에 머물렀다 가니(山水為留行) / 힘들이지 않고 정성스레 한 끼 대접했네.(無勞具鷄黍)”

역락서재(亦樂書齋)에서 읽는 논어11

서원 경내로 들어가면서 시사단에 눈을 빼앗기어 하마터면 역락재를 놓칠 뻔했다. 선생님 61세에 완공을 본 도산서당은 당시 선생의 공부방인 도산서당과 학생 기숙사인 농운정사 뿐이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계속 늘어나면서 기숙사는 비좁게 되었다. 마침 제자 정지헌이 어린 나이에 입학하게 되는 데 그 부친이 서당 사정을 이해하고 퇴계선생님을 존경하는 사은의 표시로 기숙사를 지어 드렸다. 그래서 일명 동몽재(童蒙齋)라 한다. '역락'(易樂)논어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 不易樂乎), 벗이 있어 스스로 먼 길을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에서 따온 말이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 而不慍, 不亦君子乎?” - 학이01.01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도산서원에서 읽는 논어

서원은 오늘날의 지방사립대학과 같은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이다. 서원의 가장 기본적인 건물 배치는 전학후묘(前學後廟)라 하여 앞은 학당(공부하는 곳)이며 뒤는 사당(존현을 제향하는 곳)이 있다. 도산서원은 전교당과 동재, 서재의 학당이 있고 그 뒤로 상덕사라는 사당이 있다.


   도산서원 전경 : 바로 왼쪽 앞에 보이는 건물은 역락서재, 가운데는 농운정사이다. 오른쪽의 계단을 오르다 오른쪽으로 살피면 퇴계 선생 살아 계실 적의 [도산서당]이 있고, 계단을 계속 오르면 도산서원의 외삼문인 진도문과 전교당, 상덕사로 들어가게 된다.

전교당과 동·서재 - 강학(講學)의 배움터

  도산 서원의 중심이 되는 주강당 전교당(典敎堂, 보물 제210)은 각종 회합과 공부가 이루어지는 주배움터이다. 이 곳에 들어가려면 서원의 외삼문인 진도문(進道門)으로 들어간다. ‘()에 나아간다는 뜻이다. 문으로 들어가면 학문의 길이며, 문 밖으로 나가면 세상의 길이다. 들어가던지 나가던지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어느 길이든 사람의 도리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흔치않게 정면 4칸 측면 2칸의 짝수 칸으로 이루어진 전교당의 '도산서원 '편액은 선조의 사액(賜額)으로 한석봉의 글씨이다. 실내 중앙에는 전교당, 서벽에는 한존재(閑存齋)의 현액이 있고 당중정면에 정조대왕이 지으신 제문과 전교(傳敎)를 달아두었다. 병산서원의 강당인 입교당과는 달리 동쪽에 있을 원장실을 생략하고 마루를 넓게 사용하게 만들었다. 한존재는 바로 원장실로서 '한사존성(閑邪存誠)'에서 유래하였다.회합과 강학의 전당인 전교당의 계단아래에 좌우로 시립해 있듯 동서에서 마주보는 건물이 있다. 바로 유생들이 기거하는 방으로 동이 박약재(博約齋))이고, 서가 홍의재(弘毅齋)이다.

  박약재는 논어박학어문, 약지이례(博學於文, 約之以禮)’의 준말로서, 학문을 널리 배우고, 예로써 자신을 절제하라는 뜻이다. 홍의재 역시 논어사불가이홍의(士不可以不弘毅)’에서 가져온 말로, '()'은 크고 넓은 마음이며, '()'는 굳세고 결단 있는 의지를 말한다. 선비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많이 사랑하는 정조(正祖)대왕의 호는 홍재(弘齋)이다. ‘군자의 도량은 넓어야 한다는 것으로 논어에서 얻은 호이다.

子曰, “君子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弗畔矣夫!” - 옹야07.25
            (자왈 군자박학어문, 약지이례, 역가이불반의부)

曾子曰, “士不可以不弘毅 - 태백08.07
(증자왈, 사불가이 불홍의)

 

상덕사 - 제향(祭享)의 예배터

  퇴계선생을 제향하는 상덕사((尙德祠, 보물 제211)는 주강당인 전교당 바로 뒤에 있지 않고 앞에서 보면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다. 하회마을의 병산서원도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상덕사에 들어가려면 사당 정문인 내삼문을 지나야 하는데 문은 굳게 닫혀 있다. 퇴계선생님의 위패를 모셔둔 상덕사를 보다 가까이 가서 느끼고 싶어서 전교당 뒤를 돌아 전사청으로 올랐다. 상덕사의 서쪽 담을 격하고 쪽문을 달은 전사청(典祀廳)은 상덕사에서 제향 드릴 적에 제수(祭需)를 마련하여 두는 곳으로 제사 그릇과 여러 도구 및 술 등을 보관하고 있다. 전사청에 들어가 쪽문으로 상덕사를 바라보았다.

   퇴계 선생님의 덕을 숭상하는 상덕사 앞에서 사마천의 말을 떠올린다. 일 년을 살려거든 곡식을 심고, 십 년을 살려거든 나무를 심고, 백년을 살려거든 덕을 베풀어라. 덕이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퇴계 이황 선생님의 덕은 백 년이 아니라, 천 년 만 년 이어지고 높아질 것이다.

 

학습의 의미 ~ “배움[]만 있고, 익힘[]이 없으면 공부가 아니다.”

 

 ◎ 학>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음(선생님의 것), 
    
> 자기 주도적인 복습(내 것) 

생각만들기와 생각나누기 : “공부(학습)하는 기쁨은 어디에 있을까?”

나의 생각>..................................................................................................

친구의 생각>...............................................................................................

안중근의 옥중유묵 ~ 박학어문 약지이례

 

12. 길에서 읽는 논어
                     
: ‘나라다운 나라’, 사직단(社稷壇)에서 읽다.

12나라다운나라와 무신불립.hwp

사직단은 바로 국토와 식량의 근본인 땅과 곡식을 신()으로 섬기며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토지()의 신을 사()라 하며, 곡식의 신을 직()이라 한다. 좌묘우사(左廟右社)의 배치 양식에 의거하여 국왕이 거처하는 법궁(정궁)을 가운데 두고 동쪽(임금의 왼쪽)에 종묘를, 서쪽(임금의 오른쪽)에 사직단을 세우고 국가의 안녕을 기원드린다. 그래서 '종묘사직'이라 함은 곧 국가의 상징이 된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라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상징성에 따라 사직단은 네모난 모양을 하고 있다. 한 나라의 주권은 백성에게서 나온다. 그 백성이 편안히 거처하고 배불리 먹고 살기 위해서는 국토가 안정되고 식량이 풍부해야 한다. 그래서 땅과 곡식은 백성들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며나라를 다스리는 정치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맹자는 말했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百姓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그는 참으로 위대한 민본주의 사상가이다

孟子曰, “百姓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맹자왈,    백성위귀, 사직차지, 군위경 - 맹자[진심장구] 

     숫자로 읽는 사직단(社稷壇)

서울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10분 정도 걷다보면 사직단이 나온다. 사직단의 이해와 의미를 더 새기기 위해 숫자로 사직단을 이야기해본다. 사직단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기 위해서는 사직단 북쪽에 있는 종로 어린이 도서관에 올라 창으로 내려다보거나 뜰에서 바라봐야 한다. 육안이든 사진이든 사직단의 모습에서 가장 먼저 보이고 떠올리는 숫자는 4이다. 온통 사각형이다. 사신문에 사유문 그리고 그것을 연결한 담장, 그리고 사단과 직단의 사각제단. 사각형은 땅을 상징한다. 하늘은 원으로 상징된다. 어떤 사람은 먼저 8을 떠올렸다. 문이 여덟 개란다. 바깥의 네 개 신문(神門)과 안의 네 개의 유문(幽門)을 말한다.

  다음 보이고 떠올린 숫자는 당연 2이다. 동편이 사단이고 서편이 직단이다. 사단은 토지신의 제단이고, 직단은 곡신의 제단이다. 위에서 말한 북신문 양쪽의 예감도 두개이다.

  다음 숫자는 쉬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찾을 수 있다. 길이 세 개 있다. 북신문으로 들어가는 향축로, 서신문으로 들어가 판위에서 향축로와 만나는 어로, 그리고 신실에 보관되었던 태사(太社)ㆍ태직(太稷)ㆍᆞ후토(后土)ㆍᆞ후직(后稷)의 신위가 제단으로 걸어오는 신위로 이렇게 3개의 길이 있다. 또 두 제단은 1미터 정도의 높이로 3단으로 축석되어 있다. 위는 하늘이요. 아래는 땅이며 가운데 두터운 돌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 아래로부터 지()ㆍ인()ㆍ천()일 때, 사람(백성)이 가장 귀중하다는 의미이다. 맹자의 말씀에 견주면 사직[]ㆍ백성[]ㆍ임금[]’ 순이다. 제단으로 오르는 사방의 계단도 계단석이 3개씩이다자세히 보면 또 있다. 북방에 위치한 북신문만 삼문(三門)이다. 그렇게 정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도성과 도읍과 궁성 등 모든 문은 남문이 정문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수원화성의 정문은 남문인 팔달문이 아니라, 북문인 장안문이 정문이다. 이는 임금님이 계신 한양도성이 수원의 북쪽에 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사직단의 주인인 사신(社神)과 직신(稷神)은 하늘(Heaven)에 있으며, 그 하늘은 ()에 있기 때문에 북문이 정문인 것이다. 물론 모든 나라 모든 도읍의 사직단이 한결같이 정문이 북문이라는 것은 자신하지 못하겠다.

  3보다 더 찾기 어려운 유일한, 정말 유일한 1이 있다. 바로 사단 위에 반구형의 돌이 박혀 있다. 석주(石主)라 한다. 있으니 찾아보라고 하며 힌트를 주면 찾을 수 있다. 전국의 수백 사직단 중에서도 없는데, 이곳이 바로 나라의 중심이란 뜻으로 유일하게 있다 보니 돌의 주인이라 하여 석주라 한다. 사단(社壇) 위에는 직경 30센티미터 정도의 둥근 돌이 남쪽 계단 쪽에 박혀있었다. 사직단 안내도 그림에서도 자세히 보면 구분하여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이걸 묻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고 한다해설사의 말씀에 의하면, 사직단은 지방 군현에도 있었으니 조선 땅에 400여 개 정도가 있었다 한다그런데 이 곳 한양의 사직단에서만 유일하게 이 돌이 있다는 것이다이 돌을 석주(石主)라 한다. 석주(石柱) 아닌가 되물었지만, 주인 주()가 맞다고 하면서 한양의 사단(社壇)과 석주가 바로 조선 땅의 중심이며 그 주인이라는 것을 상징한다는 것이다직경 30센티이며 깊이는 75센티 정도로 땅에 묻혀 있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감추어져 있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눈으로만 세상을 판단해선 안 된다. 그 숫자는 5이다. 사단 아래에는 오방색의 흙으로 채워져 있다고 한다. 오방색이란 청백적흑색의 4방색에 중앙을 상징하는 황색의 흙으로 사단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또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다. 국토의 상징인 사단(社壇) 위를 덮고 있는 흙은 일반적인 흙으로 덮여 있지만, 그 안에는 오방색에 따라서 청토(), 백토(), 적토(), 현토() 그리고 황제를 상징하는 황토(중앙)로 다섯 구역을 나눠 채워져 있다고 한다하지만 곡식의 상징인 직단에서는 겉과 속이 똑같이 일반적인 흙으로 채워지고 덮여 있단다그러나 정사각형의 제단이 한 나라의 국토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 오행(五行) 오방(五方)을 다 가졌으니 우주를 상징하기도 한다.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 하지만, 사각형은 우주를 상징하기도 한다. 여기서 나는 의문점이 떠올라 엉뚱한 질문을 드렸다사단에 채워진 오방색의 흙은 매우 흥미롭다. 사단이 국토의 상징이니 흙으로 채워졌다는 것은 매우 합당한 이치다. 그렇다면 곡식의 상징인 직단에서는 흙 위에 곡식을 심던가 곡식을 상징하는 풀이라도 자라도록 해야 하지 않는가?” 라고 물었다웃으면서 말씀하시길, 결국 흙이 있어야 곡식이 자라니 '()'이 근본이란다.  

  이제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숫자를 이야기하려 한다. 그것은 나라는 무엇인가’ ‘정치의 근본은 무엇인가를 묻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바로 0을 제시한다. ‘무신불립을 이야기 한다.

4

2

3

1

5

0

사각제단
사신문
사유문

두개의 제단
사단-직단

삼문형식의
북신문
3개의 길
3단 축석

사단의
석주
(石主)

사단의
오방색 흙

무신불립
(
無信不立)

무신불립(無信不立),‘나라다운 나라를 위하여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나라를 다스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다. 이에 공자는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라고 하였다. 첫째는 먹는 것, 경제다(足食ㆍ족식). 둘째는 자위력, 즉 군대다(足兵ㆍ족병). 셋째는 믿음, 곧 백성들의 신뢰이다(民信之ㆍ민신지).” 자공이 다시 물었다. 그중에서 부득이 하나를 뺀다면 어떤 것을 먼저 빼야 합니까?” 공자는 군대[]를 먼저 빼라고 하였다. 자공이 다시 물었다. 또 하나를 부득이 뺀다면 어떤 것을 빼야 합니까?” 공자는 경제[]를 빼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였다.

옛날부터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죽어 왔다. 그러나 백성들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를 제대로 세우는 것이 아니다.

子曰, 無信不立 자왈, 무신불립  - 《논어안연12.07
 
   
이처럼 무신불립(無信不立)’은 믿음과 의리가 없으면 개인이나 국가가 존립하기 어려우므로 신의를 지켜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단 벗 사이의 신뢰를 이야기하는 붕우유신(朋友有信)만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나라다운 나라를 다스리는데도 신뢰가 으뜸이다. 이후에 제경공이라는 사람이 공자에게 정사를 물었다. 이에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어버이는 어버이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臣臣 父父子子]”라고 답하였다. 이제 계강자(季康子)라는 사람이 공자에게 정치를 물었다. 공자 대답하기를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이다.[政者正也]” 참으로 간단하고 쉬운 대답이다. 공자에게 도()라는 진리를 이렇게 단순한데,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실천하기를 어려워한다.

君君臣臣 父父子子 군군신신 부부자자  - 논어안연12.11

政者正也 정자정야  - 논어안연12.17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누구나 자기다움을 잃어버리면 제 자리에 바로 설 수 없다. ()이라는 글자는 사람[]과 말씀[]’이라는 글자로 만들어졌다. 사람의 말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며, 자기에게 주어진 직책과 이름[]에 걸맞게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충실하다는 것은 거짓됨이 없이 자기 최선을 다하는 것[盡己之謂 忠]’이며, 바로 정명(正名ㆍ바른 이름ㆍ이름다움)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신(無信)이면 정명(正名)을 잃은 것이다. 부모도 자식들에게 믿음을 잃어버리면 자식들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선생님도 학생들에게 신의를 잃어버리면 교탁에 서기가 부끄러울 것이다. 하물며 나라의 정치 지도자가 국민들로부터 신의를 잃어버리면 어떤 지경이 될까? 어떻게 제대로 정치하며,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

생각 만들기 : 내가 바라는 나라다운 나라?

 

자문우답(自問友答)> 나의 새로운 의문점, 친구에서 구하다. 

自問 :

友答1 :

友答2 :

11. 죽음의 친구, 잠 -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11낮잠과죽음.hwp

  잠과 죽음은 어느 면에서 많이 닮았다. 자다가 깨어나지 않으면 죽은 것이다. 선(線)으로 비유하자면 잠이 점선이라면 죽음은 실선이다. 그런 의미에서 잠은 작은 죽음이다.
 
▣ [읽기] : 공자의 낮잠 훈계 - [05 공야장]에서

   공자에게는 제가가 많았다. 제자들은 제각기 재능이 있었다. 그 중에 재여(宰予)라는 제자는 언변이 뛰어났다. 그러나 행실이 좀 더디고 게을렀던 모양이었다. 재여가 낮잠을 자자 공자가 말했다.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더러운 흙으로 된 담장은 흙손으로 다듬을 수 없다. 내가 재여를 어찌 나무라겠는가?”

○ 宰予晝寢, 子曰, “朽木不可雕也, 糞土之牆 不可杇也, 於予與何誅?” 
   (재여주침, 자왈, 후목불가조야, 분토지장 불가오야, 어여여하주)

  공자가 이어 말했다. “전에 내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 말을 듣고서 그 행동을 믿었는데, 지금은 그 사람 말을 듣고서 그의 행동을 살펴보게 되었다. 이것은 재여로 인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 子曰, “始吾於人也, 聽其言而信其行.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 於予與改是.”   (시오어인야, 청기언이신기행, 금오어인야, 청기언이관기행. 어여여개시)

   오늘날에는 밤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또한 낮 노동에 지친 사람들이 잠시 눈을 붙이는 낮잠은 결코 게으르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밤중에 오락에 빠지거나 나쁜 습관으로 하릴없이 낮잠을 자는 것은 게으름의 상징으로 본다. 당연히 해가 났을 때에 부지런히 공부하거나 일을 하며, 해가 지면 들어가 쉬고 먹고 자야할 일이다. 그런데 공자의 제자인 재여가 한 낮에도 잠에 자주 빠져 있으니 게으르다고 야단칠 만하다. 게다가 언변은 뛰어난데 행실에 못 미치니 성실하지 못하다고 평가받을 만도 하다. 예나 지금이나 언행(言行)이 일치하는 사람을 성실하다고 여긴다. ()이라는 글자를 나누어보면, [언ㆍ]한 바를 반드시 이룬다[성ㆍ]’는 의미다.
  
낮잠을 게으름의 소치로 보는 또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 [더하기] : 목어 이야기]
 불가에는 공부하다 죽어라라는 말도 있다. 그만치 용맹 정진하여 수행할 것을 가르친다. 그런데 옛날에 한 젊은 스님은 출가하여 수행을 열심히 하지 않고 틈만 나면 햇살 좋은 곳에서 졸았다. 스승의 야단과 질타에도 게을러 낮잠을 일삼았는데, 불행하게도 그만 병이 들어 일찍 죽었다. 그는 죽은 뒤에 이 세상에서 지은 업보로 물고기로 환생하였다. 그러나 괴이하게도 그 물고기 등짝에 한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나무 때문에 물 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풍랑이 칠 때마다 나무가 흔들려 햇살에 익은 등살이 찢어지고 피를 흘리는 심한 고통을 늘 겪으면서 살았다. 몇 년을 그렇게 지내면서 참회와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는데 마침 스승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고 있었다. 물고기는 스승 앞에 가서 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스승은 이를 가엾게 여겨서 수륙재(水陸齊)를 베풀고 물고기를 해탈하게 하였다. 이때 물고기 등짝에서 자란 나무를 베어다가 목어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절에 걸어두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절에 가면 법당 근처에 범종각을 두고 그 안에 불전사물(佛典四物)’이라하여 범종, 법고, 운판, 목어를 매달아 놓는다. 예불을 드리기 전에 불전사물을 울려 의식을 알리며 동시에 지옥 중생과 물짐승, 들짐승, 날짐승을 제도한다. 템플스테이 기회가 있다면 꼭 새벽예불 때 범종각에 불전사물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기도해보길 권한다. 가슴 벅찬 경건함과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 一日不作 一日不食 ( 일일부작  일일불식)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고 말씀하시며, 선불교의 규범을 정한 백장스님의 청규(淸規)에 따르면, 물고기는 잠을 잘 때도 눈을 감지 않으므로 수행하는 사람은 밤낮으로 쉬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라는 뜻으로 목어를 만들었다한다. 목어를 울리면 물속에 사는 모든 중생들과 수중 고혼(孤魂)들이 제도된다고 한다. 목어의 형태도 처음에는 단순한 물고기 형태에서 차츰 머리가 용을 닮은 형상으로 변하여 지금은 입에 여의주를 문 형태를 취한 것도 있다. 또한 목어의 형태가 둥근 것으로 변해 경(經)을 읽을 때 박자를 맞추는 데 사용되었는데 이것이 목탁(木鐸)이다. 수행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스님들이 지니고 다니는 가장 대표적인 불구(佛具)이다.

 

 

▣ 참고 : 불전사물(佛殿四物) – 범종, 법고, 목어, 운판
                 > 산사로 가는 길 홈페이지 - 금당의 뜰안 - 범종루
    참고 : 성북동 인문학 산책 길에 
      [최순우 옛집]에 들리면 뒷뜰에서 '오수당(午睡堂)' 현판을 단 방을 볼 수 있다. 
      단원 김홍도의 글씨 그대로 현액하였다. 말 그대로 '낮잠 자는 집'이다.
                   http://munchon.tistory.com/996 

 


▣ 쓰기 :  
              朽木不可雕也ᆞ후목불가조야
    

               一日不作 一日不食 ᆞ일일부작 일일불식

▣  생각만들기와 생각나누기 : 잠과 죽음이 다른 점은? 잠과 죽음이 닮은 점은?

 

○ 낮잠에 대한 나의 명언
                                      
○ 죽음에 대한 나의 명언
                                      
○ 친구들의 명언
                                      

10. 죽음에 대하여.....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10죽음의 문제.hwp

▣ [읽기] : 공자의 사생관
  제자 계로가 스승 공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귀신을 섬겨야 합니까?"  이에 스승은 되묻는다. "사람 섬기는 일이냐? 귀신 섬기는 일이냐?" 그 물음을 분명히 파악하기 위함이며 제자에게 자기 물음에 다시 깊이 생각해보게 함이다. 이에 제자는 "감히 죽음을 여쭈는 것입니다."
  사람 섬기는 일은 산 이에게 하는 일이고, 귀신 섬기는 일은 죽은 이를 받들어 제사 드리는 일을 뜻하는 것이다. 이에 공자님께서 명답을 내 놓으신다. 아니 답이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한 본질을 파악하라는 더 큰 의문을 제자에게 던지신다.

○"삶을 알지 못하는 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未知生 焉知死)-11선진편
                                                    
  과연 공자는 삶도 알지 못하고 더더욱 죽음도 알지 못하였을까? 계로와 공자님의 말씀에 정자(程子, 이천)은 이렇게 주석한다. "낮과 밤은 생사의 도리이다. 생의 도를 알면 사의 도를 알 것이요, 사람 섬기는 도리를 다하면 귀신 섬기는 도리를 다할 것이니, 삶과 죽음, 사람과 귀신은 하나이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이다." (死生人鬼 一而二 二而一者也)
  생사의 문제를 과연 공자는 알았을까 몰랐을까? 그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다만, 우리들로 하여금 삶에 충실하고 가까운 사람들-부모 형제 친구 이웃-에게 도리를 다하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은연히 말씀하신 것이다. '죽음을 모르신다' 하셨지만 모르신 것은 아닌 것 같다. 공자는 제자 안회의 죽음에 통곡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 하늘이 날 버렸구나. 하늘이 날 버렸구나”
(噫! 天喪予, 天喪予!)-11선진편

  안회는 살아서 학문을 좋아했건만 평생을 가난하게 살다가 너무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버렸다. 그런 제자가 안 되었기에 너무나도 불쌍해서 통곡하신 것이겠다. 죽음 이후가 기쁨이고 안락이라면 그렇게 불쌍하진 않았을 것이다. 죽음은 현재와의 영원한 단절이고 사라짐인가 보다.
  공자님께서는 이렇게도 말씀하셨다.

○"아침에 도를 들을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朝聞道, 夕死可矣)-04이인편


  대체 도(道)가 무엇이길래 죽어도 좋다 했을까?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는 도(道)는 무엇일까?



▣ [생각만들기] :  나에게 죽음이란?     나에게 도(道)란?

  TED 강연으로 크게 알려진 캔디 창(Candy Chang)은 도시를 좀 더 편안하고 명상적인 장소로 만드는 예술가, 디자이너, 그리고 도시 설계자이다. 그녀는 2009년 사랑하는 어머니를 갑자기 여의게 되고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왔던 시간에 대해 깊이 감사하게 되고, 잊고 살았던 삶의 의미를 찾으며 중요한 것을 잃지 않고자 했다. 그래서 친구들의 도움으로, 버려진 집 담벽에 ‘Before I die, I want to ~(나 죽기 전에 무엇을 하기를 원한다)’라는 낙서판을 만들었다. 무엇을 기대해서가 아니었다. 그냥 죽음 앞에서 삶의 중요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묻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게 방치된 공간은 희망과 꿈을 다시 찾게 해주는 사색적이고 건설적인 공간으로 변했다. 이 낙서판은 전 세계적으로 번져 갔다. “나 죽기 전에, 나는 완전한 나 자신이 되고 싶다.(Before I die, I want to be completely myself.)” 등등.
  그녀는 말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것 중 두 가지는 시간(Time)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Relationships with other people)입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사람들은 꺼리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당신의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죽음에 대한 고찰은 삶을 명확하게 해줍니다.” 
(Thinking about Death clarifies your Life.)


▣  [생각만들기와 나누기]
: 버킷리스트와 ‘Before I die, I Want to ~  ’ 쪽매맞춤과
  삶과 죽음의 가치를 드러내는 일언명구(一言名句, 캐치프레이즈)  

  죽음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쳐 준다. 죽음에게 삶의 길을 물어보자.

 

▣ [더하기] : ‘Before I die, I want to ~’ (나 죽기 전에,  ..을 원한다.) 

 

09. <세한도>에서 읽는 군자의 절의(節義)

09세한도와 논어.hwp

읽기 : <세한도>속의 이야기

<세한도>(국보 180)는 제주도에 유배 온 지 5년이 지난 추사(秋史) 김정희가 나이 59(1844) 때 그린 것이다. 척보면 그다지 잘 그렸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안견, 겸재, 단원, 혜원 등 내노라는 전문화가의 그림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이지, 아마추어인 선비들이 그린 문인화 중에서 최고봉으로 손꼽을 만하다. 특히 이 그림이 담고 있는 심의(深意)를 알고 나면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보물(국보 180)이 되었다.

죄를 짓고 귀양 간 사람을 자주 찾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여라도 당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까 두려울 것이다. 방문이 잦았던 여러 제자들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발걸음이 점차 뜸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관(譯官)이었던 제자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은 통역관으로 청나라로 다녀올 적마다 귀한 책들을 구해서 스승에게 보내드렸다. 이에 스승은 제자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하여 고마움을 전하고자 그림을 그려서 주었다. 그림 속에는 자신의 처한 상황과 제자의 한결같은 마음을 그려내고 기록하였다. 이 그림이 세한도이다.

  세한도는 그림과 글자로 크게 두 개 영역으로 나누어 있다. 그림은 반듯하게 자란 세 그루 잣나무, 세파에 휘어지고 늙은 한그루의 소나무 아래에 허술하게 지어진 집이 한 채 보인다. 추운 때라는 세한(歲寒)’이라는 화제가 없어도 참으로 써늘한 기운과 찬바람이 불어온다. 집도 낯설다. 우리의 와당도 아니고 초당은 더욱 아니다. 낯선 지붕 뿐 아니라 둥근 창도 낯설다.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집이 아니라 빈 축사나 창고와 같다. 갈필(渴筆)로 그린 소나무는 메마르게 늙어있고 잎이 다 떨어지고 줄기가 꺾인 상태에서 겨우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빈 집과 소나무는 마치 추사 자신을 그린 듯하다. 그렇다면 추운 겨울철에도 푸른 잎을 간직한 채 곧게 뻗어 있는 세 그루의 잣나무는 누구일까? 허물어 질듯 한 빈집을 바로 곁에서 든든하게 받쳐주는 가운데의 잣나무는 외로울 적에도 곁을 떠나지 않고 귀한 책들을 보내 왔던 제자 이상적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왼쪽의 두 그루 잣나무는 누구란 말인가? 유배당한 죄인을 멀리 않고 차와 그림으로 교유를 이어간 초의선사와 소치 허유이지는 않을까? 억지 추측이지만 나름 재미있는 상상도 해본다.

그림의 오른쪽에는 예서체로 세한도(歲寒圖)’라며 화제(畫題)를 쓰고, 제자 이상적에게 이 그림을 준다는 의미로 예서의 기운을 간직한 해서체로 우선시상(藕船是賞)’완당(阮堂)’을 썼다. ‘우선이에게 드리네. 완당이이라는 뜻이다. ‘우선(藕船)’은 제자 상적의 호이다. 그림과 글씨를 감상하다가 눈길을 왼쪽으로 가면서 자칫 놓치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꼭 눈여겨 보고 가야할 곳이 있다. 바로 가장 오른쪽 하단의 붉은 색 장무상망(長毋相忘)’ 유인(遊印) 낙관(落款)이다.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뜻으로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정을 새겼다. 나에게도 이렇게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며 약속한 제자가 있었던가? 스승이 있었던가? 그런 친구 있었던가?

이 그림은 보면 볼수록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를 강조한 추사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림을 보았으니 이제 그림의 사연을 적은 발문(跋文)을 읽어보자.

  지난해에 두 가지 <만학>, <대운> 책을 부쳐왔고, 금년에는 <우경문편>이라는 책을 부쳐왔는데, 이는 모두 세상에 흔히 있는 일이 아니요. 머나먼 천리 밖에서 구한 것이며, 여러 해를 걸쳐 얻은 것이요, 일시적인 일이 아니다. 더구나, 세상은 물밀듯이 권력만을 따르는데, 이와 같이 심력을 써서 구한 것을 권력 있는 사람에게 주지 않고, 바다 밖의 한 초췌하고 메마른 사람에게 주었으니,  세상 사람들이 권력자에게 추세하는 것과 같구나. ......(중략)...........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날이 차가워진 이후라야 소나무 잣나무는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 고 하였다. 송백은 사철을 통하여 시들지 않는 것으로서, 날이 추워지기 전에도 하나의 송백이요 날이 추워진 후에도 하나의 송백이다. 성인이 특히 세한을 당한 이후를 칭찬하였는데, 지금 군은 전이라고 더한 것이 없고, 후라고 덜한 것이  없구나. 세한 이전의 군을 칭찬할 것 없거니와, 세한 이후의 군은 또한 성인에게 칭찬 받을 만한 것 아닌가? 성인이 특별히 칭찬한 것은 한갓 시들지 않음의 정조와 근절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또한 세한의 시절에 느끼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 (후략) - 완당(阮堂) 노인(老人)이 쓰다.

 

[나의 세한도] ~ 세한도 패러디 하기

 

08. 비주얼 씽킹으로 표현하는 논어공부

08비주얼씽킹과 논어.hwp

What > 비주얼 씽킹(Visual Thinking)이란?

 글과 그림을 함께 이용하여 생각과 정보를 표현하거나 기록하는 것

보여주는 생각’=> 그림으로 생각하기, 생각의 시각화, 시각 사고법

나에게 비주얼 씽킹이란? __________이다.

왜냐하면? ____________________이기 때문에.

나의 생각> 비주얼 중요할까, 씽킹이 중요할까?’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비유해봅니다. 비주얼은 손가락이며, 씽킹은 달 입니다. 그렇다고해서 결코 달이 목표가 될 수는 없죠. 달은 수업에 사용되는 소재(요리재료)에 불과합니다.

 

Why > 비주얼 씽킹은 왜 필요한가?

읽는 시대에서 보는 시대로, 이미지 중심의 훑어보기 문화, 데이터의 단순화된 정리와 정보의 빠른 이해가 요구되는 사회, 한 장의 사진이나 이미지가 주목 받는 SNS 세상, 우뇌가 발달되고 나아가 창의 융합형 인재가 성공하는 세상, 남다른 개성과 창의성으로 생각을 정리 표현하기

 

Why > 비주얼 씽킹의 효과는?

비주얼 씽킹은 '생각의 그림'입니다. 그림은 마음 속 그리움을 보여주는 것이구요.

How > 비주얼 씽킹 언어를 표현하는 틀 : 8개의 씽킹맵(Thinking Maps)
그리고 다양한 형식의 맵핑 활동지

실습1>비주얼 씽킹 언어 : 글자, 숫자, 기호, 인물, 배경(시공간), 사건, 글상자, 화살표 등

실습2 > 핑거맵 두들링(손가락 그림 그리기) : 오행(五行)과 오상(五常)

오행(五行) : 동양 철학에서 우주 만물의 변화양상을 5가지로 압축해서 설명하는 이론. 5행이라는 것은 인간 사회의 다섯 개 원소로 생각된 ((((()의 운행변전(運行變轉)을 말한다. ()이라는 것은 운행의 뜻이다. ~참조: 오행 상생상극도

오상(五常) : 유교에서 ()ㆍ의()ㆍ예()ㆍ지()ㆍ신()의 다섯 가지 기본적 덕목이다.

실습3 > 스몸비(Smombie) 경고 캠페인과 논어의 교훈

미국의 경우, 지난 10년 동안 스몸비 관련 사고로 응급실을 찾은 사례가 10배나 증가했다. 국내에서도 2016년에 발생한 스몸비 관련 사고는 1360건으로 2011년보다 배 이상 늘었다.

호주보행자위원회는 광고대행사인 'DDB 시드니'에 공익광고 디자인을 의뢰했다. 딜런 해리슨(Dylan Harrison)이 이끄는 창의적인 디자인팀은 "한눈팔지 마라멈춰라, 보아라, 들어라, 생각하라"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각각 소녀, 소년, 어린이를 등장시킨 3부작 신문 광고와 TV 동영상 광고를 디자인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02/2017060203135.html

 "Don't Tune Out." - 한 눈 팔지 마라.

Stop-멈춰라.    Look-보아라.

Listen-들어라. Think-생각하라.

4개의 동사는 현대인들에게 반성적 삶을 촉구하는 도덕적 명령이기도 하다.

아래의 친구는 기특하게도 내가 이야기 하는 것을 귀담아 듣고 활동지에 기록하였다.

    *멈추라 ~ 자연훼손, 물질만능, 탐욕과 시기와 다툼을...
*보아라 ~ 자연의 아름다운과 세상 사람들의 고통을
*들어라 ~ 이웃과 친구의 말을, 아기의 웃음 소리를, 진리의 말씀을
*생각하라 ~ 내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그리고, 실천하라(Do !)

 

07. 돈과 도(), 참된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07돈과도-진정한 행복.hwp

[읽기] 빈부(貧富)와 길[]

인생은 한방이다.’이라는 허망한 생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노린다. 심지도 않고 경작하지 않은 채 수확하고자 한다. 은이들도 사이버 도박, 로또(lotto), 비트코인(bit coin)에 빠져 헤매고 있다. 돈도 청춘도 건강도 다 잃어버리는 절망의 젊은이들이 없기를 바란다.

子曰 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 得之 不處也,

貧與賤 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 得之 不去也

(자왈, 부여귀 시인지소욕야 불이기도 득지 불처야
빈여천 시인지소오야 불이기도 득지 불거야) - [이인04]편에서

부귀는 사람들이 바라는 바이나, 로써(정상적인 방법으로) 얻지 않았으면 처하지 말며, 빈천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바이나, 로써(정상적인 방법으로) 얻지 않았다면 버리지 않아야 한다.”

子曰 志於道 而恥惡衣惡食者 未足與議也

(자왈, 지어도 이치악의악식자 미족여의야) - [이인04]편에서

에 뜻을 두고서, 허름한 옷과 거친 음식을 부끄러워하는 사람과는 를 의론할 수 없다.”

飯疎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반소사음수 곡굉이침지 낙역재기중의 불의이부차귀 어아여부운) - [술이07]편에서

  “나물밥 먹고 맹물 마시며 팔을 굽혀 베고 자도 즐거움이 또한 그 속에 있다.
옳지 못한 부귀는 내게 있어서 뜬구름과 같다

      나쁜 방식으로 부를 얻어서는 절대 안 되며, 가난 또한 나쁜 방식으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도(正道)를 따라 부귀를 얻고 빈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그러나 세상의 일이 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이 있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처지가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가난을 부끄러워하는 사람과는 함께 진리의 길을 걸어 갈 수 없다. 일단사 일표음(一簞食 一瓢飮)’할지라도 도를 찾아가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겠다는 안회(顔回)와 같은 사람은 되기 어렵지만, 헤진 옷을 입고 거친 밥을 먹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소인배는 되지 말아야 한다.

[생각만들기] 부정하게 부귀를 얻는 방식은 뭘까?

()에 뜻을 두고 부귀를 얻는 방식은 뭘까?

물질적 풍요와 도덕적 삶의 행복 > 모둠활동

[생각 더하기] ○안중근의 유묵 ~ 불인자 불가이 구처약
   子: ", 樂, 仁者安仁 智者利仁"
    어질지 못한 자는 오랫동안 곤궁함에 처할 수 없으며, 장구하게 즐거움에도 처할 수 없다. (인자가 인을 편안히 여기고, 지자가 인을 이롭게 여긴다.)-이인편0402

 

06. 소확행(小確幸)과 안빈낙도(安貧樂道)

06소확행과 안회의 안빈낙도.hwp

2018 트랜드 : 소확행(小確幸)

세상 많은 사람들, 돈을 행복의 기준으로 여기고 있다. 돈이 많으면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고, 나누어 줄 것도 많아서 좋다. 그러나 돈은 쉽게 얻지도 못하고 남들 같이 많이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남과 비교하다보면 늘 내가 덜 가진 것 같다. 그래서 더 많이 갖기를 바란다. 돈은 내가 많이 가지면 남의 것은 줄어들고, 남이 더 많이 가지면 내 것이 줄어든다. 결국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커지게 된다. 돈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고 사건이 발생하고 불행해지는 경우도 많다. 결국 돈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반면 행복의 기준을 마음에 두는 사람도 있다. 마음은 아무리 나누어도 내 것이 줄어들지 않는다. 생각하기에 따라 마음은 쉽게 키울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다. 2018 트랜드로 소확행이라는 말이 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얻자는 말이다. 크고 멀리 있는 행복을 쫓는 것이 아니라, 내 가까이에 쉽게 얻을 수 있는 행복이 있다. 그것이 소확행이다.
 
노자는 만족을 아는 자가 부자이다[知足者富].”라고 했으며, 예수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했다. 논어에서 소확행을 찾고, 가난하지만 참 행복을 누리는 자는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본다.

노자 <도덕경> '지족자부(知足者富)'

공자의 수제자, 안회의 안빈낙도(安貧樂道)

공자에게는 많은 제자가 있었다. 그중에서 공자는 안회(顔回)를 특별히 사랑하였다. 안회의 자()가 자연(子淵)이라서 흔히 안연(顏淵)으로 불린다. 논어속에서 공자는 안회에게 한결같이 칭찬하고 있었다. 편애한 것이 아니라 칭찬을 들어 마땅할 만큼 덕행이 바르고, 학문을 좋아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안회는 30일에 아홉 끼 밖에 못 먹었을 만큼 가난하게 살았으며, 공부에 열중한 나머지 스물아홉에 백발이 되었으며, 결국은 영양실조에 걸려 일찍 죽고 말았다. 공자는 안회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세상이 나를 버렸구나 세상이 나를 버렸구나.(, 天喪予 天喪予ㆍ희, 천상여 천상여).” 라며 탄식하였다.

子曰 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
不改其樂 賢哉, 回也 -논어6 옹야편.

(자왈, “현재 회야. 일단사 일표음, 재루항 인불감기우, 회야. 불개기락 현재, 회야.)

   어질도다, 안회여. 한 소쿠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누추한 곳에 지내면서도 다른 사람은 그 근심을 견디어내지 못하거늘 안회는 즐거움을 잃지 않는구나. 어질도다 안회여.”

 

어느 누가 대소쿠리에 담긴 깡보리밥, 표주박에 담긴 물 한모금, 허물어지고 누추하기 짝이 없는 오두막살이를 좋아하겠는가? 비록 안회라 할지라도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안회가 그렇게 가난하게 살았어도 ()를 찾아가는 즐거움을 바꾸지 않았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뜻이 더 높고 큰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논어>와 월드컵 단상

인문학 고전과 교육 2018.07.02 17:00 Posted by 文 寸 문촌

지난 주 월드컵의 독일전 2:0 승리는 정말 통쾌했죠!?
그 전날, 출근길에서 길거리 응원을 같이하자며 붙여 놓은 현수막에서 이런 글을 보고 실소를 터트렸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결정은 우리가 한다."

젊음의 호기가 부러우면서 당돌하기도 하여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죠.
'그래 맞아. 그렇게 친구들 만나고 밤새 즐기는 거지 뭐. '  

그런데도 나는 늦은 밤 새어가며 애태우는 게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제는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라며 무디어 진 마음 탓인지 모르겠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vQW3tImkBXU

아침에 일어나 스마트폰을 켜고 제일 먼저 검색했어요. 눈을 비벼가면서, "2대 0승!" 다시 눈을 비비고, "누가 이겼단 말인가? 한국이, 한국이???  어???? 정말이네."
1%의 가능성을 한국이 이루었으며, '결정은 우리가 한다'는 그 말이 적중했습니다.  정말
멋진 일입니다. 비굴하게 공을 돌리며 16강에 올라간 어떤 나라는 손가락질과 비난을 받았는데, 우린 16강에 떨어져도 정말 당당했으며 최고의 스포트 정신을 보여주며 드라마를 연출 해내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끝까지 도전하고 최선을 다하는 정신을 보여 주었고, 우리 국민들에게 큰 위로와 기쁨을 주었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이 바로 이런거구나. 
'죽어도 사는 사람이 있고,
        
살아남아도 죽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바로 이런구나.

 
아이들에게 <논어> 공부를 하면서 見利思義(견리사의)를 가르쳤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보여주면서.

 見利思義(견리사의) 견위수명(見危授命)
"이익을 보거든 (그 앞에서 눈 멀지말고),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라.  
  
(나라의)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드리우라." 

우리 아이들이 이로움보다는 의로움을 먼저 생각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정정 당당하게 옳은 일을 실천하는 용기있는 젊은이로 키웁시다. 

 

 

 

 

논어5-부자의 갑질과 무교호례

인문학 고전과 교육 2018.06.27 20:36 Posted by 文 寸 문촌
05. 부자의 갑질과 무교호례(無驕好禮)

  05부자의 갑질과 무교호례.hwp

 

▣ 읽기 : 가난과 부유에 대한 공자의 답변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묻기를,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는 자는 어떻습니까?" 하니,
공자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괜찮다. 하지만 가난하지만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 예를 갖추는 자만 못하지."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자공왈 “빈이무첨, 부이무교, 하여?”)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자왈 “가야, 미약 빈이락, 부이호례자야.”)    - [학이]편

  나는 어릴 때 가난하게 살았다. 이웃에 부잣집 아이가 있었다. 나 보다 조금 어린 그 아이는 종종 바나나를 들고 골목에 나타났다. 가난한 우리들에게 바나나란 천국의 음식과 같이 귀한 것이었다. 같이 놀던 친구들이 우르르 그 아이 앞으로 몰려가서 ‘한 입만, 한 입만’하며 입을 벌리며 따라 다닌다. 나는 속으로 침을 삼켰지만 그 모습을 들키기 싫었다. 그렇게 비굴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것도 동생뻘 되는 아이한테.....‘저 자식, 다 먹고 나오지, 저걸 왜 들고 나와?’ 자랑하듯 들고 나온 그 놈이 실은 부럽기도 했지만 또 한편 엉덩이를 차버리고 싶었다.
   가난하게 살다보면 남에게 얻어먹기 위해서 아첨해야 하며, 부유하다보면 남들 앞에서 어깨가 올라가고 으스대는 것이 다반사이다. 보통 그렇게들 살아간다. 그러니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자존심을 지키니 잘했다고 할 수 있으며,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살필 줄 알고 체면을 지키는 일이니 가상한 사람이다. 어느 누구도 가난하고 천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나 빈천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아첨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살아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스승(공자)은 “괜찮다. 그것은 옳은 짓이다.” 라고 했다.
  그러나 스승은 그것보다 더 품격 있는 삶을 가르치신다. “가난하지만 인생을 즐길 줄 알고, 부유하지만 예를 잊지 않아야 한다.”(貧而樂 富而好禮ㆍ빈이락 부이호례). 재물이 많고 적음에 세상의 뜻을 두지 않고 그 큰 도리와 삶의 목표에 뜻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가난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를 찾아가는 즐거움을 바꾸지 않은 안회처럼. 겸손함과 어진 성품, 예의와 양보 그리고 나눔을 실천하는 자세로 갖는 것이다. 이러한 품격에 도달한 사람이야 말로 현명한 사람이고 삶과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생각하기 : ‘가난하여도 즐길 수 있는 일/것’[貧而樂]은 어떤 것일까?”

▣ 안중근의 논어 유묵, 따라쓰기
     빈이무첨 부이무교ᆞ빈이락 부이호례

“가난하되 아첨함이 없으며, 부유하되 교만함이 없다.” -<학이>편
*안중근 의사 유묵
*동경도립 로카기념관 소장
“가난하더라도 인생을 즐길 줄 알고, 부유해도 예의 지키기 좋아한다.” -  <학이>편
*안의사를 존경하여 그의 글씨체를 흉내내어 씀.

▣ 뉴스거리 : 부자의 갑질
  부자나 높은 사람들 중에는 참으로 못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갑질 행위가 그들을 못난 사람으로 만든다. 특히 근래 모 항공사 회장의 두 딸들이 연달아 갑질 논란을 일으켜 뉴스의 초점을 받고 있다. 몇 해 전에는 큰 딸의 갑질 논란으로 그룹 회장인 아버지는 “자식 교육을 잘못시켰다”다며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또 둘째 딸의 갑질 행위로 국민들이 비난과 원성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어릴 적부터 부자로 살면서 잘못 배웠기에 교만을 부려서 온 국민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있으며, 얼굴을 못들고 다니는 꼴이 되었다. 가문의 수치가 되었고, 회사에도 큰 오명을 끼쳤다. 나라의 망신이라며 항공사의 이름[社名]에서 나라 이름을 빼고, 비행기에 그려진 태극마크[Logo]를 지우라며 국민청원이 들어가고 있다.
  남의 일이 아니다. 겸손하기는 어려워도 매사에 교만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더 훌륭한 일은 정말 예의를 좋아하는 부자가 되어야 한다. 부이호례(부자이면서 예의를 좋아한다)는 어떤 행동일까? 어떤 모습일까? 그렇게 예의를 실천할 때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안중근 옥중유묵 <빈이무첨, 부이무교> 임서
   ~ 잘 써지는 못했지만, 수업교실에 게시하여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흠모하면서 <논어>읽기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