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생님이기 때문에ㅡ덕분에

행복을찾아서 2017.09.25 14:26 Posted by 文 寸 문촌
서울시교육청ㅡ학습연구년 교사 직무연수
선생님들과 비주얼씽킹ᆞ맵, 같이 공부했습니다.
주제는 역시 행복이죠.
내가 선생님인 덕분에ᆞ때문에
그리고 네임텐트로 나의 행복찾기ㅡ잘하는 것ᆞ좋아하는 것ᆞ바라는 것
평소 깊이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나의 삶, 그리고 선생님의 행복

강의실 뒷벽에 활동결과물 부착ㅡ발표를 하였습니다. 때론 교실 공간을 전후좌우 섞어 가며 활용하는 것도 수업의 집중를 유지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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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ㅡ비주얼 씽킹ᆞ픽토리텔링

행복을찾아서 2017.09.24 20:39 Posted by 文 寸 문촌
토요일 우리 매홀고에서 이음학교 만남있었다.
파주ᆞ고양에서 부천ᆞ광명에서 하물며 익산에서 올라온 신규 일년차 선생님, 우리 지역의 초등학교 수석선생님과 함께.
오전ㅡ비주얼씽킹+맵
오후ㅡ픽토리텔링
주제는 '행복'이다.
1) 잘사는 것과 바르게 사는 것의 행복
ㅡ더블버블맵
ㅡ행복에 대한 은유

 더하기 행복과 빼기 행복도 생각해볼거리다

2) 어린왕자ㅡ주정뱅이, 비즈니스 맨의 삶 이야기. 이 이야기는 지구촌의 일중독ᆞ부자중독에 빠진 우리들 이야기이다. ㅡ STOP  IT!  행복의 기준이 달라야 한다.

ㅡ바르게 살기위해, 장자의 학다리ᆞ오리다리 우화를 돌아본다.
학다리 길다고 자르지 말고,
오리다리 짧다고 늘리지 말라.
"내버려 두라ㅡLET  IT  BE!"
"둥근 것은 구르기 왕, 네모난 것은 물구나무서기 왕" -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라.
 이음학교 선생님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서로 다른 것들이 서로 인정하고 사랑할 때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그렸다.
앉은뱅이와 소경의 비유, 묵자의 우화이다. '겸상애ᆞ교상리'의 가르침이다.
장자의 우화ㅡ묵자의 비유ㅡ공자의 화이부동 그 연결에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간절히 바라면 꿈이 이루어 진다.
R=f (VᆞI)
행복은 잘하는 것ᆞ좋아하는 것ᆞ바라는 것을 이루는 것이다. 성취적 행복이다.
그러나 그 바라는 것이 내가 속한 사회ᆞ세상이 내게 바라는 것에서 찾을 때, 바르게 살아가는 참된 행복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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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당ㅡ꿀 맛나는 집을 만듭시다

행복을찾아서 2017.07.02 13:58 Posted by 文 寸 문촌
부부의 연을 맺어 행복한 가정을 꾸려갈 새신랑 새색시에게 주례를 하면서 '행복으로 가는 첫걸음'으로 밀당하기를 당부했다.

(주례사 일부)
복은 자신이 짓고, 행복은 함께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두 남녀에게 부부의 인연으로 행복한 가정을 가꾸며 살아가기 바라며, 주례사를 좀 다르게 전해보겠습니다.

먼저, 행복한 부부 관계를 위해서 밀당을 잘하라는 겁니다.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이제부터 같이 살아 갈 텐데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티격태격 다툴 일도 잦을 겁니다. 그럴 때 마다 내 생각만 고집 말고, 슬기롭게 밀고 당기기를 잘하라는 겁니다.

흔히 신혼기간을 밀월허니문이라고 합니다. 꿀맛 같이 달콤한 신혼 한 달을 말하죠. 그렇지만, 허니문에만 그쳐서는 안됩니다. 여기 이 족자에 잊지 말 것을 당부하며 밀당을 썼습니다. 그리고 한자로 꿀 밀, 집 당자를 썼습니다. 밀당의 자세로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양보하고 지지하면 가정은 꿀 맛 나는 집, 허니 홈이 될 것입니다.

솜씨 없지만 정성 하나로, 모란꽃과 푸른 연못과 두 마리의 벌을 그렸습니다. 모란은 화목과 부귀를, 물은 생명력을, 벌은 성실을 상징합니다. 부부가 서로에게 성실하며 자식 많이 낳고 부귀영화를 누리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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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자주 머무는 곳에는 같은 포스트 잇 스티커, 같은 글이 붙어 있다.
오래전 딸 아이가 엄마를 위해 식탁 위에 놓고 간 글이다. 이후, 아내의 손 글씨로 화장대에, 부엌에, 냉장고에 붙여져 있다. 천하의 명언이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다.
"생각은 깊을수록 쓸데없고,
기억은 되짚을수록 현재를 망칠 뿐이다."
~그렇다.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고, 망상과 아픈 기억은 지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ㅡ나를 위한 압력밥솥 밥하기와 라면 조리법, 위에

아내의 일명, '냉장고 내비게이션'
알뜰하고 고마운 아내의 살림법이다.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낫또와 사과와 야채를 쉽게 찾아 휴일 아침상을 차렸다.
어제밤 산책길에 들린 동네 작은 몽당빵집(젊은 주인은 몽당이 사교적인 뜻의 불어라 한다)에서 얻은 빵이 밤새 먹고 싶어서 휴일 이른 아침, 부엌에 들러 커피도 내리고 식탁을 차린다.
내가 아내에게 길들여지고 있다.
행복이 별 거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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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가 지구에 오기 전에 주정뱅이가 살고 있는 별을 방문하였다.

그는 늘 술을 마시고 취해있다.  

 

 

어린왕자 : 아저씨 뭘하셔요?

주정뱅이 : 술 마시지.

어린왕자 : 왜 술을 마셔요?
주정뱅이 : 잊기 위해서 마시지.
어린왕자 : 뭘 잊기 위해서죠?
주정뱅이 : 부끄러운 것을 잊기 위해서야.
어린왕자 : 뭐가 그렇게 부끄러우셔요?
주정뱅이 : 술 마시는게 부끄러워.

 

 '어른들은 참 이상해.......' 혼잣말을 하며 어린 왕자는 그 별을 떠났다.

 

인과관계를 정리해본다. 뭐가 먼저이고 뒤인지, 실없는 짓인 줄 알면서.

 

술 마시니 부끄럽고, 부끄러우니 잊고 싶고, 잊고 싶어서 술을 마신다.

왜 그러고 살까? 묻고 싶다. 그러나 많은 어른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나도 그렇게 이상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구의 별에 살고 있는 어른들은 늘 바쁘게 일을 한다.

어린왕자가 지구를 찾아 왔을 때,

사막이 아니라 도시를 방문했더라면 더 이상한 별이라고 생각했겠다.

 

"아저씨, 뭐해요?"   

"일을 하고 있단다."

"일이라는 게 뭐죠?" 

"이렇게 바쁘게 사는 것이지."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아야 하는 거죠?"

"그래야 돈을 벌 수 있으니깐."

"돈 벌어서 뭐할려구요?"

"잘 살기 위해서지."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거죠?"

"먹고 싶은 것 먹고, 놀고 싶을 때 놀고, 가고 싶은 데 가고, 갖고 싶은 것 가지는 거지."

"그럼 언제 그렇게 되는거죠?"

"그건 나도 몰라. 그건 돈도 많고, 시간도 많아야 하는 거야."

"그러니깐, 내 말은....언제 돈도 많고, 시간도 많아지게 되나요?"

"허참, 답답하구나. 그러니깐, 이렇게 부지런히 일을 해야만 되는 거야."

 

어린 왕자는 혼잣말로 물었다.

'그럼, 어른들은 언제 잘 살게 될까?'  '어른들은 언제 행복하게 살까?'

 

그런 이상한 어른들에게 길러지는 아이들에게 어린왕자는 친구가 되고 싶어 다가갔다.

 

"나랑 놀자."

"안돼, 나 지금 바빠."

"왜 바빠? 너도 돈을 버는 거야?"

"아냐, 난 공부해야 돼. 지금 학원가는 거야."

"공부가 뭐냐?"

"그건 어른들이 가르치는 것을 배우는 거야."

"배워서 뭐하게?"

"대학교 갈려구."

"대학교 가서 뭐하게?"

"글쎄... 그냥 가는 거야!" "아냐, 이 바보야. 좋은 직업을 얻게 위해 가는 거야."

또 다른 아이가 끼어 들어 대답한다.

 

"직업이 뭔데?"

"안녕, 나도 지금 바빠. 학원 가야 해."

따라가며 어린 왕자가 또 물었다. 한 번 물었던 것을 그냥 흘려 버리지 않는다.

"그런데 직업이 뭐야?"

"그건 어른이 되는거야."

"어른되어서 뭐하게?"

"직업을 갖는 거야."

"그러니깐 왜 직업을 갖냐구?"

"하 참, 바쁘다니깐. 너 참 귀찮구나. 직업이 있어야 돈을 벌지."

    '이 바보야'라는 말을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것 같다.

 

"돈을 왜 벌어?"

이렇게 묻고 있다가 어린왕자는 자신도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아참, 그건 어른들한테 들었었지. '그래야 잘 살지'라고 하겠지.'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다른 대답이 있을 것 같아서 또 물어보았다.

 

"돈 벌어서 뭐할려구?"

그 물음에 아이들은 대답도 하지 않고, 학원으로 달려갔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아이들은 학원 문을 나왔다.

 

'지구에는 아이들도 이상하구나. 
 어른들
같이 대답을 하네. 
 왜 지구의 사람들은 '지금' 행복하게 살지 않지?' 

 

어린 왕자는 도시를 떠나 사막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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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모닝키스'이다.

아침을 깨우는 달콤한 인사이기 때문이다.

 

차의 음다감상법을 '삼품(品)'이라 한다.  목품, 비품, 구품 

물론, 삼품은 '차의 아버지'라 일컫는 한재 이목이 차의 등급을 상품,중품,차품으로 나누는 말이다.
커피 음다감상법을 생각해보았다. 삼품에 둘을 더하여 <커피 음다 오품 - 음가배 오품>이라 이름해본다. 

   
첫째, 이품 - 커피를 글라인딩할 때 들리는 소리, 드리퍼에 떨어지는 커피방울 소리를 듣는다. 이건 '귀(족)의 품격'이다.
둘째, 비품 - 커피콩을 꺼낼 때, 갈고 우릴 때, 그리고 마실 때에 향기를 먼저 감상한다.  '건달바 코의 품격'이다.
셋째, 목품 - 드리퍼에 떨어져 잠시 머물다 사라져 버리는 커피방울, 그리고 어둡지만 맑은 유혹의 색감에 끌리는 어린 눈의 품격
넷째, 구품 - 쓴 맛 신 맛 그 다음에 전해져 오래 남게 되는 단 맛, 인생이 그렇듯이. 역시 가난한 입안의 즐거움이다. 
그래도 결코 빠트릴 수 없는 것은 인품이다. 
  조용히 나를 만났다가 잊어버리고, 때론 사랑하는 사람과 눈으로 나누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수다로 즐기는 인격의 만남. 이것이 최고이다.

 

'모닝 커피 향기처럼' 참 좋은 친구가 전해준 커피 캘리

 

 

우리 집 카페, <꽃그림자>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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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가난의 지혜 - 강신주

행복을찾아서 2017.03.15 14:46 Posted by 文 寸 문촌

자발적 가난의 지혜

- SERI 향기있는 만남

강신주 철학박사

니체는 자신의 주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Also sprach Zarathustra)'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낙타에서 사자로 변해야만 한다고 말이다. 낙타는 수동적인 인간, 따라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을 상징한다., 따라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을 상징한다.

기존의 공동체가 부여한 규범이나 가치를 하나의 숙명이나 본성인 것처럼 등에 지고 살아갈 때, 우리는 낙타에 다름 아닐 것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는 사자가 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누가 감히 사자 등에 올라탈 수 있겠는가? 사자의 등에 타려면 우리는 사자를 죽여야만 할 것이다. 오직 그럴 때에만 사자의 시신 위에 우리는 걸터앉을 수 있다.

그래서 사자는 부정의 전사이자 동시에 자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니체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사자는 최종적으로 어린아이로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어린아이삶을 긍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위베먼쉬(Ubermensch), 즉 초인을 상징하는 것이다.” 했다.

 

그렇지만 사자가 되기 위해서 아직도 우리의 등에는 많은 짐들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얹혀 있다. 너무나 오랫동안 짐들을 지다 보니, 이제 우리는 그것이 짐인지 아니면 나의 몸의 일부인지 헛갈릴 정도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짐들로는 니체는 국가, 종교, 자본을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그렇다면 사자의 정신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삶의 태도를 취할 수 있을 것인가? 국가의 부당한 권력에 대해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않는 용기', 내세를 약속하는 종교의 유혹에 대해서는 '삶을 긍정하는 유쾌함', 그리고 최종적으로 끝없는 재산축적을 명령하는 자본에 대해서는 '자발적 가난의 행복'이 필요한 법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많은 이들은 '자발적 가난''행복' 일 수 있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릴지도 모르겠다. 이 점에서 가난을 뜻하는 한자, '()'이란 글자는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한다. 이 빈이란 글자는 나눔을 상징하는 '()'이란 글자와 조개 화폐를 상징하는 '()'라는 글자가 합쳐져서 만들어져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이 가진 재산을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도래하는 상태가 바로 가난이라는 것이다. 청빈(淸貧), 즉 맑은 가난이란 말이 나온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바로 여기에 행복의 비밀이 있다. 자신이 애써 수확한 재산을 아낌없이 나누어주었을 때, 우리는 축적의 행복과는 질적으로 다른 행복을 맛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더 많은 재산을 가지라고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는 체제를 말한다. 항상 자본주의는 자본의 양이 자유의 양이라고 사탕 발림하며 우리를 미혹의 길로 이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빈 주머니에 손을 찔러 보며 우리는 무엇인지 모를 부자유와 우울함을 느끼곤 한다. 많은 지혜로운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결국 자본주의 말하는 자유는 소비의 자유, 소비할 때 일순간적으로 찾아오는 덧없는 자유에 다름 아닌 셈이다.

이 점에서 자본주의의 자유는 일종의 마약과 같다. 달콤한 쾌락은 주지만 약효가 떨어지면 우리에게 심한 금단증상을 제공한다는 점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발적인 가난'은 가장 자본주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려는 의지이자, 동시에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

바이타유(Georges Bataille, 1897-1962)라면 자발적 가난은 단순한 결단이 아니라 건강하게 살기 위한 적극적 방법이라고까지 이야기했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명령하는 것처럼 부를 축적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어떤 아이가 계속 음식을 먹는다고 해 보자. 이 아이에게 과잉된 영양분은 몸에 계속 축적될 것이다. 물론 아이는 과잉된 영양분을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 이용할 수 있다.

그래서 아이는 다른 아이보다 덩치도 더 크고 키도 더 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과잉된 영양분을 자신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이상으로 계속 섭취하면 어떻게 될까? 분명 아이의 몸은 터질 듯이 불어 날 것이다. 그리고 몸무게가 너무 많이 나가서 아이의 뼈대가 그것을 지탱하지 못할 수순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살기 위해서라도 아이는 자신에게 제공된 음식을 타인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영양분의 과잉 섭취뿐만 아니라 부의 과도한 축적이 한 사람의 인격이나 가족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우리는 종종 보아왔다.

여기서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스스로 결단하여 발생한 가난과 어쩔 수 없이 직면하게 되는 가난은 질적으로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자신이 노력을 하지 않아서 초래된 가난, 혹은 사회의 경기가 좋지 않아서 불가피하게 겪는 가난은 우리에게 불쾌함과 불안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이런 가난은 우리에게 어떤 행복감도 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스스로 결단한 가난, 즉 자발적 가난은 무엇인가를 가졌을 때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 법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옷을 벗어 주었을 때, 혹은 지하철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였을 때, 우리는 분명 가난해진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춥지만 혹은 다리가 아프지만, 우리에게는 옷을 입고 있었을 때보다, 그리고 좌석에 앉아 있을 때보다, 더 크고 뿌듯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그렇다. 행복은 두 종류가 있었던 셈이다. 평범한 사람이 알고 있는 유일한 행복은 무엇인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게 되었을 때에 얻게 되는 행복이다. 그렇지만 몇몇 사람들은 다른 종류의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다. 그것은 타인에게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을 자발적으로 주었을 때 기적처럼 찾아오는 행복이다.

후자의 행복을 맞본 사람은 전자의 행복이 얼마나 초라한 행복인지를 알게 된다. 주변을 돌아보면, 가난하고 곤궁한 이웃들에게 계속 자선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독거노인들을 위해 가파른 길을 오르며 연탄을 나르는 사람을 보라. 주중에 직장에서 그렇게 고생해놓고서 주말에 봉사활동을 나온 것이다.

"도대체 저 사람은 초인이라도 되는 것인가? 어떻게 주말에 쉬지도 않고 저렇게 일을 하는 것일까?"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자선행위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자선행위를 하는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라. 연탄 묻은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을 때 보이는 해맑은 미소는 그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를 웅변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한 노동과 타인을 위한 노동 사이에는 이런 엄청난 간극이 숨어 있는 법이다. 힘이 들지만 그럴수록 행복이 찾아 드는 기묘한 역설. 이것이 바로 자발적인 가난이 가진 마력이다. '마태복음(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에서 등장하는 유명한 명언,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도 아마 '자발적 가난'이 가져다주는 행복을 통찰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사실 유사 이래 동서양의 많은 철인들은 한결같이 '자발적 가난'이 가져다 주는 행복을 통찰하고 있었다. 청빈한 삶을 영위하던 서양의 은둔자들, 노동하지 않으면 먹지도 않겠다고 선언했던 동양의 선사들,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자본주의의 폐단을 지적했던 현대의 사상가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위대한 정신들은 직접 노동하며 남에게 나누어주는 삶, 그래서 자발적으로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삶에서 가장 인간적인 행복을 발견했다.

혹시 자본이란 마약에 아직도 취해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자발적 가난은 진정한 행복을 약속하는 좋은 처방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먹을 것을 친구에게 나누어주는 어린아이의 미소, 니체가 그렇게도 요구했던 초인의 미소는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셈이다.

강신주 철학박사

- '상처받지 않을 권리' '철학 VS 철학' '철학 삶을 만나다' 등 저서 다수

- 동아일보 '강신주의 철학으로 세상읽기' 연재 중

인터뷰 제공: samsungblogs.com

 

황보근영 231/250

전체 의견34 황보근영 2012-01-25 10:26:46 0 0 참 행복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더 깨우치게 해주셨습니다.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며,

가난하여도 인생을 즐길 줄 알며(貧而樂)

부유하여도 사람됨의 도리를 지키기 좋아하는(富而好禮)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다짐해봅니다.

채움의 행복이 주는 가치 보다, 비움과 나눔이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깨우쳐서 우리 국민들이 좀 더 진정한 행복의 가치를 인식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갈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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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행복한가?

행복을찾아서 2017.03.15 14:45 Posted by 文 寸 문촌

우리 교육의 현실과 행복 (2012년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대학은 졸업이 우울한 청년 실업자를 양산하고 있고, 국가의 우수한 상위 5% 인재들이 교사가 되었지만 자기 직분에 행복해하지 않고 있으며, 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률 28.4(OECD 국가 평균 11.2)으로 세계 1위이며. 청소년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통계청 2009)이라는 부끄럽고도 끔직한 순위에 올라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세계 최고의 학업스트레스 72.6%(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011)에 시달리며 수업시간에 불행하다고 느낀다’ 53.8%.(미디어리서치 201110)는 통계 수치도 나왔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65점으로 3년 연속 최하위(OECD 23개국 중 23, OECD 평균은 100, 22위 헝가리는 87)이며, 중고교생 5명 중 1명은 자살을 고려하고 20명 중 1명 실제 자살 시도하고 있다. 남들이 격찬하는 한국교육의 현실은 이렇듯 암울하다.

무엇을 가르쳤으며 어떻게 가르쳤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글로벌 시민의식의 국제비교, 암기, 지식, 인식면에서는 상위권이지만 실천면에서는 하위권이다. '사회적 상호작용더불어 사는 능력36개국 중 36위로써 세계 꼴지 수준이다. 우리 교육이 마치 머리는 크지만, 가슴은 삐쩍 메말라 있고 손발은 없는 졸라맨’1)을 양상한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점수를 위한 경쟁으로 인해 자발성, 독립성, 공동체 의식, 봉사정신, 다양성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만을 앞에 두고 우리는 뒷전으로 밀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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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득헌의 디지털 스페이스에서 만든 여러 애니메이션 캐릭터들 가운데 하나로 2000년부터 제작되었다. 졸라맨의 인기로 이 이후 졸라맨을 닮은 다른 막대형 캐릭터들 마저도 졸라맨이라고 부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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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둘>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기

  얼마 전 나의 글과 자료가 많이 담긴 USB를 잃어버렸습니다. 아마 2개가 동시에 없어진 걸 보면 내가 소중하다며 잘 보관한다는 게 너무 깊이 두었나봅니다. 열흘째 찾아 헤매며 뒤집니다. 서서히 불안하고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도 '어디 잘 있겠지, 분명 내 가까이에 있을 거야.' 스스로 위로하고 자신에게 최면도 걸어봅니다. ‘부디 빈다. 멀리가지 말고, 어서 돌아와 다오. 다치지 말고, 아프지 말고부모가 자식 걱정하듯 기도도 합니다.

같은 교무실에 있는 우리 철학 선생님이 바로우어즈(borrowers)’라는 꼬마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바로우어즈란 빌려가는 사람들이란 뜻이랍니다.

  "손가락만한 바로우어즈가 아마 선생님의 USB를 빌려갔나 봐요. 얘들은 주인한테 말도 않고 그냥 빌려갔다가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는데요. 나는 잃어버렸다고 속상해하며 찾고 있는데, 이 아이들은 아무런 미안함도 없이 그저 빌려갔을 뿐이래요."

내 손가락만한 이 아이들을 상상해봅니다. '그게 뭐 어땠어?' 이 친구들, 아무렇지도 않다며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고약한 놈들이죠. 그러면서도 그 꼬마친구들의 장난기가 귀엽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떻게 생긴 놈들인지 보고 싶어지네요.

  선생님 USB안에 재미있는 글이 많아서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나 봐요. 곧 제자리에 다시 갖다 놓을 겁니다.”

  참 곱고 고마운 말씀이죠? 철학 선생님이라서 그런 걸까요, 어린아이 같아서 그런 걸까요? ‘아니, 혹시 이 친구들이 빌려갔다가 엉뚱한 곳에 둔 것은 아닐까?'라며 나도 어린아이와 같이 바로우어즈 이야기에 빠져듭니다. 이런 유쾌하고 따뜻한 위로에 힘을 얻어 내 삶의 주변을 차근차근 정리하면서 USB를 다시 찾아봐야겠어요. 그러다가 바로우어즈 꼬맹이들을 만날 수 있으면 더 좋겠어요. 만나면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그동안 이 모든 것들이 너희들 짓이었단 말이지? 내가 잃어버린 것들이 결국 너희들이 빌려갔다는 그지? 아무튼 반가워. 돌려주면 더 고맙고. 그래도 다음엔 나한테 말하고 빌려갔으면 좋겠어.“

그렇게 상상하니 나를 덜 원망하고 지나 간 것을 조금씩 지울 수 있게 됩니다.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니 쉽게 잊혀 지고 쉽게 용서가 됩니다.

아하, 그래서 그랬구나.” 이렇게 쉽게 이해됩니다.

 

우리 친구들, 내일의 행복을 바라면서 오늘을 저당잡거나 헛되이 버리지 마셔요.

지금 여기서 늘 행복하기 위해 시인의 눈으로 바라보고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 성현들의 이런 말씀도 새겨두면 좋겠어요.

  큰 사람은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大人者不失赤子之心]”
- 맹자, [맹자 이루장구 하]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 예수, [마태 18. 3-4]

  사랑하는 친구들, 늘 감사하고 지금 행복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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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시간입니다.

행복을찾아서 2017.01.16 19:38 Posted by 文 寸 문촌
오늘 따라 왜 국수가 먹고 싶은지.
아내한테 부탁해서 지금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FM 93.1 세음에서 아름다운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지만 사랑과 행복을 더해줍니다.
네이버 검색으로 노래를 들려주었더니,
요란다(Yolanda)라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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