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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聖枝), 하필 측백나무?

문촌수기 2025. 4. 14. 21:29

"히브리 아이들이
올리브 가지를 손에 들고
주님을 맞으러 나가
외치는 환호 소리
높은 데서 호산나"


측백나무 성지(聖枝)를 손에 들고 성전 밖, 계단에 서서 따름노래(마태 21,9/시편 24)를 부른다. 2천년 전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날을 기념하는 주님수난 성지주일 미사 시작이다.
손에는 측백나무 가지를 들었는데, 입으로는 '올리브 가지'를 노래했다.

축성된 측백나무 가지

하필 측백나무일까?
우리나라에서는 올리브나무나 종려나무가 귀하기 때문에 대신 상록수인 측백나무를 쓴다. 그리고 측백나무의 의미는 나에게 특별했다.

측백나무에서 “측백(側柏)”이라는 명칭은 손바닥처럼 작고 납작한 잎이 한쪽 측면으로만 자라는 형태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또한 측백나무의 열매는 오행(五行)과 연결된다. 측백나무에는 도깨비 뿔 같은 돌기가 달린 손가락 마디만한 열매가 달린다. 측백나무의 한자 백(柏)은 바로 이 나무의 열매를 본 떠 만들었다. 한 편 흰 백(白)은 열매 모양이기도 하지만 오행(五行)에서는 서쪽을 의미하고 오상(五常)의 덕으로는 의(義)에 해당한다. 다른 나무들은 모두 동쪽을 향하고 있는데 측백나무만 서쪽으로 향해 있어 이름을 붙였다는 얘기도 전한다.

측백나무 열매

예로부터 신선이 되는 나무로 여겼으며, 귀족으로 비유했다. 송백(松柏, 소나무와 측백나무)이라 하여 소나무를 백수(百樹)의 으뜸으로 삼아 ‘공작(公爵)’으로 삼고, 측백나무를 백작(伯爵)으로 삼았다. 중국 주나라 때는 측백나무를 제후(諸侯)의 무덤에 심었으며, 한나라 무제는 측백나무를 선장군(先將軍)에, 당나라 무제는 대부(大夫)에 비유했다.
측백나무에는 무덤 속 시신에 생기는 벌레를 죽이는 힘이 있는데, 좋은 묘 자리에서는 벌레가 안 생기지만 나쁜 자리는 진딧물 모양의 염라충이라는 벌레가 생기므로 이걸 없애려고 측백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제갈량의 묘에 심어진 나무들도 측백나무다.

측백나무는 공자가 말하고,
추사가 그렸으며,
안중근가 쓴 세한송백
주인공이기도 하다.
제주도에 유배간 추사는 제자 이상적에게 ‘세한도(歲寒圖)’를 선물했다. 자신의 삶을 그려 낸 세한도는 추사의 작품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세한도의 제목은 공자가 말한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에서 가져왔다. “날씨가 추운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뒤에 시든다는 것을 안다”로 풀이한다.

추사의 세한도

집을 가운데에 두고 좌우로 두그루 씩 나무가 있다. 가장 오른쪽의 나무는 늙은 소나무이고, 나머지 세 그루는 측백나무이다. 공자가 말하고 추사가 그린 소나무와 측백나무는 세한의 고난 속에서도 절개와 지조를 잃지 않는 선비의 기개를 나타낸다.
측백나무의 꽃말이 '견고한 우정'이다. 스승 추사를 대하는 제자 이상적의 모습은 측백나무의 꽃말을 닮았다.
이토오를 척결하고 여순 감옥소에서 사형을 기다리던 안중근 의사도 붓을 들어 '세한송백'을 썼다.

안중근이 여순 옥중에서 쓴 세한연후지송백지부조(歲寒然後知松栢之不彫) ~ '後' 자를 빠트려 써서, 나중에 '不'자를 삽입했다. 뜻은 별로 다르지 않다.
황보근영 휘호 ㅡ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

비록 성지주일 한차례에 손에 들었던 일회용 나무가지이지만, 나는 세한의 고난 속에서도 결코 예수님을 부정하지 않고 배신하지 않으며 '견고한 믿음와 의리'를 약속하고자 성지주일의  측백나무 가지를 집으로 가져와 십자고상(十字苦像, 영어: crucifix)에 걸었다.

십자가상과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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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歲寒孤節의 아름다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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