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동서원 비석의 용
세계문화유산인 대구 달성의 도동서원을 찾았을때 해설사님은 서원 앞 뜰에 있는 비석을 가리키며, 귀부(龜部)의 동물이 거북이가 아니고 용(龍)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비신을 받치는 귀부는 말 그대로 거북이고, 비신 위의 머릿돌은 이수(螭首)는 용으로 알고 있었다.
비석의 명칭을 먼저 살펴보자.

해설사가 귀부의 동물도 용이라며 소개한 이야기는 용생구자(龍生九子)설에서 가져왔다.
용생구자설이란 '용의 아홉 자식'을 이르는 말이다. 용은 중국에서 유래한 상상의 동물인 만큼 이들 역시 중국 전설에서 등장했는데,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편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홍치제 때 용이 새끼 아홉을 낳았는데, 용은 되지 않고 각기 좋아하는 것이 있었다'"
<성호사설>에 따르면,
첫째, 비희(贔屭)는 거북이 모양을 하고 있다. 무거운 것을 지길 좋아하여 비석의 받침인 귀부(龜趺)에 쓰인다. 옛날에 만들어진 비석들을 보면 거북이 받침을 하고 있는 것이 많은데, 그것이 바로 비희이다. 그러고보니 용과 같이 여의주를 물고 있었다.

용생구자의 둘째는 이문(螭吻)이다. '치문'이나 '치미'라고도 불린다. 무언가를 바라보길 좋아한다. <소씨연의>에 따르면 바다에 사는 짐승이며, 전설에 따르면 한무제가 백량대라는 건물을 지을 때 나타났다고 한다. 물에서 나온 짐승이기 때문에 불을 막는 데에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 집의 지붕에 얹었다고 한다. 불의 기운을 막는다는 점에서 해태와도 유사성을 띤다.
비석의 머릿돌인 이수(螭首)는 용의 형상을 조각하여 수호의 의미를 갖도록 했다. 중국의 이문은 뿔이 없는 용이지만, 한국의 이수는 뿔이 달린 용으로 많이 조각되었다. 용의 머리는 대부분 옆이나 위를 향하여 승천하는 모습을 표현한다. 통일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에는 이수가 대부분 비신과 다른 돌로 마련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같은 돌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비신 상부에 이수를 갖춘 것은 비의 품격을 높이고 장엄하게 보이게 한다.


참고로 더하여,
용생구자의 셋째 용은 포뢰(蒲牢)라 한다. 그 모습은 용과 비슷하나 조금 작고 천성이 울기를 좋아한다. 고래를 무서워하여 고래를 보기만 하면 울부짖는데, 그 소리가 무척 커서 사람들이 종이나 북 위에 포뢰를 올려놓는다고 한다. 절에서 범종을 보면 범종의 머리에 용통이 있고 용 모양의 용뉴가 있다. 그 용뉴가 바로 포뢰인 것이다. 범종을 치는 통나무를 당목이라고 하는데 그 생김새가 고래 모양을 하고 있다.
'고래 고래 고함친다'는 말은 포뢰의 울부짖음에서 유래된 듯 하다.





+도동서원 신도비의 쌍귀부

도동서원 왼쪽편에 자리잡은 한훤당의 신도비는 두마리의 거북이 비석을 받치는 ‘쌍귀부’로 희귀성을 갖고 있어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다.
(더읽기)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90724.010130729550001
[달성 레저·관광 명소, 어디까지 가봤니? .11] 조선 성리학의 산실 도동서원
대구 달성에는 선조들의 얼과 유산이 담긴 의미있는 장소가 산재해 있다 그 가운데 조선시대 선비문화를 엿볼 수 있는 서원은 빼놓을 수 없는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신문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m.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