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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과 인문학 산책

길 위의 인문학 2강, 인왕산 길에서 찾는 나

by 문촌수기 2018. 6. 23.

길 위의 인문학 2강ㅡ인왕산 길에서 찾는 나  / 산본고 ~ 인문고전 통통! 강좌

시인 이상의 집과 화가 구본웅과의 우정

인왕산 자락의 사직단에서 통인시장으로 오르는 서촌의 길을 걷다보면 좌우에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숨은 집터가 있다. 세종이 태어난 마을이라서 이곳을 세종마을이라고도 한다. 화가 구본웅 집터, 이상범의 집, 시인 이상의 집, 박노수 미술관, 윤동주 하숙집 등이다. 종로의 토박이인 구본웅(1906~1953)이상(1910~1937)의 우정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삽화가 이승만의 그림에서 보다시피 반항적 외모의 이상과 대조적으로 키가 무척 작은 구본웅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구본웅은 태어나서 4개월 만에 어머니가 산후병으로 돌아가시고 식모의 등에 업혀 젖동냥으로 키워졌다. 어린 식모가 실수로 등에 업힌 아기를 댓돌 위에 떨어트려 그만 아기는 척추를 다치고 말았다. 그것도 모르고 고통을 참고 자랐던 본웅은 성장이 멈춰버린 곱추가 되었다. 약골에다 곱추의 형상으로 네 살 늦게 학교에 들어갔다. 어린 친구들의 놀림 속에서도 유일하게 친구가 되어준 아이가 있었다. 바로 김해경이다. 해경과 본웅은 단짝이 되었고 그림에도 같은 소질을 보였다. 본웅의 큰 아버지가 조카에게 미술도구가 담긴 화구상자를 선물로 사다 주었다. 본웅은 그 선물을 선뜻 친구 해경에게 주었다. 해경이 그렇게 갖고 싶어 했던 것이다. 이 화구상자를 선물 받은 해경은 감사의 징표로 자기의 호를 (, 상자)’이라 하고 싶다고 본웅에게 말하고 호에 어울리는 성()을 같이 찾아 붙였다. 그래서 이상(李箱)’이라는 시인의 이름이 탄생되었다. 그만치 이상은 이상(異常)한 친구이다. 크면서 이상은 시인의 길을, 구본웅은 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후에 구본웅은 이상을 위해 친구의 초상을 그렸고, 이상은 친구를 위해 8씨의 출발이라는 시를 썼다. ‘차팔(且八)’은 본웅의 성씨인 ()’의 파자(破字)이다. 이상은 이렇게 장난과 반항의 기질로 글자를 갖고 놀았으며, 오감도(烏瞰圖)와 같은 이상한 시를 썼다.

서촌 마을 골목에는 이상의 집이 보존되어 있다. 물론 이상(김해경)이 어린 시절 살았던 김해경의 큰아버지 집이다. 해경은 네 살 때, 큰 아버지 댁의 양자로 들어가 이곳에서 살았다. 이곳에는 이상의 초상과 그의 문학작품이 실린 잡지 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어둡고 좁은 계단에 앉아 그의 영상을 보면서 이상한 시인의 삶과 작품에 다가갈 수 있다. 옥인동 골목길을 올라가며 박노수 미술관을 들르고 연희전문학교 시절의 윤동주 하숙집을 지나 겸재 정선의 수성동 계곡 숲길로 들어가면 이들의 우정이야기를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시인의 언덕

윤동주 문학관을 나와 왼쪽에 난 계단으로 언덕을 올라가면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다. 그 언덕 위에 서면 서울의 모습이 앞에 펼쳐지고 왼편으로는 병풍같이 높은 북악산이 일품이다. 그의 너무나 유명한 서시비 앞으로는 저 멀리 서울의 남산이 보이고 연무에 희미하지만 관악산도 보인다. 그 서시를 크게 낭독해야 나들이의 참 맛을 볼 수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 위에는 놓치지 말고 꼭 찾아보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시인 윤동주 영혼의 터가 있다. 윤동주 문학관을 나와 시인의 언덕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가 서시시비로 가는 잔디 밭 가운데 있다 보니 눈에 잘 띠지 않는다. 찾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찾을 수 있다. 2009년 가을, 청운공원에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조성되고, 윤동주 문학사상 선양회와 함께 한 84명의 문인들이 중국 용정을 찾아 시인이 묻힌 북간도 공동묘지에서 흙을 한 줌씩 가져와 뿌린 자리이다. 시인의 넋을 그래도 가장 가까이에 만날 수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언덕 위에 구절초가 한창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다 져버리니 시인의 넋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물티슈로 흙먼지를 덮고 있는 ''를 깨끗이 닦아드리고, 함께 산책한 길동무들과 함께 묵념을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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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근영의 문촌수기] http://munchon.tistory.com/1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