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자락의 수성동 계곡을 찾았다.
겸재의 <수성동도>와 <인왕제색도>를 이야기하고 모방하면서 가을에 물들어가는 '인왕추색 수성동도(仁王秋色 水聲洞圖)'를 나름 그려 보았다.
열 아홉살에 왕비에 오른 지 칠일만에 폐위된 단경왕후는 매일같이 인왕산에 올라 궁궐에 있는 또래의 진성대군(중종)을 바라보며 그리워하였다. 둘은 열 세살에 결혼하였으니 부부이기 전에 절친이었다. 왕비의 치마가 아직도 치마바위에 걸려있다. 계곡에 흐르는 바람과 물소리 만이 애한과 시름을 씻겨내고 있다.

겸재의 <수성동도>.
드론을 띄워 촬영한 영상을 그린 듯힌다.

겸재의 <인왕제색도>
 ㅡ 초여름에 내린 장맛비가 그친 후에 인왕산을 그렸다.  수성동도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는 단선관점(single angle)으로 그렸다면, 인왕제색도는 복선관점으로 그렸다. 송림에 둘러진 친구의 집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며 그렸고, 인왕산 봉우리는 아래에서 위로 올려보며 높여 그렸다. 암벽사이로 세 개의 폭포수가 흐른다. 실제로는 있지않을 폭포이다. 왼쪽의 폭포수가 수성 계곡으로 흐른다. 그 나머지는 운무로 가렸다.

 그림 속의 주인공 친구는 겸재와 그림과 시로 우정을 나눈 사천 이병연이다.
<수성동 계곡의 재구성 이야기>
38년이 된 낡은 아파트 철거 중에
널판지 돌, 기린교 발견.
겸재 정선의 <수성동도> 그림 속 주인공.
조선의 돌다리로서, 현장에 옛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다리.
천 억원 그 이상의 가치.
겸재의 진경산수화, <수성동도> 재현
"진면목을 찾아라."

인왕산 병풍바위 훼손ᆞ일제의 만행
인왕산 치마바위를 자세히 올려다보면 그 왼쪽 바위벽이 훼손된 듯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일제는 1939년 서울에서 '대일본청년연합대회'가 개최되는 것을 기념한다면서 '동아청년단결(東亞靑年團結)'이라는 글자를 암각하였으며, 그 왼쪽으로 9월 16일에 새겼다는 날짜와 "조선 8대 총독인 미나미 지로(南次郞)가 썼다"는 글씨도 새기고 이 글을 새긴 연유를 이어서 계속 새기면서 조선의 심장과도 같은 인왕산 바위를 훼손하는 만행을 멈추지 않았다.
해방이후 1950년이 되어서야 이 글씨들을 쪼아 일제의 흔적을 지우려 하였으나 병풍 바위의 상처는 영원히 고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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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촌수기 2020.05.02 11: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왕제색도에는 노론의 정치 지령이 담겨있다? | 조선일보 AMP - https://m.chosun.com/news/article.amp.html?sname=news&contid=2020050102291

  2. 문촌수기 2020.05.02 11: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s://youtu.be/5d4t16J4Q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