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가을 길을 따라 걷는다.
'시인의 방ㅡ방우산장'의 의자에 앉아 잠시 시를 읊는다. 그리고 추억을 그린다.

"꽃이 지는데 바람을 탓하랴.
...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ㅡ 조지훈의 <낙화> 중에서.

그렇다. 지난 봄에 꽃이 지더니
이제  물들었던 잎이 진다.
세상사가 그렇다.
다 가야 할 때가 있다.
그러니 누구를 탓하랴?

  조지훈 시인은 이 곳 성북동에 살면서 박목월,  박두진 등과 함께 청록집을 출간하였다. 이른바 청록파 시인들이다.
조지훈 시인이 살던 그 때 그 집은 지금 없지만 시인을 기념하고자 성북동 142-1번지 가로길에 조지훈 '시인의 방ㅡ방우산장(放牛山莊)' 표지 기념 조형물이 설치되어있다.
   시인은 자신이 기거했던 곳을 모두 ‘방우산장(放牛山莊)’ 이라고 불렀다. 이는 그가 1953년 신천지에 기고한 '방우산장기'에서 '설핏한 저녁 햇살 아래 내가 올라타고 풀피리를 희롱할 한 마리 소만 있으면 그 소가 지금 어디에 가 있든지 내가 아랑곳할 것이 없기 때문' 이라고 말한 것에서 연유하였다. 즉, 마음속에 소를 한 마리 키우면 직접 키우지 않아도 소를 키우는 것과 다름없다’ 는 그의 ‘방우즉목우’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참고로 보조국사 지눌의 호는 목우자(牧牛子)이며, 만해 한용운의 당호는 심우당(尋牛堂) 임을 같이 알아두면 더욱 흥미롭다. 대체 그 놈의 소가 뭐길래, 찾고 키우고 놓아둔다는 걸까?
  기념 조형물을 '폴리'라고 한다. 폴리(Folly)'란 건축학적인 본래의 기능을 잃고 조형적인 의도와 장식적 역할을 하는 건축물을 뜻한다.  근래 도시의 거리에는 그 동네의 자랑스런 사람과 이야기를 찾아 이런 도시조형물(urban folly)을 설치해 가고 있다.
   성북동의 방우산장 조형물은 파빌리온 형의 대리석벽과 창호지없는 격자문이 시인이 살았던 집 방향으로 열려있고, 그 위로 우리 전통 가옥의 처마와 그 아래에 마루가 있으며 마당같이 조성된 곳에는 의자들이 놓여 있다. 시인의 방이라 여기고 둘러앉아 시인의 시 한 수 읊으면 제격이다. 대리석벽 바깥면에는 시인의 절창인 <낙화>시가 새겨져 있다.

'길 위의 인문학-문사철 인문학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상사 계추  (0) 2018.12.02
길상사 관음 보살과 법정스님  (0) 2018.11.28
조지훈의 방우산장  (0) 2018.11.25
성북동 성당  (0) 2018.11.25
윤동주 문학관 재구성  (0) 2018.11.17
인왕추색 수성동도 재구성  (2) 2018.11.16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