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릉ㆍ健陵
-조선 제22대 정조선황제와 효의선왕후의 능
 정조선황제正祖宣皇帝(1752~1800, 재위 1776~1800)는 장조의 둘째 아들로 할아버지 영조英祖가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올랐다.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라 천명하고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규장각을 두어 학문 연구에 힘썼으며 장용영을 설치하고 수원 화성城을 건축하는 등 조선의 중흥을 이끌었다. 재위 24년(1800)에 세상을 떠나자 묘호를 정종正宗이라 올렸으며, 광무 3년(1899) 정조선황제로 추존하였다.
효의황후 (1753~1821)는 청원부원군高原院君 김시묵金時의 딸로 영조 38년(1782) 왕세손빈에 책봉되었고,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다. 천성이 공손하고 온화하였으며, 왕대비시절 여러 차례 존호에와 잔치를 베풀고자 하였으나 모두 사양하였다고 한다. 순조 21년(1821)에 세상을 떠나 시호를 효의왕후王后라 올렸으며, 광무 3년 1899) 효의선황후로 추존하였다.

 

 

[실록으로 엿보는 왕과 비]
“호학군주가 고하는 기막힌 반전” (정조)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정조는 온 신하들의 스승이라 불릴 정도로 학식과 덕망을 지닌
호학군주이다. 그런데 화성행궁 화령전에 봉안된 정조의 초상화는 곤룡포가 아닌 군복 차림이다. 틀에 박힌 정조의 이미지에서 살짝만 벗어나면, 우리가 익히 알던 호학군주의 또 다른 면모를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 왕실 족보 『선원보략』에서 볼 수 있는 간략한 그림과 '우뚝한 콧마루, 네모난 입에 겹으로 된 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순조실록」의 기록을 따르면 정조의 실제 얼굴은 다부진 모습일 확률이 높다. 그 모습을 상상하건데, 의외로 정조에게서 늠름하고 호방한 무인의 기상이 느껴진다.

"우리나라는 문치文治를 숭상하고 무비를 닦지 않으므로, 사람들이 군사에 익숙하지 않고 군병이 연습하지 않아서 번번이 조금만 달리면 다들 숨이 차서 진정하지 못한다. 이를 장수는 괴이하게 여기지 않고 군병은 예사로 여기니, 어찌 문제가 아니겠는가. 훈련대장 홍국영과 병조판서 정상순은 이에 힘쓰도록 하라."
「정조실록』 권8, 3년(1779) 8월 3일

정조는 문치 뿐만 아니라, 무예와 군사훈련 역시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왕위에 오른 후 정조는 아주 의미심장한 정예부대를 육성하였는데, 국왕의 친위부대인 장용영이 그것이다. 왕궁이 있는 서울과 그 주변을 지키는 임무를 맡은 장용영은 그 훈련부터 특별했다. 정조가 친히 활쏘기 시범을 보이며 훈련을 독려하기도 했다. 실제로 정조의 활쏘기 실력은 당시에 그를 따를 자가 없을 만큼 출중했다. 정조 16년 10월 26일에 정조가 춘당대에서 활쏘기를 하여 50발(10) 중 49발을 명중시켰다는 기록이있다. 그 중 마지막 화살은 아예 쏘지 않고 두면서 "다 쏘는 것은 옳지 않다. 내가 요즈음 활쏘기에서 49발에 그치고 마는 것은 모조리 다 명중시키지 않기 위해서이다."
라고 말했다고 하니, 그의 여유 넘치는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조의 강단 있는 모습은 8일 간의 화성 행차에서 절정을 이룬다. 「정조실록』 권42,19년(1795) 윤2월 9일,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함께 창덕궁을 나섰다. 115명 기마 악대의 웅장한 연주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6000여 명의 수행원이 그 뒤를 따랐다. 이거대한 행렬의 목적지는 수원 화성이었다. 왕위에 오른 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라고 선언했던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지금의 융릉)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어머니의 회갑을 맞아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가는 행차였지만, 그 이면에는 그간 다져왔던 왕권을 과시하고 정치개혁에 박차를 가하려는 정조의 야심찬 목적이 숨어 있었다. 이날 화려한 곤룡포를 벗고 군복으로 무장한 채 화성의로 향하는 정조의 모습에서 화성 행차의 감회가 어떤 것이었을지 짐작해 볼 수 있다.

한편 2009년 2월에 공개된 '정조어찰첩은 정조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당시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에 있었던 신하 심환지와 주고 받은 비밀서신에서 치밀한 전략가였던 정조의 면면을 볼 수 있다. 거기에 더해 '껄껄대며 '배를 잡고 웃었
다[令人] 와 같은 가벼운 어투로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편하게 표현한 정조의 새로운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정조를 온화하고 부드러운 호학군주로만 기억하는 이들에게 고하는 기막힌 반전이다.

 

반시계 방향으로 융릉 뒤로 크게 돌아 건릉 뒤로 화산을 산책하면 말그대로 산림욕이 된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