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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

아버지 - (2) 한 말씀만이라도 하시소.

by 문촌수기 2013. 1. 2.

아버지 - (2) 한 말씀만이라도 하시소.

아버지는 고통을 인내하시며 잠시 일어나 앉으십니다.
황달로 대지보다 더 누렇게 피골이 상접한 얼굴로 당신의 아들들을 둘레둘레 살피십니다. '한마디라도 하시소.' 마음속으로 아무리 빌어도 아버진 말씀을 아니 하십니다. 어떻게 해야만 아버지의 고통을 들어드릴 수 있을지요. 안타깝기만 합니다.

"아버지예, 많이 아파예?"

다정스럽게 큰형님이 여쭈시면 어린아이처럼 고개만 끄덕이십니다. 간호사가 총총걸음으로 달려와 진통제 링겔을 꽂아드립니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누우신 아버지의 손을 잡고 큰형님은 불경을 읽어드립니다.

"須菩提야........... 凡所有相이 皆是虛妄이니 若見諸相非相이면 卽見如來니라."
수보리야...........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이니 약견제상비상이면 즉견여래니라.
(수보리야,........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니라.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느니라.)

아버지의 고통은 형님의 염불소리에 잔잔해져갑니다. 마치 엄마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아기가 잠들 듯 아버지의 고통은 조용히 조용히 잠드십니다. 형님의 염불도 자장 노래처럼 조용히 길게 이어집니다.

"須菩提야 過去心이 不可得이며 現在心이 不可得이며 未來心이 不可得이니라."
"수보리야 과거심이 불가득이며 현재심이 불가득이며 미래심이 불가득이니라."
(수보리야 지나간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음이니라.)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군입대로 집을 떠나기 위해 큰절로 인사올리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니 마음먹기에 따라 군대생활도 재미있을꺼다. 고통스럽느냐 재미있느냐하는 것은 모름지기 모두가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니 마음 잘 달래가면서 군 생활하도록 하거라. 또한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 큰일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니 고참한테 충성하는 것에 있는 것이고,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딴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니 졸병한테 인정베푸는 것이다. 상하가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면 그것으로 곧 나라에 충성을 하는 것이니 내 말 명심하고 군 생활하도록 하거라. "

"아부지요 그 때처럼 제게 한 말씀만이라도 해주시소. 말씀 한마디만이라도예....."

아버지는 큰형님의 자장 노래같은 금강경 염불에 조용히 조용히 잠만 드십니다.
시간도 잠이 드는 0시가 되어갑니다.
창밖의 차가운 바람이 병실 창문을 비집고 우웅 울어댑니다.

2001. 3. 26 一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