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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1

윤동주하숙집과 풀잎소녀 통인시장에서 인왕산 골짜기 수성동계곡으로 올라가는 누상동 골목길은 참 정겹다. 작은 가게, 음식점, 카페는 눈과 코와 입을 즐겁게 한다. 박노수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고 뜰 안에서 담소도 아름다운 추억의 시간을 마련해준다. 골목을 나와 잠시 걸으면 '윤동주하숙집' 현판과 태극기가 새겨진 동판이 붙은 2층 양옥집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시절 2년 후배 정병욱과 하숙을 하였다.이 하숙집은 당시 조선의 항일작가 김송(金松, 1909-1988)의 집이다. 하숙한 시기는 1941년 5월부터 9월까지 4개월 짧았지만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수성동 계곡을 자주 찾아 시상을 떠올리며 시를 지은 윤동주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이 시기에 '십자가', ‘태초의 아침’, ‘못 자는 밤’, ‘바.. 2018. 12. 23.
한ᆞ중 평화의 소녀상 성북동 인문학 산책의 첫걸음은 한ᆞ중 평화의 소녀상을 만나는 것부터 시작된다. 한성대 입구역 6번출구 버스정류장 작은 가로공원에 있다가, 지금은 2번출구 성북분수공원으로 옮겼다. 여느 곳의 평화의 소녀상과는 많이 다르다. 조선의 소녀 옆에 중국의 소녀가 앉아있다. 겨울이 되면 공감하는 이들이 목도리를 둘러주고 모자도 씌어준다. 나는 동상(銅像)이 아니라 그때를 살았던 소녀의 고통을 상상하며 사람으로 그렸다.2015년 한중 합작으로 이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였다. 일본군의 성노예로 함께 고통받고 숨죽이며 서로를 위로하며 견뎌왔던 친구가 여기까지 찾아왔다. 전쟁 속의 광기가 여성의 인권을 어떻게 유린했는가를 후세에 길이 전해지기 바라며 일본 정부의 일제 만행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를 촉구하는 바이다. ● .. 2018. 12. 23.
엄마의 명언 아침 식탁, 팬케이크와 커피가 차려졌습니다. 뭔가 부족한 듯 느껴서, "메이플시럽 뿌려 먹으면 더 맛있겠다"라 했더니, 순발력있게 아내가 응대를 합니다. "없는 거 찾지마라. 엄마의 명언" ~ 엄마의 명언? 그 순간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울컥 밀려오면서, 엄마가 하신 여러 명언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현자의 말씀이 따로 없었습니다. "니 지금 쬐는 불이 따시단다."는 그 말씀은 '지금보다 나은 그때없고, 여기보다 더 나은 거기는 없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새삼, '엄마의 명언'을 형제들에게 물어 다시 듣고 싶어집니디.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낮에 아내가 장보러가서 메이플 시럽을 사가지고 왔답니다. 엄마의 빈자리를 안사람이 많이 메꾸어줍니다. 2018. 12. 18.
법정스님과 어린 왕자. ■ 법정스님과 어린왕자의 대화 "니가 나를 찾아오다니,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할아버지가 제게 보내신 편지(영혼의 모음, 1971.11)를 이제사 받았어요." "그랬구나. 너를 이렇게 만나다니 정말 다행이구나. 이제 나도 너와 함께 갈 수 있겠구나." "그래요. 내 친구 여우도 같이 갈거랍니다." "그래, 나도 너와 관계맺게 해준 생떽쥐뻬리 아저씨의 와 내 소중한 을 갖고 가야겠다." 2010년 3월 11일 새벽. 어린 왕자가 길상사 행지실(行持室, 지금의 진영각)을 찾아와 마루에서 법정 스님을 만났다. 어린 왕자가 지구를 떠나 제 별로 돌아 온 이후에도 의자에 앉아 늘 석양을 바라보았지만, 법정 할아버지와 함께 한 이후에는, 더 이상 해가 지는 것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지금 길상사 진영각의 왼.. 2018. 12. 17.
심우장의 주인공들 심우장(尋牛莊), 때는 1937년 3월. 아직 잔설에 서늘하다. 그림 속에 세 명의 주인공이 한자리에 만났다. 북정마을의 심우장 언덕 위로 성벽이 보인다. 한양도성 북악산 동북자락 성곽이다. 일제의 패망을 암시하듯 '돌집' 위의 남녘 하늘에는 핏빛 전운(戰雲)이 감돈다. 세 명의 주인공은 만해 한용운, 일송 김동삼, 시인 조지훈. 만해와 일송은 환갑을 바라보는 초로이며 지훈은 아직 감수성 풍부한 열일곱 청춘이다. 그들이 일송 김동삼의 장례식, 심우장 마당에서 만난다. ♡만해 한용운(韓龍雲, 1879 ~ 1944) 일제 강점기의 시인, 승려,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청주. 호는 만해(萬海)이다. 대한민국 사람치고 만해 한용운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만해 선생은 성북동에 자리잡으면서 집을 북향으로 짓게.. 2018. 12. 14.
논어15. 회사후소, 누가 미인인가? 15.회사후소(繪事後素) : 누가 미인인가? 교실에 들어가니 개구쟁이 친구들이 ‘우리 학교에서 누가 제일 예뻐요?’고 대뜸 물었다. “그걸 왜 묻니?”라고 하니 “그냥요.” 아이들이 참 잘 쓰는 말이다. ‘그냥’, 까닭 없이, 목적 없이, 조건 없이, 심심풀이로. 여기에 쉽게 말렸다가는 큰 낭패를 당하고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또 되물었다. “누가 미인(美人)이냐고 묻는 거지?” 여러 명이 동시에 “예!”라고 대답하며 신나했다. “선생님은 말이야, 잘 웃고, 인사 잘하는 사람이 참 예쁘더라. 미소(微笑)와 인사(人事), 이것이 미인의 조건이지 않을까?” 말장난 같이 대답해 놓고선 스스로 만족해하며 으쓱했다. 아이들도 “와아! 맞아요. 정말 잘 웃으시고 인사 잘 받아주시는 선생님이 미인 맞.. 2018. 12. 12.
최순우 옛집, 오수당 뜨락에서 오수당(午睡堂), 낮잠자기 좋은 집! 말만 들어도 위로가 된다. 일 없이 생각 없이 낮잠에 빠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선비가 책베개를 하고 팔베개로 높여서 툇마루에 누웠다. 포근한 햇살을 덮고서 달콤한 낮잠에 빠졌다. 이제 그림은 다 그렸다. 제호를 붙이고 낙관만 하면 된다. 그림 속에도 나무 그늘 아래에서 낮잠에 빠진 선비를 그렸다. 버드나무는 푸르게 늘어지고 복숭아 꽃 향기는 은은하게 전해진다. 이 그림을 '수하오수도(樹下午睡圖)라 제호하는 것은 어떨까' 누워 생각에 잠기다 만족해하며 낮잠에 잠겼다. 이 선비는 누굴일까? 나도 그 자리에 누워 낮잠에 빠지고 싶다. 또한 그렇다.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이라! 밖은 시끄러워도 문을 닫아 버리면 여기가 곧 깊은 산골이구나.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2018. 12. 10.
탐라교육원 연구사님께 감동하다. 올해 초여름 그리고 오늘 초겨울, 제주도 탐라교육원에서 강의. 그 자리를 마련하신 연구사님의 정성에 고마워서 글을 쓴다. 지난 6월의 인문학 강연 때는 보내드린 인문학산책 현장 이미지를 현상하여 로비와 계단에 전시하고, 그림엽서까지 만들어 강의를 들으러 오신 선생님들께 선물로 나누셨다. 이렇게 감동적으로 강연장을 꾸며서 강사와 대상자를 맞이한 강의는 처음이었다. "지극정성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그리고 오늘. 한라산 중산간 지대에는 눈이 내렸다. 택시타고 탐라교육원을 가면서 지난 초여름, 4ᆞ3평화공원에서 만난 슬픈 비설(飛雪) 모자상을 떠올렸다. 그러나 탐라교육원의 풍광에 금방 지워졌다. 강의실을 찾아가는 복도와 로비에 부착해둔 '따뜻한 말 한마디'에 다시 감동했다. 교육자로서 일과 사람을 대하는 정성.. 2018. 12. 8.
아기 예수 오실 때가 되었네 아기 예수 오실 때가 되었네. 아파트마다 대문을 꽃불등을 장식하고 트리도 만들어 밝혔다. 서울 시내 곳곳에도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추운 세모를 따뜻하게 데우고 있다. 서울성모병원에서도 아기 예수 탄생을 기다리는 구유장식을 현관에 꾸몄다. 잠시 앞에서 아픈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지시어 세상의 고통을 치유해 주십사 기도하였다.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는 아담과 이브 대림 4주간을 보라색ㅡ연보라색ㅡ연분홍색ㅡ하얀색 띠로 이어가다 그 끝자리에 아기 예수 누울 요람이 마련되었다. 아직 빈자리. 구세주 어서 오시길 비나이다. "당신의 길을 알려 주시고 올바른 길 걷게 하소서." 2018. 1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