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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20.01.27 다락(茶樂)- 음다오품
  2. 2020.01.27 다락(茶樂), 차호의 삼수삼평
  3. 2020.01.25 시인과 화가 ᆞ 화중유시

다락(茶樂)- 음다오품

이런저런 이야기 2020. 1. 27. 17:28 Posted by 문촌수기

차를 단순히 대화를 위하고 맛이나 약으로만 마시지는 않는다. 차를 마시며 더해지는 즐거움도 많다. 차와 단둘이 데이트하며 오감으로 느끼고 사랑한다면 그것도 행복 더하기가 될 것이다.
누가 다선일미라 했던가? 온전히 차와 마주하면 절로 선(善)해지며, 선(禪ᆞ仙)에 다가간다.

[히비스커스 허브차]

찻물을 내릴 때 채워지는 맑은 소리, 차가 우려질 때 차호 속에서 깨어나는 찻잎의 기지개 펴는 소리를 듣는 귀의 즐거움.
고운 차호와 찻잔을 바라보고, 우려진 차의 투명하고 맑은 색깔을 감상하는 눈의 즐거움.
찻잔을 들어 마시기 전에 먼저 전해오는 차향을 맡는 코의 즐거움.
한모금 머물고 혀를 굴리며 그 맛을 보는 입속의 즐거움.
비운 차호나 찻잔을 감싸쥐고 간직하고 있던 온기를 받아들이는 손의 즐거움.
음다(飮茶)의 품평으로 처음엔 목품(目品)ᆞ비품(鼻品)ᆞ구품(口品)으로 얘기하려했는데 하다보니 이품(耳品)ᆞ수품(手品)을 더해 오품 음다법이 되었다.
어디 음다 뿐이겠나? 커피도 그렇고, 공부도 삶도 사랑도 그럴 것이다. 온몸으로 맞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인품(人品)이 빠진다면 헛되리라.

 (나는 아침과 점심 사이, 오전 10시~11시 경에 마시는 커피가 가장 맛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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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茶樂), 차호의 삼수삼평

이런저런 이야기 2020. 1. 27. 12:24 Posted by 문촌수기

아직 설레임을 갖고 산다는 것은 행복하다.
좋은 차를 기다리다보면 설레고, 우려 처음 마실 때 그 맛이 설렌다. 또한 예쁜 차호를 구해 바라보고 어루만질 때도 더 설렌다.
'완물상지(玩物喪志)'라며 경계하지만, 내 분수에 넘치지도 않는데 이 정도로 내 뜻이 상하랴?
이것도 즐기지 못하면 무슨 낙이 있겠는가?

오늘같이 눈물 가득 머금은 하늘에는 눈이라도 펑펑 내리면 더없이 좋겠다. 그 바램으로 차를 홀짝 마시며 아침부터 차호를 갖고 논다.
새삼 차호를 애무하며, 삼수ᆞ삼평을 이야기한다.

삼수(三水)란 출수, 절수, 금수를 말한다.
출수(出水)는 차(물)를 따를 때 목표지점인 다완이나 찻잔에 포물선을 그리며 한줄기로 시원하게 떨어지는 것을 말하고, 절수(切水)란
는 차따르기를 멈추었을 때 차호 물꼭지에서 찻물방울이 몸통을 따라 흘러내리지 않고 똑 끊어지는 것이 좋다는 것이고, 금수(禁水)란 차호 뚜껑의 공기구멍을 막았을 때 차(물)가 뚜껑 밖이나 물꼭지(출구)로 한방울도 흘러 내리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차호에 따라 공기구멍이 뚜껑 손잡이 꼭지 위에 있지 않을 때는 공기구멍을 정확히 막을 수없다. 그러기에 금수란 차호뚜껑이 차호 입구부에 꼭 맞아서 차호를 기울렸을 때 뚜껑가장자리로 물이 새지 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쁜 것도 좋지만 기능적인 면에서 공기구멍이 뚜껑 꼭지의 맨 위에 있는 것이 좋다. 왜냐면 차우림을 위해 뚜껑을 닫을 때 차호속의 공기가 뚜껑 구멍을 통해 곧바로 빠져나가기 좋기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기와 함께 찻물이 입구부에서 넘치기 쉽상이다.
위의 차호사진 셋 중에서 뚜껑의 공기구멍은 세번째의 나무 옹이모양의 황니(黃泥) 차호 뚜껑이 좋지만, 뚜껑을 잡기에는 첫번째 녹니 차호가 편하고 좋다. 절수 기능으로는 물꼭지가 살짝 기울어진 녹니 차호가 좋다.

이제 삼평(三平)을 말해 본다. 뚜껑을 열고 차호를 엎어둘때, 물꼭지(출수부)와 입구부와 손잡이 윗부분이 수평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아래 사진]
물론 차호를 고를때 절대적 기준이라고는 말을 못하지만, 적어도 물꼭지가 입구부보다는 높아야 찻물을 차호에 가득 담을 수있고, 찻잔이나 다완(공도배)에 따를 때도 안정적이다.

"왜, 차호를 여러개 갖느냐?"고 묻는다.
"그냥, 예뻐서!" 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이런 멋도 부려본다.

"일호불사이차(一壺不事二茶)"
하나의 차호에 두 차를 우리지 않는다.
"진짜로?" 뭐, 대체로 그렇다는 것이다.
황니에는 생차를, 적니와 녹니에는 숙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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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화가 ᆞ 화중유시

이런저런 이야기 2020. 1. 25. 20:14 Posted by 문촌수기

시인과 화가의 우정이 과연 우연일까?
초록 보기
시나 그림은 모두 인간의 인식작용이 사물에 감동하여 일어나는 흥취의 표현인데, 시는 그것을 언어로 그리는 것이고 그림은 그것을 붓으로 그리는 것이다. 한 폭의 그림이 그저 눈을 즐겁게 하는 것 단지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전해 주는 일 뿐이라면, 그림의 존재 이유와 의미는 매우 하찮은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때때로 한 장의 어둡거나 눈부신, 또는 슬프거나 아름다운 그림 앞에서 어떤 내밀한 몽상의 황홀경에 빠져드는 것은 그것이 색채의 구성으로 이루어진 대상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동양회화에 있어서 시(詩)와 화(畵)는 분리되지 않는다. 이러한 시와 그림의 합일은 예술가들이 눈에 비치는 것 이상을 표현하고자하는 욕구와도 부합한다. 동양과 서양은 풍토와 사상 등의 서로 다른 영향으로, 자연관의 근본에 있어서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 동양화는 지(紙)·필(筆)·묵(墨)의 특이성으로 ‘서화일치(書畵一致)’, 또는 ‘시화일치(詩畵一致)’라고 하는 독특한 개념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서양미술을 봐왔던 미적 기준으로 동양미술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특히 소식이 8세기, 왕유의 그림을 평하면서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시중유화 화중유시, 詩中有畵 畵中有詩 )’라고 한 것은 이후 동양화의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 된다. 이 연구의 목적은 화중유시의 명제를 시작으로 시와 회화의 공통성을 연구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그들이 추구하는 경계와 시적 회화를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시정(詩情)들을 분석함으로써 시적인 회화의 정당성과 그 의미를 알아보는 데 있다. 또한 이 화중유시(畵中有詩)의 전통이 이 시대의 새로운 회화적 방법론으로 유효하며 시인이나 화가는 모두 마음속의 시정을 표현하는 동일한 예술가임을 확인하고자 한다.

겸재 정선과 사천 이병연

이중섭과 구상

이상과 구본웅

구본웅(具本雄)과 이상(李箱), 그리고 '목이 긴 여인초상' — VOL.384 조선, 도시의 취향을 품다 ::: 美術世界 MisulSegye
http://www.mise1984.com/magazine?article=1218

 

 

김환기와 김광섭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의 그림에는 <무제>의 제목이 대다수이지만 , 이 그림에는 제목이 있다. 시의 한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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