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생애 그림이야기

논어와 놀기 2020. 10. 31. 20:53 Posted by 문촌수기


공자성적도 공자성적도(孔子聖蹟圖)
~중국 유학의 시조인 공자의 행적을 여러 장면으로 도해한 그림.성적도·공부자성적도·성적지도.

개설
공자는 중국 고대의 사상가로서, 공자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확립된 유학사상은 지난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의 정치와 사상, 문화 등 다방면에 영향을 미쳤다. ‘공자성적도(孔子聖蹟圖)’는 공자의 일생과 행적에서 의미 있는 사건을 뽑아 도해한 일종의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이며, 성적도(聖蹟圖)·공부자성적도(孔夫子聖蹟圖)·성적지도(聖蹟之圖) 등으로 지칭되기도 한다. 성적도의 원천 자료가 되는 최초의 공자전(孔子傳)은 전한(前漢)의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史記)』의 「공자세가(孔子世家)」이며, 같은 책에 실린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도 보조자료로 활용되었다. 초기에는 공자와 노자(老子)의 만남과 같은 특정한 사건이 단편적으로 그려지다가 시대가 내려오면서 생애의 주요 사건과 일화를 수십 폭에 도해한 공자성적도가 만들어졌다.

중국의 공자성적도
공자성적도에 앞서 공자영정(孔子影幀)이 제작되었음이 문헌기록과 현존 유물로 확인된다. 동진(東晋)의 고개지(顧愷之)와 당(唐)의 염립본(閻立本)이 공자상(孔子像)을 그렸다고 하며, 당대 오도자(吳道子)의 석각화상탁본(石刻畵像拓本)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공자의 일생을 여러 장면에 나누어 도해한 공자성적도는 원대(元代) 왕진붕(王振鵬, 1280~1329)에 의해 처음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서 명대(明代)부터 본격적으로 도상화(圖像化)된 성적도가 제작되었고, 화가가 직접 그린 육필본 외에도 목각본, 석각본이 등장했다. 1444년 장해(張楷)는 29장면을 선정해 시각화하고, 각 장면에 『사기』의 내용에서 추출한 설명문과 찬시(讚詩)를 곁들였다. 1497년에도 하순(何珣)에 의해 하정서본(何廷瑞本) 혹은 홍치본으로 불리는 성적도가 제작되었는데, 장해본에 9장면을 추가한 38장면으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이들 작품은 현재 전하지 않으며, 홍치본 계통의 사본(寫本)으로 1506년에 쓴 발문(跋文)이 있는 등문질(鄧文質)의 성적도가 알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홍치본을 계승한 ‘선성소상(先聖小像)’이라는 제목의 성적도가 1598년에 제작되었다.

한편 동시기 최고의 인물화가로 꼽히는 구영(仇英, 약 1509~1551)이 그림을 그리고, 문인 서화가 문징명(文徵明, 1470~1559)이 제사(題詞)를 쓴 작품이 전해지고 있다. 두 권의 화첩에 총 39장면이 실려 있는데, 대다수 명대 성적도와 달리 일부 장면이 새로운 장면으로 대체된 상태이다. 화첩의 말미에는 각각 1538년과 1540년에 쓴 문징명과 허초(許初)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곡부현사(曲阜縣史)』권30 ‘통편(通編)’에 의하면, 1592년 하출광(何出光)이 성적도를 돌에 새겼다고 하는데, 현재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의 공자묘(孔子廟)에 마멸이 심한 상태로 남아 있다. 제1석에 새긴 “성적지도(聖蹟之圖)”라는 표제에 이어 제3석~제8석에 관련 기문(記文)이 새겨져 있고 나머지 제20석까지 총 112장면의 성적도가 새겨져 있다. 이외에 만력연간(萬曆年間)에는 석각본에서 유래한 목각본도 생겨났다.

청대(淸代)의 공자성적도로는 1826년 고원(顧沅)이 간행한 『성묘사전도고(聖廟祀典圖攷)』에 실은 작품이 있다. 고원은 당시 전승되는 본들을 널리 수집해 비교한 다음 오류를 바로잡았고, 기존에 산발적으로 쓰인 각 장면의 제목과 설명문, 찬시 등을 그림과 조합하였다. 1874년에도 만력본의 중간본(重刊本)으로 보이는 성적도가 간행되었는데, 후에 대만(臺灣)의 영역(英譯) 성적도의 저본으로 활용되었다. 이상과 같이 공자성적도는 원대 이후 내용이 증감되면서 지속적으로 제작되었다.

한국의 공자성적도
우리나라에 공자와 제자들의 초상화가 유입된 시기는 통일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수십 폭으로 유형화된 사례는 조선시대에야 알려진 듯하다. 더욱이 현존하는 유물은 모두 18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육필본과 목각본, 인쇄본으로 나뉜다. 그 중 가장 시기가 올라가는 작품은 원대 왕진붕의 성적도를 모본으로 삼아 1700년(숙종 26) 화원 김진여(金振汝)가 비단에 채색하여 그린 10폭의 『공자성적도』(국립전주박물관 소장)이다. 또 다른 육필본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 동원기증품 『성적도』55폭과 성균관대학교박물관의 『성적도』6폭이 있다. 이들 작품은 1741년(영조 17) 이익정(李益炡)이 사행 길에 구해온 공자성적도를 화원이 베껴 그린 모사본(模寫本)의 일부로 생각된다. 그리고 1742년 1월에 완성된 『공자성적도』는 총 104폭이었고, 원본은 청대 여성부(呂聖符)의 그림을 목판에 새겨 찍은 채색목각본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밖에 목각본으로 화성 궐리사(闕里祠)의 104폭짜리 성적도와 성균관대학교 존경각의 『공부자성적지도(孔夫子聖蹟之圖)』 등이 있고, 20세기 이후에 제작된 인쇄본들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과 국립중앙도서관,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등의 소장품으로 전하고 있다.

공자성적도의 내용
공자성적도의 내용은 공자의 탄생에 얽힌 일화를 비롯해 공자의 인품과 외모와 관련되는 일화, 공자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장면, 공자가 성인으로서 혜안을 드러낸 일화, 유학자이자 교육자로서 공자의 풍모를 보여주는 장면 등으로 구분된다. 전체 장면의 수나 구성, 각 장면의 제목 등은 본에 따라 차이가 있다. 사실상 원대 왕진붕본에 이어 38장면으로 제작한 명대 하정서본이 도상(圖像)의 근간이 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하출광본에 이르면 112장면으로 증가하기에 이른다.

하정서본에 실린 38장면의 공자성적도는
·선성소상(先聖小像)·니산치도(尼山致禱)
·기린옥서(麒麟玉書)·이룡오로(二龍五老)
·균천강성(鈞天降聖)·조두예용(俎豆禮容)
·직사위리(職司委吏)·명명영황(命名榮貺)
·직사승전(職司乘田)·학금사양(學琴師襄)
·문례노담(問禮老聃)·재제문소(在齊聞韶)
·안영저봉(晏嬰沮封)·퇴학시례(退學詩禮)
·심행동거(心行同車)·협곡회제(夾谷會齊)
·귀전사과(歸田謝過)·예휴삼도(禮隳三都)
·의주정묘(義誅正卯)·인번거로(因膰去魯)
·광인해위(匡人解圍)·추차동거(醜次同車)
·송인벌목(宋人伐木)·미복과송(微服過宋)
·적위격경(適衛擊磬)·서하반가(西河返駕)
·진정준집(陳庭雋集)·영공문진(靈公問陣)
·자로문진(子路問津)·재진절량(在陳絶糧)
·자서저봉(子西沮封)·작가구릉(作歌丘陵)
·행단예악(杏壇禮樂)·궤수적홍(跪受赤虹)
·서수획린(西狩獲麟)·몽전양영(夢奠兩楹)
·치임별귀(治任別歸)·한고사로(漢高祀魯) 등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공자성적도(孔子聖蹟圖)


1_ 선성소상先聖小像
2_ 니산치도尼山致禱
3_ 기린옥서麒麟玉書
4_ 이룡오노二龍五老
5_ 균천강성鈞天降聖
6_ 조두예용俎豆禮容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print.asp?ctcd=&nNewsNumb=002255100021

주간조선 >

조정육      홍익대 한국회화사 석사, 동국대 박사 수료, 성신여대·동국대 대학원 강의, 저서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 ‘그림공부, 사람공부’

weekly.chosun.com

7_ 입평중학入平仲學
8_ 직사위리職司委吏
9_ 명명영황命名榮?
10_ 직사승전職司乘田
11_ 학금사양學琴師襄
12_ 논목공패論穆公覇
13_ 태묘문례太廟問禮
14_ 대부사사大夫師事
15_ 문례노담問禮老聃
16_ 방악장홍訪樂?弘
17_ 관주명당觀周明堂
18_ 금인명배金人銘背
19_ 재천관수在川觀水
20_ 엽각종노獵較從魯
21_ 주식고금晝息鼓琴
22_ 관향인사觀鄕人射
23_ 태산문정泰山問政
24_ 경공존양景公尊讓
25_ 안영저봉晏?沮封
26_ 퇴수시서退修詩書
27_ 수희분혜受?分惠
28_ 사확상포射?相圃
29_ 무우종유舞雩從游
30_ 궤식흔수?食欣受
31_ 관상지우觀象知雨
32_ 보유수사步游洙泗
33_ 슬경유비瑟儆孺悲
34_ 농산언지農山言志
35_ 사자시좌四子侍坐
36_ 과정시례過庭詩禮
37_ 관기론도觀器論道
38_ 분양변괴?羊辨怪
39_ 배조우도拜?遇塗
40_ 화행중도化行中都
41_ 경입공문敬入公門
42_ 주소정묘誅少正卯
43_ 협곡회제夾谷會齊
44_ 귀전사과歸田謝過
45_ 예타삼도禮墮三都
46_ 사부자송赦父子訟
47_ 인번거노因?去魯
48_ 의봉앙성儀封仰聖
49_ 영공교영靈公郊迎
50_ 적위격경適衛擊磬
51_ 광인해위匡人解圍
52_ 영공문진靈公問陣
53_ 추차동거醜次同車
54_ 서하반가西河返駕
55_ 탈참관인脫?館人
56_ 송인벌목宋人伐木
57_ 충신제수忠信濟水
58_ 호시관준?矢貫?
59_ 미복과송微服過宋
60_ 오승종유五乘從游
61_ 자로문진子路問津
62_ 능양파역陵陽罷役
63_ 지노묘재知魯廟災
64_ 자문금간紫文金簡
65_ 재진절양在陳絶糧
66_ 수어치제受魚致祭
67_ 제계찰묘題季札墓
68_ 초광접여楚狂接輿
69_ 과포찬정過蒲贊政
70_ 자서저봉子西沮封
71_ 산량탄치山梁嘆雉
72_ 명사존로命賜存魯
73_ 자공사행子貢辭行
74_ 자고인서子羔仁恕
75_ 방추지덕放?知德
76_ 무성현가武城絃歌
77_ 작의난조作?蘭操
78_ 행단예악杏壇禮樂
79_ 극복전안克復傳顔
80_ 효경전증孝經傳曾
81_ 독역유감讀易有感
82_ 위편삼절韋編三絶
83_ 금음맹단琴吟盟壇
84_ 망오문마望吳門馬
85_ 평실통요萍實通謠
86_ 상양지우商羊知雨
87_ 골변방풍骨辨防風
88_ 부대전부不對田賦
89_ 시석노군侍席魯君
90_ 유복유행儒服儒行
91_ 귀서천도貴黍賤桃
92_ 관사론속觀?論俗
93_ 세업극창世業克昌
94_ 성문사과聖門四科
95_ 서수획린西狩獲麟
96_ 궤수적홍?受赤虹
97_ 목욕청토沐浴請討
98_ 공자연의孔子延醫
99_ 몽전양영夢奠兩楹
100_ 삼농식해三壟植楷
101_ 치임별귀治任別歸
102_ 애공입묘哀公立廟
103_ 한고사노漢高祀魯
104_ 진종사노眞宗祀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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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tty Little Girl from Omagh

카테고리 없음 2020. 10. 31. 16:19 Posted by 문촌수기

이 곡은 아일랜드 구전 민요를 북아일랜드 출신 가수 다니엘 오도넬(Daniel O'Donnell)이 <Pretty Little Girl from Omagh> 란 제목으로 발표하였으며, 7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오란씨 CM송으로 개사하여, 크게 인기를 얻으며, 제품의 판매에 기여하였습니다.

당시 CM송은 윤석화가 불렀습니다.

다니엘 오도넬은 84년에 <The Boy From Donegal>로 데뷔한 컨트리 싱어로 감미로운 음색으로 많은 팬을 확보하였습니다.

이 곡을 80년에 <너>의 가수 이종용이 <고엽>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습니다.

이종용은 75년에 <너>로 데뷔, <겨울 아이>, <바보처럼 살았군요>등의 히트곡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으나, 현재는 목사로 변신하여, 미국 LA에서 목회활동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 다니엘 오도넬
https://www.youtube.com/watch?v=4S2_01QfllM

Pretty Little Girl from Omagh
Daniel O'Donnell lyrics

Way up in the north in old Tyrone
There's a pretty little girl I call my own
She's the sweetest rose Ireland's ever grown
And sure as the moon and the stars above
I'm falling head over heels in love
With a pretty little girl from Omagh
In the county of Tyrone

There's cute little girls in old Strabane
They're just as pretty in Monaghan
This to every roving eye is known
But I guess that I'd be out of bounds
'Cause there between the northern towns
There's a pretty little girl from Omagh
In the county of Tyrone

She wears my ring and tells her friends
She's going to marry me
Best of all she tells them all
She's happy as can be, oh lucky me

Well, I don't know what she's done to me
There's nothing else my eyes can see
Than the pretty little girl from Omagh
In the county of Tyrone

T'was down in the south in old Tramore
I recall the yellow dress she wore
She strolled along the shore there, all alone
But I guess it was my lucky day
She came there on the holiday
My pretty little girl from Omagh
In the county of Tyrone

She wears my ring and tells her friends
She's going to marry me
Best of all she tells them all
She's happy as can be, oh lucky me

Well, I don't know what she's done to me
There's nothing else my eyes can see
Than the pretty little girl from Omagh
In the county of Tyrone
My pretty little girl from Omagh
In the county of Tyrone



오마에서 온 예쁜 소녀 ㅡ 다니엘 오도넬 가사

티론에서 북쪽 멀리 올라갔지
내 딸이라고 부르는 예쁜 아가씨가 있다.
아일랜드에서 자란 장미 중 가장 달콤한 장미다.
그리고 확실히 달과 위의 별들처럼
난 사랑에 푹 빠지고 있어.
오마에서 온 예쁜 소녀와 함께
타이론 현에서

오래된 스트라베인에는 귀여운 여자애들이 있다.
모나한에서도 똑같이 예쁘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의 눈에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엔 내가 도를 넘었을 것 같아.
북쪽 마을 사이엔
오마에서 온 예쁜 아가씨가 있다.
타이론 현에서

그녀는 내 반지를 끼고 그녀의 친구들에게 말한다.
그녀는 나와 결혼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그들에게 모두 말한다.
그녀는 정말 행복하다, 오 행운아

글쎄, 그녀가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어.
내 눈이 볼 수 있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마에서 온 예쁜 소녀보다
타이론 현에서

T's down in the 남쪽 tramore old tramore. T's down in
나는 그녀가 입은 노란 드레스를 기억한다.
그녀는 혼자서 해안가를 거닐었다.
하지만 그날은 내 행운의 날이었던 것 같아.
그녀는 휴일에 그곳에 왔다.
오마에서 온 예쁜 내 딸
타이론 현에서

그녀는 내 반지를 끼고 그녀의 친구들에게 말한다.
그녀는 나와 결혼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그들에게 모두 말한다.
그녀는 정말 행복하다, 오 행운아

글쎄, 그녀가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어.
내 눈이 볼 수 있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마에서 온 예쁜 소녀보다
타이론 현에서
오마에서 온 예쁜 내 딸
타이론 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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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변에서> 김민기 곡ㆍ글ㆍ노래 

 

김민기의 <강변에서>, 커피여과지에 수채물감

 

서산에 붉은 해 걸리고 강변에 앉아서 쉬노라면
낯익은 얼굴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온다
늘어진 어깨마다 퀭한 두눈마다
빨간 노을이 물들면 왠지 맘이 설레인다

강건너 공장의 굴뚝엔 시커먼 연기가 펴오르고
순이네 뎅그런 굴뚝엔 파란 실오라기 펴오른다
바람은 어두워가고 별들은 춤추는데
건너 공장에 나간 순이는 왜 안 돌아 오는걸까

높다란 철교위로 호사한 기차가 지나가고
강물은 일고 일어나 작은 나룻배 흔들린다
아이야 불밝혀라 뱃전에 불밝혀라
저 강건너 오솔길따라 우리 순이가 돌아온다

라~라라 라라라 노저어라
열 여섯살 순이가 돌아온다
라~라라 라라라 노저어라 우리 순이가 돌아온다
아이야 불밝혀라 뱃전에 불밝혀라
저 강건너 오솔길따라 우리 순이가 돌아온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하모니카로 '강변에서'를 불러보았다.

 

강변에서Bb김민기.m4a
3.86MB
강변에서G송창식.m4a
3.79MB

 

파란 하늘과 붉은 단풍이 어울려 바람에 춤을 춘다. 그렇게 가을 저녁은 보라색으로 물든다. 보라색은 성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럽기도 하다. 김민기의 <강변에서> 노래를 따라가면 세마치 장단에 덩실 덩실 춤추게 되고, 노랫말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미어진다. 열 여섯 살 우리 순이가 돌아온다는 기쁨보다는 늦도록 공장 일하는 고달픈 순이의 삶이 스밀기 때문이다.
김민기는 '열 여섯 살 순이'를 노래하고, 송창식은 '열 아홉살 순이'를 노래한다. 지금 같았으면 고등학교를 다닐 나인데 공장에 다니는 어린 순이의 삶이 서럽다. 순이가 다녔던 공장은 방직 공장일 것이다. 식민지 조선에 처음으로 세워진 공장도 방직공장이었고, 1960년대에서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 근대화의 중심이 되는 산업 또한 방직산업이었다. 시골 마을마다 산비탈에 뽕나무 밭을 일구고, 초가삼간 집집마다 방 한칸이라도 누에치기를 하였다. 어릴 적 내 고향의 모습이었다. 누에치기 방안에서는 들판에 내리는 소나기 소리가 들렸다. 그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 직물을 짜는 방직공장에는 대부분 여공들이 다녔다. 그 어린 처녀들은 집안 살림과 오라버니 학비에 보탬이 되라고 학교 대신에 공장으로 보내졌다. 이 시기에 살았던 내 누이같은 모든 '순이'는 조국 산업화의 일꾼이었다.

 

강화도의 조양방직공장을 모델로 그렸다. 지금은 미술관 카페로 변모하여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조양방직 카페 실내
조양방직 카페 안뜰
조양방직 카페 전경
충주 남한제사 공장 내 작업모습/1960년대, '충북인뉴스'에서
강변시골마을, 높다란 철교 위로 지나가는 호사한 기차는 새마을호 열차일 것이다. 이 마을에는 서지 않았지만 시골 젊은이들에게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서 출세하라고 충동질하는 유혹의 세이렌이었다.
새마을호 열차

 

김민기ㆍ강변에서
https://youtu.be/PqOwmYLZ0Cw

송창식ㆍ강변에서
https://youtu.be/go6qIKWhK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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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 기러기와 찔레꽃

 

이연실의 <찔레꽃>, 이 노래는 동요와 국민 가요의 범주를 넘어서 우리의 민요가 된 것 같다.

<찔레꽃>/ 이연실 가사ᆞ노래 /박태준 작곡 /1972년
“엄마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 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려오시네
밤마다 꾸는 꿈은 하얀 엄마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이연실의 찔레꽃 https://youtu.be/iwBTngQuq9I

이연실의 노래 따라 하모니카 부른다. 괜한 눈물이 난다. 엄마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찔레꽃F이연실.m4a
3.08MB

 

난 어릴 적부터 지금 껏 '엄마 일'을 '엄마 길'로 듣고 불렀다. '엄마 길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엄마 길이 어디길래, 찔레꽃이 피었을까? 무슨 일이길래, 엄마 혼자서 깊은 밤에 하얀 발목 바쁘게 내려오실까? 숲이구나. 산이구나. 타박네처럼 울엄마 젖먹으러 찾아가는 산길이구나. 돌아가신 엄마가 나의 꿈 길을 찾아 내려 오시는 그 길이구나.

돌아가신 엄마 산소를 찾아 올라가는 숲에는 찔레 나무가 많다. 찔레 가시에 찔리고 걸릴까봐서 낫으로 쳐가며 산소를 오른다.
나이 들어 다시 읽어본 노래는 '엄마 길'이 아니라, '엄마 일 가는 길'이었다. '엄마 일'이 뭘까? 물론 살림살이다. 자식키우고 식구들 먹이는 일이었다. 자식 크는 재미와 사랑으로 향기롭지만, 가난하고 고단한 살림에 시린 가시가 더 많았던 삶이었다. 그렇게 엄마는 찔레꽃을 닮으셨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누워 계신 산소는 깊은 숲속 산중턱에 있다. 숲 길을 오르면 엄마 젖냄새가 난다.
엄마 아버지는 나비가 되어 찔레꽃을 피운다. 엄마 아버지는 돌아가셨어도 숲을 살리고 계셨다. 이제 '엄마 일'은 나의 일이 되었다. 자주 찾아뵙고 돌보는 일이다. 그런데 그 일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그리움을 달래려고 '엄마 일'과 찔레꽃을 그린다.

 

숲과 찔레꽃, 커피여과지에 수채물감, 색연필, 파스텔

 

 

 

숲숲숲, 울엄마 잠자리

 

 <찔레꽃> 노래의 원래 제목은 <가을밤>이다. 찔레꽃은 봄 여름에 피는데도 <가을밤>이라고 제목을 한 것은 <가을밤>이라는 원곡에서 곡조를 그대로 가져오고 개사하였기 때문이다. 어릴 적 학교에서 배운 <가을밤>의 노랫말에는 찔레꽃이 없다. 엄마 그리움만 한결 같다.

<가을밤> / 이태선 작사 / 박태준 작곡 /1929년
“가을밤 외로운밤 벌레 우는 밤
초가집 뒷산길 어두워질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가을밤 고요한 밤 잠 안오는 밤
기러기 울음소리 높고 낮을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https://youtu.be/ClDpDYgvQcM

https://youtu.be/69UTftrTK8k

<가을밤>보다 먼저 엄마 그리움을 노래한 같은 곡조의 노래가 또 있었다. 즉 <찔레꽃>, <가을밤>의 윈조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동요인 <기러기>이다.
(공식적으로는 윤극영의 <반달>이 최초의 동요이다.1926년에 발표한 동요집 《반달》 속에 수렴된 반달을 1924년 10월 12일에 만들었다고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대구가 동향인 윤복진과 박태준이 만든 곡이다.

<기러기> /윤복진 작사 /박태준 작곡 /1920년
"울 밑에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
길을 잃은 기러기 날아갑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넓은 하늘로
엄마 엄마 찾으며 흘러갑니다.”

오동잎이 우수수 지는 달밤에
아들 찾는 기러기 울고갑니다.
'엄마엄마' 울고간 잠든 하늘로
'기럭기럭' 부르며 찾아갑니다"

 

 

https://youtu.be/rEz-0l6-IRw

https://youtu.be/ncL1s20Uog0

이 동요가 <가을밤>으로 개사된 이유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해에 작사자 윤복진이 월북을 했기 때문이다.

 

가을밤 기러기, 커피여과지에 수채물감

 

그런데 <가을밤>의 1절 가사는 1929년 12월 7일자 동아일보에 이정구라는 사람의 이름으로 실려 있었다. 이정구도 월북했다. 그래서 그 이름을 쓰지 못하고 이태선의 이름이 작사가에 오르게 된 것이다.

가수 이연실은 1972년, <가을밤>에 새로운 가사를 붙여 <찔레꽃>을 발표했다. 그런데 < 찔레꽃> 가사도 이연실의 창작물은 아니었다. 1930년 이원수(고향의 봄의 작사자)가 지은 동시가 원작이었다.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오 / 언니 일 가는 광산 길에 피었다오/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있지/ 배고픈 날 따먹는 꽃이라오. / 광산에서 돌 깨는 언니 보려고/ 해가 저문 산길에 나왔다가/ 찔레꽃 한잎 두잎 따 먹었다오/ 저녁 굶고 찔레꽃을 따 먹었다오.”

여기서 찔레꽃의 모티브를 가져온 이연실은 더욱 가슴을 저미는 가사로 만들어 청아하면서도 구슬픈 목소리에 실었다.

+이야기 더하기

 

 

<찔레꽃> 여섯 송이를 기르는 노랑나비.
20여년 전이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가슴에 喪章(상장)을 달고 학교에 출근을 하니, 우리 반 한 아이가 "왜 나비 리본을 달았어요?"물었다. 그래서 대답해주기를,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이제 나비가 되셨구나." 이후, 노랑나비를 보면 돌아가신 어버이라 믿게 되었다.

 

 

<기러기> 동요 속의 오동잎을 그리다가, 새삼 알게 되네. 화투에 11자, 똥광 똥쌍피, 이 똥 이파리가 오동(梧桐)나무 잎인 걸, 桐(동)이란 것을! 딸을 낳으면, 시집갈 적에 장롱짜주려고 마당에 심었다는 그 나무. 노래 그림 그리다가 새삼 배우는 게 많아서 재밌다.

 

 

<가을밤> 그림 속 억새밭에 분홍바늘꽃을 그렸다. 집근처 공원에 많이 피었는데 담장가에 심으면 참 예쁘겠다. 암술 끝에 십자가를 달고 있는 모습이 신비롭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여름을 달리면 평원에 분홍바늘꽃과 자작나무의 군락지가 펼쳐진다 한다.

 

 

https://youtu.be/CVKIG51eij0


영화, <하모니>에서 찔레꽃
https://youtu.be/AEeSbQ2c2PQ

https://youtu.be/Syret-0gHT4

제주 4.3 추념식에서 가수 이은미가 부른
<찔레꽃>과 <가을밤 >
https://youtu.be/gipsDe4Cc9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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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귀와 가을산책

카테고리 없음 2020. 10. 4. 11:12 Posted by 문촌수기

김광석의 노래 '그루터기'를 부르고 그리다가 믿음이 생겼다. "숲은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이다. "
슈퍼 올가니즘.
몸뚱아리가 스러져 없어져도 죽은 것이 아니다. 밑동은 남아있고 땅 속 깊이 얼키설키 이어진 뿌리로 생의 에너지를 이어가고 있다.

그루터기 노래그림

숲을 건강한 생명체로 자라게 하는 주인공이 나무겠지마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무대와 에너지원은 땅이고 햇살이다. 땅의 에너지, 地氣를 나도 얻고자 맨발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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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ley Garden

커피여과지 노래그림 2020. 10. 2. 11:54 Posted by 문촌수기

아일랜드의 민요는 이상하리만큼 우리 민족 정서에 맞다. 금새 귀에 익숙해지고 따라 흥얼거리게 된다.
임형주가 부른 'Down by the Salley Garden'은 이별의 회한을 이야기한다는 면에서 우리의 아리랑 정서와 같다. 다만 노래하는 화자가 다르다. 아리랑은 떠나보내는 이가 이별을 원망하고, '샐리가든'은 떠난 이가 이별을 후회하고 있다.

salley 또는 sally는 표준 영어 단어인, sallow(갯버들)의 형태이다. 버드 나무를 의미하는 아일랜드어 saileach 의 소리와 비슷하다.
sal은 '가깝다'는 뜻이고, lis는 '물'이란 뜻으로 水楊버들(foster willow)에 가깝다.

<노랫말 해석>
Down by the the salley gardens my love and I did meet;
She passed the salley gardens with little snow-white feet.
She bid me take love easy, as the leaves grow on the tree;
But I, being young and foolish, with her would not agree.

In a field by the river my love and I did stand;
And on my leaning shoulder she laid her snow-white hand.
She bid me take life easy, as the grass grows on the weirs;
But I was young and foolish, and now am full of tears.

버드나무 정원에서 그녀와 나는 만났네.
눈처럼 흰 작은 발로 버드나무 정원을 거닐며
그녀는 내게 말했지.
나뭇가지에 잎 자라듯 사랑을 쉽게 생각하라고.
그러나 나는 젊고 어리석어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네.

강가 들판에서 그녀와 나는 서 있었네.
기대인 내 어깨 위에 눈처럼 흰 손을 얹으며
그녀는 내게 말했지.
둑 위에 풀 자라듯 인생을 쉽게 생각하라고.
그러나 나는 젊고 어리석었기에,
지금 눈물로 가득하네
~~~~~~~~~~
나는 가사 속에서 'take love easy'와 'take life easy'에 마음이 꽂혔다. "그래, 삶이든 사랑이든 너무 애쓰지 말자. 쉬이 살아도 될 것을....."

Salley gardens(버드나무 정원) 이 노래는 특히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의 시 `An Old Song Re-sung (다시 불러본 옛 노래)`에 가락을 붙인 것으로 유명하다.`Down by the Salley Gardens`가 원래 노래의 제목이다.

버드나무 정원, 커피여과지에 수채물감

 

동탄호수공원에는 호수로 이어지는 개천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면 인공 폭포가 있다. 길게 늘어진 공원 중심에는 개천이 흐르고 주변에는 버드나무가 많다. 물가에 억새와 부들과 수크령이 피어 바람에 흔들린다. 버드나무 아래 피어있는 쑥부쟁이 위에 범나비가 찾아와 쑥스럽게 날개를 젓는다.

범나비와 쑥부쟁이

 샐리가든을 동탄호수공원 안에서 그려보았다.
물가에 풀이 자라듯 바람에 버들 잎이 흔들리듯 쉬이 사랑하지않고 임은 굳이 다리를 건너고 만다. 물따라 흘러가는 삶의 편한 길을 비켜서 좁고 어두운 길을 힘들게 올라간다.

'애쓰지 않아도 되겠건만, 만다꼬 그래 살았노?'

가을이 깊어 가며 버드나무도 단풍들고, 임이 떠난 저 건너 산에도 푸른 빛을 잃고 가을물이 들었다.

Salley Garden



임형주ᆞThy Salley Garden
https://youtu.be/u2hF59MPhtY ~F

https://youtu.be/LFKJc7Op7hA

https://youtu.be/aOtXOyMhW70 ~A

-편하고 익숙한 멜로디다. 우리의 정서에 잘 맞나 보다.
하모니카로 불러본다.

 

Salley Garden.m4a
2.01MB

 

다이아토닉 하모니카 tab
♡[ (3)4 -4 5 /-4 4 -4 /5 6 -6... 6 / 7 6 -6 /6 5 -4.../4 4] (×2)
@[ 6..7../ -7 6 -6 /7 -7 -6 6 / 5 6 -6 6 /5 6 -6 7 -8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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