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정치,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현자를 모으고, 모사꾼을 물리쳐야 한다. 누가 모사꾼인지 어떻게 가려낼까?
먼저, 많이 배웠지만 말이 앞서는 자를 물리쳐야 한다. 그들은 앎과 삶이 다르고, 겉과 속이 다르기 때문이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두 뼘도 되지 않건만 내려가질 못한다. 그러니 손발은 보이지도 않을 만큼 멀다. 밑빠진 독처럼 입으로 다 새어 버리기 때문이다. 구린 내 나는 곳에 구더기 먼저 끼고, 향기 나는 꽃에 벌 나비 찾아 온다. 이것도 결국 군주하기 나름이다.

13‧16 葉公問政. 子曰: “近者悅, 遠者來.”
(엽공문정. 자왈: “근자열, 원자래.”)
섭공이 정치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가까이 있는 자들이 기뻐하며,
멀리 있는 자들이 오게 하여야 한다."

The Duke of Sheh asked about government.
The Master said,
"Good government obtains, when those who are near are made happy, and those who are far off are attracted.’

근자열 원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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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어렵지 않다. 바르게(正) 살면 된다. 나라의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위정자의 영(令)이 먹히지 않는 까닭은 위정자들이 먼저 법을 어기고, 정의롭지 않기 때문이다.
계강자가 정사를 물었을 때 대답하시길,  '政者正也, 정사란 바로 잡는다는 뜻이다.' 라고 하시며, "그대가 바르게 솔선한다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는가?(子帥以正, 孰敢不正ㆍ자솔이정, 숙감부정-안연12.17)"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위정자가 참으로 자신을 바르게 한다면 정치하는 데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자신을 바르게 할 수 없다면 어떻게 남을 바르게 할 수 있겠는가?(苟正其身矣, 於從政乎何有? 不能正其身, 如正人何?-자로13.13)”

그래서 '아이들은 어른이 하라는대로 하지않고, 하는 대로 한다'는 구나. 어른들이 먼저 바른 생활을 하면 될 것을, 잔소리 많고 언성을 높이는 구나. '자식 내 마음대로 안된다'는 말도 맞지만.
노자께서 말씀하신, '말 아니하는 가르침, 하는 일 없어도 다스리지 못할 것 없는 정치(行不言之敎, 無爲而無不治)'가 가능한 까닭이 여기에 있구나.

자로13‧06
子曰: “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 (기신정, 불령이행; 기신불정, 수령부종.)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해지고, 자신이 바르지 못하면 비록 명령하더라도 따르지 않는다."
The Master said,
"When a prince’s personal conduct is correct, his government is effective without the issuing of orders. If his personal conduct is not correct, he may issue orders, but they will not be followed."

기신정 불령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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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십대 제자 중에 자로와 염유는 정사에 밝았다. 이들은 종종 스승에게 정사를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여쭈었다. 자로가 정사를 묻자, 공자께서는 "솔선하며 부지런히 해야 한다(先之勞之)." 더 말씀해 주실 것을 청하자,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無倦)."고 하셨다. 모든 정사가 일반적으로 그러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자로가 이번에는 다르게 질문을 드렸다. "위나라 군주가 선생님을 기다려 정사를 맡기려 하시니, 선생님께서는 장차 무엇을 먼저 하시렵니까?" 선생님께서 중요하게 여기는 정사의 핵심을 여쭌 것이다. 공자께서는 정명(正名)이라고 대답하셨다. 명분을 바로잡는 것이 먼저이다.
이름답게 살아야 겠다. 똑바로 살아야 겠다. 말부터 앞세우지 말아야 겠다.
이름답게 살기는 아름답게 살기

(13‧03) 子曰: “必也正名乎!” .“...君子名之必可言也, 言之必可行也. 君子於其言, 無所苟已矣.”
(자왈: “필야정명호!”
"군자명지필가언야, 언지필가행야. 군자어기언, 무소구이의.”)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반드시 명분을 바로 잡겠다."
" ...군자가 이름을 붙이면 반드시 말할 수 있으며, 말할 수 있으면 반드시 행할 수 있을 것이니, 군자는 그 말에 있어 구차함이 없을 뿐이다."

The Master replied,
What is necessary is to rectify names.’
The Master said,
Therefore a superior man considers it necessary that he names he uses may be spoken appropriately, and also that what he speaks may be carried out appropriately. What the superior man requires, is just that in his words there may be nothing incorrect.’


정명, 고군자명지필가언야, 언지필가행야, 군자어기언, 무소구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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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는 글과 그림이 되는 화가였다. 1930년대부터 문예지에 화문(畵文)을 발표하였다. 옛 선비들의 문인화의 '화중유시'의 전통이 이것이다. 그 중 하나를 덕수궁 석조전 전시회,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에 만났다. 그림 제목은 <소반>, 간단하지만 그 안의 화제(畵題)가 재밌다.

소반, 김횐기

김환기, <소반>, 1958 /환기재단·환기미술관 제공
1958년 파리에서 가족을 그리며 그렸다.
이하, 스크랩ㅡㅡㅡㅡㅡㅡ
그가 프랑스 파리에서 1958년 10월 16일에 그린 작품의 화제(畵題)를 읽어보자. “시월달 깊은 밤에 깊은 밤 시월달에  괴롭고 또 괴롭고 오만가지 생각에/ 깊은 밤 시월달에 시월달 깊은 밤에 깊은 밤에 오만가지 생각에 괴롭고 또 괴롭고.” 이것은 시인가 노래인가 절규인가? 이때 김환기는 김향안과 함께 파리에 있고, 고국에는 어린 세 딸과 노모(老母)가 있었다. 10월이라 추석도 지났는데, 애들은 어찌 지내고 있는지. 장남이라 산소를 돌보는 것도 자신의 몫인데, 벌초는 누가 했는지. 타향에서 괴롭고 또 괴로운데, 그림은 소박한 제사라도 지내듯 과일을 올린 소반을 그려 놓았다. 그의 솔직한 심경을 담은 글, 특히 편지글은 대체로 그립고 괴로운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에 비해 그림은 어찌 이리 서정적일까. 그에게서 그림은, 어쩌면 작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위안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김광섭의 ‘가짜 부고’가 낳은 名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ㅡ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근대미술팀장
살롱 드 경성.
ㅡ 2021.05.15 03:00 | 조선일보

대표작 중 하나인 점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 미국에서 시인 김광섭의 ‘가짜 부고'를 듣고 애도하며 캔버스 가득 푸른 점을 채워 만들었다. /환기재단·환기미술관 제공

2년 전 김환기(1913~1974)의 작품 ‘우주’가 한국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132억원에 낙찰됐다는 소식이 신문지 상을 도배했던 날, 나는 우연히 인터넷 기사 댓글을 보게 되었다. 간혹 이런 댓글이 눈에 띄었다. “말이 되느냐?” “이런 게 무슨 132억원이냐” “그림 값은 사기” “현대미술은 그들만의 리그”….
이런 반응이 이해되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김환기가 살아온 세월, 그의 피땀 어린 노력, 끝없는 고뇌, 뭔가 제대로 된 것을 만들어 내고야 말겠다는 강박에 가까운 의지, 그러한 의지 때문에 쇠약해진 건강, 주변인의 희생, 과로로 인한 사망, 그 모든 것에 생각이 미치면 ’132억원이 대수냐'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작가는 정작 살아생전 그 비슷한 돈도 만져본 적이 없지만 말이다.

◇섬 출신의 키다리 청년
김환기는 전남 신안군 기좌도(현 안좌도), 섬 출신이다. 육지가 그리워 목을 빼다 보니 키가 커졌다고 스스로 농을 하곤 했다. 그의 키는 거의 190cm였다. 지주 집안 자제로 중·고등학교 유학을 가야 했는데, 경성으로 가느니 차라리 일본이 더 가깝게 느껴졌을 것이다. 목포를 거쳐 배만 타면 되었으니까. 긴조중학(錦城中學)을 졸업하고 귀국하자, 집안에서는 더 이상 공부를 하지 말고 가업을 잇기를 바랐다. 김환기는 부친 몰래 수영을 해서 목포로 가는 배를 잡아타고, 밀항으로 일본에 다시 갔다. 그의 의지를 꺾지 못한 모친은 부친 몰래 일본으로 학비를 보냈다.
김환기는 1933년 니혼대학(日本大學)에 입학했다. 그런데 이 대학 ‘예술과’의 학제가 참신했다. 한 학부에서 문학, 철학, 미술사, 미술 실기 등을 함께 가르쳤던 것이다. 예술과 학감을 지낸 일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의 새로운 예술 교육이 희귀한 시도”라서 일본인조차 “수재라기보다 천재를 자부하는 활발한 청년들이 모였다”고 한다. 조선인 중에는 김환기 외에도 시인 김기림과 임화, 화가 구본웅과 박고석 등이 니혼대학 예술과 출신인데, 이들이 모두 문학과 미술에 함께 조예가 깊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원래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갔다고 말할 정도로, 문학에 관심이 깊었던 김환기가 이 학교에 입학한 것은 적절한 선택이었다. 그는 이후 한국의 문학계와 미술계를 연결하는 네트워크의 핵심, 요즘 말로 ‘핵인싸’가 된다.

김환기가 1950년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자화상. /환기재단·환기미술관 제공

◇글·그림 모두 능통한 예술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글과 그림이 다 되는 김환기는 이미 1930년대부터 문예지에 화문(畵文)을 발표했다. “그림 김환기, 시 수화(樹話, 김환기의 호)” 이런 식으로. 그의 글은 그림과 마찬가지로 서정적인 것도 많지만, 흥미롭게도 몇몇 글은 그림과 정반대다. ‘건넛집 부부 싸움 하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하는 수 없이 길을 나섰다’는 내용의 글이 있으면, 같이 딸린 삽화는 거리로 나선 후 노점과 가로수의 모습을 평화롭게 담는 식이다. 글은 괴로운데, 그림은 서정적이다.

김환기 글 그림, 「무제」,『문예(文藝)』 1949.9.
/환기재단·환기미술관 제공

◇서정주, 조병화… 시인을 사랑한 화가
문학을 좋아하고 서정성이 넘쳤던 김환기가 시인을 사랑했던 것은 당연하다. 김광균, 서정주, 조병화, 김광섭 등 여러 시인과 가깝게 지냈다. 서정주의 시를 하도 좋아해서, 프랑스로 갈 때는 서정주 시를 불어로 번역해 시집을 내주겠노라고, 미국으로 갈 때는 영어로 번역해 주겠노라고 부도 수표를 날리곤 했다. 김환기 자신도 그럴 돈이 없으면서. 꼭 그림을 팔아 돈을 많이 벌 수나 있을 것처럼 말이다.

1955년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참담한 현실 앞에서 서정주의 ‘기도’라는 시를 손수 적어 매화 만발한 그림과 함께 발표한 적도 있다. “저는 시방 꼭 텅 빈 항아리 같기도 하고 또 텅 빈 들녘 같기도 하옵니다. 주(主)여. 한동안 더 모진 광풍(狂風)을 제 안에 두시든지 날으는 몇 마리의 나비를 두시든지 반쯤 물이 담긴 도자기와 같이 하시든지 뜻대로 하옵소서. 시방 제 속은 꼭 많은 꽃과 향기들이 담겼다가 비어진 항아리와 같습니다.” 전쟁 후 폐허 속에서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심사위원 자격으로 출품한 작품이다. 모든 것이 텅 빈 시대였기에, 그림은 애써 풍성하다.

김환기의 ‘항아리'(1955). 오른쪽에 서정주의 시 ‘기도’가 쓰여 있다. /환기재단·환기미술관 제공
ㅡㅡㅡ<기도 >- 서정주
저는 시방 꼭 텡 비인 항아리 같기도 하고
또 텡 비인 들녘 같기도 하옵니다.
주여 한동안 더 모진 광풍을 제 안에
두시든지 날으는 몇 마리 나비를 두시든지
반쯤 물이 담긴 도가니와 같이 하시든지
뜻대로 하옵소서. 시방 제 속은 꼭
많은 꽃과 향기들이 담겼다가 비어진
항아리와 같습니다.

시인 조병화에게 선물한 그림 ‘가을'(1955). /환기재단·환기미술관 제공

부산 피란 시절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서 그린 그림 ‘가을’은 김환기가 시인 조병화에게 선물한 작품이다. 환도를 자축하듯, 서울의 상징인 한강과 삼각산, 그리고 광화문을 담은 풍경화다. 정초에 아침 댓바람부터 김환기의 집에서 술을 먹던 조병화가 정오쯤 되니 더는 술이 들어가지 않아 가겠다고 하자, “이 방에서 그림 하나 가지고 가라”고 해서, 조병화가 직접 들고 온 작품이다. 어차피 팔리지도 않는 그림을 김환기는 친구들에게 곧잘 주었다. 본인은 작품을 못 파는 게 아니라 안 파는 것이라고 큰소리를 치면서.

김환기의 성북동 아틀리에 사진, 1955. 조병화에게 선물한 <가을>이 이젤에 놓여 있고, 서정주의 시 ‘기도’가 들어간 작품 <항아리>가 제작 중에 있다. /환기재단·환기미술관 제공

◇가장 존경했던 시인 김광섭
여러 시인 중 김환기가 마음속 깊이 존경한 시인은 김광섭이었다. 김광섭은 1905년생으로 김환기보다 여덟 살 위인 한참 선배다. 와세다 대학 영문과 출신의 수재였는데, 일제강점기 중동학교 교사 시절, 학생들에게 반일 감정을 주입했다는 이유로 사상범으로 몰려 3년 8개월을 서대문 형무소에서 지냈다. 해방 후 ‘자유문학’을 발행했고, 1961년 성북동으로 이사 간 후에 쓴 시 ‘성북동 비둘기’가 대중적으로 유명하다. 김환기와는 성북동 이웃사촌이었다가 김환기가 뉴욕에 건너가 정착한 이후로는 주로 편지로 소식을 주고받았다.

뉴욕에서 점화를 그리고 있는 김환기. /환기재단·환기미술관 제공
1966년 뉴욕에서 김환기가 김광섭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가 이제는 김광섭에게 호화 시집을 내주겠노라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원색 석판화를 넣어서 호화판 시집을 제가 다시 꾸며 보겠어요. 서울에 가지는 날, 그것도 딸라(달러)를 좀 쥐고 가지는 날, 자비 출판하겠어요. 한 권에 3만원짜리 시집을 내야겠어요. 되도록 비싸서 안 팔리는 책을 내고 싶어요. 이런 것이 미운 세상에 복수가 될까.”
1966년에 3만원짜리 시집이라니! 당연히 팔릴 리가 없다. 하지만 어차피 더 싸게 만들어도 안 팔릴 텐데, 이왕 아무도 안 알아주는 일을 할 바에야 마음껏 하고 싶은 멋진 일이나 하자는 생각! 그것이 이 시대 예술가의 오기이고 긍지이며, 김환기 식(式) ‘세상에 대한 복수’였던 셈이다.

김환기가 시인 김광섭에게 보낸 편지, 1966. /환기재단·환기미술관 제공
그러나 아직도 ‘딸라’가 손에 쥐어지지 않던 1970년 어느 날, 김환기는 김광섭이 죽었다는 비보를 뉴욕에서 접한다. 그는 너무나도 큰 실의에 빠져, 김마태(‘우주’를 소장했던 김환기의 후원자 겸 의사)의 집으로 가서, 김광섭의 시 ‘저녁에’를 메모하듯 드로잉했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그리고 점화 한 점을 그려 김광섭에게 헌정하듯,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제목을 붙였다. 밤하늘의 별처럼 검푸른 점들이 빼곡히 가득 찬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서울로 보내져 그해 한국일보 주최 한국미술대상을 받았다.

◇극심한 고통 속에 찍어 내려간 점화
반전이 있다. 실제로 김광섭은 1970년에 세상을 뜨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김환기가 접한 소식은 오보였다. 오히려 이 작품이 제작되고 4년이 지난 1974년, 김환기가 뉴욕에서 먼저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61세였다. 김광섭은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977년, 오랜 투병 끝에 서울에서 생을 마감했다.
김환기의 제자이자 사위인 ‘한국 단색화의 선구자’ 윤형근(1928~2007)은 김환기의 죽음이 ‘과로’ 때문이라고 썼다. 김환기가 병원에서 죽기 15일 전 윤형근에게 보낸 마지막 엽서에는 “한 3년 견뎌왔는데, 결국은 병원에 들어와서 나흘째 된다”고 적혀 있다. 왜 한 3년을 견뎌서 그제야 병원에 간 걸까. 참으로 미련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왜 그런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끝도 없이 점을 찍었을까. 하늘에 있는 별만큼이나 점을 찍을 수 있을 것처럼. 김환기가 일기에 쓴 대로, 그가 찍은 무수한 점은 “하늘 끝에 가 닿았을까.” 우리는 대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 이 글에 소개된 작품 중 일부는 5월 3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는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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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以文會友 - 이상의 아름다운 우정

논어와 놀기 2021. 5. 15. 20:55 Posted by 문촌수기

훨친한 키에 반항적인 외모를 가진 이상과 대조적으로 키가 무척 작은 구본웅의 모습을 보면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친구 같다.(아래 삽화)
본웅은 젖먹이때 척추를 다쳤다. 어릴 적 친구들은 본웅을 꼽추라며 놀렸다. 그런 놀림 속에서도 유일하게 친구가 되어 곁을 지켜준 아이가 있었다. 바로 김해경(金海卿)이다. 해경이와 본웅은 단짝 친구가 되었다. 그 우정은 커서도 계속되었다. 해경은 본웅이 덕분에 이름도 이상(李箱)으로 고쳤다. 성까지 바꾸다니  참으로 이상한 친구다. 畵文之友(화문지우), 그들은 그림과 글을 나누며 아름다운 우정을 이어갔다.

12‧24 曾子曰: “君子以文會友, 以友輔仁.”
(증자왈: “군자이문회우, 이우보인.”)
증자가 말씀하였다.
"군자는 문으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서 인을 돕는다."
~군자는 학문으로 벗을 만나고, 벗을 통하여 仁 행함(사랑나눔, 사람다움)을 돕는다.

The philosopher Tsang said, ‘The superior man on grounds of culture meets with his friends, and by their friendship helps his virtue.’

이문회우 이우보인
시인 이상과 화가 구본웅

구본웅이 그린 친구, 이상의 초상

더읽기>이상의 집과 구본웅과의 우정
https://munchon.tistory.com/1219

오감도, 이상의 집

그가 살던 집 지붕에 까마귀가 앉아 서촌골목길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 집안에 구본웅이 사랑한 벗 김해경이 살고 있다. 장자가 이야기한다.  "날개는 커도 날아가지못하고(翼殷不逝), 눈은 커

muncho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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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忠告善導, 권면하는 친구사이

논어와 놀기 2021. 5. 15. 20:54 Posted by 문촌수기

하나의 몸에 머리가 둘인 새가 있었다. 머리의 이름은 카루다와 우바카루다였다. 두머리 중 한쪽이 잠이 들면 다른 한쪽은 깨어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교대로 서로를 지켜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카루다는 나무에 달린 열매를 보고 혼자 맛있게 먹었다. 잠에서 깨어난 우바카루다는 자기는 아무 것도 먹지 않았는데 배가 불러서 물었다.
“카루다야. 같이 먹어야지, 왜 혼자 먹었어?"
“아니, 우리는 한 몸이니깐, 내가 먹는 것이 결국 네가 먹는 것과 마찬가지 잖아.

이번에는 카루다가 잠이 들었다. 우바카루다는 지난 번 카루다가 혼자서 맛있는 것을 먹어버린 일이 괘씸해서 복수할 생각만 갖던 참이었다. 마침 독이 든 열매를 발견하고 얼른 그것을 먹었다. 우바카루다는 배탈이 나고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카루다도 잠에서 깨어났다.
“우바카루다, 왜 이렇게 배가 아픈거야?”
"지난 번에 맛있는 걸 너 혼자서 먹었잖아. 그래서 복수하는 거야.”
“우바카루다, 너와 나는 한 몸인데, 이렇게 복수하면 너도 같이 죽을지도 몰라.”

결국 둘은 배를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하다가 죽고 말았다. 세상 사람들은 이 새를 공명조(共命鳥)라고 부른다. ‘목숨을 함께 하는 새’라는 뜻이다. '니 죽고 내 죽자'며 싸우는 인간들의 삶이 공명조보다 나을 게 없다. 친구 사이는 우바카루다 같이 '같이 죽자는 사이'는 아니겠지?

12‧23 子貢問友.
子曰: “忠告而善道之, 不可則止, 毋自辱焉.”
(자공문우.
자왈: “충고이선도지, 불가즉지, 무자욕언.”)
자공이 교우에 대하여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충심으로 말해주고 잘 인도하되, 불가능하면 그만두어서 스스로 욕되지 말게 하여야 한다."
~ 知止者賢이라.
Tsze-kung asked about friendship.
The Master said, "Faithfully admonish your friend, and skillfully lead him on.
If you find him impracticable, stop. Do not disgrace yourself."

충고이선도지
공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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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 같은 말 다른 뜻, 達과 聞

논어와 놀기 2021. 5. 15. 20:52 Posted by 문촌수기

분단이 지속되면서 남북한의 말이 달라지고 있다. "일 없습네다."라는 말은 북한에선, "괜찮다."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남한에서는 "소용없다, 필요없다, 상관 말라."는 뜻으로 들린다. 북한에서는 '오징어'를 '낙지'라고 부른다. 낙지 볶음을 주문하면 오징어 볶음이 나온다. 이렇게 말이 같아도 뜻이 다르고, 같은 것을 보고도 말을 달리한다. 사는 길이 다르니 말도 달라지나보다.

제자 자장(子張)이 스승에게 여쭈었다. “선비가 어떠해야 통달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말하는 ‘통달’이라는 게 무슨 뜻이냐?” 자장이 대답했다. “나라에서나 가문에서나 유명해지는 것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건 소문일 뿐, 통달이 아니다."
명예를 구하는 이가 어찌 달인에 이를 수 있을까? 입에서만 머무니 언제 손발에 到達할 수 있을까?
주변에 현자라 자처하며 이름을 구하려고, 학문을 팔아 세상에 아부를 자들이 허다하다. 뜬 소문에 현혹되지 말고 옥석을 가릴 줄 알아야 겠다.

12‧20 子曰: “是聞也, 非達也. 夫達也者, 質直而好義, 察言而觀色, 慮以下人. 在邦必達, 在家必達. 夫聞也者, 色取仁而行違, 居之不疑. 在邦必聞, 在家必聞.” ( 자왈: “시문야, 비달야. 부달야자, 질직이호의, 찰언이관색, 려이하인. 재방필달, 재가필달. 부문야자, 색취인이행위, 거지불의. 재방필문, 재가필문.”)

"이것은 소문이지 달(達, 탁월함)이 아니다. 달이란 질박하고 정직하고 의를 좋아하며 남의 말을 살피고 얼굴 빛을 관철하며, 생각해서 몸을 낮추는 것이니, 나라에 있어도 반드시 통달하며 집안에 있어도 반드시 통달한다.
문(聞, 소문)이란 얼굴빛은 인(仁 )을 취하나 행실은 위배되며 이에 머물면서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니, 나라에 있어도 반드시 소문이 나며 집안에 있어도 반드시 소문이 난다."

(실제에 힘쓰지 않고, 오로지 이름ㆍ명예를 구함에 힘쓰는 자는 덕이 병든 것이요, 거짓이다.- 주자, 정자 주)
The Master said, ‘That is notoriety, not distinction.'
‘Now the man of distinction is solid and straight forward, and loves righteousness. He examines people’s words, and looks at their countenances. He is anxious to humble himself to others.
Such a man will be distinguished in the country; he will be distinguished in his
clan. ‘As to the man of notoriety, he assumes the appearance of virtue, but his actions are opposed to it, and he rests in this character without any doubts about himself. Such a man will be heard of in the country; he will be heard of in the clan.’

達과 聞, 탁월함과 뜬소문

통달함을 distinction으로 번역하였다.
그것은 탁월함이다. 이름을 구하고자 곡학아세하고 자신을 팔아먹는 자는 결코 탁월함에 도달할 수 없다.
"너 자신이 되라."
이 책을 읽어봐야 겠다.

https://www.aladin.co.kr/shop/ebook/wPreviewViewer.aspx?itemid=30027440

평범한 그들은 어떻게 탁월해졌을까 - 평범함과 탁월함을 가르는 결정적 비밀 14가지>

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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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석조전에 가서 봤다.
간 김에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난 가던 굴욕의 길을 따라, 그리고 오래전 동생이 근무한 경향신문사까지 올라가 옛 추억도 더듬었다.

이상의 초상화를 처음 만났을 때, 그 감격과 놀라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내 눈에서 살아있는 시인을 직접 만난 듯.
한참 동안이나 눈을 맞추고 소리없는 대화를 나눴다.

이상의 친구, 곱추화가 구본웅이 그려준 <친구의 초상>
https://munchon.tistory.com/m/1219

오감도, 이상의 집

그가 살던 집 지붕에 까마귀가 앉아 서촌골목길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 집안에 구본웅이 사랑한 벗 김해경이 살고 있다. 장자가 이야기한다.  "날개는 커도 날아가지못하고(翼殷不逝), 눈은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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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웅, 여인

 

황정수, <모던 금강 만이천봉!>

 ㅡ왼쪽으로 쓴 한글, 일본어, 한자, 영어 ,
하나씩 자세히 읽어보면 아주 재밌다.
(『별건곤」 제8권 제7호, 개벽사, 1933.7)
1933년 7월, 개벽사에서 발행한 대중 잡지 [별건곤]의 표지 그림이다. 제목은 '모던 금강만이천봉! 수많은 봉우리 마다 다채로운 상점들이 쌓이고 또 쌓여 높은 산을 이루었는데, 그 중에는 '매소루(賣笑樓) , 즉 '웃음을 파는 집'에서부터 파라마운트 영화관, 약국, 냉면집, 맥주집, 바(Bar), 그리고 특히 카페, 다방이 즐비하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절벽 한 곳에 '자살장'이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인데, 이 자살장에는 이미 한 인물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모든 아수라장의 맨 꼭대기에는 예배당이 자리를 잡았는데, 그 위로는 "천당이 가깝다"라고 쓰인 깃발이 애드벌룬 옆으로 펄럭인다. 1930년대 한국사회는 지금의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병리학적 특성을 이미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 도안은 증명하고 있다.

구본웅의 그림들

구본웅의 여행가방, 왼쪽 상단에 자신의 웅(雄)자의 초서 서명을 직접 긁어 새겼다. 영어 필기체 esg를 닮은 듯.

가톨릭소년 잡지 표지 그림은 에 이상의 그림이다.
이상(김해경)의 본래 꿈은 화가였단다. 친구가 본격적으르 시를 써보라 권하면서 시인의 길을 걸었다. 특히 수필가 이태준은 친구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독자들의 온갖 비난을 무릎쓰고 이상의 시, <오감도>를 조선증앙일보 게재를 계속 이어나갔다.

이상의 자화상

 

 

김소월, 진달래꽃
정지윤, 백록담
백석 시집, 사슴 ㅡ 윤동주가 모두 필사했다던..
향일초
무서록
상허 이태준, 문학독본
구상의 시집 ㅡ 이중섭의 친구죠.
윤동주의 시집
서정주의 시집, 귀촉도 ㅡ 아! 나의 애송시
석조전, 국립현대미술관ㅡ덕수궁 분소
러시아공사관 터, 한국가톨릭 수도원첫자리
덕수궁 앞, 시청광장 너머 빌딩 숲속에 잠긴있는 황궁우, 환구단 터ㅡ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하늘에 제사를 올린 곳, 그러나 하늘은 기우는 대한제국을 구해주지 못했다. 스스로 지키지 못하니 하늘에 빌어도 소용없다.
당신의 꽃말은? ㅡ '다음'의 꽃검색 기능으로 셀카를 찍어보셔요. 강추!

버스를 기다리며 ..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문사철예, 인문학 산책도 즐기고 노래도 부르며,
애창곡,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와 옛사랑
커피여과지 노래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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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연가, 덕수궁 돌담길을 노래하고 싶다.

눈 오는 날이면 생각나는 길, 덕수궁 돌담길, 정동골목 언덕길. 동생이 고향을 떠나 총각때부터 18년 동안 생활했던 경향신문사를 찾아 올라갔던 그 골목길. 함께 걸었던 추억을 떠올려본다.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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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장 차이란다. 그것을 가르는 기준은 뭘까? 천재와 게으름뱅이도 많이 닮았다. 그럼, 무엇이 다를까? 그 차이는 '선택 의지의 자유' (freedom of Willkür)에 있다. 천재에게는 스스로 선택하는 게으름과 바보짓이 있다. 그것 이외에는 모든 것이 다 귀찮고 의미 없다. 오직 자기 세계에 몰입하는 바보가 되고 게으름뱅이가 된다. 선택한 게으름은 삶에 여유를 주고 머리 속에 상상력을 심어 준다. 작은 씨앗의 상상력이 자라면서 위대한 창작과 발견을 할 수 있었다.

공자님은 참 부지런하셨나 보다. 맹자는 감히 공자를 평하면서,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고,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셨다.'(학불염이교불권) 고 말했다.
공자에게는 제자가 많았다. 제자들은 제각기 재능이 있었다. 그 중에 재여(宰予)라는 제자는 언변이 뛰어났다. 하지만 행실이 좀 더디고 게을렀던 모양이다. 재여가 낮잠을 자자 공자가 말했다.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더러운 흙으로 된 담장은 흙손으로 다듬을 수 없다. 내가 재여를 어찌 나무라겠는가?”
宰予晝寢, 子曰, “朽木不可雕也,
糞土之牆 不可杇也, 
於予與何誅?” 
(재여주침, 자왈, 후목불가조야,
분토지장 불가오야, 어여여하주) (공야장5-9)
얼마나 게을렀으면 이런 야단을 맞을까?

그러나 선택적인 게으름은 필요하다. 게으름에서 창의성이 발현된다. 주변을 둘러보라.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 것이 정말 무엇인지?
게으름 덕분이다.

12‧14 子張 問政.
子曰: “居之無倦*, 行之以忠*.
(거지무권 행지이충)
자장이 정사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마음 두기를 게으름이 없어야 하고,
행하기를 충심으로써 해야 한다
."
(*無倦~始終如一 / *以忠~表裏如一)
Tsze-chang asked about government. 
The Master said,
"The art of governing is to keep its affairs  before the mind without weariness, 
and to  practise them with undeviating  consistency.
"

거지무권, 행지이충

 더읽기> 후목불가조야와 김홍도의 게으름
https://munchon.tistory.com/m/1398

0509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다.

단원 김홍도는 왕유(王惟)의 전원락(田園樂) 싯구를 가져오면서 수하오수도(樹下午睡圖)를 그렸다. 그림 속에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고면거사(高眠居士)'라는 자호를 가진 걸 보면, 낮잠을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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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우수성 ㅡ 한글박물관

교단 이야기 2021. 5. 7. 18:30 Posted by 문촌수기

한글 박물관을 찾아
새삼 한글 공부를 하고 왔습니다.
학창시절 배웠던 이두 향찰...
시험치기 위해 공부했던 것은 하나도 기억나질 않고 재미도 없었는데, 나이들어 새삼 공부하니 재미도 있네요.
이제 철이 드나 봅니다. 아니, 한가해서 그런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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