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준비 : 왜 북대문은 숙정문인가? - 숙정문과 홍지문

2011년 4월 9일 오후 5:05공개조회수 32 1

2차 예상 탐방로 : 와룡공원 - 숙정문 - 북악산 곡장 - 창의문 - (석파정-세검정-홍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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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정문에서 본 수선전도(1840년, 한양도성) - 4대문, 4소문, 4궁궐



인의예지 - 북대문은 왜 홍지문이 아니고, 숙청문(숙정문)인가?

인의예지(仁義禮智)의 4덕을 따라 서울 도성의 4대문 이름을 지었건만, 북대문 만큼은 변화를 주었다. 조선 건국의 브레인 당대의 석학인 정도전이 4대문의 이름을 지을 때에 북대문의 이름을 소지문(炤智門)으로 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었지만 최종 낙점은 숙청문(肅淸門)이 되었단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숙종 때 지어진 도성의 2차 방어선인 탕춘대성의 홍지문(弘智門)안에 지(智)의 덕목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북대문을 홍지문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잘못이다. 북대문의 원래 이름은 숙청문(肅淸門)으로, 도성 북쪽에 있는 대문이라 하여 북대문·북문 등으로도 부른다. 오행의 북쪽 방위에 해당하는 덕은 지(智)이다. 음양오행에서의 북(北)은 겨울과 물과 음기를 상징한다. 그런 의미로 애써 해석하자면, 청(淸)자 속에 삼수변이 들어가니깐 북(北)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지(智)를 사용하지 않고 청(淸)자를 쓴 것은 경복궁에 외척(外戚)의 발호를 미리 방지하기 위함이 아닐까? 여란(女亂)를 차단하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설도 있다. 정도전이 아니면 누가 이 미스터리를 정확하게 해결할 수 있을까?


[북대문, 숙정문의 역사]

숙청문이 숙정문으로 바뀐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으며, 숙정문이 처음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1523년(중종 18)이다. 숙정문 외에 북정문(北靖門)이란 표현도 나오는데, 숙청문과 숙정문이 혼용되다가 뒤에 자연스럽게 숙정문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숙정문도 많은 사연을 가진 문이었다. 태조 4년(1395)에 처음 건립되었으나 태종 13년(1413)에 최양선이 주장한 '백악산(북악산) 동령과 서령은 경복궁의 양팔에 해당하므로 여기에 문을 내어서는 안된다'는 의견에 따라 창의문(자하문)과 함께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사람들의 통행을 금하였다고 한다.



원래 이 문은 높은 산 중턱에 있어 길이 매우 험하며 문을 나서면 북한산이 앞을 가로막아 동쪽으로 성북동 골짜기로 내려와 동소문(혜화문) 밖 경원가도로 나오는 길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어 서울에 들어오는 데에는 동소문(혜화문)을 거치는 것이 더욱 빠르고 편리하므로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이 문을 폐쇄하여도 아무런 지장이 없어서 영구히 닫아두었다. 다만 가뭄이 심할 때에 이 문을 열고 숭례문을 닫는 풍속이 있었다. 이것은 북은 음이고 남은 양인 까닭에 가뭄 때 양을 억제하고 음을 돋우는 음양오행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숙정문을 열어놓으면 장안의 여자가 음란해지므로 항상 문을 닫았다는 속설도 전하는데, 그것은 숙청문이 여자의 방위인 북쪽에 있기 때문이다.(북쪽은 음의 기운이 강한 곳이다.)

숙정문은 다른 대문들과는 규모 면에 있어 그 크기가 현저히 작다. 항상 닫혀 있어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숙정문을 대신하여 창의문을 북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1976년 대통령의 명으로 북악산 일대의 성곽을 복원할 때 함께 복원되었다. 이 일대는 1968년 1·21 사태 이후 청와대 경비를 위해 일반인의 접근을 금지하다가, 2006년 4월부터 서쪽 성곽 0.5㎞, 북쪽의 진입로 0.6㎞ 구간과 함께 다시 일반에 개방하기로 하였다.

북악산 도성길 - 저 멀리 보이는 산이 관악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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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문

창의문은 한양 도성의 북소문이다. 고양군, 양주군 방면으로 통하는 문이었으며,'자하문(紫霞門)'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태종 16년(1416)에 이 길을 통행하면 왕조에 불리하다는 풍수지리설에 의해 문을 닫아 두었다가, 중종 원년(1506)에 다시 열었다고 한다. 인조반정(1623) 때는 세검정에서 모의했던 반정군들이 이 문을 부수고 궁안으로 들어가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왕위에 앉혔다고 전한다. 창의문의 서쪽 벽에는 인조반정 때 공을 세운 공신들의 이름을 새긴 현판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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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춘대성과 홍지문 - 한국 위키백과

탕춘대성의 [홍지문]

홍지문과 탕춘대성은 서울 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기 위하여 쌓은 것이다. 홍지문은 한성(漢城)의 북쪽에 있는 문이므로 한북문(漢北門)이라고도 하였으나, 숙종이 친필로 '弘智門'이라는 편액을 하사하여 달면서부터 이것이 공식적인 명칭이 되었다.

홍지문은 숙종 41년(1715)에 건축되어 1921년까지 탕춘대성문으로 그 역할을 다하였으나 1921년 홍수로 붕괴되어 50여년간 방치되어 왔다. 이에 서울특별시에서 1977년 탕춘대성과 함께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복원하였다. 현판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쓴 것이다. 화강암으로 중앙부에 월단(月團, 아치)이 꾸며지고, 그 위에 단층 문루가 세워져 있다. 석축 윗 부분 둘레는 여장(女牆)이 있고, 문루는 평면이 40㎡로 우진각 지붕이다. 홍지문 북쪽으로 홍제천(모래내, 사천)을 가로질러 홍지문과 같이 설치하였던 오간대수문(五間大水門)도 1921년에 홍수로 유실되었으나 1977년 홍지문 복원 때 길이 26. 72m, 폭 6.8m, 높이 5.23m, 수구 폭 3.76m, 수구 높이 2.78m의 5간의 홍예교(虹霓橋)로 복원하였다.

탕춘대성은 인왕산 동북쪽에서 시작하여 북쪽의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가 사천을 지나 북한산 서남쪽의 비봉 아래까지 연결하여 축성한 산성이다. 이 산성의 명칭을 탕춘대성이라고 한 것은 현재 세검정이 있는 동쪽 약 100여m 되는 산봉우리에 탕춘대(蕩春臺)가 있었던 것에서 연유한 것이며, 한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성(西城)이라고 하였다. 왜란과 호란 속에서 서울이 함락되며 갖은 고초를 겪은 조선왕조는 전쟁이 끝난 후 국방은 물론 유사시에는 수도를 방위하기 위한 온갖 노력을 경주하였다. 효종(1649∼1659 재위), 현종(1659∼1674 재위)을 거쳐 숙종 때에 이르러서는 수도방위에 더욱 치중하였다. 숙종은 재위 30년(1704) 3월부터 도성 수축공사를 시작하였고 이 공사는 6년 후인 숙종 36년(1710)까지 계속되었다.

도성 수축공사를 끝낸 숙종은 왕 37년(1711)에는 북한산성을 축성하였고 다시 탕춘대성을 축조하게 되었다. 이 탕춘대성을 축조하자는 논의는 이미 숙종 28년(1702)에 신완(申琬)이 제의하였다. 그후 탕춘대성은 숙종 44년(1718) 윤8월 26일부터 축성하기 시작하여 10월 6일까지 40일간 성 전체의 약 반을 축성하고 일단 중지하였다가 다음해 2월부터 다시 축성하여 약 40일 후에 완성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탕춘대성 전체의 길이는 약 4km였음도 알 수 있다. 성내에 연무장(鍊武場)으로 탕춘대 터(오늘날 세검정초등학교)에 연융대(鍊戎臺)를 설치하는 한편, 비상시를 대비하여 선혜청(宣惠廳) 창고와 군량창고인 상·하 평창(平倉)을 설치하였다. 그 후 탕춘대성의 축성과 함께 그 성안을 총융청(摠戎廳) 기지로 삼고, 군영도 배치하였다.

탕춘대성은 축성을 담당했던 관아나 또는 축성역, 축성 방법, 축성 경비 등에 관해서는 일체의 기록을 찾아볼 수 없으므로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으나 다른 성의 축조와 마찬가지로 군문(軍門)에서 담당하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현존하는 탕춘대성은 도성이나 북한산성과 같이 주 성벽과 여장(女墻)을 쌓았으며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일정한 간격으로 성구(城口)를 뚫어 놓았다.



석파정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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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고종(재위 1863∼1907)의 친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별장으로 원래는 김흥근의 소유였던 것을 고종 즉위 후 대원군이 사용하였다. 한국전쟁 후 고아원·병원 등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개인소유 건물이다.
정자의 앞산이 모두 바위라 대원군이 ‘석파정(石坡亭)’이라 이름지었으며 삼계동 정자라 하기도 한다. 커다란 바위와 바위산에서 흐르는 시냇물, 뜰에 서 있는 소나무를 배경으로 한 석파정은 매우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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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검정 (브리태니커)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4호. T자형 3칸, 팔작지붕 건물이다. 기록에 의하면 세검정은 1747년(영조 23)에 건립되었다고 하며, 원래의 정자는 1941년에 소실되고 현재의 건물은 1977년에 복원된 것이다. 명칭의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이귀(李貴)·김류(金瑬) 등이 이곳에 모여 광해군의 폐위를 모의하고, 거사 후 이곳의 맑은 물로 칼을 씻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현재 북악산 남쪽 기슭 백운대에서 이어지는 사천계곡(沙川溪谷)을 중심으로 한 세검정 주변 일대는 경관이 아름다운 풍치지구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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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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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 와룡공원에서 흥인지문(동대문)까지

2011년 4월 9일 오후 2:15공개조회수 26 0

서울도성 탐방
1차 여정은 북악산 코스 : 와룡공원에서 북대문(숙정문)을 거쳐 북소문(창의문)으로 내려오는 코스 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꼼꼼이 '신분증 지참!!' 을 강조하지 않는 바람에 일행중,
신분증 없는 분들이 계셔서 하는 수 없이 거꾸로 (아니, 시계 정방향으로) 돌았습니다.

'와룡공원에서 동대문까지.....'
그래도 나쁠 것도 없구요. 아니 처음 시작을 축하하듯 날씨도 좋구요.
교장 선생님께서는 사모님과 함께 오셨구요.

아가씨선생님은 친구 둘을 데리고 같이 참석했습니다.

2차에 다시 북악산, 숙정문 코스를 시작하렵니다.

또!!! 신분증 주의!!! (이곳은 청와대 뒷 산, 아직 신분증 확인구간이라..)

1차 코스 사진 몇 장을 담아봅니다.

* 지하철 안국역에서 02번 마을버스를 타고 성균관대학교 후문에 내립니다.
그런 다음, 서울도성 성곽 와룡공원까지 걸어 올라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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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룡공원에서 말바위안내소까지....잠시 성 밖의 오솔길을 걸어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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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바위안내소 오르는 길에 북쪽으로 내려다 본 서울 - 성북동 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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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흐.... 말바위 안내소에서 북악산으로 오를려면 개인 신분증이 꼭 확인되어야 하는데...
저의 면밀하지 못한 안내로 일행중 신분증 소지 않은 분들이 계셔서 하는 수 없이 북악산을 내려옵니다. 그러나 여정은 포기하지 않고. 흥인지문(동대문)까지 가기로 하였습니다.
따스한 봄 햇살에 나무에 새순이 돋고 꽃 봉오리가 작게 여물어 갑니다.
다음 여정에는 예쁜 꽃들을 볼 듯한 기대에 부풉니다.
와룡공원에서 경신고등학교 쪽으로 내려오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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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곽은 끊어지고. 우리 일행은 도로 건너 경신고등학교 뒷 담장에 눌린 성벽을 놓치고.
오른쪽으로 보행자길을 따라 내려 갔습니다. 서울과학고등학교 정문도 지나고, 한참을 내려가서 혼란스러워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도통 몰라요. 정신을 차리고 [서울성곽안내지도]를 꼼꼼이 살피니 아하!!! 잘못 내려왔네요.길을 건너 다시 올라갑니다.
경신고등학교 정문을 지나 옆담을 지나 그제서야 뒷담을 따라 들어가는 골목길을 발견했습니다.
돈까스 식당(서울왕돈까스) 앞에서 호객군을 만나서야 확인했습니다.

- 참으로 서울시청과 종로구청이 야속합니다.
아니, 이런 문화적 역사적 유적지에 안내표지 하나 없다니.....

"서울 도성길, 바로 길 건너 경신고등학교 뒷 담에서 이어집니다."

정말 나빳어!!! (이런 말해도 되나?)

아니, 돈까스 식당도 그래!!! 식당 간판에

'서울도성길!!! 이곳에서 부터 계속됩니다.'
'성곽길도 돈까스 먹고 부터'


좀 써 두면 안되남!!!!! 잠시 부탁을 드렸는데...
귀담아 들으시고 부탁을 들어주셨는지.

[서울 도성은 경신고등학교 뒷 담에 눌려있네요. 왜 이리 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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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학고:'예지의행(슬기로운 지혜, 의로운 행동)' - 정면에 보이는 학교는 서울국제고.
선생님들 아니랄까봐, 길 잃은 줄 모르고 여러 학교들 탐방하고 있네요.
역시 프로들이죠. 인생, 꼭 정해진 길이 있나요. Life is Good!! 쌩뚱!


아니, 여기까지 내려 올 줄이야. 그제서야 이게 아닌데.....
정신차려 안내지도를 보고 다시 올라갑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송시열 선생 집터] 입구(?)도 확인하구요.



* 경신고등학교 뒷 담은 서울 성곽 위를 타고 있네요. 분명 그렇죠? 어쩌다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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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는 어딘지??? 혜화동 두산빌라? 서울시장 공관?
성곽을 짓누른 담장하며 담장에 얹힌 철창하며...도둑놈 소굴 같네. 아니, 죄송.
철창살이 마치 감옥 같아서.....특별히 누굴 칭한 건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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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성은 교회도 마다 않고...그렇게 역사는 켜켜이 쌓여가나 봅니다.
이걸 되돌려 놔야 하나? 그냥 그대로 흘러가야 하나? 어떡 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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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혜화문(동소문) 입니다. 이 곳 또한 찾아 들어가기가 친절하지 않네요.
작게 열려 있는 철문 옆에 '혜화문 안내소' 표지가 있어서
'들어가도 되나?, 혜화문은 어디로 가지?' 라고 생각하면서, 일단 들어가보자 하고 들어갔지요.
혜화문 안 입니다. 술 취한 듯한 안내지기의 침 튀기는 안내 열변을 들었습니다.
이 곳에 세워서는 안된다고....원래대로 도로 한 복판에!!!??? '뭐, 어쩌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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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로타리에서 한성대입구역 넘어 가는 길. 이 길 위에 본시 혜화문이 있어야 했다네요.
그런데 이 많은 차들은 어떡하고요. 바로 길을 건널 수 없어서또 한참을 돌아서 오게 되네요.
한성대입구역으로 들어가서길을 건너 되돌아 옵니다.
그나마, 우리가 찾은 길이 더 좋을 듯 합니다.종로구청 발간 [안내지도]에는 '한성대입구역'에서 나와'S-Oil' 주유소 뒤로 난 주택골목 '천사1길'로 가라 하는데...
우린 그냥계속 큰 길을 올라 혜화문 바로 맞은 편에서 시작되는 서울 성곽 길을 찾았습니다.

이 길로 예쁜 육교를 놓으면 어떨까요? 도성의 성곽 모양으로 말이죠? 턱도 없는 소린가요?
함 해봐요. 서울 도성길을 전 국민적 걷기의 길로, 전 세계적인 걷기의 길로 만들어 보지 않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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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화문(동소문) 입니다. - 뭐라고 하던데...본시 이름은 혜화문이 아니었다가???
어쩌고 저쩌고 열변을 토하셨는데 ... 다음에 공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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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화문 건너에서다시 아름답고 고풍스런 서울성곽길이 흥인지문까지이어집니다.
풍수설에 의하면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의 성곽이죠. '타락산(駝酪山)'이라 했던가요?

* 타락산의 유래 :
- 산의 모습이 낙타(駱駝) 등처럼 볼록하게 솟았다고 ‘낙타산(駱駝山)’이라는 설
-궁중에 우유(타락)를 공급하던 젖소목장(유우소)이 있던 곳이어서 ‘타락산((駝酪山)’이라는 설.
-
불교의 관음보살이 거주하고 있는 보타락가산(補陀洛伽山)에서 유래했다"는 설
강원도 낙산사의 '낙산'의 유래와 같음. 서쪽의 우백호 인왕산이 불교의 설에서 유래했으니,이 설이 유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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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평화롭고 아름다운 길입니다. 높지 않은 낙산을 오르는 길입니다.
우리 일행 중선두는 보이지 않고 한 두명씩 각자 봄햇살을 즐기면서 두런 두런 걷습니다.
청춘은 아름답습니다. 유-투브에 올리려나? 기타 치고 노래하며 동영상 촬영하고.....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 서울 성곽, 좌청룡 -'낙산 공원'입니다. 암문으로 해서 성안에 들어온 셈이죠.
성안은 이화동이고 성밖은 삼선동 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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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산 공원에서 잠시 휴식을 즐기며 일행을 다시 만나 간식을 나눕니다.
젊은이들은 어데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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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산(공원)에서 흥인지문 내려오는 길은 성곽 바깥길을 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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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오늘 여정의 목적지인 흥인지문에 도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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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인지문(동대문) 주변은 정신없이 바쁘네요. 차들하며, 오토바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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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시장에서 청계천을 건너면 평화시장이 나옵니다.이 다리를 '전태일 다리'라 합니다.
오늘도 그는 힘겹고 일없는 노동자의 삶을 말없이 바라보고 서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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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탐방 여정길(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북악산 말바위안내소-와룡공원-창의문-낙산공원-흥인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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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건강&공부 프로젝트 - 서울도성, 4대문탐방 안내

2011년 4월 7일 오후 10:01공개조회수 69 0

함께하는 건강&공부 프로젝트!!

“서울 도성, 4대문 탐방”

1. 목적 : 자신의 건강, 교육 자료 탐방 및 학습, 행신교육 가족들의 친목

2. 일시 : 2011. 3. 26(놀토)부터 연중 ~ 6월 말 / 토요일 또는 일요일

3. 대상 : “회원제 아닙니다. 그냥, 그때 마다 누구나 같이. 가족들도 함께”

4. 회비 : 없습니다. 그냥 점심 또는 저녁이나 같이 먹자구요. 간식은 동료를 사랑하는 마음!!

5. 주관 : 뭐, 주관이라기 보다도... 연락처 : 황보근영 010-3047-**** (미리 연락주시면 더 감사)

6. 조선의 도성, 한양(서울)은 “도덕과 오행의 풍수”에 의해 계획되었답니다. 우리의 서울은 그야말로 동양철학의 백과사전입니다. 종묘와 사직? 좌청룡 우백호? 풍수와 5행? 그리고 4대문, 4소문 !! 함께 같이 공부해봐요. 안내자료 배포 - 종주스탬프, 완성자 기념배지 증정(종로구청 제공)

오행

방위

색깔

계절

주신

도덕덕목

4대문

풍수지리

목(木)

춘(春)

(좌)청룡

인(仁)

흥인지문

낙산

화(火)

하(夏)

(남)주작

예(禮)

숭례문

목면산

토(土)

중앙

수확기

황조

신(信)

보신각

경복궁

금(金)

추(秋)

(우)백호

의(義)

돈의문

인왕산

수(水)

동(冬)

(북)현무

지(智)

숙정문

북악산

7. 일정 : 여정이 길 경우, 놀토 오전부터 / 아니면 그냥 계발활동 토욜 / 또는 일욜

일기와 그때 그때 사정에 따라서 변경될 수도 있겠습니다.

회차

일시

요일

집합역 - 여정 - 해산역

특별

여정

보행

거리

(km)

탐방

보행시간

1차

3월 26일

놀토

안국역(9시30분)->와룡공원~숙정문(북대문)~창의문->경복궁역 (1시경 점심)

고궁박물관

3.5

2시간

집합

9시 30분,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

02마을버스 정류장 집합!! 버스타기

(=> 성균관대 후문하차 !! 출발!!!) ~ 와룡공원

* 꼭 신분증 지참!!!

이번엔!! 북악산길 - 계단

등산화가 좋을 듯!!, 간식

경복궁역 근처에서 점심

2차

4월

놀토

경복궁역->창의문(북소문)~인왕산~사직공원->경복궁역

사직공원

3.8

2시간 30분

3차

4월

또는

독립문역->독립공원~돈의문터(서대문)정동교회~소의문터(서소문)~숭례문->광역버스 또는 서울역

서대문형무소

남대문시장

2.4

2시간

4차

5월

놀토

광역버스 또는 서울역 -> 숭례문(남대문)~안중근의사 기념관~남산공원~장충체육관->동대입구역

안중근의사기념관

4.6

3시간

5차

5월

또는

동대입구역->장충체육관~광희문~흥인지문(동대문)~~낙산~혜화문(동소문)->혜화역(대학로)

대학로문화

(연극관람)

3.0

2시간

6차

6월

또는

한성대입구역->혜화문(동소문)~와룡공원~(길상사)또는 (성균관 명륜당)

길상사

또는 성균관 명륜당

1.2

1시간

 

8. 안내지도 (1차와 2차는 부득이 코스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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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한양도성-북악산성 곡장에서 그리다.

2010년 5월 8일 오전 10:20공개

 

 

북악산성 곡장에서
- '느리게 살기'가 유행한단다. 그동안 디카를 들고 그저 빠르게 스쳐 지나간 나날이었던 것 같다.
이번엔 처음으로 작정하고색연필을 가져갔다.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딸아이 디카를 허락없이 빌려갔다.
법정스님의 길상사에 들렀다가 물어 물어 숙정문(肅靖門-숙정:'엄숙이 다스리다.')을 찾았다.
서울 도성의 북대문인 숙정문에서 서소문인 창의문에 이르는 북악산성길을 올랐다.

오늘따라 봄 햇살에 너무나 찬란하다. 봄 햇살에 안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시름 하나 없는 듯 참 평화롭다. 그랬으면 참~~~ 좋겠다.
한 참을 앉아 찬란한 봄 햇살에 세례를 받는다.
북악산성 곡장에 앉아 색연필로 산성을 그렸다.
보온병에 남아있는차를 즐기고오이도 먹어가며 혼자서 드리는 제사(?)의 음복을 하면서.

집에 가져와 좀 더 보충했다. 디카로 찍은 사진을 노트북으로 보면서.
디지털 세계를 완전히 버리진 못할 것 같다. '디지로그'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만남이다.
초병의 막사 뒤에 저 꽃나무는 무엇일까? 아직까지도산벚꽃이 만발한걸까?
눈부시게 하얀 저 꽃을어떻게 표현할까? 딸아이 서랍을 뒤져 '화이트'(수정테잎)를 찾아 눌렀다. 그러고 보니 예전의 수정액이 더 좋을 뻔 했겠다. 솔 달린 뚜껑을 열어 거친 솔에 묻은 수정액을 꾹꾹 찍어 눌러주면 금상첨화텐데....요샌 찾기 힘들겠다. '요놈을 구해봐야 겠다'...

왼쪽 가장자리엔 경복궁이 보인다. 보수중인 광화문은 내가 보수(?)시켰다.
경복궁을 지키는 이순신 장군 동상도 보인다.
산성이 이어지는 오른쪽 저 산은 인왕산인가 보다. 가운데 높은 빌딩 3형제는 누구일까? 목동인듯하다. 하긴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람?
백악마루에 오를 듯 하다 참고 내려가는 저 산성을 따라 나도 이제 내려가야겠다.

북악산성 곡장에서 백악마루와 서울도성을 내려보며.../2010.5.7 그림



북악산 산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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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문 - 숙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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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전도 : 사대문과 사소문 그리고 내사산(동:낙산/서:인왕산/남:목면산(남산)/북:북악산)과 사대궁권(경복궁, 경희궁, 창덕궁,창경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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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 안에서 본 숙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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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성과 북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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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앞에 남산타워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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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과 관악산(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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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성과 인왕산, 서울 도성은 북악산을 내려와 창의문(서소문)에서 쉬었다가 다시 인왕산을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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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산 아래 경복궁과 광화문로를 지키는 이순신 동상도 보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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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성 밖 - 서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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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의 법정스님과 관세음보살상을 그리워하며...

2010년 5월 8일 오전 10:16

 

길상사를 찾았다.
아니,법정스님을 찾았다. 이제서야 스님 돌아가신 뒤에.
또 그랬다. 지난 2001년 스님께서 사람발길 없는 강원도 산골로 떠나신 다음에야 조계산 불일암을 찾았듯이.
언제 다시뵙게 될지 모를머나먼 곳으로떠나신 다음에야,
이렇게 가까운 길상사를 이제야 찾았다.
스님의 마지막 책이랄 수 있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배낭에 넣고서.


스님을 뵐 수 없었지만 스님의 가르침을 읽었다.
스님께서 마지막으로 머무시면서세상 인연을 벗어나셨다는 행지실을 담장너머 바라보면서스님을 친견한 것으로 위로했다.
절 마당에는 수많이 많은 등(燈)으로 장식되었다.

그리고 관세음 보살상 앞에 앉아 보온병에 담아간보이차와 모닝빵을 먹었다.
관세음보살상과 눈을 마주하면서 그녀(?)를 그렸다.
어머니를 닮은 듯하다.
성모마리아를 닮은 듯하다.
선입견 때문일까? 천주교 신자인최종태 조각가가 법정스님과의 인연으로 종교의 화해를 염원하면서 조각하였다 한다.

기도하듯 그렸다.
이 관세음보살상을 보는 이는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의 원력으로 이 세상 온갖 고통과 재난에서 벗어난다'기에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하며 그렸다.

색연필 그림, 나의 첫 작품이다.
딸아이가 서랍을 정리하면서 색연필을 모두 버리겠다며 내 놓았다. 아까웠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디지털 문명만 쫓다보니 잊고 잃어버리고산 것이 적지 않다.
문듯 '색연필 그림을 그리자.' 디카로 찍고 바쁘게 스쳐가지 말고.
아름다운 자리에 머물러 그림을 그려보자. 어릴 적 내 꿈이지 않던가!
아니, 지금도 언젠가는 다시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했지 않던가!
버려진 색연필을 필통에 담아 두고 책도 사보고 몇 번 연습도 했었다.
그러고는 그냥 잊어버렸다. 이번에사생각나기에처음으로 들고 나갔다.
스케치 북? 화첩도별도로 없다. 그냥 들고 다니기에 안성맞춤인작은 노트에 그렸다.
제법 마음에 든다. 이제부터라도 종종 그림을 그리자.

그린다는 것은 그립다는 말과도 같다.
아하~~그립다는 것은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구나.
아, 그리운 사람을 그린다.


길상사 관세음보살상 / 조각 : 최종태 / 그림 : 황보근영




법정스님께서 단 하룻밤을 머무셨다는 행지실: 스님께서는 당신이 지은 절 집에서도 하루도 머물지 않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떠나셨는데,
2010년 3월 11일 마지막으로 이절 방에 1시간 머무셨다가 열반에 드셨다.그리고 하룻밤 깊고 편한잠을 주무시고 12일 낮 12시경,
자신이 출가한 송광사 다비장으로 미련없이 또 버리고 떠나셨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자등명(自燈明)하고 법등명(法燈明)하라' 하셨는데....
이 수많은 등으로 세상과 진리를밝히어, 고통과 재난이 없기를 바라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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