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남쪽 끝 자락에 사직단이 있다.
국가를 상징하는 종사(宗社, 종묘 사직)의 하나로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여기를 찾아 숫자로 사직단을 읽어본다.

▣ 숫자로 읽는 사직단(社稷壇)
  사직단의 이해와 의미를 흥미롭게 새겨보기 위해 숫자로 이야기해본다. 사직단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기 위해서는 사직단 북쪽에 있는 종로어린이도서관 뜰이나 계단을 올라 복도에서 내려다본다.

○ 4 :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숫자이다. 두개의 제단이 사각형이다. 사각형은 땅을 상징한다. 하늘은 원으로 상징된다. 담장도 사각형이다. 담장 안으로 들어가는 신문(神門)도 네 개이고, 제단으로 들어가는 유문(幽門)도 네 개이다. 사신문 중 북신문(北神門)이 정문임을 알 수 있다.

○ 2 : 두 개의 제단 중, 동편이 사단이고 서편이 직단이다. 사단은 토지신을 위한 제단이고, 직단은 곡신(穀神)을 위한 제단이다. 사단은 곧 국토의 안녕을 기원하고, 직단은 곡식의 풍년을 빌어 백성의 살림과 국가 경제를 기원한다.

○ 3 : 제단으로 들어가는 길이 세 개 있다. 북신문으로 들어가는 향축로(香祝(路ㆍ향과 축문의 길), 서신문으로 들어가 판위에서 향축로와 만나는 어로(御路ㆍ임금의 길), 그리고 신실에 보관되었던 태사(太社)ㆍ태직(太稷)ㆍᆞ후토(后土)ㆍᆞ후직(后稷)의 신위가 제단으로 나오는 신위로(神位路) 이렇게 3개의 길이다. 또 두 제단은 1미터 정도의 높이로 3단으로 축석되어 있다. 위는 하늘[天ㆍ君] 아래는 땅[地ㆍ社稷]이며 가운데는 사람[人ㆍ民]이라는 것을 연상할 수 있다. 3단 축석 중에서 가운데가 가장 두텁다. 이는 곧 사람과 백성이 가장 귀중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제단으로 오르는 사방의 계단도 계단석이 3개씩이다. 자세히 보면 또 3을 찾을 수 있다. 바로 북신문만이 삼문(三門)이다. 그렇게 정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직단의 주인인 사신과 직신은 하늘(Heaven)에 있으며, 그 하늘은 북쪽에 있기 때문에 북문이 정문이라는 것이다.

○ 1 : 유일한 1이 있다. 바로 사단 위에 반구형의 돌이 박혀 있다. 석주(石主)라 한다. 전국의 수백 사직단 중에서도 없는데, 이곳이 바로 나라의 중심이란 뜻으로 유일하게 있다 보니 돌의 주인이라 하여 석주라 한다. 사단(社壇) 위에는 직경 30센티미터 길이 75센티 정도의 둥근 돌기둥이 남쪽 계단 쪽에 박혀있었다. 조선 땅에 400여 개의 사직단이 있었다 한다. 그중 여기 한양의 사직단이 조선 땅의 중심이며 주인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이곳에만 석주가 박혀있다고 한다.

○ 5 : 눈에 띄지 않는 ‘5’를 사직단이 간직하고 있다. 국토의 상징인 사단(社壇) 위를 덮고 있는 흙은 일반적인 흙으로 덮여 있지만, 그 안에는 오방색에 따라서 청토(동), 백토(서), 적토(남), 현토(북) 그리고 황제를 상징하는 황토(중앙)로 다섯 구역을 나눠 채워져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곡식의 상징인 직단에서는 겉과 속이 똑같이 일반적인 흙으로 채워지고 덮여 있단다.

○ 0 :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어린 왕자》의 말처럼, 이제 정말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매우 중요한 ‘영(0)’을 이야기하려 한다. 그것은 ‘나라[國]는 무엇인가’, ‘정치의 근본은 무엇인가’를 묻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논어》의 ‘무신불립’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 무신불립(無信不立),‘나라다운 나라’를 위하여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다. 이에 공자는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라고 하였다. “첫째는 먹는 것, 경제다(足食ㆍ족식). 둘째는 자위력, 즉 군대다(足兵ㆍ족병). 셋째는 믿음, 곧 백성들의 신뢰이다(民信之ㆍ민신지).” 자공이 다시 물었다. “그중에서 부득이 하나를 뺀다면 어떤 것을 먼저 빼야 합니까?” 공자는 군대[兵]를 먼저 빼라고 하였다. 자공이 다시 물었다. “또 하나를 부득이 뺀다면 어떤 것을 빼야 합니까?” 공자는 경제[食]를 빼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였다.

“옛날부터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죽어 왔다. 그러나 백성들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를 제대로 세우는 것이 아니다.”

○子曰, 無信不立 자왈, 무신불립  - 《논어》안연12.07
 
    이처럼 ‘무신불립(無信不立)’은 믿음과 의리가 없으면 개인이나 국가가 존립하기 어려우므로 신의를 지켜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단 벗 사이의 신뢰를 이야기하는 붕우유신(朋友有信)만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나라다운 나라를 다스리는데도 신뢰가 으뜸이다. 이후에 제경공이라는 사람이 공자에게 정사를 물었다. 이에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어버이는 어버이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臣臣 父父子子]”라고 답하였다. 이제 계강자(季康子)라는 사람이 공자에게 정치를 물었다. 공자 대답하기를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이다.[政者正也]” 참으로 간단하고 쉬운 대답이다. 공자에게 도(道)라는 진리를 이렇게 단순한데,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실천하기를 어려워한다.
ㅡ공자의 "무신불립"

ㅡ맹자의 "민위귀, 사직차지, 군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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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길 위의 인문학 산책 (3) ㅡ 안동
이번 주말 3일부터ㅡ4일까지, 안동으로 갑니다.
"시 읽는 안동의 가을 밤ㅡ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병산서원ㅡ하회마을ㅡ봉정사ㅡ월영교와 이응태부부의 사랑이야기ㅡ도산서원ㅡ이육사문학관>
인문사회부에서 준비를 마쳤다며 내놓았습니다.

참가 학생, 선생님들께 나눌 264물병, 아이들 주제탐구 자료집, 육사시집(초미니북)입니다.

참고> 한국사상현장순례(2001)
 ㅡ 그 때는 퇴계종택ㅡ퇴계묘소 너머 마을에 이육사마을, 청포도 시비는 있었지만 이육사 문학관은 없었답니다.
퇴계 이황선생님을 찾아서 - http://www.korearoot.net/sasang/index03.html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이육사.

한개의 별을 노래하자 꼭 한 개의 별을
십이성좌(十二星座) 그 숱한 별을 어찌나 노래하겠니

꼭 한 개의 별!
아침 날 때 보고 저녁 들 때도 보는 별
우리들과 아-주 친(親)하고 그 중 빛나는 별을 노래하자
아름다운 미래(未來)를 꾸며 볼 동방(東方)의 큰 별을 가지자

한 개의 별을 가지는 건 한 개의 지구(地球)를 갖는 것
아롱진 설움밖에 잃을 것도 없는 낡은 이 땅에서
한 개의 새로운 지구(地球)를 차지할 오는 날의 기쁜 노래를
목안에 핏대를 올려가며 마음껏 불러 보자

처녀의 눈동자를 느끼며 돌아가는 군수야업(軍需夜業)의 젊은 동무들
푸른 샘을 그리는 고달픈 사막(沙漠)의 행상대(行商隊)도 마음을 축여라
화전(火田)에 돌을 줍는 백성(百姓)들도 옥야천리(沃野里)를 차지하자

다 같이 제멋에 알맞는 풍양(豊穰)한 지구(地球)의 주재자(主宰者)로
임자 없는 한 개의 별을 가질 노래를 부르자

한 개의 별 한 개의 지구(地球) 단단히 다져진 그 땅 위에
모든 생산(生産)의 씨를 우리의 손으로 휘뿌려 보자
앵속(罌粟)처럼 찬란한 열매를 거두는 찬연(餐宴)엔
예의에 끄림없는 반취(半醉)의 노래라도 불러 보자

염리한 사람들을 다스리는 신(神)이란 항상 거룩합시니
새 별을 찾아가는 이민들의 그 틈엔 안 끼여 갈 테니
새로운 지구(地球)엔 단죄(罪) 없는 노래를 진주(眞珠)처럼 흩이자

한개의 별을 노래하자. 다만 한 개의 별일망정
한 개 또 한 개의 십이성좌(十二星座) 모든 별을 노래하자.
ㅡ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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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책방이 사라지고 있는데,
서촌 골목길에는 허름하지만 소중한 헌 책방이 아직 남아 있다.
대오서점.  '大悟', 크게 깨달음을 얻을 것은 없지만 소중한 깨침을 주기엔 충분하다.

  서촌 총각 조대식은 작은 책방하나 얻어 간판도 이름도 없이 헌 참고서나 고물 장사를 하다가, 원당(경기 고양)의 처자 권오남을 만나 결혼한 다음에 부부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가져와 '대오'라는 책방 이름을 지었단다. 60여년전의 일이다. 그러고보니 일찌기 양성평등과 부부상화(夫婦相和)의 모습을 보여주신 부부인듯하다. 이제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할머니만 남아 가게를 청산하려 했지만 간판에 새겨긴 아름다운 사연과 화목으로 일궈온 이 헌 책방을 책이 팔리던 안팔리던 관계없이 그리움으로 열고 계신다.
   지난 일요일. 해가 중천에 뜬 한낮에야 할머니는 출근을 하셔서 가린 천막을 걷고 가게 문을 여셨다. 간판의 '서점' 글씨는 벗겨져 사라져도, '대오' 만큼은 부부의 사랑이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는 시민의 사랑과 관심으로 이제 카페가 만들어지고 작은 전시회나 강연도 열리곤 한단다.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안채의 모습은 이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진을 보았다.
나중에 다시 들러 헌 책 한권을 고르고 차 한잔에 권오남 할머니와 담소라도 나눌 수 있기를 기약해본다.

  서촌 산책길을 마치고 창의문 밖, 부암동 첫머리에는 있는 작은 파스타 카페에서 대오서점의 그림을 보게 되어서 반가웠다. 카페 사장님 부인이 서촌과 부암동 골목 풍경을 그리셨단다. 부인을 위한 갤러리인 셈이다. 이래저래 부부의 사랑으로 포근해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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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살던 집 지붕에 까마귀가 앉아 서촌골목길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 집안에 구본웅이 사랑한 벗 김해경이 살고 있다.

장자가 이야기한다.
 "날개는 커도 날아가지못하고(翼殷不逝),
  눈은 커도 앞을 볼 수가 없네(目大不覩)."
누굴보고 하는 말일가?
 까마귀인가? 이상인가?
 '날개여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다시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했건만 장자의 조롱소리만 크게 들려온다.

<오감도 제3호> ㅡ 이상
이것이 시란 말인가? 등비수열의 수학인가? 타이포그래피 그림인가? 건축가의 설계도면인가?

이름 만큼이나 이상한 시인,
이상한 얼굴, 서촌마을 이상의 집이다.

 

이상(1910~1937)과 구본웅(1906~1953)은 종로 토박이다. 이상은 사직동, 구본웅은 필운동, 두 사람 다 인왕산 자락에서 태어나 누상동 신명학교를 함께 졸업한 친구다.
척추장애로 곱추가 되었으며 독특한 화풍 때문에 ‘한국의 로트레크’로 불린 구본웅은 이상의 초상화를 그렸고, 천재시인 이상은 구본웅을 위해 시를 썼다.
화가 구본웅이 그린 이상의 얼굴. ‘친구의 초상’(1935년 작)이란 제목이 붙은 이 작품에서 구본웅은 반항적인 예술세계를 펼쳤던 이상의 성격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삽화가였던 행인(杏仁) 이승만(1903-1975)선생이 그린 '이상과 구본웅'.

<곱추 화가 구본웅>
삽화가 이승만 씨의 그림을 보면, 훨친한 키에 반항적인 외모를 가진 이상과 대조적으로 키가 무척 작은 구본웅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본웅은 태어나서 4개월 만에 어머니가 산후병으로 돌아가시고 식모의 등에 업혀 젖동냥으로 키워졌다. 어린 식모가 실수로 등에 업힌 아기를 댓돌 위에 떨어트려 그만 척추를 다치고 말았다. 그 고통을 참고 자랐던 본웅은 성장이 멈춰버린 척추 장애인이 되었다. 약골에다 허리가 굽고 키가 작아서 네 살이나 늦게 학교에 들어갔다. 어린 친구들은 본웅을 꼽추라며 놀렸다. 그 놀림 속에서도 유일하게 친구가 되어준 아이가 있었다. 바로 김해경(金海卿)이다. 해경과 본웅은 단짝이 되었고 그림에도 같은 소질을 보였다.

<이상한 시인, 이상>
본웅의 큰 아버지가 본웅이에게 미술도구가 가득 담긴 화구상자를 선물로 사다 주었다. 본웅에게 소중한 선물이지만 그 선물을 선뜻 친구 해경에게 주었다. 해경이 그렇게 갖고 싶어 했었던 것이다. 이 화구상자를 선물 받은 해경은 감사의 징표로 자기의 호(號)를 ‘상(箱, 상자)’으로 지으면서 호에 어울리는 성(姓)을 같이 찾아 붙였다. 그래서 ‘이상(李箱)’이라는 시인의 이름이 탄생되었다. 그만치 이상은 이상(異常)한 친구이다. 크면서 이상은 건축 설계사가 되었고 또 시인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구본웅은 화가가 되었다. 후에 구본웅은 이상을 위해 ‘친구의 초상’을 그렸고, 이상은 친구의 성을 빙자한 ‘차8씨의 출발’이라는 시를 썼다. ‘차팔(且八)’은 본웅의 성씨인 ‘구(具)’자를 나눈 글자이다. 그러나 이 해석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아무튼 이상은 장난과 반항의 기질로 글자를 갖고 놀았으며, 오감도(烏瞰圖)와 같은 이상한 시를 썼다.

<이상의 집>

서촌 마을 골목에는 ‘이상의 집’이 보존되어 있다. 이상(김해경)이 어린 시절 살았던 김해경의 큰아버지 집이다. 해경은 네 살 때, 큰 아버지 댁의 양자로 들어가 이곳에서 살았다. 이곳에서 이상의 초상화와 그의 문학작품이 실린 잡지 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어둡고 좁은 계단에 앉아 그의 영상을 보면 이상한 시인의 삶과 작품에 다가갈 수 있다.

수업 속으로>
서촌 골목길에 피어난 우정과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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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청 입구, 교보문고 빌딩 뒤에
소설가 염상섭이 앉아있다.
그의 뒤로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비석글이 있다.
소설가의 글인가 했더니,
교보문고 설립자 신용호 선생의 말씀이란다.
그렇다면, 왜 횡보 염상섭선생이 여기에 계실까?
종로에서 태어나서 그럴 것이다.

어떤 이는 글이 새겨진 돌이 크게 세조각으로 주어ᆞ목적어ᆞ서술어 부분이 나눠진 것을 관찰하고, 술어를 엇대어 연결하여서 다음과 같이 문장 두개를 더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은 사람을 만들고,
     책은 책을 만든다."
이도 옳고 의미있는 말이다.

 나도 평소 신조같이 여기는 말이 있어 여기에 더해본다.

  "책 속에 길이 있고,
           길 위에 삶이 있다."

'책ᆞ길ᆞ삶ᆞ사람'을 하나로 엮어 걸어가는 종로의 오늘이다.

황보, 횡보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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