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고, 고전통통ᆞ인문학 교실
2강ᆞ인왕산 자락과 서촌 골목길
사직단 민본정치, 이상과 구본웅 우정,
수성동 계곡과 인왕제색도 진경산수화,
윤동주의 자화상과
우물 속의 나의 자화상
모둠 자유 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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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고, 고전통통ᆞ인문학 교실
1강. 인문학과 길
1. 인문학이란?
2. 왜 길인가?
모둠 자유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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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무엇일까? 인문(人文)이 무엇일까? 사람의 무늬라 한다.
사람 가슴에 그 사람의 직책을 나타내는 무늬, 문양이다. 후에, 무늬 문(文)이 '글. 문장'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대신 무늬 문(紋)이라는 글자가 따로 만들어졌다.
그 사람이 맡은 바 직책은 곧 그 사람됨이다. 사람됨은 바로 그 사람다움이다. 군군신신 부부자자라는 정명(正名)이며 다움의 사상이다.
오늘 이음학교, "길 위의 인문학' 강의시간에 교사됨을 나타내는 교사의 무늬를 그려보자고 했다. 교사문(文)에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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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제주43사건

19473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43일에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9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민관군 등 3만 여명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제주 43사건은 한국 근현대사에 큰 고통을 남긴 상처이다. 아직도 그 상처는 다 아물지 못하고 응어리도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제대로 된 이름도 없이 그냥 제주 43’으로도 부르고, ‘제주 43사건으로도 불린다. 한마디로 정리하기에 참으로 복잡하다. 그래도 21세기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시대를 꿈꾸면서 제주 43사건의 상처를 그냥 묻어버리고 지울 수는 없다. 고통 받은 영령과 유족과 지역주민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빌며 위로하지 않을 수 없다.

제주43사건의 과정 주요 일지

1947. 3. 1 : 미군정 시절, 3·128주년을 맞아 제주북국민학교에서 기념식을 마치고 군중은 시가행진을 하였고, 관덕정 앞 광장에서 구경하던 어린아이가 기마경찰이 탄 말에 차여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사고수습과 사과 없이 지나가는 기마경찰을 쫓아 일부 군중이 돌멩이를 던지며 쫓았고, 이를 경찰서 습격으로 오인한 경찰이 군중에게 총을 발포하여 6명이 사망하고 6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는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강경 진압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유투브] 3.1절 발포사건 70주년
https://www.youtube.com/watch?v=FFAZZRzANW4&t=28s

1948. 4. 3 : 새벽 2시를 전후하여 350명의 무장대가 미군정 치하의 도내 24개 경찰지서 가운데 12개 지서를 일제히 공격하였고, 경찰과 서북청년회 숙소, 독립촉성국민회와 대동청년단 등 우익단체 요인의 집을 습격하였다. 이로 인하여 경찰 4명과 민간인 8, 무장대 2명이 사망하였다. 무장대는 경찰과 우익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 남한 단독선거 및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조국의 통일 독립, 반미 구국투쟁을 무장봉기의 기치로 내세웠다. 이때부터 폭력은 다른 폭력을 불러오고 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지면서 방화와 탈취와 살인과 학살로 이어졌다. 분노의 골은 더 깊어졌다.

1948. 5. 10 남한 단독 선거에서 제주도는 투표수 과반수 미달로 무효 처리되었고, 미군정은 강경진압을 계속하면서 623일에 재선거를 실시하려고 하였으나 이마저도 무산되었다. 이후 남쪽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같은 해 99일에는 북쪽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던 해, 1017일 제주 해안선으로부터 5이외의 지점 및 산악지대의 무허가 통행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폭도배로 인정하여 총살에 처할 것이라는 포고문을 발표하였다. 포고문에서 언급한 해안선으로부터 5이외의 지점은 한라산 등 산악지역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해변을 제외한 중산간 마을(한라산 해발 200m~600m사이의 지역) 전부가 해당하여 통행금지란 결국 거주를 금지한다는 의미였다. 1117일에는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1949. 1. 17 토벌대에 의한 북촌사건이 발생하여 주민 약 400명이 학살되었으며, 10. 2 군법회의 결과 사형 선고된 249명이 총살되고 제주 비행장 인근에 암매장 되었다. 이후 1950. 6. 25부터 1953. 7. 27까지 동족상잔의 6.25 전쟁 중에도 제주 43사건은 진행되었다.

 

1954921: 한라산 금족(禁足)지역이 전면 개방되면서 19473·1절 발포사건과 19484·3 무장봉기로 촉발되었던 제주4·3사건은 77개월 만에 비로소 막을 내리게 된다.

 

제주4·3사건으로 인해 제주지역 공동체는 파괴되고 엄청난 물적 피해를 입었으며, 무엇보다 깊은 상처로 남아있는 참혹한 인명피해를 가져왔다. 2000년에 4·3특별법 공포 이후 4·3사건으로 인한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청산하고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21세기를 출발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며, 2003년에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발간되었다. 20051월에 제주도는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되었고 2014년에서야 '43희생자 추념일'이 국가기념일로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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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입에 올리기에 쉽지 않은 사건.
상처가 치유되어야 하는데,
과거는 청산되어야 하는데,
기억하고 싶지 않고
입에 올리기에도 두려워
그냥 묻어두고 썩기를 바라고
모진 바람에 날려 말라버리기만 기다렸던 이름이다.
그래서 이름없이 제주 4.3이라고,
억지로 이름하여 제주 4.3사건이라고 했다.
늦었지만 이제야 찾았다.
제주 4.3 평화공원.

[비설(飛說)]ᆞ변병생 모자 조형물
   49년 1월, 눈 내리는 날 봉개면 한라산 중산간지대. 토벌대의 작전이 시작되었다. 두살배기를 업고 토벌대에 쫓겨 달아나던 어머니(당시 25세, 봉개동 주민 변변생)가 총에 맞았다. 피를 흘리면서 발을 끌면서 걸어가다가 무릎을 꿇었다. 등 뒤에 아기도 총을 맞았을까 살피다가 그만 끌어앉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리고 모녀는 눈밭에 묻혀버렸다. 슬프디 슬픈 이야기(悲說-비설)이다. 
  그 뒤로 산수국이 피멍같이 피어있다.  

 이 슬픈 이야기[비설悲說]의 주인공인 봉개동 주민,
                 
변병생 모녀에게 추모의 시를 지어 바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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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에 산수국이 많이 피었다. 다 못한 슬픈 이야기를 간직한듯 하다.

죽어가면서도 엄마는 아기를 재우는 자장가를 부른다. 웡이자랑~ 웡이자랑~
나선형으로 조성된 비설 조형물을 맴돌듯이 찾아 들어가면서 음각되어있는 웡이자랑 자장가를 읽어본다. '웡이자랑 웡이자랑~' 후렴구에 젖어 나도 모르게 자장가가 되었다. 두 눈에서 눈물자국이 떨어진다.   

 

"'웡이자랑 웡이자랑. 우리 아긴 자는 소리.  
놈의 아긴 우는 소리로고나. 웡이자랑 웡이자랑~~
자는 건 잠소리여 노는건 남소리여"
 

"웡이 자랑 웡이 웡이 자랑 자랑 웡이 자랑 /
우리 아기 잘도잔다 남의 애기 잘도 논다 /
자랑 자랑 자랑 / 도지밑에 검둥개야 앞마당 노는개야 /
자랑 자랑 자랑 / 우리애기 공밥주고 우리애기 재워주렴 /
자랑 자랑 자랑 / 웡이 자랑 웡이 자랑 웡이 자랑 자랑 웡이 자랑 자랑"

 

제주4.3사건 행방불명희생자 위령단

위패에 모셔진 영령들, 그리고 찾지못한 행불자 희생자들....
제주도 사람 다 죽인 것 아냐?
"...섬 하나가 몬딱 감옥이었주마씸, 섬 하나가 몬딱 죽음이었주마씸...."  

전쟁도 아닌 상태에서 정부에 의해, 공권력에 의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수 있을까? 지옥이 따로 없었겠구나.  

[위령제단]

[위령탑과 각명비]

[귀천]-조형물 : 희생된 어린아이, 학생, 성인이 저 세상 갈 적에 입고간 수의를 조형하였다.

위령탑에서 바라본 귀천 조형물과 위령제단

[4.3평화 기념관]

제주4.3평화공원 전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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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유력 일간지 신문 지면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산사를 소개하면서 '한국산사의 구조' 를 소개하였다. 그림을 보는 순간, 눈을 비볐다.
 "어, 이거 내 그림 아닌가?"
너무 비슷하고 닮았다.
이 정도면 표절이 아닌가?
그 문제는 차치하고 반갑고 자랑스러웠다.
분명 내 홈페이지를 보고 참조해서 그렸을거다. 안 그러면 이렇게 비슷할 수 없다.

http://m.chosun.com/news/article.amp.html?sname=news&contid=2018080901928에서

산사로가는길(2002) 홈페이지
나의 산사로 가는 길 홈페이지,
첫페이지의 <가상사찰탐방> 플래시 배너 창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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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ragon attack 2020.05.06 23: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저는 문화재청 대학생 기자단 12기 이유정입니다.

    이렇게 댓글을 드리게 된 건 다름이 아니라, 일러스트 사용 협조를 구하고자함입니다.
    저는 이번에 문화재청 공식 블로그에 올라갈, '사찰의 가람배치'에 대한 정보 기사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글의 이해를 도울 사진 자료를 찾다가 운 좋게도 이 글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작성하고자 하는 기사 내용을 정말 잘 보여주고 있는 일러스트이며, 그림이 깔끔하고 명확하여 꼭 이 일러스트를 활용하고 싶습니다.

    답글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

    *제 소개에 대한 설명을 돕기 위해 제가 지난 4월 작성했던 문화재청 기사 링크를 첨부합니다. https://chagov.blog.me/221887401256

  2. 문촌수기 2020.05.07 14: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 사용하셔요.

    • dragon attack 2020.05.07 15: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일러스트를 사용할 때, 출처로 어떤 성함/사이트명을 표기할지 말씀해주시면 사진 하단에 표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이해를 돕기 위해, 원본 일러스트 위에 건물 이름을(ex.일
      주문, 대웅전) 표기하여 사용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여쭤봅니다.

  3. 문촌수기 2020.05.07 17: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황보근영/산사로 가는 길
    www.korearoot.net/sansa
    사이트 주소 명입니다.
    첫페이지 하단 배너에 '가상사찰탐방'을 클릭하시고, 각 건물을 클릭하시면 건물명이 나옵니다. 참조하셔서 사용하셔요.

  4. 문촌수기 2020.05.07 17: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시는 일에 결실과 보람이 있길 응원할게요.

  5. dragon attack 2020.05.07 18: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 알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문촌수기님도 소원하시는 바 모두 이루시길 바랍니다^^

  6. dragon attack 2020.05.26 17: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문화재청 대학생 기자단 이유정입니다.
    저번에 제가 이 글 댓글로 그림 자료를 요청드렸었죠!
    드디어 기사가 발행되어 문촌수기님께도 공유해드리고자 댓글을 달게 되었습니다.
    사찰 공간구조를 소개하는 기사입니다. http://chagov.blog.me/221978149197 이곳으로이동하시면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좋은 그림을 흔쾌히 제공해주신 걸 감사드립니다.
    해당 기사가 마음에 드신다면 티스토리나 문자메시지 등으로 기사를 널리 공유해주세요^^
    감사합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예산의 추사기념관, 제주 추사관,
과천의 추사박물관에서 얻은 자료를 정리해본다.
추후, 서울 봉은사, 중앙박물관, 영남대 박물관, 영천 은해사, 예산 수덕사, 해남 대흥사를 다시 찾을 것이다.

1. 예산 추사기념관에서

예산 추사기념관 오른편의 추사묘와 추사고택

2.제주 추사관에서

제주 추사관 뒤의 추사유배지

3. 과천 추사박물관에서

마천십연 조각

해설사는 겨울 눈내린 다음날, 눈을 이고 있는 '불이선란도' 병풍석벽을 구경오라고 권한다.

추사박물관 앞 과지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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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트에서 꼬리를 물다가 운(韻)을 잡았다.
운을 음미하며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면 그 맛과 즐거움이 배가된다.
소네트?
[이하 스크랩]
소네트(Sonnet)는 유럽의 정형시의 한 가지이다. 단어 자체의 의미는 '작은 노래'라는 뜻으로, Occitan(남부 프랑스어 방언)의 단어 sonet 와 이탈리아어 sonetto 에서 유래했다. 13세기경까지 엄격한 형태와 특정 구조를 갖춘 14줄로 구성된 시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소네트와 관련된 형식적 규율들은 시대에 따라 진화했다. 소네트는 엄격히 각운이 맞추어지는 형식이며, 르네상스 시기에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졌으나, 잉글랜드로 전해져, 영국 시를 대표하는 시 형식의 한 가지가 되었다. 가장 잘 알려진 소네트 작가는 셰익스피어(Shakespeare)로, 154개의 소네트를 남겼다.

소네트의 운율을 매기는 법은, 8개의 줄을 한 묶음으로 놓는 방식과, 네 줄씩 세번이 나온 후 두 줄이 추가되는 방식이 있다. 소네트의 형식은 크게 이탈리안 소네트(Italian Sonnet), 스펜서리안 소네트(Spenserian Sonnet), 셰익스피어 소네트(Shakespearian Sonnet)의 세 가지가 있다.
셰익스피어 소네트는 셰익스피어가 주로 사용한 방식으로, 10음절로 이루어진 14개의 줄이 약강의 5음보 율격으로 쓰이는 방식이며, 각운의 매기는 방식은 ABAB CDCD EFEF GG 형태이다. (예: 셰익스피어 소네트18번ㅡ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제가 당신을 여름날에 비교해 볼까요?
당신은 훨씬 더 상냥하고 온화합니다
거친 바람이 오뉴월의 사랑스러운 꽃봉오리를 흔들고
여름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날들은 너무나 짧으며

하늘의 눈(태양)은 때로 너무 따갑게 빛나고
그 황금빛 얼굴도 자주 흐려집니다. (구름 사이로 가려집니다)
고움도 상하고 아름다움도 사라지게 되고
우연이든, 자연의 섭리이든 그 아름다움은 없어지지만

그대가 지닌 영원한 여름(젊음)은 사라지는 법이 없고
그대가 소유한 아름다움도 없어지지 않죠.
죽음조차 그대를 그림자 속에 가두어 두었다고 자랑하지 못해요.
그대가 영원한 시 속에서 시간과 한 덩어리 될 때에는

인류가 숨쉬고 눈으로 볼 수 있는 한
이 시는 영원히 숨 쉴 것이며 그대에게 생명을 줄 것입니다."
 ᆞᆞᆞᆞᆞᆞ
*May ~ 셰익스피어 당시에 쓰던 달력으로는 한여름. (당시 사용되던 달력이 실제보다 늦었기 때문)
소네트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페트라르카, 셰익스피어, 존 밀턴, 워즈워스 등이 있다.

그러고보니 나의 애창곡 '마이웨이(My Way)'에서도 운이 있다. 'my way, high way, byway, shy way.'
'Try to remember'에서도 그렇다.
'Remember와 September'만 그런 것이 아니라, 'slow, mellow, yellow, callow, follow'가 바로 그렇다.

나는 따라 부를 순 없지만 왁스의 노래 '오빠'도 운을 잘 전해주어 듣자마자 신나고 즐거웠다.
"오빠 나만 바라봐 바빠 그렇게 바빠
아파 마음이 아파 내 맘 왜 몰라줘
오빠 그녀는 왜 봐 거봐 그녀는 나빠
봐봐 이젠 나를 가져봐 이젠 나를 가져봐"

운의 맛은 우리 시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 맛의 최고봉은 김삿갓이지 아닐까?

김삿갓의 <팔죽시>
차죽피죽화거죽   此竹彼竹化去竹
이대로 저대로 되어가는 대로
풍취지죽낭타죽   風吹之竹浪打竹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반반죽죽생차죽   飯飯粥粥生此竹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생기는 대로
시시비비부피죽   是是非非付彼竹
시시비비는 저에게 맡긴 대로

빈객접대가세죽   賓客接待家勢竹  
빈객 접대는 가세대로
시정매매시세죽   市井賣買時勢竹  
시정 매매는 시세대로
만사불여오심죽   萬事不如吾心竹  
만사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연연연세과연죽   然然然世過然竹 
그렇고 그런 세상 지나가는 대로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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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 가는 길.
비발디의 '가을'을 들으면서 과천의 추사박물관과 과지초당(瓜之艸堂)을 찾았다.

추사박물관에서 특별히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가 눈에 들어왔고 그림 속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추사는 난초를 그리고 연유를 발문(跋文)하였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자 빈칸을 찾아 작은 글씨로 채웠다. 그렇게 네 개의 발문으로 그림이 완성되었다.

첫 발문은 상단 왼쪽에서부터
‘부작란화 이십년(不作蘭畵二十年)'으로 시작하며 오른쪽으로 채우고 '추사'로 인장하였다.
"난초 그리지 않은 지 20년, 우연히 그렸더니 하늘의 본성이 드러났네/ 문 닫고 찾으며 또 찾은 곳/ 이것이 유마의 불이선일세/만약 누군가 억지로 (그림을)요구한다면, 마땅히 유마거사의 '말 없는 대답'으로 거절하리라"

두번째 발문은 오른쪽 중간의 난초닢 사이에 좀더 작은 글씨로 채우고 있다.
"초서와 예서, 기자의 법으로 그렸으니,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겠으며, 어찌 좋아하겠는가? 구경이 또 제하다"며 고연재(古硯齋)로 인장하였다

이것으로 그림과 발문을 마치려 했더니 사단이 생겼다. 그래서 왼쪽 난초꽃의  화심(花心) 앞에 '묵장'을 인장하고 세번째 발문으로 그 장면을 전해주고 있다.

"애당초 달준이 주려고 아무렇게나 그린 것이다. 다만 이런 그림은 하나만 있지, 둘은 있을 수 없다."

달준이가 누굴까? 북청 유배생활 중에 섬기던 종이었다. 제주도 유배에서 제자 이상적에게 감사하여 <세한도>를 그려주었듯이, 이제는 종에게 이 그림을 주련다. 누가 그려달라고 조른 것도 아니고, 평가받을까 조심하고 욕심과 정성을 쏟은 것도 아니다. 그저 심심한 마음으로 아무렇게나 그렸다. 물 흐르듯이 바람 불듯이 부딪히면 휘어지고 돌아가듯 마음가고 손가는대로 그냥 그렸다.
그런데 이 그림을 보고 서각가 소산 오규일이 이걸 가지고 싶다며 떼를 쓰는가보다. 달준이에게서 뺏을 모양이다. 그래서 세번째 발문과 난초 꽃대 사이에 아주 작은 글씨로 이 장면을 크로키처럼 그렸다.

“오소산이 보고 억지로 빼앗아가니 정말 가소롭구나.”

'가소(可笑)' 속에 추사의 평온한 미소가 보인다. 그래도 달준이에게 주었는지, 소산이가 결국 뺐어 가졌는지 그건 모르겠다. 추사는 거기에도 무심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낙교천하사'와 '김정희인'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림이 글이 되고, 글이 그림이 되었다.
그림과 이야기가 잘도 어울린다.
ㅡㅡㅡ
언뜻 두개의 키워드, '소네트(sonnet)'와 '화중유시(畵中有詩)'가 짝을 지었다. 내 안에서 비발디의 음악[樂]과 추사의 그림[畵]이 만나  소네트[詩歌]를 낳고 있다.

비발디는 사계를 작곡하고 그 계절을 노래하며 소네트를 붙였다 한다. 가령. '가을'의 소네트는 이렇다.
ᆞᆞᆞᆞ
가을 (L'Autunno)
https://youtu.be/Np52I5Dg6C8

제1악장 (Allegro, F Major, 4/4)
"마을 사람들은 춤과 노래로 복된 수확의 즐거움을 축하한다.
바커스의 술 덕택으로 떠들어댄다.
그들의 즐거움은 잠으로 끝난다." 

제2악장 (Adagio molto, d minor, 3/4)
"일동이 춤을 그치고 노래도 그친 뒤에는 조용한 공기가 싱그럽다.
이 계절은 달콤한 잠으로 사람에게 큰 즐거움을 준다."

제3악장 (Allegro, F Major, 3/8)
"새벽에 사냥꾼들은 뿔피리와 총, 개를 데리고 사냥에 나선다. 짐승은 이미 겁을 먹고 총과 개들의 소리에 지칠 대로 지치고 상처를 입어 떨고 있다. 도망칠 힘조차 다하여 궁지에 몰리다가 끝내 죽는다." 
ᆞᆞᆞᆞ
아직 소네트는 뭔지 잘 모르겠다.
칠언절구 한시나 우리의 연시조를 닮은 듯하다.
시조를 읊고, 그림 속에서 이야기를 찾아 연시조 또는 소네트 형식으로 표현해보는 수업을 해봐야겠다.
가령, 추사의 세한도와 세한도 발문을 패러디해서 '나의 세한도와 소네트(연시조)'형식으로 표현해보는 수업이나, 윤동주 시 '자화상' 읽기와 나의 자화상과 소네트, 도덕윤리 수업 속에 畵中有詩ᆞ畵中有謠ᆞ畵中有話를 설계해 볼 만하겠다.

*소네트:소네트와 운의 맛 http://munchon.tistory.com/1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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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고택

추사고택 완쪽에는 추사의 출생 설화가 전해지는 우물이 있다.
추사가 태어나기 전에 비가오지 않아 산천초목이 시들고 우물이 말랐다.
추사가 이십개월 만에 태어나자 비가 오기 시작하여 초목이 살아나고 샘이 쏟아 우물을 채웠다한다.

추사묘

탁본체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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