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의 추사기념관, 제주 추사관,
과천의 추사박물관에서 얻은 자료를 정리해본다.
추후, 서울 봉은사, 중앙박물관, 영남대 박물관, 영천 은해사, 예산 수덕사, 해남 대흥사를 다시 찾을 것이다.

1. 예산 추사기념관에서

예산 추사기념관 오른편의 추사묘와 추사고택

2.제주 추사관에서

제주 추사관 뒤의 추사유배지

3. 과천 추사박물관에서

마천십연 조각

해설사는 겨울 눈내린 다음날, 눈을 이고 있는 '불이선란도' 병풍석벽을 구경오라고 권한다.

추사박물관 앞 과지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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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트에서 꼬리를 물다가 운(韻)을 잡았다.
운을 음미하며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면 그 맛과 즐거움이 배가된다.
소네트?
[이하 스크랩]
소네트(Sonnet)는 유럽의 정형시의 한 가지이다. 단어 자체의 의미는 '작은 노래'라는 뜻으로, Occitan(남부 프랑스어 방언)의 단어 sonet 와 이탈리아어 sonetto 에서 유래했다. 13세기경까지 엄격한 형태와 특정 구조를 갖춘 14줄로 구성된 시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소네트와 관련된 형식적 규율들은 시대에 따라 진화했다. 소네트는 엄격히 각운이 맞추어지는 형식이며, 르네상스 시기에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졌으나, 잉글랜드로 전해져, 영국 시를 대표하는 시 형식의 한 가지가 되었다. 가장 잘 알려진 소네트 작가는 셰익스피어(Shakespeare)로, 154개의 소네트를 남겼다.

소네트의 운율을 매기는 법은, 8개의 줄을 한 묶음으로 놓는 방식과, 네 줄씩 세번이 나온 후 두 줄이 추가되는 방식이 있다. 소네트의 형식은 크게 이탈리안 소네트(Italian Sonnet), 스펜서리안 소네트(Spenserian Sonnet), 셰익스피어 소네트(Shakespearian Sonnet)의 세 가지가 있다.
셰익스피어 소네트는 셰익스피어가 주로 사용한 방식으로, 10음절로 이루어진 14개의 줄이 약강의 5음보 율격으로 쓰이는 방식이며, 각운의 매기는 방식은 ABAB CDCD EFEF GG 형태이다. (예: 셰익스피어 소네트18번ㅡ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제가 당신을 여름날에 비교해 볼까요?
당신은 훨씬 더 상냥하고 온화합니다
거친 바람이 오뉴월의 사랑스러운 꽃봉오리를 흔들고
여름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날들은 너무나 짧으며

하늘의 눈(태양)은 때로 너무 따갑게 빛나고
그 황금빛 얼굴도 자주 흐려집니다. (구름 사이로 가려집니다)
고움도 상하고 아름다움도 사라지게 되고
우연이든, 자연의 섭리이든 그 아름다움은 없어지지만

그대가 지닌 영원한 여름(젊음)은 사라지는 법이 없고
그대가 소유한 아름다움도 없어지지 않죠.
죽음조차 그대를 그림자 속에 가두어 두었다고 자랑하지 못해요.
그대가 영원한 시 속에서 시간과 한 덩어리 될 때에는

인류가 숨쉬고 눈으로 볼 수 있는 한
이 시는 영원히 숨 쉴 것이며 그대에게 생명을 줄 것입니다."
 ᆞᆞᆞᆞᆞᆞ
*May ~ 셰익스피어 당시에 쓰던 달력으로는 한여름. (당시 사용되던 달력이 실제보다 늦었기 때문)
소네트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페트라르카, 셰익스피어, 존 밀턴, 워즈워스 등이 있다.

그러고보니 나의 애창곡 '마이웨이(My Way)'에서도 운이 있다. 'my way, high way, byway, shy way.'
'Try to remember'에서도 그렇다.
'Remember와 September'만 그런 것이 아니라, 'slow, mellow, yellow, callow, follow'가 바로 그렇다.

나는 따라 부를 순 없지만 왁스의 노래 '오빠'도 운을 잘 전해주어 듣자마자 신나고 즐거웠다.
"오빠 나만 바라봐 바빠 그렇게 바빠
아파 마음이 아파 내 맘 왜 몰라줘
오빠 그녀는 왜 봐 거봐 그녀는 나빠
봐봐 이젠 나를 가져봐 이젠 나를 가져봐"

운의 맛은 우리 시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 맛의 최고봉은 김삿갓이지 아닐까?

김삿갓의 <팔죽시>
차죽피죽화거죽   此竹彼竹化去竹
이대로 저대로 되어가는 대로
풍취지죽낭타죽   風吹之竹浪打竹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반반죽죽생차죽   飯飯粥粥生此竹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생기는 대로
시시비비부피죽   是是非非付彼竹
시시비비는 저에게 맡긴 대로

빈객접대가세죽   賓客接待家勢竹  
빈객 접대는 가세대로
시정매매시세죽   市井賣買時勢竹  
시정 매매는 시세대로
만사불여오심죽   萬事不如吾心竹  
만사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연연연세과연죽   然然然世過然竹 
그렇고 그런 세상 지나가는 대로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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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 가는 길.
비발디의 '가을'을 들으면서 과천의 추사박물관과 과지초당(瓜之艸堂)을 찾았다.

추사박물관에서 특별히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가 눈에 들어왔고 그림 속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추사는 난초를 그리고 연유를 발문(跋文)하였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자 빈칸을 찾아 작은 글씨로 채웠다. 그렇게 네 개의 발문으로 그림이 완성되었다.

첫 발문은 상단 왼쪽에서부터
‘부작란화 이십년(不作蘭畵二十年)'으로 시작하며 오른쪽으로 채우고 '추사'로 인장하였다.
"난초 그리지 않은 지 20년, 우연히 그렸더니 하늘의 본성이 드러났네/ 문 닫고 찾으며 또 찾은 곳/ 이것이 유마의 불이선일세/만약 누군가 억지로 (그림을)요구한다면, 마땅히 유마거사의 '말 없는 대답'으로 거절하리라"

두번째 발문은 오른쪽 중간의 난초닢 사이에 좀더 작은 글씨로 채우고 있다.
"초서와 예서, 기자의 법으로 그렸으니,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겠으며, 어찌 좋아하겠는가? 구경이 또 제하다"며 고연재(古硯齋)로 인장하였다

이것으로 그림과 발문을 마치려 했더니 사단이 생겼다. 그래서 왼쪽 난초꽃의  화심(花心) 앞에 '묵장'을 인장하고 세번째 발문으로 그 장면을 전해주고 있다.

"애당초 달준이 주려고 아무렇게나 그린 것이다. 다만 이런 그림은 하나만 있지, 둘은 있을 수 없다."

달준이가 누굴까? 북청 유배생활 중에 섬기던 종이었다. 제주도 유배에서 제자 이상적에게 감사하여 <세한도>를 그려주었듯이, 이제는 종에게 이 그림을 주련다. 누가 그려달라고 조른 것도 아니고, 평가받을까 조심하고 욕심과 정성을 쏟은 것도 아니다. 그저 심심한 마음으로 아무렇게나 그렸다. 물 흐르듯이 바람 불듯이 부딪히면 휘어지고 돌아가듯 마음가고 손가는대로 그냥 그렸다.
그런데 이 그림을 보고 서각가 소산 오규일이 이걸 가지고 싶다며 떼를 쓰는가보다. 달준이에게서 뺏을 모양이다. 그래서 세번째 발문과 난초 꽃대 사이에 아주 작은 글씨로 이 장면을 크로키처럼 그렸다.

“오소산이 보고 억지로 빼앗아가니 정말 가소롭구나.”

'가소(可笑)' 속에 추사의 평온한 미소가 보인다. 그래도 달준이에게 주었는지, 소산이가 결국 뺐어 가졌는지 그건 모르겠다. 추사는 거기에도 무심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낙교천하사'와 '김정희인'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림이 글이 되고, 글이 그림이 되었다.
그림과 이야기가 잘도 어울린다.
ㅡㅡㅡ
언뜻 두개의 키워드, '소네트(sonnet)'와 '화중유시(畵中有詩)'가 짝을 지었다. 내 안에서 비발디의 음악[樂]과 추사의 그림[畵]이 만나  소네트[詩歌]를 낳고 있다.

비발디는 사계를 작곡하고 그 계절을 노래하며 소네트를 붙였다 한다. 가령. '가을'의 소네트는 이렇다.
ᆞᆞᆞᆞ
가을 (L'Autunno)
https://youtu.be/Np52I5Dg6C8

제1악장 (Allegro, F Major, 4/4)
"마을 사람들은 춤과 노래로 복된 수확의 즐거움을 축하한다.
바커스의 술 덕택으로 떠들어댄다.
그들의 즐거움은 잠으로 끝난다." 

제2악장 (Adagio molto, d minor, 3/4)
"일동이 춤을 그치고 노래도 그친 뒤에는 조용한 공기가 싱그럽다.
이 계절은 달콤한 잠으로 사람에게 큰 즐거움을 준다."

제3악장 (Allegro, F Major, 3/8)
"새벽에 사냥꾼들은 뿔피리와 총, 개를 데리고 사냥에 나선다. 짐승은 이미 겁을 먹고 총과 개들의 소리에 지칠 대로 지치고 상처를 입어 떨고 있다. 도망칠 힘조차 다하여 궁지에 몰리다가 끝내 죽는다." 
ᆞᆞᆞᆞ
아직 소네트는 뭔지 잘 모르겠다.
칠언절구 한시나 우리의 연시조를 닮은 듯하다.
시조를 읊고, 그림 속에서 이야기를 찾아 연시조 또는 소네트 형식으로 표현해보는 수업을 해봐야겠다.
가령, 추사의 세한도와 세한도 발문을 패러디해서 '나의 세한도와 소네트(연시조)'형식으로 표현해보는 수업이나, 윤동주 시 '자화상' 읽기와 나의 자화상과 소네트, 도덕윤리 수업 속에 畵中有詩ᆞ畵中有謠ᆞ畵中有話를 설계해 볼 만하겠다.

*소네트:소네트와 운의 맛 http://munchon.tistory.com/1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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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고택

추사고택 완쪽에는 추사의 출생 설화가 전해지는 우물이 있다.
추사가 태어나기 전에 비가오지 않아 산천초목이 시들고 우물이 말랐다.
추사가 이십개월 만에 태어나자 비가 오기 시작하여 초목이 살아나고 샘이 쏟아 우물을 채웠다한다.

추사묘

탁본체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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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고택을 찾아들어가다 초입에 월성위 김한신과 화순옹주묘가 있다. 추사의 증조부모이다. 화순옹주는 영조의 딸이며 증조부 김한신은 영조의 사위다. 그러고보면 봉사손 김정희는 조선왕실의 외손인 셈이다.
증조부모님은 같은 해에 태어나 서른 여덟 같은 해에 돌아가셨다. 조선 왕실에 이렇게 애절한 사랑이 또 있을까?
조선왕조 실록에 기록되어있다.

조선왕조실록ᆞ영조실록 91권,
영조 34년 1월 17일 갑진 1번째기사 1758년 청 건륭(乾隆) 23년
<화순 옹주의 졸기> 국역ㅡ
화순 옹주가 졸(卒)하였다. 옹주는 바로 임금의 첫째 딸인데 효장 세자(孝章世子)의 동복 누이동생[同母妹]이다.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에게 시집가서 비로소 궐문을 나갔는데, 심히 부도(婦道)를 가졌고 정숙(貞淑)하고 유순함을 겸비(兼備)하였다. 평소에 검약(儉約)을 숭상하여 복식(服飾)에 화려하고 사치함을 쓰지 않았으며, 도위(都尉)와 더불어 서로 경계하고 힘써서 항상 깨끗하고 삼감으로써 몸을 가지니, 사람들이 이르기를, ‘어진 도위와 착한 옹주가 아름다움을 짝할 만하다.’고 하였는데, 도위가 졸하자, 옹주가 따라서 죽기를 결심하고, 한 모금의 물도 입에 넣지 아니하였다. 임금이 이를 듣고, 그 집에 친히 거둥하여 미음을 들라고 권하자, 옹주가 명령을 받들어 한 번 마셨다가 곧 토하니, 임금이 그 뜻을 돌이킬 수 없음을 알고는 슬퍼하고 탄식하면서 돌아왔는데, 이에 이르러 음식을 끊은 지 14일이 되어 마침내 자진(自盡)하였다. 정렬(貞烈)하다. 그 절조(節操)여! 이는 천고(千古)의 왕희(王姬) 중에 있지 아니한 바이다. 조정에 받들어 위로하고 정후(庭候)하였다.

사신(史臣)은 말한다. "부인(婦人)의 도(道)는 정(貞) 하나일 뿐이다. 세상에 붕성지통(崩城之痛)*1) 을 당한 자가 누구나 목숨을 끊어 따라가서 그 소원을 이루려고 하지 아니하겠는가마는, 죽고 사는 것이 또한 큰지라, 하루아침에 목숨을 결단하여 집에 돌아가는 것처럼 보는 이는 대개 적다. 그러나 정부(貞婦)·열녀(烈女)가 마음의 상처가 크고 슬픔이 심한 즈음을 당하여, 그 자리에서 자인(自引)*2) 하는 것은 혹시 쉽게 할 수 있지만, 어찌 열흘이 지나도록 음식을 끊고 한 번 죽음을 맹세하여 마침내 능히 성취하였으니, 그 절조가 옹주와 같은 이가 있겠는가? 이때를 당하여 비록 군부(君父)의 엄하고 친함으로서도 능히 감동해 돌이킬 수 없었으니, 진실로 순수하고 굳세며, 지극히 바른 기개(氣槪)가 분육(賁育)*3) 이라도 그 뜻을 빼앗지 못할 바가 있지 아니하면 능히 이와 같겠는가? 이는 진실로 여항(閭巷)의 필부(匹婦)도 어려운 바인데, 이제 왕실의 귀주(貴主)에게서 보게 되니 더욱 우뚝하지 아니한가? 아! 지극한 행실과 순수한 덕은 진실로 우리 성후(聖后)께서 전수(傳授)하신 심법(心法)이므로, 귀주가 평일에 귀에 젖고 눈에 밴 것을 또한 남편에게 옮겼던 것이다. 아! 정렬하도다. 아! 아름답도다."
[註 032] 붕성지통(崩城之痛) : 남편이 죽은 애통.
[註 033] 자인(自引) : 자살.
[註 034] 분육(賁育) : 중국 춘추 전국 시대의 용사(勇士)
(원문)
○甲辰/和順翁主卒。
主卽上之第一女, 而孝章世子同母妹也。 下嫁于月城尉 金漢藎, 始出閤, 甚得婦道, 貞柔兼備。 雅尙儉約, 服飾不用華侈, 與都尉交相儆勉, 常以淸愼自持, 人謂賢都尉淑翁主可以儷美云, 及都尉卒, 主決意下從, 勺水不入口。 上聞之, 親幸其第, 勸進糜餌, 主承命一呷, 旋卽哇之, 上知其志不可回, 嗟歎而還, 至是絶粒積十四日, 竟以自盡。 烈哉, 其操! 此千古王姬之所未有也。 朝廷奉慰庭候,

【史臣曰: 婦人之道, 貞一而已。 世之遭崩城之痛者, 孰不欲殞身下從, 以遂其願, 而死生亦大矣, 其能判一朝之命, 視之如歸者蓋尠矣。 然貞婦、烈媛, 當其創(臣)〔巨〕 慟甚之際, 卽地自引, 容或易辦, 而豈有經旬絶粒, 矢以一死, 卒能成就, 其節操如翁主者哉? 當是時雖以君父之嚴且親, 而亦莫能感回焉, 苟非純剛至正之氣, 有賁育所不能奪者能如是乎? 此固閭巷匹婦之所難, 而乃見於天家貴主, 尤豈不卓然矣乎? 嗚呼! 至行純德, 實我聖后傳授心法, 故貴主平日所濡染者, 亦移之於所天。 嗚呼, 烈哉! 嗚呼, 懿哉!】
【태백산사고본】 64책 91권 6장 A면
【국편영인본】 43책 676면
【분류】왕실-비빈(妃嬪) / 역사-사학(史學) / 인물(人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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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의 삶을 찾아 가다.
추사고택~추사의 탄생지ᆞ추사의 묘

충청도 예산
예산백송(고조부묘)ᆞ백송공원ᆞ화순옹주 정려문ᆞ김한신과 화순옹주(증조부모묘)ᆞ추사고택ᆞ우물ᆞ탁본체험관ᆞ추사기념관ᆞ화암사
예산 용궁리 백송

추사가 25세때 청나라 연행때 가져왔다는 백송의 그의 고조부 김흥경의 묘 앞에 심었다.

백송공원
추사의 글씨 기념조각공원

명선

정좌처다반향초ᆞ묘용시수류화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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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 요사채 누각에 걸린 '추수루'를 보니, 추사의 '춘풍ᆞ추수' 대련이 그려진다.

춘풍대아능용물 春風大雅能容物
추수문장불염진 秋水文章不染塵
 
"봄 바람의 대아는(큰 부드러움은) 만물을 다 받아들일 수 있고,
가을 물의 문장은(물 무늬는) 티끌 먼지가 더럽힐 수 없다."
 

이 글씨는 추사(秋史)가 만년에 서울 봉은사에 머물 때 휘호(揮毫)하였다. 이 구절은 중국 북송시대를 대표하는 유학자 정명도(程明道)·정이천(程伊川) 형제의 인품과 학덕을 칭송하는 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정명도에 대해 春風大雅能容物이라고 했고, 정이천에 대해서는 秋水文章不染塵이라 했다는 것이다.

따뜻한 봄 바람에 나근하게 졸던 뭇 생명들이 크게 기지개켜며 싹을 돋우고, 명징한 가을에 찬 물 한사발 들이키면 시름이 다 달아나듯 속 시원하고 정신이 맑아진다.

어떤 이는 대아를 '시와 노래'라하고, 문장을  '추상같은 산문'으로 해석한다. 그렇다면 대아는 상상력과 창조력의 산물인 시서화의 예술작품이니 세상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일 수 있겠다. 문장은 정확한 사실성과 비판적 사고력에 바탕을 둔 논술문이요 역사적 기록이니 일체 상상과 거짓됨이  용납될 수 없겠다.
하지만  '대아ᆞ문장'을 이야기하는 것은 문외한인 내게는 어렵고 재미없다. 그에 비해 춘풍(春風)과 추수(秋水)는 촉감으로 직접 느낄만큼 쉽다.
춘풍은 포근하고 따뜻하고 다정하고 친절하고  부드럽다. 추수는 시원하고 차갑고 냉정하고 엄정하고 단호하다.
춘풍에 새싹이 돋아나고 뭇 생명이 발랄하게  자라난다. 추수에 익어가고 거짓됨이 없이 영글어져서 거두어 들인다.
선생님이 지녀야 하는 역량과 아이들을 대하는 자세로써, '춘풍추수'를 돌아본다. 근자에 선생님들 연수에 회자되는 학급긍정훈육법(PDC)에서는 '친절하고 단호한 교사'가 되라고 한다.
교수평 일체화에도 '춘풍추수'에 빗대어 본다. 아이들을 대하는 손길과 눈길 그리고 대화와 수업은 눈녹이고 꽃피우는 춘풍(春風)이 되어야 하고,  평가와 기록은 참되고 엄정하여 티없이 맑은 추수(秋水)가 되어야 한다.
'다정도 병이 된다'는 옛 말이 있다. 시험때나 평가 기록에서는 일체무염진한 추수문장이 되어야한다.
"춘풍능용물, 추수불염진" 5언대구도 좋고 "춘풍추수", 사자성어도 좋다.
임서하여 눈앞에 붙여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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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첫날, 추사가 경계지은 '시의 나라', '시의 경지'인  '시경(詩境)'을 찾아 갔다.
천축고선생댁에 시의 나라를 새겼다니,
이 땅이 온전히 시의 천지인가?
시의 나라가 천축고선생댁인가?

충청도 예산의 추사고택에서 안쪽으로 1킬로 미터 정도 너머 떨어진 곳에 화암사가 있다. 추사의 증조 할아버지이자 영조의 사위인 월성위 김한신 때부터 집안 대대로 물려진 사찰이다.
세월을 견디다 허물어질 듯 낡아버린 요사채 뒤로 새로 지은 대웅전이 있고 대웅전 뒤 뜰에 병풍같이 드리운 바위에 천축고선생댁과 시경이 새겨져 있다.

화암사 요사채ᆞ화암사 현판은 추사 증조부 김한신의 글씨이고,
추수루ᆞ원통보전 현판은 추사의 글씨이다.
'춘풍대아능용물ᆞ추수문장무염진' 대련에서 '秋水'를 갖고 왔다.

병풍바위ㅡ천축고선생댁

병풍바위ㅡ시경

화암사 대웅전 뒤의 병풍바위

천축(天竺)은 인도를 가리키고, 고선생(古先生)은 석가모니이며 그 분의 댁(宅)이니 곧 절집이다. 부처님 모신 절집을 '천축고선생댁'이라 부르니, 그의 유불회통(儒佛會通)하는 학자적 자세와 호방한 대인의 기질을 읽을 수 있다.

천축고선생댁을 지나 왼쪽 암벽을 찾아가니 '시경(詩境)'에 이르게 된다.
넉넉하고 바른 예서체로 천년 만년 마모되지 않을 만큼 바위에 음각하였다. 어떤 이는 옹방강에게서 선물받은 탁본글씨라고도 하나, 나는 추사의 글이라 여긴다. 추사의 정기가 서렸기에 손바닥을 대어본다. 어디에서 이렇게 추사를 친견하듯 체득할 수 있겠는가.

애써 이곳까지 왔으니, 소금강산을 구경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의 나라'에서 2-300미터 숲길로 들어가면 추사가 암벽에 새긴 소봉래(小蓬萊)를 찾을 수 있다. 소봉래는 추사가 서울에서 내려와 화암사에서 공부하던 젊은 시절에 사용한 아호이다. 금강산을 일러 봉래산이라한다. 추사는 이곳을 작은 금강산이라 여기며 고향의 산천을 사랑했다. 내포 땅 너른 평야와 숲길은 이 곳 사람들 같이 넉넉하고 조용하다.

여기인가? 저기인가? 숲길 군데 군데 글을 새겼을 만한 암벽이 나타난다.

ㅡ 소봉래 추사제

마음 같아서는 추사의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를 얻고자 탁본이라도 떠고 싶지만 생각뿐이고, 다만 손바닥을 펼쳐 '추사(秋史)'를 오른손 한 뼘에 담아본다.
  돌아나오는 길에 절룩거린다. 신발 밑창이 떨어지는 줄도 몰랐다. 신발 밑창을 들고 숲을 나온다. 머리 속에서 죽은 달마가 신발 한짝은 제 무덤에 둔 채 한 짝은 머리에 이고 고향 천축국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떠올려졌다.

추사의 '천축고선생댁ᆞ시경'이 암각된 화암사 병풍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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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교육연수원 원격연수프로그램
<문ᆞ사ᆞ철 인문학 여행> 내용집필자로 보낸 원고 속 문제를 사족으로 붙인다.
문제>
아래 글은 제주도 유배길에 나선 김정희가 해남의 두륜산 어느 절에 잠시 들렀을 때의 일화이다. 이 절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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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에 걸린 당대의 명필 원교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大雄寶殿)’ 현판을 보고 초의 스님에게 “글씨를 안다는 사람이 어떻게 저런 것을 걸고 있는가?”라고 나무라며 스스로 ‘대웅보전’을 써주고서는 바꿔서 걸라고 했다. 붓을 잡은 김에 ‘무량수전(無量壽閣)’이라는 글을 하나 더 써주었다. 훗날 유배에서 풀려나 돌아오는 길에 다시 이곳에 들러 원교의 현판을 다시 걸라고 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그의 오만함이 유배지의 고난 속에서 원만한 인품으로 다듬어졌다고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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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흥사        2) 백련사
3) 수덕사        4) 화암사

ㅡㅡㅡㅡㅡㅡㅡ답 2 대흥사
추사는 만년에 서울 강남의 봉은사에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 한다. 이래저래 선생은 유불의 경계를 초탈하였다.
'시의 나라'에서는 경계가 없다.

제주 추사관에서

저 고졸한 '판전(板殿)' 현판글이 서울 봉은사에 걸린 추사 최후의 글씨이다.
천 개의 붓을 몽당으로 닳게하고, 열 개의 벼루를 구멍을 내었던 그였지만 마지막 글은 힘과 인위를 모두 버린듯하다.
낙관으로 '71살 과천의 늙은이가 병중에 쓰다(七十一果病中作)'라 쓰고 붓을 놓았다.
사흘 뒤에 선생은 '말씀의 사찰,  시(詩)의 나라'를 떠나 무언적멸(無言寂滅)의 세계로 들어갔다.

돌아와 탁본한 명선(茗禪)을 붙여놓고 차를 마시며 애써 선정(禪定)에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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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꿈샘 2018.08.03 17: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생님 반갑습니다:)
    귀하고 유려한 기행문 잘 읽고 갑니다

  2. 착한 나무 2018.08.04 1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수석님~
    수석님의 말씀이 글 속에서 들려오네요~
    감사합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
두번째 평화와 통일의 인문학 산책을 떠납니다.
아이들이 친구와 함께 주제를 선정하고 조사하고 자료집을 만들었습니다.

2018 1학기 2차 인문학 산책 자료집(판문점).hwp 

학교에서 목적지까지 두시간 동안 버스에서 발표하며 공부합니다.

담당 부서에서 준비물과 유의사항을 나눠 주었네요.
선생님들과 함께 교실 밖, 세상 속의 공부방으로 출발합니다.

인문사회부장님이 교내 메신저를 보내셨어요. 꼼꼼하게 준비하시고 친절 단호하게 안내주시는 선생님이 참 고맙답니다.
........................................
선생님들도 꼼꼼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출발시간 엄수. 8시 칼같이 출발합니다. 교사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 신분증 지참 : 신분증 미지참시 통일대교에서 하차하셔야 합니다. 반드시 지참바랍니다.
- 복장 : 규정이 깐깐하니 사전교육 자료 꼭 읽어주세요.
- 음주자 견학 금지 : 음주자(몸에서 술 냄새가 나는 경우 포함)는 견학이 금지되니 되도록 전날 과음 자제 부탁드립니다.
1차때도 그러했지만 선생님들이 많은 배려와 도움이 큰 힘이 됩니다. 이번에도 든든한 매홀선생님들을 믿고 용기있게 산책을 떠나보려 합니다.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

2018학년도 1학기 2차 인문학 산책 사전교육.hwp


<작년 길 위의 통일인문학 산책 화첩>

따로 / 다르게 가본 DMZ
1) 2008년 경기 서부지역 DMZ(판문점, 김포, 강화) http://munchon.tistory.com/962
2) 2017년 한반도의 허리 DMZ 서에서 동으로 http://munchon.tistory.com/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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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저희 매홀고등학교 인문학 산책 프로그램이 교육부 - 중앙교육연수원 http://www.neti.go.kr
- 원격연수프로그램(15차시)을 통해 소개되네요.
제가 1, 2부 11차시와 우리학교 인문사회부장이 제3부 4개 차시 원고를 작성하였습니다.
<문학, 역사, 철학을 찾아 떠나는 인문학 여행> 원격직무연수(휴대폰 수강 가능)도 이수하시고, 가족 친구들과 힐링 인문학 여행길도 떠나보셔요.

*수강신청은 수시이며, 연수기간은 20일 정도
*교육대상 : 교원, 교육일반직, 일반국민 포함
*15개 차시 구성 및 자세한 사항                    

1부 > 한양도성의 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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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문학 산책, 길을 걷다가 길에게 묻다.
2 목멱산 길을 걷다
3 안중근의 삶과 논어
4 인왕산 길을 걷다
5 백악산 길을 걷다
6 낙산 길을 걷다

2부 > 겨레의 스승에게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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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원효에게 길을 묻다
8 퇴계에게 길을 묻다
9 율곡에게 길을 묻다
10 다산에게 길을 묻다
11 추사에게 길을 묻다

3부 > 사제부 행복동행, 교실 밖 인문학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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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학교사례1)인문학에서 찾는 나의 진로와 미래
13 (학교사례2)한양도성 길에서 찾는 나의 과거-현재-미래
14 (학교사례3), , 부 행복 동행
15 (학교사례4)별 헤는 밤, 시 읽는 밤

*이 연수의 일부(인왕산자락 서촌마을, 백악산자락 성북동)는 지난달 16일 제주도 탐라교육원에서, 30일 운암고 등에서도 오프라인으로 강의하였습니다. 
*저의 블로그 ‘문촌수기’-‘길 위의 인문학’ 카테고리를 통해 본래 원고 내용과 사진 및 제게 의미깊은 식당과 카페 등도 소개됩니다.
*이 프로그램으로 학생들과 인문학 오프라인 강의한 경험도 나눕니다.
군포 산본고-‘인문학 고전 통통’(6강, 12차시) 강의 및 활동장면
http://munchon.tistory.com/1086
http://munchon.tistory.com/1138 ~ 1142
http://munchon.tistory.com/1143 ~ 길 위의 인문학 마무리(내 마음 속 한장면 한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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