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인문학 4강, 낙산 자락길에서 읽는 죽음  / 산본고 ~ 인문고전 통통! 강좌

 <친구들 활동모습> Before I die, I Want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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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문학 3강, 백악산 자락, 성북동 길에서 읽는 삶

  / 산본고 ~ 인문고전 통통! 강좌

 

조지훈 시인의 방우산장

조지훈 시인은 경상북도 영양 사람이며 본명은 동탁(東卓). 19394문장지에 시 고풍의상이 추천되고, 11승무, 1940봉황수를 발표함으로써 시인으로서 문단에 추천되었다. 그는 훗날 이 곳 성북동에 살면서 박목월, 박두진 등과 함께 청록집을 출간하였다. 이른바 청록파 시인들이다. 조지훈 시인이 살던 그 때 그 집은 지금 없지만 시인을 기념하고자 성북동 142-1번지 가로 길에 '시인의 방- 방우산장(放牛山莊)' 표지 기념물이 2014년에 설치되어있다. 그러나 관심과 뜻이 없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굳이 행인을 붙잡지 않는 검소한 조형물이다.

조지훈 시인은 자신이 기거했던 곳을 모두 방우산장(放牛山莊)’ 이라고 불렀다. 이는 그가 1953년 신천지에 기고한 '방우산장기'에서 '설핏한 저녁 햇살 아래 내가 올라타고 풀피리를 희롱할 한 마리 소만 있으면 그 소가 지금 어디에 가 있든지 내가 아랑곳할 것이 없기 때문' 이라고 말한 것에서 연유하였다. 마음속에 소를 한 마리 키우면 직접 키우지 않아도 소를 키우는 것과 다름없다 는 그의 방우즉목우(放牛則牧牛)’ 사상을 엿볼 수 있다.

파빌리온(pavilion) 형의 벽에는 창호지 없는 격자문이 열려있고, 오른편 전면에는 그의 <낙화>시가 새겨져 있다. 시인은 나의 심정을 눈치 챈 듯, 낙화에 눈물을 훔친다. 오늘 같이 봄비 오는 날, 낭송하기에 제 맛을 내는 시이다.

낙화(落花)

조지훈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어린 왕자'에게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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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문학 2강ㅡ인왕산 길에서 찾는 나  / 산본고 ~ 인문고전 통통! 강좌

시인 이상의 집과 화가 구본웅과의 우정

인왕산 자락의 사직단에서 통인시장으로 오르는 서촌의 길을 걷다보면 좌우에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숨은 집터가 있다. 세종이 태어난 마을이라서 이곳을 세종마을이라고도 한다. 화가 구본웅 집터, 이상범의 집, 시인 이상의 집, 박노수 미술관, 윤동주 하숙집 등이다. 종로의 토박이인 구본웅(1906~1953)이상(1910~1937)의 우정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삽화가 이승만의 그림에서 보다시피 반항적 외모의 이상과 대조적으로 키가 무척 작은 구본웅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구본웅은 태어나서 4개월 만에 어머니가 산후병으로 돌아가시고 식모의 등에 업혀 젖동냥으로 키워졌다. 어린 식모가 실수로 등에 업힌 아기를 댓돌 위에 떨어트려 그만 아기는 척추를 다치고 말았다. 그것도 모르고 고통을 참고 자랐던 본웅은 성장이 멈춰버린 곱추가 되었다. 약골에다 곱추의 형상으로 네 살 늦게 학교에 들어갔다. 어린 친구들의 놀림 속에서도 유일하게 친구가 되어준 아이가 있었다. 바로 김해경이다. 해경과 본웅은 단짝이 되었고 그림에도 같은 소질을 보였다. 본웅의 큰 아버지가 조카에게 미술도구가 담긴 화구상자를 선물로 사다 주었다. 본웅은 그 선물을 선뜻 친구 해경에게 주었다. 해경이 그렇게 갖고 싶어 했던 것이다. 이 화구상자를 선물 받은 해경은 감사의 징표로 자기의 호를 (, 상자)’이라 하고 싶다고 본웅에게 말하고 호에 어울리는 성()을 같이 찾아 붙였다. 그래서 이상(李箱)’이라는 시인의 이름이 탄생되었다. 그만치 이상은 이상(異常)한 친구이다. 크면서 이상은 시인의 길을, 구본웅은 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후에 구본웅은 이상을 위해 친구의 초상을 그렸고, 이상은 친구를 위해 8씨의 출발이라는 시를 썼다. ‘차팔(且八)’은 본웅의 성씨인 ()’의 파자(破字)이다. 이상은 이렇게 장난과 반항의 기질로 글자를 갖고 놀았으며, 오감도(烏瞰圖)와 같은 이상한 시를 썼다.

서촌 마을 골목에는 이상의 집이 보존되어 있다. 물론 이상(김해경)이 어린 시절 살았던 김해경의 큰아버지 집이다. 해경은 네 살 때, 큰 아버지 댁의 양자로 들어가 이곳에서 살았다. 이곳에는 이상의 초상과 그의 문학작품이 실린 잡지 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어둡고 좁은 계단에 앉아 그의 영상을 보면서 이상한 시인의 삶과 작품에 다가갈 수 있다. 옥인동 골목길을 올라가며 박노수 미술관을 들르고 연희전문학교 시절의 윤동주 하숙집을 지나 겸재 정선의 수성동 계곡 숲길로 들어가면 이들의 우정이야기를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시인의 언덕

윤동주 문학관을 나와 왼쪽에 난 계단으로 언덕을 올라가면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다. 그 언덕 위에 서면 서울의 모습이 앞에 펼쳐지고 왼편으로는 병풍같이 높은 북악산이 일품이다. 그의 너무나 유명한 서시비 앞으로는 저 멀리 서울의 남산이 보이고 연무에 희미하지만 관악산도 보인다. 그 서시를 크게 낭독해야 나들이의 참 맛을 볼 수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 위에는 놓치지 말고 꼭 찾아보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시인 윤동주 영혼의 터가 있다. 윤동주 문학관을 나와 시인의 언덕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가 서시시비로 가는 잔디 밭 가운데 있다 보니 눈에 잘 띠지 않는다. 찾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찾을 수 있다. 2009년 가을, 청운공원에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조성되고, 윤동주 문학사상 선양회와 함께 한 84명의 문인들이 중국 용정을 찾아 시인이 묻힌 북간도 공동묘지에서 흙을 한 줌씩 가져와 뿌린 자리이다. 시인의 넋을 그래도 가장 가까이에 만날 수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언덕 위에 구절초가 한창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다 져버리니 시인의 넋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물티슈로 흙먼지를 덮고 있는 ''를 깨끗이 닦아드리고, 함께 산책한 길동무들과 함께 묵념을 드렸다.

더보기> 윤동주문학관ᆞ시인의 언덕에서 놓치지말고 보아야 할 것들

[황보근영의 문촌수기] http://munchon.tistory.com/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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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길을 걷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걸으니
눈치볼 것도 주저함도 미안함도 조바심도 없어서 편하다. 가다 머물다 걷다 쉬다 그냥 마음따라 산책한다.

성북동 산책 ㅡ 우리 산책길에 감동을 더하기위해 만나게 될 문예인들의 작품을 한편 이상은 읽고 오기!
ᆞ나폴레옹 제과점 2층 카페
          또는 근처 커피숍
ᆞ위안부 소녀상 (한성대 입구역)
ᆞ방우산장 조형물ㅡ조지훈의 시
ᆞ최순우 옛집ㅡ,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어서서
ᆞ    김홍도의 오수당과 낮잠 단상
ᆞ성북동 성당
ᆞ누브티스ㅡ넥타이 박물관
ᆞ길상사ㅡ법정의 수필, 무소유
ᆞ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
ᆞ달동네와 부자동네를 건너다.
ᆞ가톨릭 순교복자 선교회ㅡ피정의 집
ᆞ수연산방 차한잔 ㅡ 한국의 모파상, 소설가 이태준의 옛집
ᆞ점심식당 ㅡ 이향
ᆞ심우장ㅡ만해 한용운의 시
ᆞ북정마을ㅡ달동네
ᆞ성북동 비둘기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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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인문학 산책길을 걷다, 세마리의 소를 만난다. 방우, 견우, 심우이다.
억지로 얽었다라고 할지라도 소(牛)와 연결하여 세 사람의 문인(文人)을 이야기 해 보는 것은 재미가 있다.

첫번째 만난 사람은 조지훈이다.
성북동 길에 그의 집터를 기념하여, '방우산장' 파빌리온 조형물을 세웠다.
방우(放牛)란 '소를 놓아주다. 소를 풀어주다'라는 의미이다. 시인은 "마음 속에 소를 키우면 굳이 소를 잡아 둘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고삐 풀린 소는 누구이며, 어디로 갔을까?

시대의 흐름(시류)에 맹종하지 않고 거스르고 가로지르며 횡보(橫步)한 염상섭의 집터를 찾았다. 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자기 집을 가져 본 적이 없이 가난하게 살았던 그가 마지막에 살았던 전셋집을 찾았다. 그러나 흔적도 쉽게 찾을 수 없어 포기했다. 집 같은 것은 남기지 않아도 그의 문학은 불멸한다.
그의 문학 작품명, 견우화(牽牛花)에서 나타난 견우는 무슨 의미일까?
잡아 길들이고자 꼬투레를 뚫고 끌고 오는 소한마리, 견우(牽牛)는 누구일까? 소를 길들이는 이일까? 그의 견우화는 또 누구이며 무엇일까?
곤드레 만드레 술에 취한 그를 소가 끌고 오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소도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며 게 걸음질을 한다.
 그의 호, 횡보는 횡행천하(橫行天下)에서 따온 이름이다. '게가 비틀거리며 위태롭게 걷지만 결국 천하를 간다'는 말처럼, 평온하고 정상적인 삶을 허락하지 않은 시대가 만들어 낸 그의 이름이다.
그는 수주 변영로, 공초 오상순와 함께 당대 문단의 ‘주선(酒仙)’으로 통할 만큼 술을 좋아했다. 죽기 전에 그가 마지막으로 한 일도 아내가 숟가락에 떠준 소주를 받아 마신 것이었다고 한다.

의자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은 광화문 교보빌딩 뒤에서 만날 수 있다.

이제, 소를 찾는다. 만해 한용운은 자신이 거처하는 집을 심우장(尋牛莊)이라 불렀다. 그렇다면 소를 찾는 그가 심우이며, 그의 삶 또한 심우라 할 것이다. 그가 찾는 소는 곧 그 자신일 것이라.
그는 심우장을 노래했다.

잃은 소 없건마는
찾을 손 우습도다.
만일 잃을 시 분명타 하면
찾은 들 지닐소냐.
차라리 찾지 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라. ㅡ<심우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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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간 동료선생님들과 아이들과 함께 걸으며 이야기 나누었던 나의 "길 위의 인문학 산책"을 정리하였다.
그 경험을 중앙교육연수원(http://www.neti.go.kr/)에서 15차시 원격프로그램으로 만들어졌다.
크게 3부로
-'한양도성 길을 걷다'
-'겨레의 스승에게 길을 묻다'
-'사제부 함께 걸은 길 사례'로 나누었다.
7월 12일부터 수강신청ᆞ개강 된다고 한다.
원고집필자 자격으로 제작중인 과정을 미리 들어가 검수하고 있다.

현장을 찾아 영상 사진 촬영하여 아나운서가 이야기를 들려 주며,  스마트폰으로도 수강할 수 있어 편했다.
먼저, 플레이스토어에서 <통합교육연수시스템>을 설치하고 로그인 하면된다.

3부-15개 차시 제목은 다음과 같다.
제1부ᆞ인문학 산책, 길을 걷다. 길에 묻다.
ㅡ한양도성 길을 걷다. (6개 차시)

제2부ᆞ겨레의 스승에게 길을 묻다.(5개 차시)

3부ᆞ사제부 함께 걸은 길 (학교적용사례, 4개 차시)

ㅡ 본래제목을 '길 위의 인문학 교실' 또는  '학교 밖 인문학 산책'으로 하려 했는데,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ㅡ추기 ᆞ 세종로의 역사 ㅡ 누가 광화문을 흔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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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길 위의 인문학 산책길.
이번엔 특별히 의자가 테마가 되었다.
한성대역 6번 출구 가로 공원에 앉은 한ᆞ중 평화의 소녀상과 세번 째의 빈의자.

길거리 가게 앞에 나온 친절한 의자, 쉬어 가셔요.

조지훈 방우산장ㅡ시인의 방에 흩어진 의자들

길상사, 법정스님 추모하는 진영각 왼쪽에 놓인 "빠삐용의자'. 그러나 나는 '어린 왕자의 의자'가 자주 오버랩 된다. 빠삐용의 의자에 앉고 싶었지만 세월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법정스님의 의자가  무너질까봐서 그 옆에 앉았다.

심우장 아래, 의자에 앉아 길손을 마중나오신 만해 한용운 님

그리고 <의자> 시

< 의자 >  - 이정록 -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ㅡㅡㅡㅡ
그리고 학창 시절의 애송시
조병화의 <의자>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드리지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드리겠습니다.

<의자> 조병화
ㅡ북정마을

ㅡ심우장 뒤뜰 툇마루

ㅡ북정마을, '성북동 비둘기' 쉼터 의자에 앉아 시를 소리내어 읊는다.

ㅡ북정마을 정자에서 잠시 쉬어간다.
가난한 이들에게 이런 쉼터가 더 많았기를 바란다. 돌아보는 골목길을 내려가면 한양도성으로 들어가는 암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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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성북동 길.
이 봄 비에 꽃 떨어질까 저어한다.
다행히 바람은 잔잔하고 비는 가늘다.
덕분에 세상은 고요하고, 공기는 맑다.
조지훈 시인은 이 곳 성북동에 살면서 박목월,  박두진 등과 함께 청록집을 출간하였다. 이른바 청록파 시인들이다.
조지훈 시인이 살던 그 때 그 집은 지금 없지만 시인을 기념하고자 성북동 142-1번지 가로길에 조지훈 '시인의 방ㅡ방우산장(放牛山莊)' 표지 기념 조형물이 설치되어있다.
   시인은 자신이 기거했던 곳을 모두 ‘방우산장(放牛山莊)’ 이라고 불렀다. 이는 그가 1953년 신천지에 기고한 '방우산장기'에서 '설핏한 저녁 햇살 아래 내가 올라타고 풀피리를 희롱할 한 마리 소만 있으면 그 소가 지금 어디에 가 있든지 내가 아랑곳할 것이 없기 때문' 이라고 말한 것에서 연유하였다. 즉, 마음속에 소를 한 마리 키우면 직접 키우지 않아도 소를 키우는 것과 다름없다’ 는 그의 ‘방우즉목우’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참고로 보조국사 지눌의 호는 목우자(牧牛子)이며, 만해 한용운의 당호는 심우당(尋牛堂) 임을 같이 알아두면 더욱 흥미롭다. 대체 그 놈의 소가 뭐길래, 찾고 키우고 놓아둔다는 걸까?
  기념 조형물을 '폴리'라고 한다. 폴리(Folly)'란 건축학적인 본래의 기능을 잃고 조형적인 의도와 장식적 역할을 하는 건축물을 뜻한다.  근래 도시의 거리에는 그 동네의 자랑스런 사람과 이야기를 찾아 이런 도시조형물(urban folly)을 설치해 가고 있다.
   성북동의 방우산장 조형물은 파빌리온 형의 대리석벽과 창호지없는 격자문이 시인이 살았던 집 방향으로 열려있고, 그 위로 우리 전통 가옥의 처마와 그 아래에 마루가 있으며 마당같이 조성된 곳에는 의자들이 놓여 있다. 시인의 방이라 여기고 둘러앉아 시인의 시 한 수 읊으면 제격이다. 대리석벽 바깥면에는 시인의 절창인 <낙화>시가 새겨져 있다. 시인은 나의 심정을 눈치챈 듯, 낙화에 눈물을 훔친다. 오늘 같이 봄비 오는 날, 낭송하기에 제 맛을 내는 시이다.

<방우산장>ᆞ시인의 방

 낙화(落花)  -   조지훈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성북동142-1번지

한성대역 6번 출구(평화의 소녀상)에서 부터 마을버스 4-5번 째 정류장 가까이에 있다.

시인의 방, 방우산장 열린 창호문 방향으로 골목을 들어서면 시인이 살았다는 옛집터 표지석(태극기 게양대 옆에)이 놓여 있다. 학창시절 배우고 읊었던 <승무>이다.
~얇은 사 하이얀 꼬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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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오는 성북동 나들이.
한성대역 5번 출구의 나폴레옹 제과점에서 만나 시작한다. 예전에는 2층에서 한양도성 낙산성곽이 훤하게 보였는데 이제 낯선 건물이 눈길을 가로 막았다. 그림책인가, 어디서 본듯 한 건물 형태이다. 마술사 같은 화가인 에셔의 그림에서인가? 바벨탑 축소판인가?

나폴레옹 제과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버스 정류장에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특별하다. 한복을 입은 한국의 소녀상 옆에 친구가 앉아 있다. 치바오 바지를 입은 중국의 소녀상이다. 이 소녀상은 2015년 10월에 건립되었다한다.
마음 착한 이가 소녀들에게 모자를 씌우고 목도리를 둘러주었다. 한국의 소녀상 뒤로는 할머니 그림자가, 중국의 소녀상 뒤로는 지나온 발자욱이 찍혀있다. 두주먹은 단단한 각오로 움켜쥐고 있으나, 맨발의 두 발은 불안한 듯 땅을 딛지 못하고 있다. 오른쪽의 빈의자는 누구의 자리일까? 동남아의 위안부 소녀의 자리이기도 하며, 곁에서 늘 위로가 되어 줘야할 나의 자리이기도 하다.

흔히 인문(人文)의 어원을 '사람의 무늬'이라 할 적에 무늬란 곧, 소녀상 뒤로 난 할머니 그림자, 그림자 속의 하얀 나비와 같은 문양이며, 그리고 두 주먹, 두 발, 어깨 위의 저 새와 같은 상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인문학은 바로 그 사람이 만들어 낸 무늬ᆞ문양ᆞ상징에 문사철의 의미를 부여하고 찾아가는 것이다.
소녀상의 상징과 의미를 이야기한다. 그 순간 소녀상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삶이 되고 사람이 된다.
한편 괜한 시비를 삼아본다. 공감이라는 착한 동기에서 비롯되었지만 소녀상에 모자와 목도리를 씌운 행위는 과연 잘한 일일까? 위안부 소녀의 고통을 상징하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가렸으니 결과적으로 소녀상을 왜곡한 것은 아닐까? 오늘따라 비가 오니 차라리 젖은 모자와 목도리를 벗기고 우산을 함께 서야하는 것은 아닐까?

봄비는 가시나무도 이렇게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게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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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도(道)가 무엇이길래,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했을까?
공자의 도,
노자의 도,
동중서의 오상지도를 듣는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던 공자. 그에게 도란 무엇일까?  공자는 제자들 앞에서,
 "삼아. 나의 도는 하나로 통한다."( 參乎 吾道 一以貫之)라고 했다. 그 말씀이 무슨 말인지 제자들이 의아했다. 스승이 떠난 자리에서 증자는 "선생님의 도는 충과 서일뿐이라"(夫子之道 忠恕而已矣)라고 하였다. 중심을 잃지 않고 자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충(忠ᆞ中心)이요.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서(恕ᆞ如心)이다.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타인에게 베풀지 않는 것이다." 도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가 만나는 사람 사이에 있다.

그러나, 도를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노자는
"도를 도라고 규정하여 말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늘 그러한 상도(常道)를 어떤 이들은 영원불변의 도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규정되고 단정되고 고정되어 판에 박혀 석고상이 되어버린 죽은 도가 아니다. 오히려 늘 변하고 늘 살아 움직이는 도이다.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여럿이 될 수 있는 열린 도이다. "서울 가는 길, 이 길 밖에 없다"라고 말하는 '가도(可道)'는 거짓말이다. 서울 가는 길이 어디 한 길 뿐이랴?

다만, 늘 그러한 상도(常道)의 움직임은 '거꾸로' 가는 것이다. '반대로" 가는 것이다. '돌아가는' 것이다.
변증법적 정반합의 반(反ᆞ안티테제)이 있어야 지양(止揚)의 발전이 있다. 정(定ᆞ테제)만 있고 반이 없으면, 그 정(定)은 고정된 부동이요 죽은 것이다. 하늘 아래 완전하고 절대적인 진리와 법칙과 제도가 어디있는가? 모순을 지적하는 반(反)이 있어야 발전이 있다. 그 발전의 과정이 도이며, 도의 움직임이다. [反者道之動]
늘 물음표를 던져라.
삐딱하게 받아들여라.
다르게 바라보라.
다르게 생각하라.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 자연은 그것이 도(道)의 작용이라고 가르치고 있다.[弱者道之用]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을
이제 반대로 받아들여라.
그 길이 도(道ᆞThe Wa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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