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같이 귀한 보배를 모아두었다'는 집옥재는 경복궁 산책에 점안(點眼)을 찍는 멋을 가져다 주었다.
고궁박물관에서 만나 근정전ㅡ사정전ㅡ강녕전ㅡ경회루ㅡ교태전ㅡ아미산ㅡ자경전ㅡ향원정ㅡ건천궁 산책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들리는 대한제국 황실의 도서관인 집옥재는 아주 특별하다.


경복궁 수많은 전각들이 있지만 집옥재는 건축양식이 좀 낯설다. 바로 중국풍의 벽돌로 벽을 만들었다. 처마의 선도 다소 직선적이다.


강사포를 입고 통천관을 쓴 고종황제의 모습. 
1897년 새로 정한 통천관의 양을 보면 관은 오사(흑색)으로 만들고 전후를 각 12량으로 하였고 그 12량 가운데에 5채옥(황. 청. 백. 주. 흑)을 순서대로 꿰어 장식하였고 중앙에 옥잠도를 꽂았고 홍색의 조영끈이 달려 있다. 대한제국이전에 왕과 왕세자는 강사포에 원유관을 썼다.

집옥재 현판과 주련
<집옥재> 글쓴이가 '미원장'이다. 북송서예가인 '미불'을 일컫는다.

<여섯개의 주련>
쇄윤함고 운기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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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담장과 굴뚝은 그 자체가 예술이며 보물이다. 꽃과 글자가 그림이 되었다.

교태전 정문, 양의문 양쪽에는 글자가 새겨진 아름다운 벽돌 담장이 있다. 실은 양의문입구기둥이 아니라, 강녕전의 굴뚝이다. 왼쪽 굴뚝에는 '만수무강'이, 오른쪽 굴뚝에는 '천세만세'가 세로로 새겨졌다. (아래)

교태전 뒤 담장

자경전 서쪽 꽃담장 ㅡ 낙강(만세)만년장춘

마지막 글자는, 봄 춘(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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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굴뚝은 그 자체가 예술이며 보물이다. 꽃과 글자가 그림이 되었다.

<강녕전 굴뚝>
교태전 정문, 양의문 양쪽에는 글자가 새겨진 아름다운 벽돌 담장이 있다. 실은 양의문입구기둥이 아니라, 강녕전의 굴뚝이다. 왼쪽 굴뚝에는 '만수무강'이, 오른쪽 굴뚝에는 '천세만세'가 세로로 새겨졌다.

위ᆞ만수무강(疆) ㅡ 아래ᆞ천세만세(千世萬歲)

<교태전 굴뚝ᆞ아미산>
경회루연못을 만들기 위해 파낸 흙을 교태전 뒤어 쌓아두었다가 후원 정원을 만든 곳이 아미산이다. 아미산에는 네개의 굴뚝이 있다. 굴뚝은 그 자체가 최상급 예술 조각품이다.

<자경전 굴뚝>
경복궁 자경전 뒤의 굴뚝에는 많은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
그것도 백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 살아있다.

굴뚝을 아름답게 장식한 벽 가운데에는 십장생이 양각되어있다. 해, 산, 달 또는 구름, 물, 바위 등 우주 자연의 무생물체들과 소나무, 불로초, 거북이, 학, 사슴 등 오래 사는 생물들이 있다. 그외 다산을 상징하는 포도와 과거 삼과를 연이어 급제하기를 바라는 연꽃ᆞ연잎ᆞ연과도 있다. 위에는 학이 있고  귀신얼굴도 있다.
아래에는 쇠를 먹고사는 '불가살이'라는 상상의 동물도 있다. 나쁜 기운을 물리치며 말그대로 죽지않는다고 믿어졌다.

자경전 굴뚝, 십장생도 옆면에는 박쥐가 붙어 있다. 그의 습성대로 거꾸로 매달려있다.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어 복을 빈다. 박쥐, 복(蝠)과 행복, 복(福)의 발음이 같아서 그렇게 상징한다. 중국에서는 박쥐 복자의 발음과 부유할, 부(富)의 발음이 같아서 박쥐가 '부'를 상징한다. 같은 동양이라도 조금씩 그 상징하는 바도 다르다.

문화는 상징이다. 동양은 박쥐를 복을 가져다준다며 좋게 보고 있지만 서양은 사악한 악마와 같이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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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의 조화 읽기>

정도전을 경복궁을 디자인하고 궁궐문들과 전각들의 이름을 지어주면서 음양 조화, 자연 묘합의 가치를 담았다. 좌우로 대칭되는 궁궐문과 전각들에서 음양 조화의 현판을 찾아 읽는 것도 경복궁 산책의 큰 묘미이다. 인문학 산책의 묘미란 바로 길 위에서 글을 얻는 것이다. 
 -
경복궁의 음양조화 현판 
양(하늘/동방/좌측/봄) - 음(땅/서방/우측/가을)
* 궁  문 : 건춘문 - 영추문
* 근정문: 일화문 - 월화문
* 근정전 회랑 기둥 주춧돌 : 둥글고 네모지다 - 천원(天圓)지방(地方)
* 사정전: 만춘전 - 천추전
* 강녕전: 연생전(延生殿) - 경성전(慶成殿)
* 양의문(兩儀門): 태극의 양의 - 양의(陽儀)와 음의(陰儀)
   [그림 : 태극-양의(음효와 양효)-사상(노음,소음,소양,노양)

[최하단-8괘:(땅)-(산)-(물)-(바람)-(번개)-(불)-(연못)-(하늘)] 

* 교태전(交泰殿): '천지교태(天地交泰)' ~ "하늘(양)과 땅(음)이 어울리니 태평하다." 는 의미로 <주역> 태(泰)괘에서 유래한다.
태괘의 모습은 곤(坤)괘가 위에 있고, 건(乾)괘가 아래에 있다.


* 아미산(峨嵋山): 낙하담(落霞潭) 함월지(涵月池)
    ~ 낙하담은 저녁 해가 떨어져 노을이 지는 연못이며, 함월지는 달을 품은 연못이다.


 <작은 보물들 찾기>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볼 수없다. 남들이 눈 여겨 보지 않아도 귀한 것들이 있다. 하늘소 벗님들과 경복궁 나들이, 혼자서는 힘들어도 벗님들과 함께 작지만 귀하고 재미있고 소중한 것들을 찾아 얘기를 나누었다. 오래전, 고궁박물관 기념품 가게에서 재미난 것이 눈에 띠었다. 그래서 구입하여 읽다가 이번 하늘소 벗님들 나들이에 사용하였다. 경복궁의 작은보물들 찾기를 위해 카드 18장을 골라내고 각자 두개씩 고르게 했다. 그리고 그 보물카드의 현장을 찾아 본인이 설명하기로 했다. 학생시절로 돌아가 체험학습을 하는 셈치고 놀았다. 다들 노안으로 보물카드의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흥겹게 공부 놀이를 즐기면서 산책을 하였다.
학교의 아이들 데리고 다니면서 이렇게 공부해도 되겠다.
  

 <경복궁 자경전 굴뚝>

* 십장생도 속의 일로연과(一老蓮果) : 과거 길에 나가 연달아 초시, 소과, 대과 과거에 급제하라는 일로연과(一路連科)의 의미를 담고 있다.
* 불가살이(不加殺伊)~말 그대로 죽지 않는다고 믿어졌으며, 곰의 몸, 코끼리의 코, 무소의 눈, 소의 꼬리, 범의 발을 가졌다. 쇠를 먹고 살며 사악한 기운과 전염병을 물리친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박쥐, 복(蝠) ~ 한자로 음이 복(蝠)이라서 복(福)을 불러오는 상서로운 짐승으로 여겼다. 대체로 복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 것을 희망하여 거꾸로 매달린 모양으로 새겨져 있다. 하지만 교태전 뒤의 아미산 굴뚝에 새겨진 두마리 박쥐 문양은 위의 것은 아래로 향하고 아래의 것은 위를 보며 있다.  


경복궁 북문, 신무문 - 홍예문 안에는 현무가 그려져 있다. 북방의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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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광무 원년) 고종은 경운궁으로 환궁하여 그해 8월 17일 광무(光武)란 연호를 쓰기 시작하고10월 3일 황제 칭호 건의를 수락하였다. 고종은 자주 의지를 대내외에 널리 표명하고 땅에 떨어진 국가의 위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반드시 제국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였으며, 10월 12일 원구단(園丘團)에서 상제(上帝)님께 천제를 올리고 국호를 대한제국이라 고치고 황제를 자칭하면서 즉위하였다. 대한제국이 선포되자 각국은 대한제국을 직접으로, 간접으로 승인하였다. 그중 제정 러시아와 프랑스는 국가 원수가 직접 승인하고 축하하였으며 영국, 미국,독일도 간접으로 승인하는 의사를 표시하였다.[5] 그러나 당시 열강 대부분은 대한제국의 성립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제위에 오른 고종은 그 직후인 11월 12일 미루었던 명성황후의 국장(國葬)을 치렀으며, 과거에 청에 사대하던 관계를 상징하던 영은문을 허물고 그 자리에 독립문 건립에 추진하여 11월 20일에 완공하여 조선의 자주독립을 원하고 있었다.
고종은 경운궁으로 환궁하고서 입법기관인 교전소를 설치하고 원로대신 다섯 명과 더불어 박정양과 이완용, 서재필, 탁지부 고문 영국인 존 브라운, 법부 고문 샤를 르장드르를 위시한 외국인 고문관들을 교전소 부총재와 위원으로 배정했으나 교전소 위원이 친미개화파와 외국인이 과반수를 차지하자 원로대신들이 꺼리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다.

서울대 이태진 명예교수 ㅡ
"대한제국은 무기력하지 않았고, 고종은 무능한 황제가 아니었다"
http://v.media.daum.net/v/20171011173625646?f=m&rcmd=rn

환구단 ㅡ 황제국 선포 후 하늘에 제사드린 환구단의 황궁우와 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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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자락 비우당

길 위의 인문학-문사철 인문학 여행 2017. 10. 10. 21:38 Posted by 문촌수기

낙산 동쪽 자락 비우당(庇雨堂),

조선의 백과사전인 <지봉유설>의 저자,  실학자 지봉 이수광이 살았던 집터이다. 집터는 한양도성을 이루고 있는 동.서.남.북 봉우리 중 가장 낮은 서쪽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 동쪽 상산 줄기에 위치하고 있다. 
이수광은 조선중기 실학자의 선구자로 세차례에 걸쳐 사신으로 중국을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조선은 물론 중국, 일본, 유구, 베트남 등 중국 주변국은 물론 영국, 포르투갈 등 서양세계를 비롯한 다양한 내용을 담은 백과사전 성격의 ‘지봉유설(芝峰類說 )’을 저술하였다. 그는 일찍이 관직에 나아가 이조참판까지 역임하고, 명나라에 사신을 세번씩이나 다녀올 정도로 고위층에 해당하는 인물이었지만, 그가 살았던 작은 초가집은 당시 그가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집터에는 이수광이 살았던 집을 복원해 놓고 있는데 부엌 1칸, 방2칸으로 이루어진 조선시대 전형적인 서민가옥 형태를 하고 있다. 원래 이수광의 외가쪽 인물로 청백리로 널리 알려졌던 유관이 살았던 집을 이수광이 고쳐지어 살았다고 전해지는 집이다.  현재의 가옥은 최근에 옛모습을 복원한 것으로 실제 초가집과는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조선시대 한양에 거주했던 선비들이 소박하게 살았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집터 뒷편에는 단종비 정순왕후가 폐위된 뒤 빨래를 했던 곳으로 전해지는 자주동샘과 거북모양의 바위가 남아 있다.

비우당, 서울 종로구 창신동
비우당은 ‘비를 가리는 집’이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실학자인 지봉 이수광(1563~1628)이 살던 곳이다. 낙산 동쪽 상산의 한 줄기인 지봉 아래 있었는데 이수광의 호 지봉이 여기에서 나왔다. 원래는 창신동 쌍용2차 아파트 자리에 있었는데 서울시에서 낙산공원을 조성하면서 이곳에 복원하였다. 조선 초기의 청백리로 명성이 높은 유관이 이곳에서 살았는데 지붕이 새자 손수 우산을 받치고 살면서 부인에게 “우산 없는 집은 어떻게 견딜꼬?”라 농담을 하였다는 ‘유재상의 우산’이라는 고사가 생겼다. 이곳은 외손인 이수광 집안으로 상속되었는데, 그 집이 임진왜란 때 소실되자 이수광이 집을 새로 짓고 그 이름을 비우당이라 하였다. ‘동원비우당기’에 이러한 사연을 자세히 적었다. 이수광은 비우당에 살면서 이 일대의 여덟곳을 ‘비우당 팔경’이라 하고 시를 읊었다. 동지세류에서 흥인문 바깥의 못가에 핀 버들이 봄바람에 버들개지를 날리고 꾀꼬리가 지저귀는 모습을 노래하였으며, 북령소송에서는 북악의 산마루가 낮에도 늘 어둑한데 푸른 솔 그림자가 집에 드리운 것을 보고 동량으로 쓰이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였고, 타락청운에서는 아침마다 누운 채 낙산의 구름을 마주하면서 한가한 구름처럼 살고 싶다고 하였다. 아차모우에서는 아차산에서부터 벌판을 지나 불어오는 저녁비를 노래하였다. 전계세족에서는 비가오고 나면 개울에 나가 발을 씻고 개울가 바위에 드러눕는다고 하였고, 후포채지에서는 지봉과 상산의 이름에 맞추어 상산사호처럼 살고 싶다 하였다. 암동심화에서는 복사꽃 핀 꼴짜기에서 나비를 따라 꽃을 찾아가는 풍류를 말하였고, 신정대월에서는 맑은 정자에 올라 술잔을 잡는 흥취를 말하였다. 비우당이 있던 곳은 조선시대 자지동이라 불렀다.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가 폐위되어 영월로 간 단종을 기다리면서 이곳에 와서 빨래를 하였는데 빨래가 붉은 빛으로 염색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 위쪽에 거북바위가 있었다. 정순왕후가 단종이 탄 거북이를 타고 승천하는 꿈을 꾸었는데 아침에 보니 이 바위가 나타났다는 전설도 전한다. <출처:서울시청>

한양도성 낙산정상에서 동으로, 왼쪽에 한성대, 오른쪽에 쌍용2차아파트 담장 사이로 난 길을 내려오면 아파트단지 정문 가까이에서 자주동샘 안내 이정표가 보인다. 이 내리막길을 50여 미터 쯤 내려오면 비우당이 있다.

낙산정상에서 북으로 바라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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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 나폴레옹 제과점ㅡ최순우옛집ㅡ선잠단지ㅡ성북동면사무소ㅡ한양도성 성곽길ㅡ북정마을
  ㅡ성북동 비둘기 쉼터ㅡ만해 심우장ㅡ(점심)ㅡ수연산방(차한잔)ㅡ길상사ㅡ해산

ᆞ심우장, 북향으로 지은 까닭은? 만해의 항일정신과 시문학 세계, 심우도 그림 이야기

국정원? 식당

ᆞ수연산방:구인회의 상허 이태준 문학세계. 전통차 한잔 ㅡ 이번엔 그냥 지나친다.
ᆞ길상사:백석 시인을 사랑한 자야 -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김영한,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서

길상사의 주전은 극락전이다. 보통 대웅전에 석가모니를 주불로 모시는데, 길상사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셨다.
절이 되기 전의 이곳은 술과 고기와 여인네들의 웃음을 팔던 요정이었는데, 남성들의 노리개가 되었던 여성들과 죽어간 짐승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미로 극락전을 주전으로 삼았다.

성모 마리아를 닮은 관세음보살상,
오래전 그 앞에 앉아 들고간 차를 마시며 색연필로 화첩에 그려보았다.
성모마리아ㅡ관세음보살상

백석이 사랑한 자야.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

고급요정의 방갈로가 지금은 스님들의 수행방이 되었다.

법정스님 살아계실 적과 입적당시의 행지실은 지금은 법정스님의 진영과 유품을 모시고 진영각의 현판을 달고 있다.
진영각 툇마루 왼쪽 끝에 다정한 연인들이 앉아 있는 그 옆에 장작나무 만든 투박한 의자가 덩그러이 놓여있다.
오래전 스님께서 불일암에 계실적에 만들어 '빠삐용 의자'라는 이름을 붙인 그 의자가 이 의자이던가? 아니라해도 그것을 닮았으며, 그것을 의미하며 상징으로 만들어 두었을거다.
인생을 허비한 죄로 절해고도에 갇힌 빠삐용의 심정을 헤아리고자 이 의자를 만들고 앉아, 인생을 낭비하지 않았나 돌아보았다는 의자이다.
고독한 어린 왕자가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석양을 바라보기 위해 의자를 마흔 세번이나 옮겨가며 앉았던 처럼 스님도 그 의자에 앉아 고독과 어린 왕자를 사랑하며 석양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나는 이 '빠삐용 의자'에  '어린 왕자의 의자'가 오버랩되어 내 기억에 각인되어 있다.

끽다거ㅡ차나 마시고 가게.

어느 책속에서.법정스님  뒷모습
성모를 닮은 관세음보살상을 지나 낙엽을 바라보며 고개를 푹 숙이고 천천히 고갯길을 걸으시는 법정스님.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나도 모르게 시가 읊어집니다.
스님의 뒷 모습에서 측은지심과 경건함을 동시에 느껴집니다.

불일암의 빠삐용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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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촌수기 2017.09.23 18: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맑고 향기롭게'는 지난 1994년 3월 법정스님의 가르침대로 세상과 자연, 마음을 맑고 향기롭게 가꾸며 살자는 취지로 법정스님을 회주로 발족한 시민단체로 그동안 생태사찰가꾸기, 생태문화기행 등 환경보호와 생명사랑을 실천해왔다.
    길상사는 시인 백석의 연인이며 요정 `대원각'을 운영했던 김영한 할머니가 숨지기 3년전인 지난 1996년 서울 성북동 7천여평의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기증해 건립한 절이다.
    (서울=연합뉴스) 서한기기자 shg@yna.co.k

  2. 문촌수기 2017.09.23 18: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법정스님은 다래헌(서울 봉은사)과 불일암에 성모상을 모셔놓고 촛불 공양을 올리셨습니다.
    "여러분이 빚을 져서는 안 되겠지만 사랑해야 할 빚만은 남아 있다."는 로마서 13장 8절 구절이 참 좋다고 옮겨 적으시기도 했습니다.
    ㅡ이해인 수녀가 계시는 수녀원 아침기도에 참석하셨을 때는 ~
    ㅡ 일여, 날마다 새롭게 98, 예담

산책길] 한성대입구역 5번출구,
나폴레옹 제과점에서 만남 ㅡ최순우옛집ㅡ 선잠단지ㅡ 성북동면사무소ㅡ한양도성 성곽길ㅡ북정마을ㅡ성북동 비둘기 쉼터 ㅡ만해 심우장ㅡ (점심)ㅡ 수연산방(차한잔)ㅡ 길상사 (- 마을버스 타고 다시 한성대입구역으로 복귀 - 해산)
출발 ᆞ나폴레옹 제과점ㅡ

최순우옛집ㅡ

오수당

두문즉시심산ㅡ"문을 닫은 즉, 이 곳은 깊은 산속." (오수당 안채뜰에 붙인 현판)
굳이 몸이 드나드는 곳만 문이 아닐 것이다. 더러운 세상에 마음을 닫는 것, 그럴 적에 유유함을 얻게되라라는 것은 아닐까? '세상 같은 것은 더러워서 버린다'는 백석의 심정도 이러한 것이 아닐까?

오수당 뜨락에서 낮잠단상ㅡ옛날 학창시절의 달콤한 오수, 공자와 제자 재여의 낮잠, 목어와 목탁이야기, 잠과 꿈ㅡ호접지몽, 임실의 오수(개 오, 나무 수) 이야기 등

밀레와 고흐의 낮잠 그림ㅡ노동후의 휴식, 한편의 성화처럼

선잠단지ㅡ스쳐지나가며, 경신고 담장이 된 한양도성성곽돌들
우리밀국시와 성북동면사무소?ㅡ국수단상

한양도성 성곽길ㅡ성북동마을

북정마을

성북동 비둘기 쉼터ㅡ김광섭의 시

만해 심우장ㅡ
(점심)ㅡ
수연산방(차한잔)ㅡ
길상사

[인문학-스토리텔링]
ᆞ최순우 옛집:<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의 저자
             오수당 에서 '낮잠' 단상
ᆞ선잠단지:선잠단ㅡ선농단ㅡ사직단ㅡ장충단 '제단' 단상
ᆞ성북동 면사무소에서 '국수'단상
ᆞ한양도성 길과 성북동
ᆞ북정마을: 도시 개발과 촌락보존의 가치
ᆞ비둘기 쉼터: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 시낭송
ᆞ심우장:만해의 항일정신과 시문학 세계, 심우도 그림 이야기
ᆞ수연산방:구인회의 상허 이태준 문학세계. 전통차 한잔
ᆞ길상사:백석 시인을 사랑한 자야 -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서
      -성모마리아와 관세음보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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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문학 산책

"산이 곧 책이다."
매홀고 길 위의 인문학 산책 동아리 선생님들이 다음주 토요일(9월 16일) 인문학 산책길을 떠납니다. 10월 말 경 있을 본교의 사제부 행복 문학기행 사전답사를 겸합니다.
함께 걸으며 가을을 맞이합시다. 

[시작모임] 09.16(토) 10시ㅡᆞ4호선 한성대입구역 5번출구, 
        나폴레옹 제과점 2층카페에서 커피 한잔드시며 만남을 기다려요.

[산책길] :
나폴레옹 제과점ㅡ최순우옛집ㅡ선잠단지ㅡ성북동면사무소ㅡ한양도성 성곽길ㅡ북정마을
  ㅡ성북동 비둘기 쉼터ㅡ만해 심우장ㅡ(점심)ㅡ수연산방(차한잔)ㅡ길상사
    (- 마을버스 타고 다시 한성대입구역으로 복귀 - 해산)

[인문학-스토리텔링]
ᆞ최순우 옛집:<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의 저자
             오수당 에서 '낮잠' 단상
ᆞ선잠단지:선잠단ㅡ선농단ㅡ사직단ㅡ장충단 '제단' 단상
ᆞ성북동 면사무소에서 '국수'단상
ᆞ한양도성 길과 성북동
ᆞ북정마을: 도시 개발과 촌락보존의 가치
ᆞ비둘기 쉼터: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 시낭송
ᆞ심우장:만해의 항일정신과 시문학 세계, 심우도 그림 이야기
ᆞ수연산방:구인회의 상허 이태준 문학세계. 전통차 한잔
ᆞ길상사:백석 시인을 사랑한 자야 -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서
      -성모마리아와 관세음보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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