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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에서 읽는 실록이야기20

영월 장릉 제6대 단종의 능 장릉, 제6대 단종의 능 장릉莊陵(단종) 위치 :강원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능의 형식 :단릉능의 조성 :1457년(세조 3), 1516년(중종 11), 1580년(선조 13), 1698년(숙종 24) 능의 구성 장릉은 조선 6대 단종의 능이다. 단종이 1457년(세조 3년) 노산군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자, 영월호장 엄흥도(嚴興道)가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현재의 자리에 가매장하였다. 이후 1698년(숙종 24) 단종대왕으로 복위되면서 묘소를 능제에 맞게 다시 조성하였다. 영월 장릉의 진입공간에는 재실 외에 일반적인 조선왕릉과 다르게 단종의 충신들을 위한 건조물이 있다. 장릉 입구에는 노산군묘을 찾아 제를 올린 영월군수 박충원(朴忠元)의 뜻을 기린 낙촌비각(駱村碑閣), 재실 옆에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2020. 12. 12.
조선 왕조의 시작과 끝(스크랩) [박종인의 땅의 歷史] 여기가 조선왕조의 시작이며 끝이었다. 스크랩 조선 왕조의 시작, 전주 조경단. 박종인 선임기자 조선일보, 2020.12.09 [239] 전주 이씨 시조 묘 조경단 전북 전주 덕진동 전북대학교와 덕진체련공원 사이에 제사 때를 빼고는 늘 닫혀 있는 문이 있다. 문 너머 공간 이름은 조경단(肇慶壇)이다. ‘경사가 시작된 제단’이라는 뜻이다. 또 있다. 옛 전주부성 남문 이름은 풍남문(豐南門)이고 서문 이름은 패서문(沛西門)이다. 풍(豐)과 패(沛)는 한나라 유방이 군사를 일으킨 강소성 패군 풍현을 가리킨다. 즉 제왕의 땅이라는 말이다. 이쯤이면 조경단이 무엇이고 풍남문과 패서문이 무엇인지 짐작이 가리라. 조선 왕실에 전주는 풍패지향(豊沛之鄕), 새 왕조를 일으킨 제왕의 고향이라는 말이다.. 2020. 12. 9.
정릉(선정릉)-조선 제11대 중종 정릉(靖陵)ㆍ조선 제11대 중종의 능 정릉은 중종의 단릉單陵이다. 서울 강남구의 선정릉 능원에 같이 있다. 중종中宗(1488~1544, 재위 1506~1544)은 제9대 성종成宗과 정현왕후貞顯王后의 아들로 태어나 1494년 진성대군晉城大君에 봉해졌다. 이후 1506년 박원종元宗 등이 연산군山君을 폐위하고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한 중종반정으로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 동안 연산군대의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아 새로운 왕도정치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조광조趙光祖 등 사림을 등용하여 현량과賢良科를 실시하고, 향약鄕約을 전국적으로 실시하여 새로운 향촌질서를 확립하였다. 인쇄술의 발달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편찬하였고, 비변사備邊司를 설치하여 국방체제를 정비하였다. 재위 39년에 57세로 세상을.. 2020. 12. 5.
선릉(선정릉)-조선 제9대 성종 선릉(宣陵)은 조선제9대 성종(成宗)과 정현왕후의 능이다. 중종의 능인 정릉과 같은 능원을 쓰기에 통상 선정릉으로 불린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예방차원에서 출입구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중종대왕릉부터 시작해서 선릉인 정현왕후 릉, 성종대왕릉, 재실을 찾아간다.(글은 왕이 선왕을 찾아가는 방향으로 서술 한다.) 선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태로, 정자각 앞에서 바라 보았을 때 왼쪽(서쪽)언덕이 성종, 오른쪽(동쪽)언덕이 정현왕후의 능이다. 선릉의 능역 조감도를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설치했다. 참 감사한 일이다. 눈과 더불어 손가락으로도 높낮이를 볼 수있으니 더욱 실감난다.성종(1457~1494, 재위 1469~1494)은 추존 덕종(의경세자.. 2020. 12. 5.
건릉(융건릉)-조선 제22대 정조 건릉ㆍ健陵 -조선 제22대 정조선황제와 효의선왕후의 능 정조선황제正祖宣皇帝(1752~1800, 재위 1776~1800)는 장조의 둘째 아들로 할아버지 영조英祖가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올랐다.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라 천명하고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규장각을 두어 학문 연구에 힘썼으며 장용영을 설치하고 수원 화성城을 건축하는 등 조선의 중흥을 이끌었다. 재위 24년(1800)에 세상을 떠나자 묘호를 정종正宗이라 올렸으며, 광무 3년(1899) 정조선황제로 추존하였다. 효의황후 (1753~1821)는 청원부원군高原院君 김시묵金時의 딸로 영조 38년(1782) 왕세손빈에 책봉되었고,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다. 천성이 공손하고 온화하였.. 2020. 11. 24.
융릉 - 왕릉에서 읽는 조선왕조실록 융릉 2020. 11. 24.
인릉ㅡ조선 제23대 순조 인릉ㆍ仁陵조선 제23대 순조와 순원왕후의 능인릉은 조선 제23대 순조(純祖 : 1790~1834, 1800~1834 재위)와 순원황후 김씨(純元皇后 金氏: 1789~1857)의 능이다. 순조는 정조와 유비 박씨의 아들로 1800년 11세로 왕위에 올랐으므로 영조의 두 번째 왕비 정순왕후가 순조를 대신해 정사를 돌보았다. 이후 순조는 직접 정사를 돌보았으나 세도정치로 국정이 어지러워 부정부패가 생기고, 자연 재난, 홍경래의 난 등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순원황후는 1802년(순조 2)에 왕비가 되었다. 헌종과 철종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면서 수렴청정을 하여, 조선의 왕비 중 유일하게 2번 수렴청정을 하였다.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광무 3) 각각 순조숙황제(純祖肅皇帝)와 순원숙황후(純元肅皇后)로 추.. 2020. 11. 22.
헌릉(헌인릉)-조선 제3대 왕 태종 서울 서초구 헌인릉길 34 헌름과 인릉 (02-445-0347) /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94호. 내비게이션에서 '헌릉'을 검색하면 '헌인릉'을 찾아간다. 편의상 줄여서 헌인릉이라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헌릉과 인릉이다. 헌릉ㆍ獻陵- 조선 제3대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 헌릉은 조선 3대 태종(太宗, 1367~1422, 1400~1418 재위)과 원경왕후 민씨(元敬王后 閔氏. 1365~1420)의 능이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째 아들로 태조를 도와 나라를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1400년에 왕위에 오른 후 중앙과 지방의 제도를 정비하고, 관제를 개혁하였으며, 호패법을 실시하는 등 새 왕조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원경왕후는 남편 태종을 왕위에 오를 수 있게 적극적으로 도왔으며, 태종 사이에 양녕, 효령, .. 2020. 11. 22.
신교, 저승과 이승을 이어주는 다리 나는 사찰에 가면 전각의 뒤로 즐겨 돌아간다. 좌우벽과 뒤벽에 그려진 벽화를 보기 위해서이다. 벽화 속에 감동과 깨달음이 있다. 왕릉을 즐겨 찾는다. 조용한 숲속 길을 즐겨 걷는다. 산 이와 죽은 이가 만나는 정자각을 찾아가서도 그 뒤를 꼭 살피려 간다. 능침에 누워있던 혼령이 내려와 정자각으로 들어오기 위해 건너오는 신교를 보기 위해서이다. 아무렇지도 않을 돌판 다리지만 저승에서 이승으로 이어주며 어버이와 자녀를 만나게 해준다는 상상을 하니 가슴 저미는 감동이 일어난다. (사진 위 : 화성시에 있는 정조대왕의 건릉, 신교) 특히 장경왕후의 희릉에서 보는 신교의 모습은 더욱 실감난다. 다리가 능침영역인 사초지 속으로도 이어져 있다. 왕후의 신령이 아들 딸을 만나고자 정자각으로 내려오면서 사초지에서부터 신.. 2017. 8.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