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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길 산책 - 홍난파 가옥 홍난파가옥 1930년 독일계 선교사 가옥으로 지어진 이 집은 '고향의 봄', '봉선화', '퐁당퐁당' 등 주옥같은 우리 가곡과 동요를 남긴 작곡가 홍난파가 1935년부터 6년간 거주하면서 말년을 보냈기에 '홍난파의 집'이라 부른다. 1900년대 초반 부근 송월동에 독일영사관이 위치해 있었기에 이 일대는 국내 독일인들의 주거지였다. 홍난파는 이 집에서 지내면서 그의 대표작 가운데 많은 작품을 남겼다. 서쪽 도로를 통해 마당 안으로 들어와 계단을 오르면 현관으로 이어지는 이 집은 지붕이 가파르며 거실에는 벽난로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남쪽 현관과 이어진 복도의 서쪽과 동쪽에는 각각 거실과 침실을 두고 가파른 경사지를 이용하여 거실의 아래쪽에는 지하실을 두었는데, 이는 공간을 알뜰하게 활용하던 당시 서양인 주.. 2023. 10. 29.
정동길 산책 - 경교장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이 1945년 11월에 중국에서 돌아온 후 1949년 6월 26일 안두희의 흉탄으로 암살당하기 전까지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본래 이 건물은 일제 때 금광을 경영하여 거부가 된 최창학이 지은 저택인데 갑신정변 당시의 일본 공사였던 다케조에(竹添)의 성에서 따 죽첨장(竹添莊)이라 했는데, 해방이 되자 친일 행위를 뉘우친다면서 이집을 백범 선생의 거처로 제공하였다. 김구는 이 집의 이름을 만초천 위에 놓은 다리 이름인 경교(京橋)에서 따와 경교장으로 바꾸었다. 1948년 4월 19일 김구가 반공 학생들의 반대 시위 속에서도 남북협상을 위해 길을 떠난 곳도 바로 이곳에서 부터이다. 우여곡절 끝에 1967년 삼성 소유로 넘어갔다. 이후에도 병원 확장 등의.. 2023. 10. 29.
정동 인문학 산책 - 돈의문터 ■ 돈의문(敦義門) 터 한양도성의 서대문인 돈의문이 있던 자리이다. 돈의문은 태조 때 처음 세워졌다. 여러 사연이 있지만 새문, 신문(新門)으로 불렸으며 현재의 ‘새문안’, ‘신문로’라는 지명도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1915년 일제는 이곳으로 지나는 전차를 개통하면서 이 문을 해체하고 건축자재는 매각하였다. 경교장을 나와 큰 길이 있는 길로 내려오면 현재 돈의문 터를 찾을 수 있다. 다만 ‘보이지 않는 문’이라는 이름의 공공 미술품이 설치되어 있다. 이 큰 길을 넘어 경향신문사에서부터 구 러시아공사관터, 정동제일교회, 배제학당, 덕수궁까지의 정동골목길과 서소문터에서 숭례문까지 또한 수많은 인문학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23. 10. 29.
성공회 대성당에서 사직단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현장을 찾아가는 길이다. 저녁이면 선생님들의 협의회가 있다. 겸사겸사 아침부터 길을 나서 서울 나들이에 나셨다. 코스 잡기를, 동탄에서 광역급행버스를 타고 을지로입구역 정류장에서 버스하차, 여기서부터 걷기를 시작한다. 서울시민청ㅡ성공회주교좌 성당과 영국대사관ㅡ조선일보미술관ㅡ새문안교회ㅡ한글학회ㅡ주한중국문화원ㅡ사직단 새로 지어진 서울시청과 옛 서울시청(도서관)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곡선과 직선의 대조, 유리와 돌의 대조, 참 어울리지 않은 짝과 같다. 그렇다면 새 것을 옛 것에 좀 더 어울리게 할 순 없었을까? 그래도 어쩌랴. 지나간 것은 지나 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니....보기에 따라 좋게 보는 사람도 있겠지 뭐. 대한성공회 주교좌 성당 : 높은 곳에서 바라본 주교좌 성당이.. 2023. 10. 28.
대한제국 선포! 환구단 1897년(광무 원년) 고종은 경운궁으로 환궁하여 그해 8월 17일 광무(光武)란 연호를 쓰기 시작하고10월 3일 황제 칭호 건의를 수락하였다. 고종은 자주 의지를 대내외에 널리 표명하고 땅에 떨어진 국가의 위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반드시 제국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였으며, 10월 12일 원구단(園丘團)에서 상제(上帝)님께 천제를 올리고 국호를 대한제국이라 고치고 황제를 자칭하면서 즉위하였다. 대한제국이 선포되자 각국은 대한제국을 직접으로, 간접으로 승인하였다. 그중 제정 러시아와 프랑스는 국가 원수가 직접 승인하고 축하하였으며 영국, 미국,독일도 간접으로 승인하는 의사를 표시하였다.[5] 그러나 당시 열강 대부분은 대한제국의 성립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제위에 오른 고종은 그 직후인 11월 12일.. 2023. 10. 28.
한양과 서울의 이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양에서 시작해서 파란의 역사를 거치면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세계적인 거대도시 서울로 확장하기 까지. 먼저 그 이름의 유래가 궁금했다. 눈 '설(雪)의 울타리'라는 전설은 참 재미있지만, 허구에 가깝고, 서라벌ㆍ새벌에서 유래했다는 설에는 신빙성이 갔다. [한양이라는 이름] 무엇보다도 조선의 수도, 한양(漢陽)이라는 이름은 늘 불만스럽고 의문투성이다. 우리나라를 뜻하는 한(韓)이 아니고, 왜 중국을 뜻하는 한(漢)을 썼냐는 것이다. 강둑의 북쪽은 햇살을 잘 받으니, 볕 양(陽)가 들어가는 고을 이름을 갖는다는 말에는 공감이 간다. '한강의 북쪽 고을'이라서 한양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설명은 영 마뜩찮다. 아니 성의가 없다. 한강(漢江), 한수(漢水)의 '한(漢)'에 대해 설명.. 2023. 10. 28.
마지막 낭만주의자, 라흐마니노프 더 높은 하늘, 시원한 바람, 참 좋은 가을. 중앙공원 단풍이 예쁘게 물들었다. 그 바로 앞의 부천아트센터. 아침 일찍 헬스장 들러 간단히 운동하고 둘이서 강연 시간에 맞춰 길을 나섰다. 오늘은 라흐마니노프 음악을 감상하며 그의 생애를 음악평론가 조희창 선생의 강연으로 듣는 좋은 시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에 러시아에서 태어나, 광기(狂氣)의 20세기 전반을 살면서도 낭만을 지켜온 '마지막 낭만주의자(Last Romantist)' 라흐마니노프. 그의 첼로소나타 3악장(Op19)은 이 가을 맑은 하늘과 낙엽에 너무 잘 어울린다. 첼리스트 얀 포글러(Jan Vogler)와 피아니스트 엘렌 그리모 (Hélène Rose Paule Grimaud)의 연주가 아름답다. 아니 그 보다 영상이 더 매력적이다.. 2023. 10. 25.
가족사랑, 장욱진 그림 장욱진 화백의 그림은 동화같다. 단순하고 간결하면서 따뜻하고 친근하다. 아이들도 따라 그릴 만큼 쉬워서 행복하다. 장욱진 화백은 까치와 동그라미와 아이들과 가족화를 많이 그렸다. 가족은 생의 시종(始終)이며, 복의 원천이요, 위안의 요람이다. 집의 울타리도 둥글고, 나무도 달항아리처럼 둥글다. 아이의 얼굴도 해를 닮아 둥글다. 그래서 넉넉한 미소가 번진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도 아이가 되어 엄마를 찾고 고향 집으로 가게 된다. 그래서 더 건강해진다. 그러나 지금은 없는 엄마와 고향, 그래서 더욱 그의 그림을 그리워한다아래 그림은 근래 '60년만에 돌아온 장욱진의 첫 화로 크게 화제가 되었다. 손가락 하나와 한뼘의 크기도 되지 않는 작은 그림이지만 장욱진 가족의 행복은 한량없이 넉넉하다.초현실적인.. 2023. 10. 24.
나날이 좋은 날, 일일시호일 저자거리에서 나물을 파는 할멈은 맑은 날이나 비오는 날이나 매냥 슬픈 얼굴을 지었습니다. 그러다가 장마지거나 가뭄이 지면 나날이 눈물을 흘리며 앉아 있었습니다. 저자길을 자주 지나던 스님이 그 모습을 보고는 무릎을 굽혀 이 울보 할멈에게 물었답니다. "어찌 할멈은 매냥 우시오. 그 사연이나 함 들어봅시다." 슬픈 마음을 하소연할 길 없어 답답하던 터에, 때 마침 자비롭게 물어보는 스님이 여간 고맙지 않았습니다. 할멈은 신세 타령을 늘어 놓습니다. "아, 글쎄. 이내 신세 어찌나 박복한지요. 영감 일찍 저 세상 보내고 어렵게 어렵게 두 딸년을 키웠건만, 큰 딸은 짚신장수한테 시집가고, 작은 딸은 우산장수한테 시집을 갔지 뭡니까? 가뭄이 길어지면 작은 딸네 우산이 안 팔릴 것이고, 장마 때가 되면 큰 딸네 .. 2023.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