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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운림산방

문촌수기 2024. 6. 3. 12:46

보배섬 진도(珍島)라면?
진도아리랑, 진돗개가 먼저 연상되지만 이제부터 진도 출신 허련의 '운림산방'이 먼저 기억될 것이다.

진도 운림산방珍島 雲林山房
운림산방은 세계에서 유일한 일가 직계 5대의 화맥이 200여 년 동안이어지고 있는 대화맥의 산실이다. 조선 말기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 선생이 49세(1856년)에 한양 생활을 그만두고 고향인 진도에 돌아와 그림을 그리고 저술활동을 하던 곳으로 소허암(小許庵) 또는운림각(雲林閣)이라고 불렀다. 소치는 이곳에서 꿈처럼 지나간 세월을기록한 “소치실록(몽연록, 속연록)”이라는 자서전을 집필하였다.
1982년 소치의 손자인 남농 허건에 의해 지금과 같이 복원되었다. 운림산방이란 이름은 첨찰산 주위에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져 있는산골에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 숲을 이루었다고 하여붙여진 이름이다.
운림산방은 소치 1관(소치기념관), 소치 2관, 소치 선생의 기거하시던 고택, 그림을 그리던 화실, 영정을 모신 운림사, 운림지(연지)가 있으며 첨찰산을 배경으로 자연유산과 역사 문화유산이 어우러져 역사적·학술적·경관적 가치가 뛰어나 국가지정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첨찰산 아래 운림산방 원경
운림지
소치 허련의 고택


소치 허련小痴 許鍊
(1808~1893)
Sochi Heo Ryeon
진도가 낳은 남종화의 거장

어려서부터 그림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허련은 1808년 진도읍 쌍정리에서 태어났다. 성년이 된 후 해남으로 건너가 초의선사에게 학문과 인격을 수양하고 녹우당을 오가며 윤공재가의 3대에 이르는 명화첩을 통하여 그림에 대한 다양한 체법과 화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 후 초의선사의 천거로 추사 김정희 선생의 문하에 입문하여 본격적인 서화 공부를 하게 되었고,  소치라는 아호는 스승인 추사선생께서 내려주셨다.
허련의 나이 42세 때 헌종(憲宗, 조선 제24대 왕)총애를 받아 임금의 벼루에 먹을 갈아 왕을 상징하는 화중지왕(花中之王)이라는 모란을 그려 바쳤고 왕실 소장의 고서화를 평할 정도로 당대 최고의 화가로 인정받았다.
허련의 작품은 강한 느낌을 주는 갈필(마른 붓질) 산수가 주를 이루지만 인물 · 노송·노매· 모란·괴석 등도 잘 그렸으며, 시문과 글씨에도 능통하여 소치삼절小痴三絶이라 불릴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서 명성을 남겼습니다.
대표작으로 59세(1866년)에 운림산방을 그린 선면산수도와 스승 김정희 초상, 묵모란, 파초 등이 있다.

추사와 소치
https://m.khan.co.kr/culture/art-architecture/article/200812291731535

추사도 인정한 ‘소치의 문자향’

소치 허련(1808~93). 그는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 ‘문자향 서권기’로 대표되는 추사의 예술론을 가장 잘 구현한 화가이다. 그러나 추사의 큰 그늘에 가리어져 자신만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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