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를 닮은 나무
아내가 가보고 싶어한 국립세종수목원을 어제 찾았다. 거기서 난 채식주의자 영혜가 되고 싶어했던 나무를 발견했다.
머리와 팔로 땅 속에 뿌리내리고, 하늘과 태양을 향해 두 다리를 쩍벌려서 자라고 있는 나무였다. 그러나 거식증에 걸려 바짝 마른 영혜의 몸뚱아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내에게 아무 말은 못했다. 아니, 안했다. 분명 그 상황을 불쾌하다고 했을꺼고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봤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 책꽂이 꽂혀 있을 한강의 <채식주의자> 책을 찾았다. 책꽂이를 정리하며 많이 비우고 버렸지만 이 책은 버리지 않았는데, 분명 버리지 않았는데, "없다."
아내가 버렸나? 의심이 가기 시작한다. 오래전 한강의 이 책을 읽고, 불쾌하다며 혐오스러워 한 적 있다. 게다가 나무가 되려는 영혜를 상상하며 그렸던 내 그림도 보기 싫다고 했다. 낙서처럼 그린 내 그림을 책꽂이에 세워두었더니,
빨리 치우라고 했고, 결국 내가 버린 줄 알고 있다. 내 화첩 뒷표지 안쪽에 붙여 두었다.
작가 한강의 상상력과 철학 묘사가 너무나 인상적이었고 그 인상이 떠나지 않기에 그림을 그려가며 토론했던 그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채식주의자 책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분명, 아내가 버렸구나, 의심할 수 밖에...' 물어볼까?
"채식주의자 책 혹시 당신이 버렸어?" "왜 버렸어? 내껀데, 물어보지도 않고?...."
기억하고 싶지않은 불편한 생각을 다시 꺼집어내어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이것 또한 영혜가 죽음보다 더 혐오스러워한 폭력이 되는 것은 아닐까?
2016년, 위 그림을 그린 상황과 글
ㅡㅡ
그녀는 "세상의 나무들이 모두 형제 같아"라고 했다. 이제 그녀는 나무가 되려한다. 채식주의자, 영혜는 육식을 거부하며 채식을 하다가 급기야 먹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 물구나무서기로 뿌리를 내리고 두 다리를 벌려 햇살을 가득 받아들이고 하늘에서 내리는 물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는 나무가 되려 한다. 죽음을 선택하려는 거다.
"왜, 죽으면 안되는 거냐?"라며 되묻는다.
아니다. 그녀는 죽으려 한 것이 아니다. 그녀에게 죽음은 없다. 다만 나무가 되려 한다. 손에서 뿌리가 돋아나고 몸에서 잎사귀가 자라나고 사타구니에서 꽃을 피어난다. .
"谷神不死(곡신불사) - 골짜기의 신은 결코 죽지 않는다."
노자가 말하는 '골짜기 신(谷神)'에서 생명의 싹을 티우고 꽃을 피우려 한다. 영혜의 육체는 그녀가 바라는 대로 나무가 되고 꽃이 된다. 나비가 찾아든다. 그러다가 찾아오는 나비와 친구가 되어 홀연히 나비도 될 것이다. 꿈과 생시가 하나이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 하물며 나와 너의 경계가 있을리야?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변하는 것일 뿐이다. 물화(物化)일 뿐이다.
"나도 흙이 되고, 바람이 되고 싶다."
희망 같잖지만 나의 희망이다. 유언 같잖지만 나의 유언이다. 절대 가두지 말고, 그냥 태워서 뿌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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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그림 - https://munchon.tistory.com/m/1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