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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사과, 트로이 전쟁의 도화선

문촌수기 2026. 8. 13. 22:09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

펠레우스와 테티스, 낯선 름들이다.
그러나 이 둘은 아킬레우스의 부모님이라고 하면, '아 그렇구나'라며 알 만도 해진다. 아킬레우스는 오디세우스와 더불어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며, 발뒤꿈치 아킬레스 건(腱)의 주인공이다.

오디세우스와 아킬레우스 (넷플, '트로이'에서

아래 그림, 코르넬리스 반 하를렘(Cornelis Cornelisz van Haarlem)의 1593년 작 유화인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The Wedding of Peleus and Thetis).

<코르넬리스 판 하를럼,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 1592, 캔버스에 유채, 246x419cm, 네덜란드 문화유산청>.

이 작품은 그리스 신화에서 트로이 전쟁의 도화선이 된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성대한 결혼 연회를 북유럽 매너리즘 양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바다의 노인’으로 불린 마당발 네레우스의 딸이 결혼식을 올리는 만큼, 이날 행사에는 올림포스의 거의 모든 신이 총출동했다. 부정적 관념 또는 의미를 관장하는 신들만 빼고. 아울러 물과 나무의 요정, 현실 세계를 사는 인간들도 구경차 모습을 보였다.
그림 오른편을 보면 날개 달린 모자를 쓴 헤르메스를 볼 수 있다. 그와 함께 여러 여인이 땅바닥의 어딘가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데… 혹시 질투의 여신, 에리스의 사과가 거기에 있는 건 아닐까.

날개달린 모자를 쓴 헤르메스

통통한 황금 사과 한 알이 멈출 듯 말 듯 계속 굴렀다.
가정의 여신 헤라, 지혜의 여신 아테나,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때마침 이를 보고 있었다. 동그란 녀석은 얄궂게도 세 명의 여신 앞에서 탁 멈췄다. 세 쌍의 눈은 이제 사과에 쓰인 글씨를 읽고 있었다.

“이 사과를 가장 아름다운(최고의, 가장 올바른, 제일 아름다운) 여신에게 바칩니다.”

프티아의 왕 펠레우스, 바다를 수호하는 신 네레우스의 딸 테티스의 결혼식이 치러진 펠리온산.
하객으로 온 헤라와 아테나, 아프로디테 사이 정다운 대화는 뜬금없이 등장한 이 사과 탓에 뚝 끊겼다. 어느덧 어색한 침묵만 밀려왔다. 일찌감치 눈치 싸움에 들어간 모습이었다.

바다의 님프 테티스와 인간 영웅 펠레우스의 결혼식에는 올림포스의 모든 신들이 초대되었으나, 초대받지 못해 분노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난입해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적힌 황금 사과를 던지면서 나중에 파리스의 심판과 트로이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파리스의 심판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파리스의 심판(The Judgment of Paris)〉

19세기 영국 낭만주의 예술가이자 시인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수채화 작품, 〈파리스의 심판(The Judgment of Paris)〉
아프로디테를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판정하는 양치기 파리스. 이들의 머리 위에는 헤르메스와 벼락을 쥔 제우스가 떠 있다. '파리스의 심판'이라는 제목이 붙은 그림은 무수히 많지만 그리스ㆍ로마신화 작가 이윤기는 매우 시적인 이 윌리엄 블레이크의 그림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이 신화는 아주 다양하게 해석된다.
예를 들어, 제우스가 인간 파리스에게 심판을 맡김으로써 전쟁을 일으키고, 이 전쟁을 통해서 신들에게 박박 대드는 영웅들의 씨로 말리고자 했다는 것이다

화면 상단 왼쪽에는 세 여신을 안내한 전령의 신 헤르메스(Hermes)가 공중에 떠 있고, 그 옆에는 벼락을 쥔 제우스가 구름 사이에 묘사되어 있다.

제우스와 헤르메스

파리스의 뒤쪽(좌측 배경)에는 머리가 셋 달린 기괴한 형태의 불화의 신, 에리스(Eris)가 먹구름을 일으키며 트로이의 파멸을 예고하듯 날아가고 있다.
유화 물감을 거부하고 수채화와 에칭을 고집했던 블레이크답게 신체의 선이 매우 가늘고 몽환적이면서도 선명하게 표현되어, 그리스 신화를 한 편의 정신적·시적 우화처럼 그려내고 있다.

파울 루벤스, 파리스의 심판

이 작품은 17세기 바로크 거장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대표작 《파리스의 심판(The Judgement of Paris)》이다. 그리스 신화 속 트로이 전쟁의 도화선이 된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주는 황금 사과' 일화를 담고 있다.
목동으로 변장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그에게 심판을 받는 세 여신(아프로디테, 헤라, 아테나), 그리고 전령의 신 헤르메스가 그려졌다.
이 작품은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등에 여러 버전이 소장되어 있으며, 루벤스 특유의 풍만하고 관능적인 인물 묘사와 극적인 바로크 화풍이 잘 드러난다.

루벤스, ‘파리스의 심판’

1636년 경 루벤스가 제작한 ‘파리스의 심판’은 그의 화풍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그리스 신화 속 세 여신 헤라(오른쪽, 공작이 발치아래에 있다), 아테나(왼쪽, 그녀 뒤로 메두사 얼굴의 방패가 보인다), '앞으로' 봐도 예쁘고 '뒤태'도 아름다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운데, 어린 아들 에로스가 뒤에 있다)가 트로이 왕국의 왕자 파리스로부터 황금 사과를 얻기 위해 경연을 펼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황금 사과를 대가로 헤라는 부와 권세를 약속했고 아테나는 전쟁에서의 승리와 명성을 제안했다. 하지만 젊고 혈기 왕성한 파리스는 아프로디테가 제안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자 스파르타 왕의 아내였던 헬레나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 심판의 결과는 그의 조국 트로이를 파멸로 이끌었다.

루벤스는 트로이 전쟁 서사의 시초가 되는 이 이야기를 역동적인 구성과 화려한 색채 그리고 두터운 표면 질감을 통해 현실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묘사했다. 특히 화면 상단의 붉게 물든 먹구름 사이로 복수의 여신 알렉토가 뱀과 횃불을 양 손에 쥐고 등장하는 장면은 파리스의 선택으로 인해 트로이가 맞이하게 될 비극적 운명을 암시해 주는 탁월한 회화적 장치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