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를 사랑하신 퇴계선생님
도산서원 전교당과 상덕사를 돌아보고 왼편의 전사청과상고직사아래로내려오면 단박에 근래에건립된 것으로 알 수 있는건물이 있습니다.바로 퇴계선생님의 유품 등을 전시해둔 전시관인 옥진각입니다.
옥진각 내에 진열된 유물은 선생께서 살아 계실 적에 쓰시던 지팡이, 실내용품, 문방구,서적 등 입니다. 하나같이 질박검소하여 빈이락(貧而樂)하던 선비의생활 단면을 보는 듯합니다. 입구에서부터 선생님께서 집고 다니신 것 같은 긴 지팡이 청계장이보입니다.이 지팡이를 집고 선생님은 천연대로, 운영대로 거닐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사용하셨던벼루에는 연꽃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다만 새겨진 문양이 매화라서 매화등(燈)이라 불리는물건도전시되어 있습니다.그 안에 촛불을 켜면 매화 그림자가 벽에 비친다하여 등(燈)임을 주장하기도 하지만,성호 이익선생님은 등(燈)이 아니고 걸터앉는 걸상(등,登+兀)이나받침대로 보았답니다.
[도산서당(아래)과 도산서원(위)]
선생님은 매화를 참으로 사랑하셨는가 봅니다.
도산서당 동편에 작은 연못을 파서 '정우당(淨友塘)'이라 하고, 그 곁의 샘을 '몽천(蒙泉)'이라 불렀으며, 그 몽천 위쪽에 단을 쌓고 매화(梅), 대(竹), 솔(松), 국화(菊)를 심어 연못의 연꽃(蓮)과 더불어벗 삼으며지내셨다 합니다.그 중에 특히 매화를 아껴 '매형(梅兄)'이라 불렀답니다. 선생님은 엄격하고 도리를 소중히 여기는 원칙주의자의 모습을 가지셨지만 한편으로는 애정과 감흥을 느끼며 자연을 사랑하시는 낭만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매화를 사랑한선생님의 [매화음(梅花吟)]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밤기운 차가워라 창을 기대 앉았더니
두둥실 밝은 달이 매화가지에 오르누나
수다스레 가는 바람 불어오지 않더라도
맑은 향기 저절로 동산에 가득한 걸.
선생님께서 이제세상을 떠나실 때가 되었습니다.많은 제자들이 임종을 지키고 있었습니다.죽음에도 굴하지 않으시려자리에서 일으켜 달라하셨습니다.부축을 받고 벽에 기대 앉으시어둘레둘레 제자들을 살펴 보십니다. 그러고는잠시 선반 위에 놓인 매화분에 눈이 멈추어말씀하십니다.
'저 매화 분에 물을 좀 주거라'.
지극히 일상적인 말씀이십니다. 돌아가시는 위인이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전해주시는 말씀은대단히 의미있고 거룩할 것만 같았는데 너무나 사소한 잔소리 같았습니다. 돌아가시는 운명의 순간에서도 선생님께서는일상(日常)에소홀함이 없도록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어디 길이멀리 있습니까?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길인데.
'일상의충실함'이 곧 도(道)이지 않겠습니까?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무엇입니까?"라며 여쭈는 내방객들에게, "차나 한 잔 하시게[喫茶去]"라며 차를 내어주시는조주스님의 그 일상이 바로 부처이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