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에 대하여 (박연규 님 글) - 고갱의 삶과 죽음
"존경하옵는 박연규 교수님의 글을 이곳에 옮깁니다.
교수님께는 곧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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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에 대하여
박연규 (경기대, 교양학부)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인생일까. 흔히 말하는 올바른 삶의 방식은 어느 정도 답이 나와 있고 다만 그렇게 살아갈 자신이 없기에 문제점을 느끼면서도 쉽게 현실에 안주하는 것일 수 있다. 문제는 현실이다. 생활 세계란 것이 잔인할 정도로 틈을 주지 않기 때문에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메이는지도 모른다. 누구나가 조금씩 느끼는 거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그리고 자신의 삶의 의미가 적절성을 얻으려면 반드시 해야 될 일과, 그에 반해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하지 않으면 안 될 일들 사이에서 고민하고 힘들어한다. 우리의 주어진 현실이란 바닷가의 파도처럼 조금도 쉼이나 휴식이 없이 밀려든다. 감히 다른 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는다.
나처럼 나이 오십이 훨씬 넘은 중년의 가정생활을 상상해보자. 제대로 자기 삶이라고 불릴 수도 없는 속에서 온갖 일들이 매일 파노라마처럼 전개된다. 가족 문제, 그리고 친지와 동료 등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또한 직업을 학교에 두고 있는 경우, 강의, 논문 발표, 저술, 학회 활동으로 한학기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면서 한 주를 살아간다. 일주일 단위가 마치 생명 주기처럼 느껴져 일요일 하루 쉬는 날은 한 생이 끝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물론 많은 일들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덫에 갇혀 자업자득이라는 느낌을 가질 때가 많지만 일을 만들지 않을 때의 오는 허전함이나 허탈감 때문에 일을 만드는 게 더 낫다고 느껴질 때가 많고, 또 다른 일들은 타의에 의해 오는 탓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속에서 무슨 생각의 틈이나 제대로 된 삶의 방식을 찾을 엄두가 나겠는가.
최근 나는 숨통이 트이는 듯 그런 느낌을 받고 살아오는 방식을 새삼스레 점검할 기회가 있었는데,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페루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천국은 다른 곳에>를 읽고 난 후였다. 감기몸살이 걸려 나흘 동안 꼼짝을 못하고 집에 누워 이 책을 끝냈는데, 휴지로 훌쩍거리는 콧물을 풀어내면서 폴 고갱의 삶과 그의 외할머니 플로라 트리스탄의 교차되는 인생 역정을 읽었다. 그들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자신의 삶에 대한 열정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삶, 또는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삶의 방식에 조금의 의심도 없이 그야말로 거침없이 일에 빠져든다. 고갱의 마지막 삶은 잘 알려져 있듯이 다리가 썩어들어 오고 실명을 하는 가운데 가족과는 이별하고 재정적으로는 파탄이 나고, 주위 사람들에게는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자신의 그림마저 어느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은 처참한 상황이었다. 다만 “이것은 작품이 되겠다.”는 열정 하나로 남태평양 한 가운데에서 최후의 몇몇 작품들을 완성한다.
감기 정도 걸렸다고 만사를 제쳐놓고 침대 속에 들어 누워 있는 나, 은행 계좌이체가 정상적으로 안 되었다고 짜증을 내고, 학회에서 토론을 할 것인가 사회를 볼 것인가를 놓고 실랑이를 벌리는 나. 이런 나를 고갱이나 트리스탄의 삶과 대조해보면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고갱의 죽어가는 모습이 그 자신이 화자가 되는 식으로 처리되었는데, 눈물 콧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감기 때문인지 책을 읽고 난 후의 감동 때문인지 나 자신 솔직히 모르겠지만 삶의 열정이란 것, 불꽃처럼 살다가는 것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고 일종의 희열을 느낀 것은 분명하다.
고갱은 54세에 죽는데 그의 죽음을 보면서 같은 나이에 새삼 감동을 느낀다는 것이 좀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깨달음이란 나이 문제가 아니지 않느냐면서 스스로를 위로한다. 더 이상 작은 일에 메여 사소해지지 않기로 한다.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일에 억지로 끌려 다니지 말며 더 이상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에 장단을 맞추지 않기로 한다. 그리하여 마음속에 오랫동안 품어 왔던 일, 이런저런 까닭으로 미루어왔던 일에 온몸을 던지기로 작정해본다. 일상의 손익에 목매지 않기로 한다. 짧은 인생, 열정 하나로라도 바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