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華城)
수원에 갈 적마다 화성의 성곽이 참 부러웠다. 그냥 바라만 봐도 좋았다. 정조대왕의 효심과 애민정신, 정약용의 실학 정신이 거기에 서려 있어서 라기 보다 그냥 보기에도 아름다워서이다. 긴 시간을 품고 있는 성곽의 돌은 맨손으로 만져도 따뜻한 기운이 느껴진다.
정조는 아버지의 산소(현륭원, 지금의 융릉)를 경기도 화성 화산(花山) 자락으로 옮기면서 그 지역에 살던 백성들을 이주시켜 새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 그 곳이 바로 지금의 수원 화성의 팔달산 아래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풍수의 기운일까? 아버지의 묘소를 이장한 후에 왕비가 아이를 잉태하게 되었으며, 아들이 태어나던 날은 바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생일날이었다. 이 모든 것이 선친의 덕이기도 하지만, 아버지에게 삶의 터전을 내어준 백성들이 여간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정조는 아들 순조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왕위를 물려주고, 아버지 산소 가까이에서 백성들 과 여민락할 것을 꿈꾸며 화성을 짓게 하였다. 1794년(정조 18년) 1월에 시작된 공사는 1796년 (정조 20년) 9월에 완성되었다. 애당초 10년을 예상한 공사기간은 정약용이 발명한 거중기와 녹로 등 실학적 기술에 힘입어 공사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정약용의 이론과 설계에 따라 성을 짓고 나서 정조는 크게 기뻐하며 “다행히 거중기를 이용해서 경비를 4만 냥이나 절약하게 되 었다”며 칭찬했다. 정약용은 그때 부친 상중으로 남양주의 마현에서 여막을 짓고 기거하던 중이었다. 정조가 수원화성을 쌓는 규제를 지어 올리라는 분부하였다. 일찍이 한강주교(배다리)에 대한 규제를 올린 천재성을 알고 있었으며, 상중의 슬픔을 덜어주는 일석이조의 명령이었다. 화성의 전체 면적은 18만 8,048 평방미터이며, 성곽의 총길이는 5,743미터, 높이는 4~6미터이다.
화성의 성곽은 침입하는 적을 막을 수 있는 군사적 시설이지만 그 모습은 아름다운 예술작품과 같다.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이 정성을 다하여 만들었다. 200여년 세월이 흐르며 무너지기 도 하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크게 파손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화성의 축조 과정 을 상세하게 기록해둔 <화성성역의궤> 덕분에 보수하고 복원하여 1997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수원화성에서 색깔을 보다.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띠는 것은 옹성의 성곽 위에 펄럭이는 파란색 깃발 이다. 그 이름 또한 ‘푸를 창(蒼)’, ‘용 룡(龍)’이다. 아, 이곳이 바로 좌청룡 동대문인가보다. 그렇 게 성곽을 따라 걷다 방화수류정 가까이에 갔을 때는 성곽에 검은색 깃발이 펄럭인다. 바로 북쪽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화성의 북대문, 장안문(長安門)에는 검은색 깃발이 펄럭이며 위용을 자 랑하고 있다. 장안은 옛 중국 당나라의 수도인 시안과 같은 이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대(事大) 하여 나온 이름이 아니다. 오히려 사대에서 벗어나 자주하려는 강력한 개혁정치를 실현하고자 했 다. 정조대왕은 황금 갑옷을 입고 장안문으로 입성하였다. 황금색은 황제를 상징하는 색이며, 갑옷은 최고의 군수통제권을 장악하였다는 것을 천명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백성들과 길이[長] 평안[安]하리라’는 위민ㆍ애민의 정치를 실현하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장안문은 화성의 정문이다. 머지않아 다다른 화서문(華西門)에는 흰 깃발이 꽂혀 있다. 이 흰 깃발은 서장대 위에도 펄럭일 것이다. 그렇다면 팔달문에는 생명과 사랑이 넘치는 붉은 깃발이 펄럭일 것이다. 남대문이기 때문이다. 팔달문 좌우에는 지금도 시장이 크게 열려 있다. 그때도 전국 방방곡곡의 물류가 사통 팔달하며 상업이 번창한 장터를 크게 열었다 한다. 백성들의 삶이 윤택해지기를 바라는 임금님의 바람이었다.
한양도성 사대문이 그렇듯이 수원화성의 사대문과 깃발 색깔도 모두 음양오행 사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전통에는 음양오행사상이 삶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다. 다만 한양 도성과 수원 화성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한양 도성은 정궁이 남면하고 있으며, 도성의 정문이 남대문이라면, 수원 화성은 임금이 행차하여 잠시 머무르는 행궁이 동면하고 있으며 정문이 북문(장안문)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흔히 말하는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라는 사주신과 그것 을 상징하는 오방색은 어김없이 지켜지고 있다.
ㅡ 주요 시설
1)사대문
화성을 출입하는 4대 관문이다. 적이 쉽게 침입하지 못하게 모두 옹성으로 싸여있다. 북문인 장안문이 정문이다
2)암문
화성에는 정문, 암문, 수문 3종류의 문이 있다. 암문은 유사시 비밀스럽게 출입하는 통로문이다.
3)수문
수원천이 북에서 남으로 수원화성을 가로지른다. 북수문이 7개의 홍예를 가진 화홍문이며 남수문은 9개의 홍예를 가졌다.
4)공심돈
속이[心] 비었다[空]해서 공심돈이다. 안에서 적의 동태를 살필 수 있도록 평지보다 조금 높은 곳에 돈대를 쌓 고 망루를 올려 공격과 휴식이 가능 하도록 했다. 수원화성에서만 유일하 게 볼 수 있는 성곽축조물이다.
5)치성
치(雉)란, 꿩을 말한다. 꿩은 제 몸을 잘 숨기고 경계하여 살피기를 잘한다. 성을 지을 때 일정 간격으로 성곽을 네모지게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쌓아 적을 감시하고, 성곽을 침입하는 적을 옆에서도 공격하기 위한 구조물이다.
6)포루
치성 위에 누각을 세운 것을 포루라 한다. 평시에는 군사들이 대기하고 휴식하며, 유사시엔 감시와 공격을 위함이다.
벽돌을 사용하여 만든 3층 구조의 대 포 진지이다. 맨 아래 층에 대포 발사 를 위해 혈석이 뚫려 있고 그 위에 판자를 얹어 두 개 층을 만들었다.
주변을 감시도 하며, 때로는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 중 방화수류 정은 용연과 화홍문과 잘 어우러져 화성의 백미가 된다.
화성의 정문인 장안문 좌우(동서)에 설치되어 성문과 옹성으로 접근하는 적군을 막는다. 적군의 동태를 살피고 방어하기 좋게 성곽보다 높게 축조되 었다.
쇠뇌[連弩]를 쏘던 방어시설로 산 정 상부에 위치하여 있다. 쇠뇌란 연속사 격이 가능하며 장거리로 날릴 수 있 는 활이다.
높은 곳에서 성 안과 밖을 살피며 군사를 지휘하는 곳이다. 서장대는 팔달 산 정상에서 사방 10리를 내려다볼 수 있어 화성의 명실상부 한 군사지 휘소가 된다. 동장대는 연무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