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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와 청계천

청계천 광교ㆍ장통교ㆍ삼일교

by 문촌수기 2024. 2. 29.

광교

청계천 광교

명칭 유래
원래는 광통방(廣通坊)에 있는 큰 다리라는 뜻의 대광통교(大廣通橋)이다. 실제로 길이 약 12.3m보다 폭이 더 넓은 약 14.4m의 다리였다. 또, 소광통교(小廣通橋)와 구분하여 대광교(大廣橋)라고도 하였고 세종실록 지리지(世宗實錄 地理志)에는 북광통교(北廣通橋)로 기록되어 있다. 약칭인 광교(廣橋), 광충교(廣冲橋) 등으로도 불리었으며, 도성 안 개천에서 여섯 번째에 있었다고 해서 육교(六橋)라고도 하였다. 광교는 후에 이 일대를 지칭하는 지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형성 및 변천
육조거리·운종가·숭례문으로 이어지는 도성 안 중심통로였으며, 주변에 시전이 밀집한 상업활동의 중심지로 도성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던 다리였다. 조선시대 도성 안에 수축되었던 다리 가운데에서 규모가 가장 컸던 다리이다. 시전 뒤로는 생산의 배후지로서 수공업 작업장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광통교 좌측, 지금의 서린동 주변에는 금방(金房), 은방(銀房), 옥방(玉房)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이엄장(耳掩匠)도 이 일대에 자리 잡았다. 대광통교와 소광통교 사이에는 두석방(豆錫房)이, 관철동에는 관자(貫子) 제조장과 신발 제조장이, 철물교 주변에는 철물제조장이, 광통교 북쪽 무교동 일대에는 가구장(家具匠)이 밀집해 있었다.

태조 때 토교(土橋)로 축조하였던 것인데, 1410년(태종 10)에 홍수로 파괴되자 다시 석교(石橋)로 개축하였다. 다리 건설에 사용되었던 석재는 태조의 계비(繼妃) 강씨의 묘인 정릉의 천장(遷葬)으로 봉토하려던 12개의 석각신장(石刻神將)을 뽑아 이용하였다.

청계천은 조선시대에 도성 한 가운데로 흐르면서 주변 산지에서 흘러내리는 유수와 민가의 하수를 유출하던 큰 배수로의 구실을 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 초기로부터 계속 준천과 복개의 논란 속에 있었다.

1899년 종로에서 남대문 구간에 전차노선이 신설되면서 다리 동편에 전차선로가 놓이게 되었다. 1910년 이 노선이 복선화되고 다리 위로 전차가 통행하게 되면서, 다리는 1m 정도의 콘크리트 선로 밑에 묻히게 되었다. 해방 이후 1958∼1961년에 걸쳐 이루어진 암거공사(暗渠工事)에 의하여 청계천이 복개되면서 이 다리도 자취를 감추었다.

2003년 7월 시작된 청계천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조선시대의 대광통교가 있던 자리에 광교가 새롭게 놓였다. 교통 흐름을 방해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광교에서 청계천 상류 쪽으로 155m 쯤의 위치에 복원되었다. 다리의 원형복원을 위하여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된 부분과 창덕궁 및 탑골공원에 흩어져 있던 부분을 찾아내 활용하여 조선기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현재는 사람만 건너다닐 수 있다.

광교에서 동쪽 장통교 방향의 청계천

 

■ 장통교(長通橋)

‘장통교(長通橋)’는 장통방(長通坊)의 다리란 의미이다.
‘장통(長通)’ 뜻은 ‘길게(長) 통한다(通)’이다. 조선시대에 북악산, 인왕산 일대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지금의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우회하여 흐르다가 남산 기슭에서 흘러오는 물줄기와 합쳐졌던 곳이 장통방 언저리였다. 여기서 큰 물줄기가 되어 길게 이어진다는 뜻의 ‘장통’이 동네와 다리 이름에 붙은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 줄임말인 ‘장교(長橋)’를 비롯하여 ‘장창교(長倉橋)’, ‘장찻골다리’, ‘장추교(長楸橋)’, ‘장추골다리’란 이름으로도 불렸다. 장창교와 장찻골다리는 장통교 주변에 재래시장의 창고들이 길게 늘어서 붙은 이름이다.
장추교는《경도오부북한산성부도》에, 장추골다리는 《수선전도》에 나오는 명칭으로 유래는 알 수 없다. 일반 백성들은 주로 장교라고 많이 불렀다.
서울특별시 중구 장교동(長橋洞)의 지명이 여기서 유래했다.

원래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4길 (관철동)과 중구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 사이에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종로구 종로12길 (관철동)과 중구 남대문로10길 (삼각동) 사이에 있다. 쉽게 말하면, 종각 젊음의 거리의 큰 길 바로 남쪽, 청계천 한빛광장의 바로 북쪽에 있다.

■ 삼일교(三一橋 / Samilgyo)

삼일교, 왼쪽이 삼일빌딩 오른쪽이 베를린광장이다.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5번째 다리이다.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3.1 운동이 시작되었기에 이를 기념하는 뜻으로 8.15 광복 후인 1966년에 탑골공원의 서쪽 도로 이름을 삼일로라 하였다. 다리 이름도 여기서 딴 것이다. 삼일교 앞에 있는 삼일빌딩 역시 마찬가지. 삼일로는 2010년 4월 22일 현재의 이름인 삼일대로로 바뀌었다.

베를린광장에서 본 삼일빌딩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일대로 (관철동)와 중구 삼일대로 (장교동)를 연결하는 위치에 있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에는 없었고, 2000년대에 진행된 청계천 복원공사 때 새로 지은 다리이다. 2005년 9월 30일 대림산업과 삼성건설에 의해 준공되었다. 길이 22.6m, 너비 43.5m, 높이 3.7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