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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과 윤동주22

윤동주의 詩歌 민족시인 윤동주의 시 15편이 노래가 되어 음반으로 나왔다. 우리 국민들 누구나가 좋아하는 과 대표작도 담겨 있어 반갑다. 2015년은 광복 70주년의 해이며 그가 세상을 떠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여 더욱 뜻이 깊다. 가수 겸 작곡가 김현성이 윤동주의 주옥 같은 시들에게 노래와 선율을 입혔다. 김현성은 의 작사, 작곡자로 지금도 북콘서트를 꾸준하게 열고 있으며, 올해는 매 달 이대골목의 '문학다방 봄봄'에서 다양한 책을 노래로 들려주고 있다. 김현성은 백석 시인의 등 그의 대표작들을 담은 음반을 내기도 했다. 에서는 그가 다녔던 숭실중학교 학생들이 을 함께 불렀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소년들의 맑은 소리가 모여 추모의 마음을 더욱 숙연하게 했다. 의 모든.. 2020. 2. 17.
서시, 노래하다 서시, 그리움으로 YouTube에서 서시 윤동주 시 / 윤지영 작곡 부산하모니합창단 Busan Harmony Choir 보기 - 서시 윤동주 시 / 윤지영 작곡 부산하모니합창단 Busan Harmony Choir 2017. 7. 26.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을 찾았다. 오늘 특별히 뮤지컬 "영웅"을 감상하러 나서는 길 2017. 1. 30.
윤동주 탄생100주년 2 ㅡ험한 세상에 아름다운 시 남긴 천재 "험한 세상에 아름다운 詩 남긴 천재… 난 매일 동주를 만납니다" 도쿄=최인준 특파원 | 2017/01/18 03:04 한국 문학계는 윤동주 연구에서 이 일본 노(老)학자에게 적지 않은 빚을 지고 있다. 잊히다시피 했던 윤동주의 무덤을 1980년대 중국 시골 야산에서 찾아내고, 윤동주 육필 원고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그의 노력 덕에 국내 윤동주 연구도 풍성해질 수 있었다. 영하로 내려간 16일 오후 지바현 이치카와(市川)시의 한 작은 전철역에서 '윤동주 연구가' 오무라 마스오(大村益夫·83) 와세다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한국말로 "안녕하십니까, 오무라입니다" 인사한 그는 잰걸음으로 자신의 집을 안내했다. 한국 문학 연구서들이 수백 권 보관된 자신의 서재를 먼저 보여줬다. "매일 여기서 나는 동주를 만납.. 2017. 1. 18.
윤동주 탄생 100주년1 ㅡ 늙지않은 그 이름 동주 늙지 않는 그 이름 '동주'… 靑春들의 별이 되다 조선일보/정상혁 기자/2017/01/17 이 이름은 늙지 않는 이름이다. 아직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이다. 윤동주(1917~1945·사진) 시인 탄생 100주년. 스물여덟 나이로 순국해 청년 정신의 상징이 된 윤동주가 2030세대의 열렬한 지지를 얻으며 되살아나고 있다. 시대를 초월해 각종 장르를 넘나드는 영감으로 작용하며 강력한 문화 콘텐츠와 아이콘이 된 윤동주를 3회에 걸쳐 조명한다. ◇2030세대가 호명하는 동주 가온차트·소리바다 등 음원 사이트 1월 첫째 주 차트 1위는 윤동주였다. 래퍼 개코(36)가 윤동주의 삶을 랩으로 만들어 발표한 '당신의 밤'. "때론 사는 게 허무하고 무기력할 때 당신의 육첩방을 밝혔던 등불을 기억할게. … 오늘 밤은 .. 2017. 1. 18.
공자의 <논어> 군자와 안중근 논문 > 제 4장 요약 및 결론 제4장 요약 및 결론 참으로 각박한 세상이다.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실력과 경력을 쌓아가며 자기 연마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 그것뿐이 아니다. 실력과 경력이 있다하더라도 결코 인간관계에서 사람다움을 잃지 말아야 한다. 공자의 사상은 오랫동안 우리의 삶 속에서 사람다움의 길을 가르치고 있다. 공자 사상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논어》에서는 ‘사람됨의 길’과 ‘사람다움의 도리’를 제시하고 있다. 《논어ㆍ論語》는 논인(論仁)이며 또한 논인(論人)이었다. 인(仁)은 모든 덕행의 근본이요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는 인(仁)이라고 하는 덕목을 통하여 사람됨이 무엇인가를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삶과 사람과 사랑’은 하나이다. 그렇듯이 인(仁)함은 사람다움[仁者人也]이며, 사람을 사랑하는 것[仁者愛.. 2015. 10. 5.
안중근 > 제3절 안중근 의사의 《논어》 유묵 제3절 안중근 의사의 《논어》 유묵에서 얻은 삶의 교훈 안중근의 유묵(遺墨)은 현재 실물이나 사진으로 50여점이 확인된다. 이중 국내 소재는 26점으로 모두 국가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한 개인의 작품으로 놓고 볼 때 국가보물로 가장 많이 지정되어 있고, 미술 시장에서 거래되는 작품가격으로도 가장 높다. 안중근의 유묵은 모두 사형 선고일(1910. 2. 14)에서 순국(1910. 3. 26)까지 라는 점, 수신자가 모두 일본인이라는 점은 역사상 어떤 다른 사람의 경우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사례다. 특히 내용이 동양고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현실고발이나 감개와 같이 자기 체험이나 자각으로 걸러낸 것이라는 점에서 안중근의 유서이자 또 다른 자서전인 《안응칠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위의 ‘견리사의 견위수.. 2015. 10. 5.
안중근 >제2절 안중근 의사를 찾아서 > 2. 서울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 2. 서울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 1970년 당시 대통령의 지시와 국민의 성금 등으로 서울 남산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을 건립 하게 되었으며, 세월이 흘러 기념관이 노후 협소해짐에 따라 2004년 안중근의사숭모회와 광복회의 요청을 받은 대통령의 지시로 새 기념관을 건립하였다. 항일 독립 정신과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얼을 새겨볼 수 있는 역사 교육현장이다. 안의사는 1909년 3월 항일투사 11명과 함께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를 결성하고 왼손 무명지의 첫 관절을 잘라, 혈서로 ‘대한독립(大韓獨立)’이라 쓰며,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이토 히로부미를 척결할 것을 다짐하였다. 그래서 안중근의사기념관은 단지동맹을 한 12명의 열사를 기리기 위해 12개의 큐브 모양으로 디자인되었다. 건축물에도 상징과 의미를 부여하면 .. 2015. 10. 5.
안중근 >제2절 안중근 의사를 찾아서 > 1. 중국 뤼순 감옥소 제2절 안중근 의사를 찾아서 1. 중국, 뤼순(여순) 감옥소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의 의거 후, 일제의 뤼순(지금의 중국 여순) 감옥소로 압송된 때가 11월 3일이다. 투옥 143일 동안 늘 그러하지는 않았지만, 일제는 국제적인 관심이 된 안중근 의사를 특별히 대우하였다. 의사는 붓글씨를 써서 일본인들에게 주었다. 의사의 글을 얻고자 일부러 찾아오는 일본인들도 있었다. 사형선고일 이후부터 순국되기 전까지 짧은 기간에 이곳에서 《안응칠 역사》와 을 집필하였다. 곧 죽을 이에게 베푸는 마지막 은전인가? 아무튼 일제는 이런 특별 대우와 은전(?) 덕분에 안중근 의사의 유묵과 저서가 남아서 전해 질 수 있었고, 우리는 안중근 의사의 넋과 정신을 숭고하게 계승할 수 있게 되었다. 최소한의 인도주의.. 2015. 10.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