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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산책 그림이야기24

한국복자순교 수도회, 피정의 집 한국 최초의 순교자상과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옛 본원 길상사를 넘어 수연산방을 찾아 내려오는 골목길에 복자교 바로 옆에 천주교 수도회 건물이 있다. 길건너 편에는 덕수교회가 형제처럼 마주하고 있다. 이곳 천주교 피정*의 집은 성북동에서 가장 최근 문화재가 된 건축물이다. 한국순교복자 성직수도회의 옛 본원으로, 성북천변 옆으로 보이는 고풍스러운 가톨릭 건물이다. 복자는 준(準) 성인을 의미하는데 순교자적 정신을 실천하려는 창설 이념이 그 이름에서 엿보인다. 1946년 개성에서 한국순교복자 수녀회를 창설한 방유룡 신부(1900-1986)가 남자 수도회를 창설하고 1957년 지금의 성북동 자리에 본원 건립을 하였다. 구조는 전형적인 라틴 십자형 평면으로 한국인 신부에 의해 설계된 최초의 수도원 건물인 점이 특.. 2024. 6. 16.
길상사에서 공양 아침에 길을 나서서 왔기에 호젓하게 길상사 경내를 산책할 수 있었다. 푸른 나뭇잎들에게 포근히 안기고 산새소리와 시원한 그늘, 개울에 흐르는 물소리에 온전히 젖어서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늘 그러했듯이 성모마리아를 닮은 보살님께 인사드리고 칠층 석탑을 돌아, 송월각 앞을 지나 길상선원으로 조용히 올라갔다. 항상 닫혀있는 송월각의 아치문은 오늘도 이방인의 가슴을 설래게 한다. 진영각에서 법정스님을 뵙고, 눈 마주 앉아 생각을 잊었다. 길상화 사당을 찾아 내려가는 길 벤치에 앉아서 적묵당을 올려다보며 이 고요와 한적함에 감사했다. 고개를 돌려 계곡에 앉아 있는 관세음보살 반가사유상을 바라보며 글을 읽었다.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나니 오직 분별하는 것을 꺼릴 뿐이라. 사랑하고 미워하지 않으면 툭트여 명백하리.. 2024. 6. 15.
법정스님과 맑고 향기롭게 길상사 진영각에 들어와 한적하게 법정스님 영정 앞에 앉았다. 평일 오전이라서 그런가? 유월 상순인데도 벌써 3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라서 그런가? 내방객들이 드물었다. 법정스님이 전하는 말씀(글씨)들이 찬찬히 눈에 들어왔다...차근히 따라 읽으며, "예 그렇게 새기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속으로 대답하였다. 이 시대의 연꽃과 같은 영혼의 스승 法頂스님 이 시대의 정신적 스승이신 법정 스님은 인간의 선의지(善意志)와 진리의 길을 찾아 1956년 효봉 스님의 문하로 출가했다. 1960년부터 1970년대 초까지 불교사전 편찬, 불교 경전 역경에 헌신하며, 불교계 언론과 유력한 신문에 죽비 같은 글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1975년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무소유 사상을 설파하였고, 1992.. 2024. 6. 13.
화합의 상징, 길상사 7층 석탑 종교 화합의 의미를 전하는 길상7층보탑(吉祥七層寶塔)은 조선 중기(1600~1650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지혜와 용맹을 상징하는 네마리의 암수 사자가 기둥 역할을 하며 입을 연 두 마리는 교(教)를 상징하고, 입을 다문 두 마리는 선(禪)을 상징한다.4사자 가운데 모셔진 석가모니 부처님의 수인手印은 정면에서 시계방향으로 선정인(禪定印),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통인通印(시무외인施無畏印+여원인與願印), 전법륜인(轉法輪印)을 하고 있다. 선정인항마촉지인통인(오른손, 시무외인+왼손, 여원인)전법륜인이 탑은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님이 법정스님과 길상화보살님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 종교화합의 의미를 전하고자 무상으로 기증하였으며 2012년 11월 11일 기단부에 오장경, 금강저, 오불(五佛), 108침향염주.. 2024. 6. 13.
성북동 박태원 집터 성북동의 수연산방을 찾기 전에는 박태원이 누군지 몰랐다. 구인회(九人會, 1933-1936) 회원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학창시절 배운 기억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 이제 수연산방의 주인인 이태준을 듣고, 시인 이상과 정지용을 알고부터 박태원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영화감독 봉준호의 외할아버지라는 사실만으로 관심이 크게 끌렸다. 월북작가였기에 우리 문단에서 오랫동안 잊혀져 있었던 것이다. 박태원은 일제강점기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홍길동전', '천변풍경' 등을 저술한 소설가이다. 1909년에 태어나 1986년에 사망했다. 청소년기부터 시와 콩트를 발표하며 문학소년의 길을 걷다가 일본에 잠시 유학했고 1930년부터 소설가로 활동했다. 본격적으로 문단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33년 이상, .. 2023. 12. 18.
노시산방에서 수향산방까지 수화 김환기와 향안 변동림이 노시산방 옛 주인이었던 김용준을 배웅하고 있다. 노시산방의 새 주인은 수향산방으로 현판하였다. 늙은 나무의 감은 다 익어가고 날은 차다. ■ 김용준의 노시산방(老枾山房, 기거 1934-1944)1948년 이 출판된 당대에 “시는 정지용, 소설은 이태준, 수필은 김용준”이라는 말을 들을만큼 문사철에 뛰어난 화가, 김용준(近園 金瑢俊· 1904∼1967)이 성북동으로 이사를 한 것은 1934년이었다. 그때만해도 그 곳은 집 뒤로 꿩은 물론 늑대도 가끔 내려올 만큼 산골이다. 하지만 김용준은 '뜰 앞에선 몇 그루의 감나무는 내 어느 친구보다도 더 사랑하는 나무들'이라 할 정도로 늙은 감나무 몇 그루를 사랑했기 때문에 이 집으로 왔다. 한 해전 먼저, 성북동 수연산방에 자리잡은 이태.. 2023. 11. 21.
카타쿰바, 성북동성당의 유리성화 밖에서 보는 성북동 성당은 밝고 따뜻하다. 성전으로 들어가면 의외로 어둡다. 그 어둠 속에서 눈 앞에 십자가상과 유리성화가 환하게 내방객을 맞이한다. 절로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여느 성당과 다르게 일층이 성가대석이고 양쪽의 계단을 내려가야 성체를 모신 제대와 성전이 있다. 하느님 계신 곳으로 더 높이 오르지 않고 더 낮은 지하로 내려가 있다. 그렇게 어둡다보니 마음은 산만하지 않고 성체와 십자가상,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에 집중할 수 있었다. 성체와 십자가상을 중심으로 양쪽의 유리성화에는 한복입은 주인공도 등장하고 우리의 민화풍이라 친근하다. 유리성화들 사이로 예수의 수난(Passion of the Christ), '십자가의 길' 14처가 부조되어 있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빛을 .. 2023. 11. 16.
최순우 옛집, 한용진 조각전 같은 길을 걷다 퇴직한 우인들과 성북동 '최순우옛집'을 찾았다. 뒷뜰 오수당 툇마루에 앉아, 낮잠의 단상을 나누고 후원뜰에 놓인 물확에 대한 담소도 즐겼다. 用자 창살의 안채를 들여다보니 안방 마님 같이 앉아있는 둥근 돌덩이가 전시되고 있었다. 후원에 梅心舍 현판된 ㄱ자 안채 안방이 전시장이다. 들어가는 대청 머리위에 현판된 글도 읽고 안방의 한지더미를 받침대 삼아 놓여있는 돌조각들을 보았다. 영겁의 시간을 품었던 돌이 현세의 인연이 닿아 사람 손에서 잘 다듬어지고 마름질되어 있다. 이제 생명을 지닌 돌이 되었다. 그 위로 햇살이 내려앉아 있다. 그 햇살과 나누는 소리가 정겹다.혜곡의 영감 3 ㅡ 한용진 조각전 김홍남 혜곡최순우기념관 관장 '혜곡의 영감'은 혜곡 최순우 (1916~1984)라는 인물이 우.. 2023. 11. 15.
성북동 한중 평화의 소녀상 성북동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은 특별하다. 한국의 소녀 곁에 중국의 소녀가 앉아 있다. 일명 '한중 평화의 소녀상'이다. 예전엔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 앞, 버스정류장 뒤에 있었지만 지금은 2번 출구 앞의 성북동 분수광장, 어린이 분수놀이터 뒤로 옮겼다. 이곳으로 옮기길 잘했네 싶다. 자라나는 우리 미래 세대들의 밝은 웃음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위로가 된다. 소녀상을 찾아 보기위해 약속시간보다 3, 40분 먼저 여기에 왔다. 조형물 위로 쌓인 먼지와 낙엽을 물티슈로 닦아 주었다. 그때 등 뒤에서 연신 "찰깍 찰깍"하는 카메라 셔트 소리가 들렸다. 허리를 펴서 보니 배낭을 짊어진 아가씨가 소녀상의 모습을 이리저리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중국의 소녀상 뒤로는 그녀가 걸어 온 발자국이 찍혀 있다. .. 2023.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