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탄생지ㅡ제석사

마음을 찾아서 2016.10.03 10:39 Posted by 文 寸 문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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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석사, 원효스님의 탄생지

마음을 찾아서 2016.10.03 10:30 Posted by 文 寸 문촌
15년만에 다시 찾게 되어 감개무량합니다.
사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고 의미를 부여하는게 중요하죠.
원효스님의 삶과 가르침을 다시 새겨보는 소중한 시간이며 장소입니다.
그때는 칠성각 안에 원효 복사영정을 모셔두었는데 지금은 원효성사전을 따로 건축하여 원효불로 봉안하고 그 뒤로 팔상도 후불 탱화를 두었네요.

제석사 원효성사전. 3칸의 기둥에는 원효가 해골바가지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어 지은 오도송 4행이 주련으로 걸려있다. '마음밖에서 구하지 말라'고 한다.
원효좌상 뒤로는 원효의 삶이 8개의 탱화로 그려져있다.
탄생ㅡ출가ㅡ해골득도ㅡ무애춤ㅡ요석공주의 만남ㅡ

동북아문화연구 제25집 (2010) pp. 5~26 원효상(元曉像)의 현대적 재현-제석사(帝釋寺)의 탱화를 중심으로*
1)최재목**ㆍ손지혜***ㆍ김은령****  (* 이 논문은 영남대학교 2010학년도 인문학육성기금연구장려금 지원으로 작성되었음.)

1.【탄생】
1) 도상해석
이 탱화는 <원효의 탄생(617)> 관련 내용을 담고 있다. 탱화의 구성을 살펴보면 상반부에는 도솔천의 장면ㆍ중반부에는 큰 나무 아래로 오색의 구름이 덮히고 여인의 품으로 유성(流星)이 안겨 들어오는 원효 탄생설화의 장면으로 좌측에는 한 여자가, 우측에는 한 남자가 합창한 채 아기를 향해 앉아 있다.ㆍ하반부에는 원효의 대중교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즉 탄생장면의 상하로는 과거세 미래세의 원효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2) 문헌기록
이 탱화의 핵심 내용인 중반부에 있는 <원효 탄생설화 내용>을 중심으로 문헌의 기록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와 관련되는 문헌으로는 삼국유사ㆍ송고승전이 있고, 비문(碑文)으로는 「서당화상비」가 있다. 이 기록들을 통해 원효 탄생의 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삼국유사 처음에 어머니의 꿈에 유성이 품속으로 들어오더니 이내 태기가 있었다. 해산하려 할 때는 오색구름이 땅을 덮었다.14)
⒝송고승전 스님 원효의 성은 설씨이고, 동해 상주의 사람이다.15)
⒞「서당화상비」 어머니가 처음에 별이 떨어져 품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서 문득 임신하였
다. 달이 차기를 기다려 해산하려 할 때 갑자기 오색구름이 특별히 어머니의 거처를 덮었다.16)
이처럼 삼국유사와 「서당화상비」에는 원효의 어머니 꿈에 유성(별)이 떨어져 품속으로
떨어졌다는 기록과, 해산 무렵에는 오색구름이 어머니의 거처를 덮었다는 유사한 내용이 공
통적으로 기록되었다.
위 탱화의 내용 또한 이 기록을 거의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다만 어머니가 아닌 갓 탄생
한 아기 원효에게 오색구름이 내려 덮고 있는 부분이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좌측으로 유
성이 어머니의 품으로 들어오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2.【출가】
1) 도상해석
이 탱화는 원효의 <출가와 수학>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탱화를 살펴보면 상단부에 원효가 출가하여 많은 승려들에 둘
러싸인 채 한 승려의 도움에 의해 삭발의식을 갖는 장면으로 뒤
편에는 또 다른 한 승려가 탁자에 앉아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
며, 하단부에는 원효가 한 승려와(=스승)과 문답하며 수학하는 장
면이 묘사되어 있다.
2) 문헌기록
원효의 출가ㆍ수학과 관련하여서는 (1)출가시기 (2)사제관계라
14) 初母夢有星入懷因而有娠及將産有五色雲覆地.(三國遺事「元曉不羈條」)
15) 釋元曉姓薛氏東海湘州人也.(宋高僧傳「唐新羅國黃龍寺沙門元曉傳」)
16) 母初得夢星流星入懷便■有■待其月開大解之時忽有五色雲■特覆母居.(「誓幢和上碑」)(■표시는 결자
임.)
원효상(元曉像)의 현대적 재현-제석사(帝釋寺)의 탱화를 중심으로 13
는 쟁점으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이에 관한 내용은 아래 문헌의 기록을 바탕으로 살펴보고
자 한다.
먼저 원효의 <출가>와 관련한 기록은 아래 송고승전과 삼국유사를 통해 살펴볼 수 있
다.
⒜삼국유사 법사가 출가를 하고서 그 집을 내놓아 초개사라 이름 짓고, 나무 옆에 절을 세
우고 이름을 사라사라 하였다.17)
⒝송고승전 나이(원효) 관채지년(15-16세)에 흔쾌히 불법에 입문하여 스승을 따라 학업을
받았는데, 다니는 곳이 일정함이 없으며, 의해의 세계를 용맹이 격파하고 문장의 진영을 씩씩하
게 횡행하여 굳세고 흔들림 없이 정진하여 물러남이 없었다.18)
원효의 출가에 대하여 송고승전에는 ‘관채지년에 불법에 입문’하였다고 기록되어, 즉 원
효의 출가 시기는 15전후에서 20세까지로 추정하는 견해가 일반적이다.19)
한편 원효의 수학과 관련하여 <사제관계>에 대한 기록은 「서당화상비」ㆍ삼국유사ㆍ송
고승전 등에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들을 살펴보면삼국유사와 「서당화상비」에는 “태어날
때부터 총명하여 스승을 따라 배우지 않았다”고 하며, 송고승전에는 “스승을 따라 배우되
일정하지 않았다”고 기록하였다.
⒞「서당화상비」 도(道)는 실로 나면서부터 알았다. 마음으로 인하여 스스로 깨달았으며 배움
에 일정한 스승이 없었다.20)
⒟삼국유사 그는 나면서부터 총명하고 특이하여 스승을 좇지 않고 (혼자)배웠는데, 그가 사
방을 떠돌던 시말(始末)과 성대하게 편 포교의 자취들은 모두 당전(唐傳O과 그의 행장에 실
려 있다.21)”
⒠송고승전 흔쾌히 불법에 입문하여 스승을 따라 배우되 일정하지 않았다.22)
그러나 삼국유사와 송고승전에 혜공ㆍ낭지ㆍ보덕ㆍ대안과 같은 고승과의 관계가 기록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원효에게도 학문과 법을 묻고 가르침을 얻은 스승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삼국유사 이때 원효는 여러 불경의소(疎)를 지으면서 항상 혜공을 찾아가 의심나는 것을
물었는데, 가금씩 서로 말장난을 하기도 하였다.23)
⒢삼국유사 원효가 반고사에24) 머물 때 언제나 낭지스님을 찾아뵈었다. 낭지는 원효에게
초장관문25)과안신사심론26)을 짓게 했다. 원효가 짓기를 마치자 숨은 선비 문선으로 하여금
낭지에게 글을 올리게 하였는데 그 글의 끝에 노래를 지었다. “서쪽 골짜기의 사미(원효)는 동
쪽 봉우리의의 상덕인 높은 바위 앞에 머리 숙여 예합니다. 미세한 먼지를 불어 영취산에 보태
고 작은 물방울을 날려 용연(태화강)에 던집니다.27)
⒣삼국유사 원효는 의상과 함께 보덕성사로부터 열반경(涅槃經)과 유마경(維摩經)을 배웠
다.28)
⒤송고승전 「대안화상」 용왕이 말했다. “대안성자에게 차례를 가려서 엮게 한 뒤, 원효 법
사에게 청해서 소(풀이 글)를 지어 그것을 강의하면 부인의 병은 나아 거리낌이 없을 것이다.…
(중략)…대안이 말했다. “빨리 원효에게 부탁해서 강의하게 하시오. 다른 사람은 곧 안 됩니다
(못합니다).” 원효가 이 경을 받을 때는, 바로 본디 태어난 상주에 있었다. (원효가) 사자에게 일
러 말했다. “이경은 본각과 시각, 2가지 깨침을 주된 뜻으로 합니다. 나를 위해 소 수레(각승)를
마련해 주시오. 장차 소 두 뿔 사이에 책상을 놓으려 합니다.”그기에 붓과 벼루를 놓고서 처음
부처 끝까지 소 수레에서 풀이 글(소) 5권을 지었다.29)
이 탱화에는 위와 같은 문헌 기록상의 원효의 출가와 수학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그려지지
않았지만, 원효의 출가 후 삭발장면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3.【득도】
1) 도상 해석
이 탱화는 원효의 <입당과 득도>에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탱화의 상단부에는 원효가 의상과 함께 당으로 유학을 떠나던 과정 중에 요동에서 간첩으로 몰려 신라로 다시 귀국하는 내용이 묘사되어 있다. 중단부에는
일반적으로 원효의 오도설화로 윤색되어 ‘토감우숙’으로 유명한
원효가 해골물을 마시고 득도하였다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하
단부에는 원효에게 설법을 청하는 승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
다30).
이 탱화의 내용과 관련된 기록을 ①입당과 ②득도의 두 쟁점으
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2) 문헌 기록
원효의 <입당 유학>의 경위와 <득도>와 관련하여 다음 문헌
기록을 참고하고자 한다.
(1) 입당 관련 기록
⒜삼국유사 「의상전교」 “법사 의상의 아버지는 한신이고 김씨이다. 나이 29세에 서울 황복
사에 몸을 맡겨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다. 얼마 후 중국으로 가 부처의 교화를 보고자 하여
마침내 원효와 함께 길을 나서 요동 변방으로 가던 길에 국경을 지키는 군사에게 첩자로 의심
받아 갇힌지 수십일 만에 겨우 풀려나 죽음을 면하고 돌아왔다(이일은 최치원이 지은 의상의
본전과 원효법사의 행장 등에 적혀 있다) 영휘 원년(650)에 마침 귀국하는 당나라 사신의 배가
있어 그것을 타고 중국으로 들어갔다.31)”
三國遺事 「前後所將舍利」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의상전을 살펴보면 이러하다. 영휘 초년
(650)에 당나라에 들어가서 지엄선사를 뵈었다. 그러나 부석사 본비에 의하면 이렇다. 의상은
무덕 8년(625)에 태어나 어린 나이에 출가하였다. 영휘 원년 경술년(650)에 원효와 함께 당나라
로 들어가고자 하여 고구려에 이르렀으나 어려움이 있자 되돌아 왔다.32)
⒝송고승전 “일찍이 의상법사와 함께, 현장삼장과 자은의 문하를 흠모하여 당나라에 들어
가려 했으나, 그 인연이 차질이 생겨서 갈 생각을 그만두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33)”
(2) 오도 관련 기록
⒞송고승전 “나이 스물이 되어서 당나라에 교종(敎宗)이 솥 같이 번성함을 듣고 원효대사
와 뜻을 같이해 서쪽으로 나아갔다. 당나라로 가는 바닷가로 가서 큰 배를 구해 타고 바다를 건
널 생각이었다. 갑자기 중도에서 장마비를 만났다. 하는 수 없이 길가 토감에 몸을 숨겼다. 덕분에 비바람을 피 할 수 있었다. 아침에 날이 밝아 서로 둘러보니 옛 무덤의 해골 방이었다. 날은
더욱 굳고 땅은 더욱 질척했다. 한 걸음도 나아가기 어려워 토감에 계속 머물렀다. 밤중이 되지
않았는데도 문득 귀신들이 괴이한 짓을 했다. 그러자 원효는 탄식해 말했다. “지난 밤 묶었을
때는 토감이 곧 편안하다고 했더니 오늘밤에 묶으려니 귀신의 집이라 빌미가 많구나. 아하, 알
겠도다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갖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없어지기 때문에 토굴과 무덤이 둘이
아닌것을 또, 삼계는 오직 마음뿐이요. 만가지 법은 오직 가리새뿐임을, 마음마깥에 법이 없는데
무엇을 별도로 구하겠는가. 나는 당나라로 들어가지 않겠다.” 그러고는 본국으로 돌아갔다. 의상
혼자 외로이 죽음을 감수하고 물러나지 않았다. 총장 2년(669)에 상선을 타고 등주 해안에 이르
렀다.34)
⒟임간록(林間錄)(卷上) “당나라 중 원효는 신라(해동)사람이다. 처음 바다를 건너 중국에
와서 도가 있는 명산(도명산)을 찾으려했다. 홀로 황량한 언덕을 가다가 밤에 무덤가에 자게 되
었다. 아주 목이 말라 손을 뻗어 물을 찾았더니, 무덤 속에 달고 시원한 샘이 있었다. 날이 밝아
서 그것을 보니 해골이었다. 크게 구역질이 나 모두 토해버렸다. 문득 깊이 깨치며 탄식했다. 마
음이 생기면 곧 갖갖이 법이 생기고 마음이 없어지면 곧 해골이 다른 것이 아니구나. 여래대사
가 3세계는 오직 마음뿐이라고 했는데 어찌 나를 속이겠는가. 드디어 다시 스승을 찾지 않고 그
날로 신라도 돌아갔다.35)”

 

4.【무애】
1) 도상 해석
이 탱화에는 원효의 무애사상의 예술적 구현이라 할 수 있는
<무애무>의 내용이 그려져 있다.
상단부에는 원효가 입당을 포기하고 돌아와 저술에 몰두하는
모습이, 그리고 하단부에는 대중들에게 설법과 교화를 하는 모습
이 묘사되어 있다.
중단부에는 원효의 무애행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내용으로
저자거리에서의 무애무의 연행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원효는 한
손에는 목탁을 쥐고 또 다른 한 손에는 염주를 들고 있으며 허
리에는 조롱박을 찬 채 춤을 추는 형상을 하고 있다. 둘러싼 대중들에게 춤과 노래 등의 예술적인 표현으로 설법을 하고 있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2) 문헌의 기록
원효의 무애무에 관련되는 내용은 파한집(破閑集)ㆍ삼국유사의 기록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36).
⒜파한집 예전에 원효대성이 천한 사람들 속에 섞이어 놀았다. 일찍이 목 굽은 호로박을
어루만지며 저자에서 가무(歌舞)하고 이를 무애(無㝵)라 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 뒤에 일 좋아
하는 자(好事家)가 금방울을 위에 매달고 채색비단을 밑에 드리워 장식하여 두드리며 진퇴하니
모두 음절(音節)에 맞았다. 이에 불경에 있는 게송을 따서 무애가(無㝵歌)라 하니 밭가는 늙은
이도 이를 모방하여 유희(遊戱)로 삼았다.
무애지국사(無㝵智國師)가 일찍이 제(題)하여 이르기를, “이 물건은 오래도록 무용(無用)을 가
지고 사용(使用)하였고 옛 사람은 도리어 불명(不名)으로써 이름이 났도다.”하였다. 근래 산인
(山人) 게휴(貫休)가 게(偈)를 지어 이르기를, “쌍(雙)소매를 휘두르는 것은 이장(二障)을 끊은
까닭이요, 세 번 다리를 드는 것은 삼계(三界)를 초월한 까닭이다.”하였으니 모두 진리(眞理)로
써 이를 비유하였다. 나도 또한 그 춤을 보고 찬(讚)을 지으니 그 찬에 이르되,“배는 가을 매미
마냥 비었고 목은 여름 자라처럼 꼬부라졌도다. 그 굽힌 것은 사람을 따르는 것이요 허(虛)한
것은 물건을 용납할 만하도다. 밀석(密石)에 막히는 것을 볼 수 없고 규호(葵壺)에 비웃음 받지
않도다. 한상(韓湘)은 이와 같이 세계에 숨었고 장자(莊子)는 이와 같이 강호(江湖)에 다녔도다.
누가 이 이름을 지었는고, 그는 소성거사(小性居士)요. 누가 찬을 지었는고, 농서(隴西)의 타이
(駝李)로다” 하였다.37)
⒝ 삼국유사「원효불기조」 “원효가 이미 실계(失戒)하여 설총(薛聰)을 낳은 이후로는 속인의
옷으로 바꾸어 입고 스스로 소성거사(小姓居士)라고 하였다. 우연히 어떤 광대가 큰 바가지를
가지고 춤추고 희롱하는 것을 보니 그 형상이 너무도 빼어나고 기발하였다. 그 모양대로 도구를
만들어 화엄경(華嚴經)의 ‘일체에 걸림이 없는 사람은 한 길로 생사를 벗어난다(一切無㝵人,
一道出生死)’라는 (문구에서 따서) 이름을 ‘무애(無㝵)’라고 하고, 노래를 지어 세상에 퍼뜨렸다.
일찍이 이것을 가지고 천촌만락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교화하고 음영하고 돌아오니 가난하고 무
지몽매한 무리들까지도 모두 부처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모두 나무(南無)를 칭하게 되었으니 원효의 법화가 컸던 것이다.38)”
살펴 본 바와 같이 무애무의 명칭인 ‘무애(無㝵)’의 연원을 알려주는 중요한 사료로 파한
집과 삼국유사가 있으며, 이는 무애무의 기원과 형성배경을 기록한 중요한 사료이다. 비록
무애무의 구체적인 연행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이를 통하여 원효의 대중교화 의도와 무
애무의 창안 계기를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 탱화의 무애무는 위 문헌들의 기록을 바탕으로 약간의 윤색을 겸하여(무구: 염주, 조롱
박, 목탁ㆍ관객과의 구도 등) 묘사한 것으로 여겨진다.

 

5.【설법】
1) 도상 해석
이 탱화는 원효의 <설법>에 대한 내용을 묘사한 것이다.
상단부에는 원효가 소의 두 뿔에 붓과 벼루를 놓고 금강삼매경
소를 지었다고 하는 설화를 표현한 것이며, 하단부에는 김유신(金
庾信)이 당(唐) 소정방이 보낸 암호 난독회(鸞犢繪)에 대해 원효에
게 자문하였다는 내용을 나타낸 것이다.
2) 문헌기록
원효의 설법에 관하여 기록한 문헌으로 삼국유사ㆍ송고승전
이 있으며, 먼저 상단부에 묘사된 금강삼매경소 저술경위와 관
련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삼국유사 바다용의 권유로 길가에서 조서를 받들고 삼매경소(三昧經疏)를 지었는데,
붓과 벼루를 소의 두 뿔 사이에 놓았으므로 각승(角乘)이라고도 하였다.39)
⒝송고승전 원효가 사신에게 말하기를 ‘이 경은 본각(本覺)과 시각(始覺)의 두 가지 깨달음
을 종지로 삼고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소가 끄는 수레를 준비하여 책상을 두 뿔 사이에 두고 붓
과 벼루를 주시시오’ 하고 시종 소가 끄는 수레에서 주서[疏]를 지어 다섯 권을 만들었다.40)
한편, 김유신이 원효에게 암호해독의 군사자문을 하였다는 것은 삼국유사권1에 기록되었다.
661년 12월 김유신이 고구려 출정시에 원효의 조언을 구하여 소정방이 보낸 암호를 풀어
신라 병사들을 구출한 일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고기에 이르기를 총장 원년(668년)에 신라에서 청병을 한 당군이 평양의 교외에 주둔
을 하면서 서신을 보내어 급히 군수물자를 보내달라고 했다. 왕이 여러 신하들을 모아놓고 묻기
를 “적국에 들어가서 당병이 주둔하여 있는 곳으로 가기에는 지세가 험하여 극히 위험하다. 그
러나 당나라 군사의 식량이 떨어졌는데도 군량을 보내지 않는다는 것은 역시 옳지 못하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하였다. 김유신이 아뢰었다. “신 등이 능히 군수물자를 수송하겠으니 청컨
대 대왕께서는 심려치 마시옵소서." 이에 유신과 인문 등은 군사 수만을 거느리고 고구려의 국
경 안으로 들어가 군량 2만곡을 수송하여 주고 돌아오니 왕은 크게 기뻐하였다. 또한 군사를 일
으켜 당군과 합세를 하고자 윳니이 먼저 연기, 병천 등 두 사람을 보내 합세할 기일을 묻자 당
나라 장수 소정방이 난새(鸞)와 송아지를 그려 보내 주었다. 사람들이 그 뜻을 몰라 사람을 시
켜 원효에게 청해 물으니, 해석하여 말하기를 “군사를 속히 돌이키라는 말이다. 난새와 송아지
를 그린 것은 두 반절(反切)을 이른 것이다.” 이에 유신은 군사를 돌이켜 패수를 건너려 할 적
에 군령으로 말하기를 “나중에 강을 건너는 자는 베리라.”하였다. 군사들의 반이 강을 건너갈
적에 고구려 군사가 와서 미처 건너지 못한 병사들을 죽였다. 다음날 유신은 고구려 병사들을
추격하여 수만 명을 죽였다.41)

6.【요석과의 인연】
1) 도상해석
이 탱화는 <원효와 요석(瑤石)의 만남>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
다.
탱화의 상단부에는 원효가 두 하녀들에 의해 문천교를 건너 요
석궁으로 안내를 받고 있는 내용이며, 중단부에는 요석궁에 들어
와 공주와 만나 만찬을 하는 장면을 표현하고 있으며. 하단부에는
원효가 궁을 나와 요석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는 모습(이별)을 나
타내고 있다.
요석과 원효의 관계와 원효의 파계를 기록하고 있는 삼국유사
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2) 문헌기록
원효의 파계행으로 널리 알려져있는 요석과의 만남에 대한 문헌기록은 삼국유사를 통해살펴볼 수 있다.
ⓐ삼국유사 대사가 어느날 일찍이 상례를 벗어난 행동을 하며 거리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 누가 내게 자루 없는 도끼를 주려는가. 내가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찍어보련다.”사람들은
모두 그 의미를 알지 못하였다. 이때 태종 무열왕이 그 말을 듣고 말하였다.“이 대사가 아마 귀
한 부인을 얻어 어진 아들을 낳고 싶어 하는 것 같구나 나라에 위대한 현인이 있으면 그 이익
이 막대할 것이다.” 이때 요석궁에 과부 공주가 있었다. 왕은 궁리를 시켜 원효를 불러 오게 하
였다. 궁리가 명을 받들어 원효를 찾아보니 이미 남산을 거쳐 문천교를 지나고 있었다. 원효는
궁리를 만나자 일부러 물속에 빠져 옷을 적셨다. 궁리는 원효를 요석궁으로 인도하여 옷을 말리
고 그곳에서 머물고 가게 하였다. 공주는 과연 태기가 있어 설총을 낳았다.…(중략)…원효가 계
율을 어겨 설총을 낳은 이후부터는 속인의 의복으로 바꾸어 입고 스스로 소성거사(小姓居士)라
불렀다.42)

7.【교화】
1) 도상해석
이 탱화는 원효의 기이한 교화의 일화 가운데 하나인 척반구중
설화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상단부에는 선정에 든 원효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고, 하단부에는
나무소반을 멀리 던지는 원효의 모습과 그것을 바라보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의 승려들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43)
2) 문헌기록
척판암 설화라고도 전하는 이 내용에 대한 기록은 아래와 같다.
⒜송고승전처음에 원효가 행적을 보인 것이 일정함이 없었으며, 사람들을 교화하는 것에
고정됨이 없었다. 혹은 소반을 던져 대중을 구하기도 하고, 혹은 물을 뿜어 화재를 진압하기도

 

하였으며, 혹은 여러 곳에서 형체를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모든 곳에 입멸할 것을 고하기도 하
였으니 배도(盃度)나 지공(誌公)의 무리와 같았다.44)
⒝擲盤臺事蹟記위성 남쪽 묘향 북쪽에 절이 하나 있는데 그 이름이 척반대이다. 그 이름은
신라의 도인 원효로부터 지어졌다. 원효가 여기서 도를 깨치고 도를 즐긴 것이다. 하루는 지혜
의 눈으로 보니 중국에 큰 불교행사가 있는데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런데 그 행사를
주관하는 스님이 천벌을 받게 되어있어 땅이 무너지게 되었다. 원효가 소반을 던져 그 절의 공
중에 떠다니다가 멀리 날아갔다 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그 소반을 따라 나왔다 그때 땅이 무너
지고 사람들은 목숨을 구했다. 판자가 멈추므로 그것을 살펴보니 소반 안에는 해동원효척반구
중(海東元曉擲盤救衆)이라는 8글자가 쓰여 있었다. 따라서 소반를 던진 그곳이라 하여 척반대라
한 것이다.45)
8.【열반】
1) 도상해석
이 마지막 탱화는 저술과 열반에 관한 내용이다. 상단 부는 원
효가 저술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으며, 중앙 부분
은 승려들을 모아 놓고 강의를 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
부분은 원효가 만년에 경론을 저술한 이후 설법하는 장면을 표현
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단 부분은 열반하여 부처의 형상으로 설
법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2) 문헌기록
원효가 화엄경소」ㆍ「십문화쟁론」 등을 저술 한 것에 대한 기
록은 아래와 같다.46)

⒜삼국유사 “원효는 일찍이 분황사에 머물면서 화엄경소(華嚴經疏)를 지었는데, 제40<회
향품(廻向品)에 이르러 마침내 붓을 꺾었다. 또 송사 때문에 몸을 일백 그루의 소나무로 나누니
모두 이를 위계(位階)의 초지(初地)47)라 하였다.”
⒝서당화상비 “비유하자면 청색과 쪽 풀은 본체가 같고 얼음과 물은 근원이 같은데, 거울
이 수많은 형상을 받아들이고 물이 갈라지는 것과 같다 (마멸) 융통하여 서술하고는 그 이름을
십문화쟁론(十門和爭論)이라 하였다.48)”
한편 원효의 열반에 대한 기록은 아래와 같다.
⒟삼국유사 그가 입적하자 설총이 유해를 잘게 부수어 참 얼굴을 빚어 분황사에 모시고,
공경하고 사모하여 슬픔의 뜻을 표하였다. 그때 설총이 옆에서 예를 올리자 소상이 갑자기 돌아
보았는데, 지금까지도 돌아본 채 그대로 있다.49)

원효좌상 좌우벽에는 요석공주와 아들 설총의 탱화가 있다.

원효성사전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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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구하는 일에나 전념하소.

마음을 찾아서 2013.02.15 10:28 Posted by 文 寸 문촌

마음 구하는 일에나 전념하소.

포항시 오천에 가면 오어사가 있다. 오어사! 절 이름이 재미있다. 
나 '오(吾)', 고기 '어(魚)', 절 '사(寺)', 곧 '내 물고기'라는 오어사는 일찍이 신라 4대 聖人이라 불리는 자장율사, 원효대사, 혜공대사, 의상대사가 함께 머물러 수도했던 곳으로 특히 원효대사와 혜공대사의 재미있는 설화가 서려 있는 곳이다. 오어사는 신라26대 진평왕 때 자장율사가 세운 절로 원래 이름은 항사사(恒沙寺)였는데 오어사로 개명된 데 대해서는 원효와 혜공의 일화가 전해진다. 

삼국유사 제4권 [의해편]에 나타난 오어사는 고승 혜공의 흥미진진한 행적으로 가득 차 있다. 어느 날 원효가 당나라에 유학 가기 위하여 운제산 계곡에서 원효암이라는 초가를 짓고, 불철주야 열심히 정진하던 차에 혜공선사는 중국에서 부처님의 전업을 이어받은 인가를 받아와서 70명의 대중을 공부를 시키고 오어사에 주석하였다. 

하루는 두 사람이 운제산 계곡 맥반석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정진하던 중 혜공이 마음이 동하여 원효에게 물었다. 

"자네가중국에 가서 인가를 받아 오려면 부처님의 대법을 이을 수 있는 신통한 여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법력이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세" 

"그럼 무엇이든지 법력을 겨루어보세"

원효가 대답하니명경지수가 흐르는 계곡에 산고기가 노니는데 그 고기를 한 마리씩 산채로 삼키고바위 끝에 앉아 대변을 봐서 산채로 고기가 나오면 이기는 걸로 했다. 그리고는 팔을 걷어 부치고 계곡에 뛰어들어가 서로 한 마리씩 고기를 나누어 삼켰는데 두 마리 고기중 한 마리는 죽어서 나오고다른 한 마리는 살아서 활기차게 상류로 올라갔다. 그 산 고기를 보고 대사는서로 떠밀며"저 고기가 내 고기야" 라고 하였다.'나 오(吾)고기 어(魚)'라는 말에서 오어사가 유래하였다한다. 

부처님 오신 날 준비로 분주한 저녁의 절 마당에서 스님 한 분을 만나 합장 인사드리고 여쭈었다. 

"저는 학생들에게 우리나라 사상을 가르치는 고등학교 윤리교사입니다. 마침 원효스님을 찾아오다가 이곳까지 들렀는데, 이 오어사에는 원효스님과 혜공선사께서 물고기를 삼켰다가 변을 보면서 살려냈다는 전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두 스님께서 그런 신통을 부렸을 적에 이 오어사가 있었습니까? 신통을 부린 후세에 오어사가 생겼습니까?"


내가 만난 스님들은 항시 친절하셨는데 오어사의 스님은 퉁명스럽게 대답하신다.


"고런 신통부리는 이야길랑 선상님만 아시고 아~들한테는 갈치지 마소. 어린 아~들이 스님들은 요술이나 부리는 사람으로 알 꺼 아닝교? 요술 같은 이야길랑 집어 치아뿌고 그저 자기 마음 구하는 일에나 전념토록 갈치소!"


무안을 당해 얼굴이 달아올랐다.'고얀 스님일세' 속내를 들어낼 수도 없었다. 그러나 듣자하니 그 말씀이 백 번 옳았다. (2001년 5월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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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일어나니 조주탓인가? 내탓인가?

Category: 마음을 찾아, Tag: 여가,여가생활
08/11/2005 12:00 am

 

오랜 만에 글을 쓴다.
글을 씀으로써 또 허물을 짓지 않나 모를 일이다.
마음이 동하여 말을 하고, 말을 하고 나면 허물이 또 늘어난다.
마음이 생하여 글을 쓰고, 글을 쓰고 나니 허물이 또 늘어난다.
난 지금 말 장난하고 있다. 쯧쯧..
조주가 일찍이 말했다.
"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만가지 법에 허물이 없다. (一心不生, 萬法無咎)"
조주의 말에 내 마음이 일어나 이 글을 쓰니 이 허물은 조주 탓인가? 내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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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왜 이리 잘 나가는 걸까? 예스(YES)오일 이니깐...'

Category: 마음을 찾아, Tag: 여가,여가생활
08/10/2007 02:23 am
"오늘은 왜 이리 잘 나가는 걸까? 에스오일(S-Oil) 에스 오일 에스 오일 이니깐."
잘 나가고 못 나가고..... 글쎄 오일 때문이기도 하겠죠.
자동차 말입니다. 그럴 수 있겠죠. 기름 탓에 그런 줄도 모르겠네요.
문외한.....???
그래도 광고 관계없이 그냥 가까운 주유소만 들렀는데.....

그러나 정말 인생의 길을 달릴 때 잘 나가고 못 가나가고 가 오일 탓이겠습니까?
그건 다름 아닌 마음 탓이지 아닐까요?
그 마음도 긍정적 마음(포지티브 마인드), 곧 YES-Mind !!!
이제 웃어 봐요. 열어봐요.

"오늘은 왜 이리 잘 나가는 걸까?
예쓰 오일(YES-Oil) 예쓰 오일(YES-Oil) 예쓰 오일(YES-Oil) 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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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담긴 '마음'

마음을 찾아서 2013.01.01 22:44 Posted by 文 寸 문촌

사전에 담긴 '마음'

Category: 마음을 찾아, Tag: 여가,여가생활
07/02/2005 10:35 am

마음은 무엇일까? 마음은 어디있을까? 늘 찾게되고 생각하게 된다.
여러 사전에 담겨있는 마음을 모아 읽어본다.

[야후 인터넷 백과사전]

감각·지각 및 지(知)·정(情)·의(意)의 움직임 또는 그 자리. 철학적으로 마음을 특징짓는다고 하면 인간에게 인격을 주는 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좀더 구체적으로 규정하면 마음이 대립하는 개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마음은 신체에 대립한다. 이 경우 마음은 신체가 받은 자극을 수용하는 것, 신체를 움직이는 것 등으로 생각할 수 있다. 둘째 마음은 행동·거동에 대립한다. 표면적인 행동의 배후에서 행동과는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이른바 사고·감정·의지 등의 자리로서 마음이 설정되어 있다. 셋째 인간이 서로 다른 것은 사람마다 마음이 다르기 때문이며 인간을 구별짓는 것으로서 마음을 생각할 수 있다. 넷째 이 세계를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다름아닌 <자신>이라는 점에서 세계의 모든 것과 대립한다. 이렇게 <마음>이란 결코 단순한 개념은 아니지만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인간이 단순히 <물건>이 아닌 <사람(인격)>이라는 것이다. 심리학자 모두가 동의하는 마음의 정의란 아직 없다. 그러나 많은 심리학자는 지각·기억·감정·의지·지적활동 등의 심리적 과정을 마음과 결부시켜 생각하고 있다. 마음은 흔히 다음과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①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심리적 과정의 전체

② 의식적 경험의 전체

③ 심리적 활동과 의식적 경험을 설명하기 위한 구성개념

④ 주체(主體)·자기(自己)·혼(魂) 또는 영혼

⑤ 행동 또는 사고의 특징적 양식,

예를 들어 한국인의 마음, 미개인의 마음 등으로 쓰는 경우이다. 경험적 심리학이 등장하기 이전의 심리학은 마음의 본질(물질과의 차이 등)·영성(靈性;신과의 관계 등)·도덕성(마음의 선악) 등의 문제를 거론하였는데 특히 마음의 본질 문제는 <심신문제>로서 오랫동안 계속 철학과 심리학의 중요문제가 되어 왔다.

 

마음과 신체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몇 개의 입장으로 나눌 수 있다.

① 신체만이 실재한다고 주장하는 유물론(唯物論;materialism)

② 신체 및 신체적 과정은 마음 작용의 산물이며 마음의 현상형태(現象形態)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펴는 유심론(唯心論;spiritualism)

③ 마음은 신체에, 신체는 마음에 작용한다고 주장하는 상호작용설(相互作用說;interactionism)

④ 심적 과정과 신체적 과정은 서로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독립적으로 병행해 진행하고 있다는 병행설(竝行說;parallelism)

⑤ 마음에 영향을 주는 사상(事象)은 신체에도 영향을 주고, 신체에 영향을 주는 사상은 마음에도 영향을 준다는 심리 물리적 병행설(心理物理的竝行說;psychophysical parallelism)

⑥ 어느 관점에서 보면 마음은 신체이고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신체는 마음이므로 양자는 기본적으로 1개의 본체(本體)가 가진 2개의 특성이라고 주장하는 양면설(兩面說;double aspect theory)

⑦ 심적 과정은 신체적 활동의 부산물이며, 별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하는 부수현상설(附隨現象說;epiphenomenalism)

⑧ 의식적 과정과 뇌의 물리적 과정은 전적으로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1대 1의 대응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심리물리적동형설(心理物理的同型說;psychophysical isomorphism)

⑨ 생물이 어느 정도 복잡해지면 심적 성질을 나타내게 된다는 발출설(發出說;emergentism) 등이다.

 

현대 심리학은 행동주의의 영향을 받아 의식적 경험은 객관성이 없다고 하여 연구대상에서 배제하는 과학적 심리학의 입장을 띠면서 <마음 없는 심리학(psychology without soul)>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으나 그것으로써 마음에 관한 문제 자체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마음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인데, 마음의 개념이 요구되는 이유는 주체의 동일성이라든가 인식의 항상성, 신체와의 관계가 문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마음 대신 <사람>이라든가 <퍼스널리티(personality)>와 같은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다. 또 마음과 신체의 관계에 관해서도 뇌손상과 약물에 의한 심리적 과정의 장애문제, 신체증상의 원인으로서 심리적 인자를 중시하는 정신의학적 문제, 뇌의 발달과 심리적 기능 발달과의 계통발생적·개체발생적인 문제, 뇌활동과 의식수준의 문제 등 구체적 연구과제가 채택되어 전기화학·분자화학 등의 자연과학적 입장에서 연구되고 있다.


[영한사전]

mind : [n] 마음, 정신(soul) cf. body ( A sound mind in a sound body,<속담> 건전한 정신은 건전한 신체에 깃든다)
mind - 인간의 지정의의 작용을 하는 부분 ; 특히 지적인 작용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heart - 정적인 작용을 가리키는 말 : have no heart 전혀 인정미가 없다.
brains - 특히 이해력, 사고력 따위를 강조하는 말 : have no brains 머리가 아주 나쁘다.
soul - body에 생명을 부여하고 종교적으로는 죽은 후에도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영혼 : the soul of a dead person 죽은 사람의 영혼
spirit - soul과 같은 뜻이지만 특히 육체적, 물질적인 존재와 상반된다는 암시가 강한 말 : the spirit of a law 법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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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입니다.

마음을 찾아서 2013.01.01 22:42 Posted by 文 寸 문촌

선암사에서 조계산을 넘어 송광사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조계산 정상을 오르는 길에 있는 비로암에 들렀습니다.
벼랑에 작고 초라한오두막집 비로암에는 그렇게 닮은 선승이 계셨습니다.
'아니 온 듯' 가려고 조용히 들렀는데 귀 밝은 선승이 문을 열고 나오시며 반갑게 맞이하여 말동무가 되었습니다.마루에 걸터 앉아 잠시 땀을 닦고 배낭 속의 방울토마토를 꺼내 권했습니다.
먹을 때가 아니라며사양하셨습니다. 그래도 한 번 더 권하니 이번엔 계율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말 했습니다.

"혼자 계신데 무슨 계율입니까? 누가 뭐랍니까?"

"그래도 지킬 것은 지켜야죠."

그냥 소박하신 그 모습대로 되는 대로 쉽게 사시는 줄 알았더니 칼을 지닌 선승이셨습니다.
또 여쭙니다.

"왜 이렇게높은 산 중에 올라오셔서 사십니까?"

"뭐 그야 모르죠."

저 산아래 대각암의 청각스님께서도'모른다'는 말씀을 잘하시더니이곳의 풍이 그런가 싶네요.그러시면서 도로 제게 묻습니다.

"선생님은 여기 왜 왔습니까?"

"예, 저는 이 산너머 송광사로 가는 길입니다."

"그래요. 저도 가는 길입니다."

스님의 마지막 말씀은 그야말로 우문현답이셨습니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스님도 나도 '가는 길' 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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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언제나 나와 함께 있었는데....

Category: 마음을 찾아, Tag: 여가,여가생활
05/16/2005 05:30 pm

유대인 샤란스키는 미국 스파이 혐의로 9년 복역하고 풀려나 1986년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이스라엘 해외유대인 담당 장관이 된 샤란스키는 11년 만에 모스크바를 방문해 자기가 복역했던 교도소 독방을 찾아갔다. 그는 외롭고 고통스러웠던 독방시절 오로지 아내를 생각하며 버텼던 기억을 떠올리고서 함께 간 아내에게 물었다.

“이 방 알아보겠소? 당신은 언제나 나와 함께 이 곳에 있었는데….”

독방을 처음 보는 아내도 “그럼요. 구석 구석 낯익은데요”라고 답했다. 마음속에선 내내 남편과 함께 수감돼 있었다는 얘기다.

- 2005.05.05 조선일보 [만물상] '샤란스키의 사임'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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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마음'인가 보다.(스크랩)

마음을 찾아서 2013.01.01 22:41 Posted by 文 寸 문촌
부처님 오신 봉축 법어를 살피면, '마음'일색이다.

[2005년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법요식에서]
법장 총무원장은 봉축사에서 “무엇보다도 이념과 종교, 빈부와 인종을 넘어 모든 중생이 부처님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반목을 거두고 화해하며,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며, 독점하지 말고 나누며, 거만하지 말고 공순(恭順)하며, 전쟁을 평화로 바꾸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종정 법전 스님은 “자성(自性)에서 부처를 찾을지언정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지 말라”고 설했다.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법어]
불기(佛紀) 2549년 부처님 오신 날(15일)을 앞두고 3일 불교 각 종단 지도자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가 봉축법어와 축하 메시지를 발표했다.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은 “자성(自性) 가운데서 부처를 찾을지언정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지 말자”며 “꽃이 피면 한량없는 세계가 일어나고 티끌이 모여 불국토(佛國土)를 이룹니다. 한 발자국 드니 그대로가 부처요, 한 발자국 내리니 그대로가 중생이로다”라고 말했다.
태고종 종정 혜초 스님은 “부처님께서는 사바(娑婆)를 밝히고 중생을 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 생명의 빛으로 이 땅에 오셨다”며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 더불어 하나되며 밝은 지혜가 헛된 욕망을 다스리는 세상이야말로 부처님 세상”이라고 말했다.
천태종 종정 김도용 스님은 “사는 일이 잠깐의 꿈이라 꿈을 깬 뒤 후회 없는 삶을 살라고 부처님은 간곡히 일러주셨네”라며 “사람들아, 지고 있는 무거운 업 내려놓고 자비롭고 지혜로운 원력을 세워 공덕의 탑을 쌓으라”라고 말했다.

[2003년 부처님 오신날 봉축 법어] : 대한불교 조계종 법전 종정
“모든 생명이 부처님으로 탄생되는 날, 중생을 부처님처럼 존경하자”
마음은 모든 진리의 원천이자, 성자의 근본이며, 만가지 악행을 일으키는 근원이라....
“산하대지(山河大地)와 일월성신(日月星辰)이 중생의 마음을 벗어나지 않으니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우리들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며 법신체(法身體)”
“한 생각 어둡게 가지면 전도(顚倒)는 그치지 않을 것이고,
한 마음 밝게 가지면 정토(淨土)의 길이 열려,
눈 먼 거북은 종(鐘)을 쳐서 천안(千眼)을 이루고,
앞산 뻐꾸기는 겁외가(劫外歌)를 부를 것”

[1997년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법어] : 金道勇(김도용)천태종종정

인간이 기계와 물질문명에 예속돼 이기주의·황금만능주의·향락지상주의가 사회에 팽배하고 도덕성이 마비됐다.상호 반목과 대립, 부패와 불안 등 사회적 병리현상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자비와 화합의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

마음이 청정하면 세계가 청정해진다. 부처님이 사바세계에 오신 참뜻을 되새겨 마음을 정화하고 사회정화의 횃불이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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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지 못하는 마음 : 맹자에서

마음을 찾아서 2013.01.01 22:40 Posted by 文 寸 문촌

맹자가 말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참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이 있다.
....지금 별안간 어린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려는 것을 보면, 누구나 깜짝놀라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생겨 아이를 구할 것이다. 그것은 그 어린아이의 부모와 친해보았으면 하는 마음도 아니오, 마을사람이나 친구들로 부터 칭찬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다. 또는 구해 주지 않았다는 비난을 듣는 것이 두려워서도 아니다. 이를 보건데,

남의 불행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오.
악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오.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오.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이 없으면 또한 사람이 아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곧 사랑의 시작(端)이오.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정의의 시작이오.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의시작이오.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지혜의 시작이다.

사람이나면서부터 사지를 가지고 태어나듯 '인의예지'의네가지 단서를 가진다.
그러니 자신이 사랑과 정의와 예의와 지혜를 실천할 수 없다고 단념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을 해치는 자이다.

孟子曰, “人皆有不忍人之心. ......(중략)..........今人乍見孺子將入於井, 皆有5惻隱之心. 非所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 非所以要譽於鄕黨朋友也, 非惡其聲而然也. 由是觀之,
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仁也.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
人之有是四端也, 猶其有四體也. 有是四端而自謂不能者, 自賊者也,

-맹자, 공손추장구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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