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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찾아서

성지순례ㅡ은이성지

by 문촌수기 2019. 4. 6.
은이 공소터는 한국 교회사 안에서 솔뫼나 미리내만큼이나, 아니 오히려 그 이상 가는 귀중한 사적지이다. 하지만 이처럼 중요한 사적지인 은이 공소터가 교회의 무관심 속에 이쑤시개 공장과 잡초만이 무성한 텃밭으로 한동안 변해있었다. 그러던 중 1996년 은이 공소터 530여 평을 매입하고 야외제대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상을 세우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성지 개발이 시작되었다.

은이 마을은 한국 교회 최초의 방인사제였던 성 김대건 신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을 간직한 곳이다. 김대건 신부가 소년 시절을 보낸 골배마실에서 불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은이 마을은 소년 김대건이 모방 나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고 최양업, 최방제와 함께 신학생으로 간택되어 마카오로 파견된 곳이다.
또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한 김대건 신부의 첫 사목지가 바로 은이 공소로서, "용인 천주교회사"(오기선 신부 감수, 조성희 지음)는 이에 대해 "은이 공소는 조선 교회 사상 최초의 본당"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김가항 성당을 복원하는 의미로 일부 자재는 2001년 철거된 상해 김가항 성당의 것을 사용했다.바로 이곳에서 김대건 신부는 조선 땅에서는 처음으로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했고, 바로 이곳이 체포되기 직전 공식적으로 마지막 미사를 드렸던 곳이기도 하다. 한국 교회의 가장 대표적인 성인으로 추앙받는 김대건 신부가 성소의 씨앗을 뿌렸던 곳이자, 그 열매가 가장 먼저 풍성하게 열렸던 곳이 바로 은이 마을, 은이 공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