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태준2

노시산방에서 수향산방까지 수화 김환기와 향안 변동림이 노시산방 주인이었던 근원 김용준을 배웅하고 있다. 감은 다 익어가고 날은 차다. ■ 김용준의 노시산방(老枾山房, 기거 1934-1944)1948년 이 출판된 당대에 “시는 정지용, 소설은 이태준, 수필은 김용준”이라는 말을 들을만큼 문사철에 뛰어난 화가, 김용준(近園 金瑢俊· 1904∼1967)이 성북동으로 이사를 한 것은 1934년이었다. 그때만해도 그 곳은 집 뒤로 꿩은 물론 늑대도 가끔 내려올 만큼 산골이다. 하지만 김용준은 '뜰 앞에선 몇 그루의 감나무는 내 어느 친구보다도 더 사랑하는 나무들'이라 할 정도로 늙은 감나무 몇 그루를 사랑했기 때문에 이 집으로 왔다. 한 해전 먼저, 성북동 수연산방에 자리잡은 이태준(1904-1978, 호는 尙虛)이 그 감나무의 늙음을 .. 2023. 11. 21.
수연산방 상허 이태준 가옥 법정스님이 사촌동생에게 보내 편지글이다. 이 글만으로도 충분하다. 이태준을 찾아 읽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도 좋은 책 많이 읽도록 하여라. 이태준씨의 작품은 모두 훌륭한 것들이다.(지금은 북쪽으로 가 계시는 분이다.) 이름 있는 작가의 것을 골라서 읽어야 할 것이다."(1957. 10. 7.) 수연산방은 상허 이태준이 1933년부터 1946년까지 살면서 많은 문학작품을 집필한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 , , , 등 문학작품 집필에 전념하였다. 그의 수필에는 이 집을 지은 과정과 집터의 내력 등이 쓰여 있다.나의 그림속에는 현판이 넷 있다. 가운데의 수연산방(壽硯山房)은 문방사우를 가까이하는 '문인들이 즐겨찾는 산 속 집'이란 뜻이다. 벼루에 먹을 갈아 휘호하기를 즐기며, 벼루가 다 닳아 구멍이 날 .. 2019. 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