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갑질과 무교호례(無驕好禮)

읽기 : 가난과 부유에 대한 공자의 답변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묻기를,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는 자는 어떻습니까?" 하니,

공자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괜찮다. 하지만 가난하지만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 예를 갖추는 자만 못하지."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자공왈 빈이무첨, 부이무교, 하여?”)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자왈 가야, 미약빈이락, 부이호례자야.”) - [학이]

 

나는 어릴 때 가난하게 살았다. 이웃에 부잣집 아이가 있었다. 나 보다 조금 어린 그 아이는 종종 바나나를 들고 골목에 나타났다. 가난한 우리들에게 바나나란 천국의 음식과 같이 귀한 것이었다. 같이 놀던 친구들이 우르르 그 아이 앞으로 몰려가서 한 입만, 한 입만하며 입을 벌리며 따라 다닌다. 나는 속으로 침을 삼켰지만 그 모습을 들키기 싫었다. 그렇게 비굴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것도 동생뻘 되는 아이한테.....‘저 자식, 다 먹고 나오지, 저걸 왜 들고 나와?’ 자랑하듯 들고 나온 그 놈이 실은 부럽기도 했지만 또 한편 엉덩이를 차버리고 싶었다.

가난하게 살다보면 남에게 얻어먹기 위해서 아첨해야 하며, 부유하다보면 남들 앞에서 어깨가 올라가고 으스대는 것이 다반사이다. 보통 그렇게들 살아간다. 그러니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자존심을 지키니 잘했다고 할 수 있으며,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살필 줄 알고 체면을 지키는 일이니 가상한 사람이다. 어느 누구도 가난하고 천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나 빈천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아첨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살아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스승(공자)괜찮다. 그것은 옳은 짓이다.” 라고 했다.

그러나 스승은 그것보다 더 품격 있는 삶을 가르치신다. 가난하지만 인생을 즐길 줄 알고, 부유하지만 예를 잊지 않아야 한다.”(貧而樂 富而好禮ㆍ빈이락 부이호례). 재물이 많고 적음에 세상의 뜻을 두지 않고 그 큰 도리와 삶의 목표에 뜻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가난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를 찾아가는 즐거움을 바꾸지 않은 안회처럼. 겸손함과 어진 성품, 예의와 양보 그리고 나눔을 실천하는 자세로 갖는 것이다. 이러한 품격에 도달한 사람이야 말로 현명한 사람이고 삶과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거리1 : ‘가난하여도 즐길 수 있는 일/’[貧而樂]은 어떤 것일까?”

 

빈이락

(貧而樂)

 

 

 

 

 

 

 

(버블맵 : 종류)

뉴스거리 : 부자의 갑질

  부자나 높은 사람들 중에는 참으로 못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갑질 행위가 그들을 못난 사람으로 만든다. 특히 근래 모 항공사 회장의 두 따님(?, 딸들!)들이 연달아 갑질 논란을 일으켜 뉴스의 초점을 받고 있다. 몇 해 전에는 큰 딸의 갑질 논란으로 그룹 회장인 아버지는 자식 교육을 잘못시켰다다며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또 둘째 딸의 갑질 행위로 국민들이 비난과 원성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어릴 적부터 부자로 살면서 잘못 배웠기에 교만을 부려서 온 국민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있으며, 얼굴을 못들고 다니는 꼴이 되었다. 가문의 수치가 되었고, 회사에도 큰 오명을 끼쳤다. 나라의 망신이라며 항공사의 이름[社名]에서 나라 이름을 빼고, 비행기에 그려진 태극마크[Logo]를 지우라며 국민청원이 들어가고 있다.

  남의 일이 아니다. 겸손하기는 어려워도 매사에 교만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더 훌륭한 일은 정말 예의를 좋아하는 부자가 되어야 한다. 부이호례(부자이면서 예의를 좋아한다)는 어떤 행동일까? 어떤 모습일까? 그렇게 예의를 실천할 때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거리2 : 부이호례(富而好禮)
                           
(멀티플로우맵 : 인과관계)

 

 

 

 

 

예의 바른

 

삶의 모습

 

행위

 

예의 있는 부자

 

그 결과

 

삶의

 

소득

 

 

 

 

 

 

성북동 길 위의 의자

인문학과스토리텔링 2018.04.17 22:14 Posted by 文 寸 문촌
성북동 길 위의 인문학 산책길.
이번엔 특별히 의자가 테마가 되었다.
한성대역 6번 출구 가로 공원에 앉은 한ᆞ중 평화의 소녀상과 세번 째의 빈의자.

조지훈 방우산장ㅡ시인의 방에 흩어진 의자들

길상사, 법정스님 추모하는 진영각 왼쪽에 놓인 "빠삐용의자'. 그러나 나는 '어린 왕자의 의자'가 자주 오버랩 된다. 빠삐용의 의자에 앉고 싶었지만 세월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법정스님의 의자가  무너질까봐서 그 옆에 앉았다.

심우장 아래, 의자에 앉아 길손을 마중나오신 만해 한용운 님

그리고 <의자> 시

< 의자 >  - 이정록 -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ㅡㅡㅡㅡ
그리고 학창 시절의 애송시
조병화의 <의자>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드리지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드리겠습니다.

<의자> 조병화

오랜만에 수원화성을 다시 찾았다.
음력 춘삼월, 꽃피는 사월이라 행궁도 꽃단장으로 곱다.
좌묘우사의 원칙에 따라, 행궁 왼쪽에는
정조의 어진을 모시고 제향드리는 화령전이 있다. 이 곳에 들릴 때, 입구 왼쪽에 제정(祭井)이 있다. 팔각형 바닥 위에 우물, 정(井)자 우물이다. 그 수학적 도형의 모습이 특별하고 눈을 끌게 하는 매력이 있다. 경복궁 향원지의 '열상진원'(洌上眞源)의 모습과 대비된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했던가!
물은 생명의 진원이다. 백성들 살림살이의 근본이다. 임금의 은덕과 시혜로 백성은 살아간다. 물은 임금님 시혜의 근원이다.

<화성행궁, 화령전의 제정>
우물 정(井)자는 사각으로 땅을 상징하고, 기단의 팔각은 원형(하늘)과 방형(땅)의 중간 모양이다. 천지사이의 주인공인 인간을 상징하며,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매개체를 상징한다. 불교의 팔정도(八正道)는 이상적 경지인 열반에 이르는 바른 길이며, 예수의 진복팔단은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제향의식 그 자체가 하늘과 땅을 이어주고, 신과 인간이 만나는 시간 아닌가?

<경복궁, 열상진원>ㅡ아래.
천원지방(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의 모양으로 지었다.
열상은 한강, 즉 '열수(洌水) 위에 있다'는 뜻이다. 이 곳이 열수의 참 근원지라는 것이다. 지금의 남양주 두물머리 한강변에 살았던 정약용의 호가 열수이다. 그는 자신의 글에 “열수(洌水) 정용(丁鏞)”이라고 서명하였다.

 

<화령전, 정조 어진>

<화성도> 1794년 화성을 축성한 후 바로 그려진 화성도

<화성 행궁>

<화령전, 운한각> - 정조의 어진을 보관하고 제향드리는 곳이다.

다산 정약용과 수원화성

인문학과스토리텔링 2018.04.07 17:09 Posted by 文 寸 문촌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을 지은 이는 누구일까? 물론 정조대왕이시다.
그러나 그 설계와 축성기술에 크게 공을 세운 이는 실학자 정약용이다. 그의 설계에 따라 제작된 녹로ᆞ거중기ᆞ유형거 등의 중장비가 팔달구청 앞에 재현되어있다.
<거중기ᆞ擧重機> 위ᆞ아래 각각 네개의 도르레를 이용하여 무거운 돌을 들어올리는 기계

<유형거ᆞ>거중기로 들어올린 성돌을 옮길때 사용한 수레

<녹로ᆞ>

서장대에서 성곽을 따라 화서문으로 내려오늘 길에, 이 중장비들 사용하여 화성을 축성하던 백성들을 만날 수 있다.

서장대

화서문

서북공심돈

수원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용연과 방화수류정이다.
그 풍광도 아름답지만, 용연에는 전설이 있고, 방화수류정에는 시가 있다.
이야기(스토리)가 있기에 더욱 오래 기억되고, 찾는 이들도 많아진다.
용연의 전설을 낳게 한 주인공을 찾아갔다. 아무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있지 않다. 남수문인 화홍문 바로 뒤에서 징검다리를 건너 용연으로 들어간다. 떨어져 깨어진 용머리가 물을 토하고 있다.

옛날 옛날 이 연못에는 이무기가 살았다. 천년을 공들였다가 드디어 용이 되어 승천을 하고 있다. 그러나 마음 속 간직해온 연정을 차마 다 털쳐 버리지 못한 까닭일까? 연못가를 찾아 온 사모하던 처녀를 내려다 보는 바람에, 그만 몸이 굳어져서 땅으로 떨어졌다.
용의 머리는 방화수류정 정자가 올라앉은 저 바위 위로 떨어지고, 굳어 버린 용의 몸통은 화성의 성곽을 업고 있는 긴 언덕이 되었다.
용연에서 화홍문으로 배수되는 곳에 용의 머리가 있다. 세상 사람들은 잘 모른다.
이 슬픈 이무기의 사랑이야기를.
최근에 만들어진 전설이다.
이규진의 소설, <파체>  속의 이야기이다.

용머리 바위 위의 방화수류정

용머리를 찾고 용연의 슬픈 전설을 들으면서 방화수류정으로 올라간다. 화성으로 들어가는 암문 또한 은밀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용이 추락한 바위 위에 아름다운 방화수류정이 앉아있다.
춘삼월에 '꽃을 찾아 버들을 따라' 시냇물을 건너는 시인의 뒷모습이 그려진다. '방화수류' 라는 문구는 송나라의 유학자인 정호(程顥ᆞ明道)의 ‘춘일우성’(春日偶成)이라는 시에서 유래한다.

운담풍경근오천(雲淡風輕近午天)
방화수류과전천(訪花隨柳過前川)
방인불식여심락(傍人不識余心樂)
장위투한학소년(將謂偸閑學少年)

구름 맑고 바람 가벼운 한낮에
꽃을 찾아 버들을 따라 시냇물을 건너네.
세상 사람들, 내 마음의 즐거움을 모르고
한가하게 놀기만 하는 아이 같다며 말하네.

방화수류정 기단부에 쌓은 벽돌들.
십자문양은 처음부터 십자벽돌로 구었다한다.

나도 승천하던 이무기처럼 용연을 내려다본다. 용연과 방화수류정 그리고 암문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세상의 것에 홀리면, 천국의 문에 들 수없다.

<용연의 전설, 달리 읽기>
http://munchon.tistory.com/859
소설 <파체>속의 이야기를 윤색하고 문채하였다.
전설은 이렇게 각색되어 갈 것이다.

장안문에서 밖으로 나와 방화수류정을 찾아가면서 화성의 체성을 바라봐야 화성 성곽돌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성곽의 체성 속에서 선조들의 더운 숨결을 느낄 수 있다.

화성의 정문인 장안문(북문).
통상 한양도성의 숭례문과 같이 남문이 정문이지만 화성의 경우에는 한양도성에서 출발한 정조대왕이 화성행궁으로 내려올 때 가장 먼저 들어가는 문이 북문이기에 정문이라 한다.
참고로 북문이 정문이 되는 곳이 또 있다.
사직단의 사신문 중, 북신문이 바로 정문에 해당한다. 그래서 다른 문과 달리 삼문형태를 하고 있다.
선생님들의 소확행 ~
때문에...라며 원망말고,
덕분에...라며 감사하자.
우리 아이들 덕분에 더 행복해지는 선생님들.
ㅡ '너희들 때문에'도 힘들 때도 있지만 그건 접어두고,
ㅡ'너희들 덕분에'를 더 채우니깐 기쁨도  감사함 더 크구나.

사군자 ㅡ 매난국죽

인문학과스토리텔링 2018.03.25 17:38 Posted by 文 寸 문촌
고향마을 작은 집에서 만난 사군자 문인화
梅蘭菊竹ㅡ매난국죽
봄의 군자ᆞ매화

己壓千花 不敢驕ᆞ기압천화 불감교
모든 꽃을 누르고 있으면서도 교만할 줄 모른다.
<매화시>ㅡ詠梅花(영매화) 
終日尋春不見春(종일심춘불견춘) 종일토록 봄 찾아도 봄을 보지 못해,
芒鞋踏破嶺頭雲(망혜답파영두운) 고갯마루 구름 속을 짚신 신고 헤매다,
歸來笑撚梅花嗅(귀래소연매화후) 돌아와서 웃으며 매화 향기 따라가니,
春在枝頭已十分(춘재지두이십분)
가지 끝에 이미 봄이 가득 다가와 있구나.
ᆞᆞᆞᆞ
여름의 군자ᆞ난초

習習香從 紙上來 습습향종 지상래
봄바람 솔솔 부는 둣, 종이 위에 향기가 풍긴다.
ㅡ<난초시>
눈이 녹지 않은 오솔길 꽃 생각이 많아서 
난초 뿌리가 얼음 속에서 솟는다 
자라서 복숭아꽃처럼 호화스러운 것은 없으나
그 이름은 항상 산림처사(山林處士)의 집에 있다. 

雪徑偸開淺碧花 
氷根亂吐小紅芽 
生無桃李春風面 
名在山林當士家 
《양정수 楊廷秀/난화 蘭花》

옥분(玉盆)에 심은 난초 일간일화(一間一花) 기이하다 
향풍(香風) 건듯 이는 곳에 십리초목(十里草木) 무안색(無顔色)을 두어라 
동심지인이니 채채 백 년 하리라.
《이수강 李洙康》
ᆞᆞᆞᆞ
가을의 군자ᆞ국화

世人看自別 均是傲霜雪
세인간자별 균시오상설
세상사람들 빛깔을 보고 차별짓지만, 모두 다 눈서리에 굴하지 않아

ㅡ<국화시> 정몽주 <국화탄(菊花嘆)>
사람은 함께 말할 수 있으나
人雖可與語
미친 그 마음 나는 미워하고
吾惡其心狂
꽃은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花雖不解語
꽃다운 그 마음 나는 사랑한다
我愛其心芳
평소에 술을 마시지 않지만
平生不飮酒
너를 위해 한 잔 술을 들고
爲汝擧一觴
평소에 웃지 않지만 
平生不啓齒
너를 위해 한 바탕 웃어보리라 
爲汝笑一場
ᆞᆞᆞᆞ
겨울의 군자ᆞ대나무

惟有歲寒節 乃知君子心
유유세한절 내지군자심
오직 세한에도 절개있으니, 군자의 마음을 알겠구나.
一字訓 일자훈ᆞ一字禪 일자선
오래 전부터 일자(일음절)의 매력에 끌렸다. 오래전 퇴계의 경(敬)과 다산의 염(廉)의 가르침을 듣고 부터이다. 일찍이 화(和) 일자를 좌우명으로 삼고 지인들에게도 그 뜻을 전하고자 화풍선을 드리기도 했다.
무술년, 존경하는 선생님에게 새해 인사를 나누며 위로와 격려를 드리고자 일자삼훈을 휘호하여 드렸다.
'겸(謙ᆞ겸허), 의(義ᆞ정의), 용(勇ᆞ용기)'
나도 무술년 한 해 이를 화두하고자 한다.

마침, 서점에서 이 책을 찾아 읽는다.
영미권에서는 일음절의 매력을 얻기 어려울거다. 한단어 만으로도 삶의 의미는 달라진다.

나의 영원한 화두?
길!
ㅡ길은 어디에 있을까?

다산의 유배지, 포항 장기

인문학과스토리텔링 2018.02.17 22:45 Posted by 文 寸 문촌
개혁의 주인 정조가 서거(1800년)하고 순조가 즉위하면서 다산 정약용은 생애 최대의 전환기를 맞는다. 소론과 남인 사이의 당쟁이 신유사옥이라는 천주교 탄압사건으로 비화되면서 다산(1784년 세례명, 요한)은 천주교인으로 지목 받아 유배형을 받게 된다. 이때 다산의 셋째형 정약종(1786년 세례명, 아우구스티노)은 옥사하고 둘째형 정약전은 신지도로, 다산은 경상도 장기로 유배되었다.
곧 조카 사위인 황사영(세례명, 알렉시오)의 백서사건(1801년, 신유박해의 전말을 베이징에 있는 구베아주교에게 알리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체포되어 사형당함)이 일어나서 한양으로 다시 불려와 조사를 받고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다산은 그때의 고통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버지 아십니까? 기막힌 이 일을
어머니 아십니까? 서러운 이 맘을
우리 집안 갑자기 뒤집히어서 
죽고사는 갈림길에서 헤메니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父兮知不知 / 母兮知不知 /
家門[炎欠]傾覆 / 死生今如斯"
ㅡ [하담별] 중에서

1801년 다산이 유배생활을 한 장기를 다시 찾았다. 강진의 다산초당과 같이 장기에는 다산 적거지가 남아 있지않다.
다만 포항시 남구 장기면 장기초등학교 운동장 한 켠에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사적비가 있다. 그 옆에는 우암 송시열 선생의 사적비도 나란히 있다. 우암도 이곳으로 유배를 왔다. 사적비 앞에서 고개를 들면 장기읍성곽이 눈에 들어온다.
다산은 이곳에서 열달 유배생활을 하면서 바닷가의 습기차고 짠 바람에 고통받았다. 그러다고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한양으로 압송되어 다시 심판을 받고 전라도 강진으로 기나긴 유배길을 나선 것이다.

다산의 적거지는 어딜까? 장기초등학교 뒤일까? 그 옆일까?

맹자에게 교사의 길을 묻다.

인문학과스토리텔링 2018.02.11 18:39 Posted by 文 寸 문촌

선생님들, 가르치는 일보다 관리자와의 관계로 고민하면서 학교 생활을 계속할 것인지 떠날 것인지 갈등한다. <맹자>를 읽다가 고대의 '군주'와 '신하'와의 관계에서 나의 학교 생활을 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관리자와 교사의 관계를 고대의 군주와 신하의 관계에 빗대어 설명할 수 없다만, 인문학적 사유거리로 삼아보았다. 나는 청(淸)과 임(任)과 화(和)와 시(時)에서 어디에 가치를 둘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맹자는 시중(時中)하는 '공자에게서 배우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나는 누구에게서 배울 것인가? 

 

. 맹자에게 묻다. - 관리자와 학교와 학생과의 관계

맹자- 萬章章句下 : 임금을 섬기고 백성을 부리는 도 (만장 하)

 

1. 伯夷 目不視惡色 耳不聽惡聲 非其君不事 非其民不使 治則進 亂則退

(백이 목불시악색 이불청악성 비기군불사 비기민불사 치즉진 란즉퇴)

백이는 눈으로는 나쁜 색 보지않고, 귀로는 나쁜 소리 듣지 않고, 임금 같잖으면 섬기지 않고, 백성 같잖으면 부리지 않았다. 다스려지면 나아가고 어지러우면 물러났다.

 

2. 伊尹 何事非君 何使非民 治亦進 亂亦進(하사비군 하사비민 치역진 란역진)

이윤은 말하기를 어느 누굴 섬긴들 내 임금 아니며, 어느 누굴 부린들 내 백성 아닌가?” 다스려져도 나아가고 어지러워도 역시 나아갔다.

 

3. 柳下惠 不羞汚君 不辭[]小官 進不隱賢 必以其道 遺佚而不怨 阨窮而不憫 與鄕人處 由由然不忍去也 爾爲爾 我爲我 雖袒裼裸裎於我側 爾焉能浼我哉 故聞柳下惠之風者 鄙夫寬 薄夫敦

(류하혜 불수오군 불사소관 진불은현 필이기도 유일이불원 액궁이불민

여향인처 유유연불인거야 이위이 아위아 수단석라정어아측 이언능매아재 고문류하혜지풍자 비부관 박부돈)

류하혜는 더러운 군주 섬김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작은 벼슬을 사양하지 않았다. [낮추어 보지 않았다.] 나아가면 그 어짊을 숨기지 아니하여 반드시 그 도리대로 하며, (벼슬 길에서) 버림을 받아도 원망하지 않고 곤궁을 당해도 걱정하지 않으며, 향인들과 더불어 처하되 유유자적하게 차마 떠나지 못해서 말하기를, 너는 너, 나는 나. 비록 <네가> 내 곁에서 옷을 걷어 부치고 벗고 뭔 짓을 한들, 네가 어찌 나를 더럽히겠는가?”하였다. 그러므로 류하혜의 풍도를 들은 자들은 비루한 지아비가 너그러워지며, 박한 지아비가 인심이 후해진다.

 

4. 孔子曰 遲遲吾行也 去父母國之道也 可以速則速 可以久則久 可以處則處 可以仕則仕 孔子也

(공자왈 지지오행야 거부모국지도야 가이속즉속 가이구즉구 가이처즉처 가이사즉사 공자야)

공자 (노나라를 떠날 적에) 말씀하시길, “더디고 더디구나 나의 걸음이여. ”라 하였으니 이는 부모의 나라를 떠나는 도리이다. 속히 떠날 만하면 속이 떠나고, 오래 머물만 하면 오래 머물며, 은둔할 만하면 은둔하고, 벼슬할 만하면 벼슬한 것은 공자이시다.

孟子曰 伯夷 聖之淸者也 伊尹 聖之任者也 柳下惠 聖之和者也 孔子 聖之時者也

(맹자왈 백이 성지청자야 이윤 성지임자야 류하혜 성지화자야 공자 성지시자야)

맹자 말하기를, 백이는 성인의 청[잡됨이 없는 것 - 청렴, 절개]한 자요,

이윤은 성인의 자임[천하를 자신의 책임으로 삼음]한 자요,

유하혜는 성인의 화[다름이 없는 것 - 편가름이 없이 화합함]한 자요,

공자는 성인의 시중[때에 맞게 중용의 덕을 실천함 - 時中]인 자이다.

 

백이숙제 채미도 (이당의 그림)

 

(공손추 상 / 0209-01~03 )에서

02 .......孟子曰 백이, 이윤, 공자, 皆古聖人也 ....乃所願則學孔子也 : 이들 모두는 옛 성인이시다. .....내가 원하는 것은 공자를 배우는 것이다. (내소원즉학공자)

09-01 孟子曰 伯夷非其君不事 非其友不友 不立於惡仁之朝 不與惡人言 立於惡人之朝 與惡人言 如以朝衣朝冠 坐於塗炭 推惡惡之心 思與鄕人立 其冠不正 望望然去之 若將浼焉 是故諸侯雖有善其辭命而至者 不受也 不受也者 是亦不屑就已

09-02 柳下惠不羞汚君 不卑小官 進不隱賢 必以其道 遺佚而不怨 阨窮而不憫 故曰爾爲爾 我爲我 雖袒裼裸裎於我側 爾焉能浼我哉 故由由然與之偕而不自失焉 援而止之而止 援而止之而止者 是亦不屑去已

09-03 孟子曰 伯夷隘 柳下惠不恭 隘與不恭君子不由也 (백이애 류하혜불공 애여불공군자불유야) : 맹자 말씀하시길, 백이는 좁고, 류하혜는 불공하니, 좁음과 불공함을 군자가 행하지 않는다.

(고자 장구 하 / 06-02)에서

06-02 孟子曰 居下位 不以賢事不肖者 伯夷也 / 五就湯 五就桀者 伊尹/ 不惡汚君 不辭小官者 柳下惠也 / 三者不同道 其趨一也 一者何也 曰仁也 君子亦仁而已矣 何必同

   맹자 말씀하셨다. "낮은 지위에 거하여 어짊으로써 어질지 못한 이를 섬기지 않은 자는 백이였고, 다섯 번 탕왕에게 나아가며, 다섯 번 걸왕에게 나아간 자는 이윤이었고, 더러운 군주를 싫어하지 않으며 작은 관직을 사양하지 않은 자는 류하혜였으니, 이 세 분들은 길이 같지 않았으나 그 나아감은 똑같았으니 똑같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仁)이다. 군자는 또한 인(仁)할 뿐이니, 어찌 굳이 같을 것이 있겠는가."

 

<생각거리>

맹자는 공자에게서 배운다.’[學孔子]라고 했는데,

나는 누구에게서 배울 것인가? [Who]________________________

왜 그에게서 배울 것인가? [Why]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느낌과 다짐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