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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스토리텔링

추사의 경지 ㅡ스크랩

by 문촌수기 2018. 8. 13.
ㅡ이내옥 미술사학자·'안목의 성장' 저자.

조선시대 서화의 역사를 보면 궁극에는 추사 김정희로 수렴한다. 추사는 당시 동아시아 최고 지성으로서 모든 것을 갖춘 인물이었다. 55세에 뜻하지 않은 제주 유배를 겪는데, 쓰라림으로 점철된 그때부터가 진정한 추사 예술과 정신의 시기였다.
추사는 자부심이 대단해 오만에 가까웠다. 거기에 원한과 분노의 불길이 끼얹어졌다. 그러나 유배가 길어지면서 그것도 서서히 녹아내렸다. 여기에서 문인의 지조와 절개를 표현한 '세한도'가 나왔다. 그림 속 나무는 나무가 아니고, 집은 집이 아니다. 그것은 오만과 분노의 껍데기를 뚫고 들어가 마주친 자아의 처절한 고독이고, 그 강력한 주장이다. 동양 회화는 문인화의 두 거장 황공망과 예찬이 출현해 그 극점을 찍었다. 그로부터 500여 년이 지난 뒤 추사가 그들에게 필적하는 작품을 낸 것이다.
추사는 제주 유배에서 9년 만에 풀려났다. 다시 북청으로 유배돼 2년여를 보내고 돌아와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북청 유배 어간에 그린 '불이선란도'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쓴 '판전' 글씨는 '세한도' 단계에서 더 깊은 경지로 나아갔다. '불이선란도'는 '세한도'에서 보이던 강력한 자기주장이 사라지고, 평생 추구했던 서예 정신 '괴(怪)'의 완성이었다. 일부 자부심의 찌꺼기가 남아 있긴 하지만, 자비의 눈으로 자신을 관조하고 있다. '판전' 글씨에 이르러서는 죽음을 예감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해탈의 경지를 보여준다. 지금껏 추구해온 예술을 부정하고 초월하여 진정한 자유를 실현했다.
추사는 숨을 거두기 사흘 전까지도 일상생활을 이어갔다. 불교 수행의 높은 경지였다. 당시 추사는 간화선(看話禪·화두를 사용해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선)을 격렬히 비판했다. 간화선으로는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추사의 주장에 대해, 한국 현대불교는 답을 해야 할 처지이다.
http://m.chosun.com/news/article.amp.html?sname=news&contid=2018080700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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