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神 계보는 줄줄 외면서… 삼국유사는 왜 안 읽나요"
문화 유석재 기자
입력 2018.08.07 03:01
삼국유사ㅡ스크랩
문체부 장관 지낸 최광식 교수 '삼국유사의 신화 이야기' 펴내

최광식(64)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맡고 있던 2010년, '그리스의 신(神)과 인간' 특별전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초등학생 아이들이 그리스 신 계보를 줄줄 외우는 거예요. 아~ 이것 참, 답답하더라고요. 우리나라에도 신화가 있는데 그건 통 모르고 말이죠…."

그가 말하는 '한국 신화의 보고(寶庫)'는 바로 '삼국유사(三國遺事)'다. "서양문화의 뿌리가 그리스·로마 신화라면, 우리 민족문화는 그것을 '삼국유사'에 실린 건국 신화와 시조 신화에서 찾아야 합니다." 최 교수는 최근 단행본 '삼국유사의 신화 이야기'(세창출판사)를 냈다. 고려대출판부에서 박대재 교수와 '점교 삼국유사'(2009), 역주본 '삼국유사'(전 3권·2014)를 내고 '읽기 쉬운 삼국유사'(2015)를 쓴 데 이어 네 번째 '삼국유사' 작업이다.

최광식 교수가 도깨비 문양 고구려 와당의 복제품을 들고 활짝 웃었다. '삼국유사'는 우리 토착 신앙이 불교와 어떻게 융합됐는지 잘 보여주는 사료다.
/장련성 객원기자

왜 '삼국유사'인가? "흔히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고 '삼국유사'는 야사(野史)로 봅니다. 하지만 이 구도는 잘못됐습니다." 일연 스님은 고대의 역사와 불교, 신화와 설화·향가를 비롯한 민족의 문화유산을 남기고자 '삼국유사'를 썼다는 것이다. "무미건조한 '사기'에 비해 '유사'는 생동감이 넘치는 인간의 모습과 감칠맛 나는 정서가 담겨 있지요."

이를 깨달은 것은 고려대 사학과 학생 시절 '두 책을 비교하라'는 과제를 수행하면서였다. 그는 '삼국유사'를 평생 공부하겠노라 마음먹고 석사 논문을 썼는데, 당시 그의 논문을 둘러싸고 '이걸 과연 역사학 영역으로 봐야 하느냐'를 논의하는 학과 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이번 책 '삼국유사의 신화 이야기'에서 최 교수는 "신화란 단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다"고 말한다. 그는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살았던 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상징적으로 반영하고, 문화의 원형을 보여준다"고 했다. 신화에 나타난 '코드(code)'를 잘 들여다보면 실제 역사가 보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단군신화는 사실상 그 아버지 환웅이 중심이 된 '환웅 신화'인데, 신단수에서 세상을 연 일종의 천지창조 신화 속에서 곡식과 쑥·마늘을 가진 '농경 세력'의 등장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토착 세력인 호랑이는 수렵 종족, 곰은 수렵에서 농경으로 전환하는 단계의 종족을 상징하고 있다.

"신라의 석탈해와 가야의 허황옥 신화는 해양 세력의 유입을 보여주는 단서이지요. 김알지 신화는 발달한 철기와 제련 기술을 지닌 북방 세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주인공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천강(天降) 신화를 북방계, 알에서 태어났다는 난생(卵生) 신화를 남방계로 나눠 '한국 신화는 대부분 남방계'로 본 과거 일본인 학자들의 견해를 반박했다. 부여·고구려·신라·가야 모두 '천강'과 '난생'의 요소가 혼합돼 있다는 것이다. 중세에 이르러 신화는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갈리는데, 왕건 신화에는 '용'이 등장하는 반면 견훤 신화의 주인공은 '지렁이'로 격하된다.

문화재청장과 문체부 장관을 지낸 최 교수는 장관 시절 만난 작가들이 '우리나라엔 스토리텔링의 원천이 없다'고 푸념하면 정색을 했다고 한다. "'삼국유사'는 좀 읽어 보고 말씀하시죠!"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던 시절엔 "'삼국유사'가 없었더라면 무엇을 가지고 고조선·부여·발해가 우리 역사라고 할 수 있었을지 아찔했다"고 했다. 최 교수는 '삼국유사'의 다섯 번째 작업으로 오는 가을 제자들이 쓴 다양한 분야의 논문집을 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