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60대에 되어서, 김광석의 노래를 더 열심히 따라 부른다.
그렇게 따라 부를 여유가 생겨 부른다. 퇴직하고서 큰 즐거움은 그냥 일없이 노는 것, 그 중에서도 달리는 차안에서 아내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하모니카를 부는 것이다. 소음같이 성가셨겠지만 김광석 노래만큼은 아내가 따라부르며 같이 즐겨줘서 고마웠다.
딸아이가 신혼 살림을 차린 잠실의 다세대주택으로, 새집을 마련해서 이사한 수지의 아파트로, 그리고 손녀 아가와 살았던 강원도 원주로, 이제 개원하여 정착한 부천중동 아파트로 반찬을 갖다주러 다니는 우리 부부의 수고로운 나들이에 광석의 노래는 늘 함께 했다.
그런데 광석은 너무 일찍 나이가 들고 너무 일찍 가버렸다. 그래서 미안했고 그래서 정성껏 노래했다.
그의 노래 중 나이대를 특정할 수 있는 노래가 셋 있다.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
'어느 육십대 노부부의 이야기'.
그렇게 노래를 따라 부르다보니 내 나이의 그 때를 돌아보게 된다.
'나도 그랬었지. 아니야, 그래도 그렇지? 광석이는 나보다 훨씬 빠르게 나이들어 갔구나. 서른 즈음이면 아직 젊건만, 청춘과 사랑이 머물지 않는다고 한탄하고 매일 이별하는 날들을 살았었구나.'
그의 노래들의 사연을 먼저 찾아본다.
■ 20대, 이등병의 편지
김광석이 부른 대표적인 곡으로 알려졌지만, 김현성이 작사, 작곡하고 직접 부른 노래다
1986년 7인 옴니버스 음반 '땀흘리며 부른 노래'에서 '이등병 편지'라는 제목의 곡으로 처음 발표 되었다. 김현성이 21살 군대 가는 친구를 서울역까지 배웅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영감이 떠올라서 가사를 작사하였다.
https://youtu.be/8qytwIrdUAg?si=0UNM0ajyx_OwuM8q
그러다가 한겨레에서 주최한 '겨레의 노래' 공모에 당선 되어 김민기가 프로듀싱을 맡은 음반 '겨레의 노래'에 전인권의 목소리로 리메이크 되어 1990년 5월 발매 되었다. 이 리메이크를 처음 접하고 원래 전인권이 부른 것으로 잘못 아는 사람도 꽤 많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김광석이 처음 부른 것으로 오해한다.
https://youtu.be/bf4DwZ4CdeY?si=99pvIND3lnKRv7om
이후 앨범 발매와 함께 '겨레의 노래' 전국 순회 공연이 열렸는데, 전인권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하차하면서 김광석이 대신 공연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공연을 계기로 김광석이 이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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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7월 20일, 둥근소리 노래이야기 게시판에 올라온 글
이등병의 편지를 처음 들은 것은 1990년 '겨례의노래' 공연 준비할 때다. 음반에는 전인권 선배가 부른것을, 전국 순회공연에서는 내가 부르게 됐다.
처음 이곡을 부를 때는 어머님과 돌아가신 큰형님 생각이 났었다.
국민학교 5학년 때, 11살 차이 나던 큰 형님이 군대 가셨다.
일주일쯤 지난 뒤에, 누런 봉투에 형님이 입고가셨던 옷가지들이 쌓여 집으로 배달되었고,
어머니께서 빨래하시며 우시던 모습이 생각났고, 1980년 10월 결혼식을 20일 남기고 돌아가신 큰형님 생각이 났다.
그 당시 형님은 육군 대위셨다.
'이등병의 편지'는 나의 훈련소 시절 생각보다는 어머님, 형님 생각에 노래를 부르면서도 울먹거린 적이 여러번 있었다.
형님 돌아가신 후로 김치맛이 변할 정도로 맘 상하신 어머님께선
요즈음엔 그래도 잘지내시는 편이다.
김민기와 노영심,
전인권의 이등병의 편지
https://www.hani.co.kr/arti/culture/music/4659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