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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에서 읽는 실록이야기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

by 문촌수기 2023. 11. 23.

국가지정 명승 제50호.
어린 단종이 유배되어 온 곳,
육지 속의 섬과 다름없는 청령포(淸泠浦)를 다시 찾았다.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단종의 유배지로, 2008년 12월 국가지정 명승 제50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상왕으로 있다가 1456년 박팽년, 성삼문 등 사육신들의 상왕 복위의 움직임이 사전에 누설되어 모두 죽음을 당하는 사육신 사건이 일어나고 다음해인 1457년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첨지 중추원사 어득해가 거느리는 군졸 50인의 호위를 받으며 원주, 주천을 거쳐 이곳 청령포에 유배되었다.
청령포는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할 수 없는 마치 섬과도 같은 곳이다.
단종은 이 적막한 곳에서 외부와 두절된 유배생활을 했으며, 당시에는 이곳에 거처할 수 있는 집이 있어 호장 엄흥도는 남몰래 밤이면 이곳을 찾아 문안을 드렸다고 전한다.
그 해 뜻밖의 큰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기게되니 단종은 영월 동헌의 객사인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겼다.
지금 청령포에는 영조2년(1726)에 세운 금표비(禁標碑)와 영조39년(1763)에 세운 단묘재본부시유지비(端廟在本府時遺地碑)가 세워져 옛일을 전하고 있다.

■ 청령포
청령포는 서강이라는 하천이 구불구불 흐르면서 마치 뱀이 기어가는 모습과 같은 곡류(蛇行川)가 발달한 지역으로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 제50호로 지정되어 있다.
하천이 곡류하게 되면 곡류하는 안쪽은 물이 흐르는 속도가 느려지고, 반대로 바깥쪽은 빨라져서, 안쪽에는 자갈이나 모래가 쌓이고, 반대로 바깥쪽은 하천변이 깎여 말발굽 모양의 물길이 발달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말발굽 모양의 물길은 더욱 심하게 구부러지고, 마침내 잘록한 부분이 끊어지면서 하천은 직선으로 흐르면서 주변에는 곡류가 잘린 구부러진 물길이 그대로 남게 되는데 이를 '구하도'라고 한다. 청령포앞에는 과거 서강이 크게 구부러져 흘렀던 방절리 구하도가 있다.
방절리 구하도는 과거 경작지로 이용 되었으나 현재는 공원으로 조성되었으며, 국내에서 대규모의 구하도 형태를 볼 수 있는 자연학습장소이다.
영월 청령포는 어린 나이에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의 유배지로 서쪽은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고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섬과 같이형성된 곳이다.

청령포 나루터

① 단종어소

단종어소(좌)와 단묘재본부시유지비

단종어소는 승정원 일기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재현했다. 어소에는 당시 단종이 머물던 본채와 궁녀 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행랑채가 있으며 밀납인형으로 당시의 모습을보여주고 있다. 어소 담장 안에는 단묘재본부시유지비가 위치해 있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옥새를 지키지 못하고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이제 서인에서 죄인아닌 죄인으로 절세의 유배지에 갇혔으니 어린 임금의 한(恨)은 저 물길보다 깊다. 그 때의 심정을 담은 시 한수를 읽어본다.

원통한 새 한 마리 궁궐에서 나온 뒤로
외로운 몸 짝잃은 그림자 푸른 산을헤매노나
밤마다 잠 청해도 잠들길 멀기만 하고
해마다 한(恨)을 끝내려 애를 써도 끝없이 한 뿐일세
울음소리 새벽 산에 끊어지면 그름달이 비추고
봄 골짜기에 토한 피가 흘러 꽃 붉게 떨어지는구나
하늘은 귀먹어서 저 하소연 소리 듣지 못하는데
어쩌다 서러운 이 몸의
귀만 홀로 이리 밝았는고.

○ 어소행랑채, 궁녀와 관로 거처

시녀방
침모방

②단묘재본부시유지비
영조39년(1763)에 세웠다.
단묘재본부시유지비는 1763년 세워진 것으로 총 높이 162cm 크기의 오석으로 제작되었는데, 앞면에는 [端廟在本府時遺址, 단종이 이곳에 계실 때의 옛터이다.]라는 글이 영조대왕의 친필로 음각되어 있고, 그 뒷면에는, "歲皇明崇禎戊辰紀元後三癸未季秋 抆 涕敬書令原營竪石 地名 淸泠浦"(영조 39년 계미년 가을 울면서 받들어 쓰고, 어명에 의하여 원주감영에서 세웠다. 지명은 청령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④관음송(觀音松)
관음송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349호 청령포 수림지에 위치하고 있는 소나무로 단종 유배시의 설화를 간직하고있으며 1988년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되었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 두 갈래로 갈라진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쉬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단종의 유배 당시 모습을 보았으며, 때로는 오열하는소리를 들었다는 뜻에서 관음송(觀音松)이라 불리어 왔다.
소나무 크기는 높이 30m, 둘레 5m로 지상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동, 서로 비스듬히 자랐다. 수령은 600년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단종 유배시의 수령을 약 60년생으로 추정하고 있다.

관음송
관음송 옹이

⑥망향탑(望鄕峰)
청령포 뒷산 육육봉(六六峯)과 노산대(魯山臺) 사이 층암절벽 위에 있는 탑으로 단종대왕이 유배생활을 할 때 자신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근심속에서도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막돌을 주워 쌓아 올렸다는 탑으로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다.
그러기에 망향탑이라기보다, 망비탑(望妃塔)이라 함이 옳을 듯하다.

망향탑 보다, 망비탑(望妃塔)이라 함..
망향탑

♡ 한편, 단종비 송씨는 한양에서...
[비우당과 자주동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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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자락 비우당 자주동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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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노산대(魯山臺)
단종이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청령포로 유배된 후 해질 무렵 한양을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던 곳이므로 노산대라 부르고 있다.

노산대(북향)
노산대(남향)

③금표비(禁標碑)
영조2년(1726)에 세웠다.
금표비는 단묘재본부시유지 북쪽에있으며,앞면에는 <清泠浦 禁標>라고쓰여져 있고, 뒷면에는 <東西三百尺南北四百九十尺 此後 泥生亦在當禁> "동서로 300척, 남북으로 490척과 이후에 진흙이 쌓여 생기는 곳도 또한 금지하는데 해당된다."이라 쓰여 있으며측면에 "崇禎九十九年(숭정 99년)"이라고 음각되어 있다.

앞면, '청령포금표'비
뒷면, 東西三百尺...此後 泥生亦在當禁

■ 청령포수림지

청령표 수림지와 금표비

2004년 산림청 천년의 숲 지정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67-1 일원 청령포에 위치한 이 수림지는 수십 년에서 수백 년생의 거송들이 들어 찬 수림지로 단종의 유배처를 중심으로 주위에 울창한 송림을 이루고 있다.

■ 나룻터 입구


■왕방연 시조비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께 사약을 진어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통한 심정으로 청령포를 바라보며 읊은 시조이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 놋다."

■ 두견새 우는 청령포 노래비

(가사)
왕관을 벗어 놓고
영월 땅이 웬 말이냐
두견새 벗을 삼아
슬픈 노래 부르며
한양 천 리 바라보며
원한으로 삼 년 세월
아~ 애달픈 어린 임금
장릉에 잠들었네

두견새 구슬프게
지저귀는 청령포야
치솟은 기암절벽
굽이치는 물결아
말해다오 그 옛날의
단종대왕 귀양살이
아~ 오백 년 오랜 역사
비각만 남아있네
말해다오 그 옛날의
단종대왕 귀양살이
아~ 오백 년 오랜 역사
비각만 남아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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