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 귀신 쫓으려 왕실 무덤에 심는 측백나무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입력 2021.01.08 03:00
~조선일보, 2021.01.08 스크랩
정선 '사문탈사'(1741), 비단에 채색, 21.2x33.1㎝, 간송미술관 소장.
그림 이름이 좀 어렵다. ‘사문탈사(寺門脫蓑)’의 ‘사'는 도롱이를 나타내는 말이며 ‘절 문 앞에서 도롱이를 벗는다’는 뜻이다. 볏과의 여러해살이풀인 띠로 만든 옛날 비옷이 도롱이이다. 그림처럼 눈 오는 날 입으면 방수는 물론 방한복의 기능도 해준다. 소한과 대한의 중간인 지금이 바로 그림 속의 그 계절이다.
절 앞에 길게 늘어선 여섯 그루 고목나무가 우선 눈에 들어온다. 맨 왼쪽의 연하게 줄기만 그러져 있는 나무는 또 다른 ‘사문탈사도’에 나무 전체가 다 그려져 있어서 전나무임을 알 수 있다. 나머지 다섯 그루는 모두 측백나무이다. 사람 크기와 비교해 볼 때 두 아름이 넘는 고목나무이다. 땅에 맞닿은 줄기 아랫부분에는 모두 고깔 모양으로 나무 속이 썩어 있다. 나무 크기나 속 썩음으로 봐서 나이는 적어도 300~400년으로 추정된다. 측백나무의 줄기 껍질은 원래 세로로 깊이 갈라지므로 그림에서도 약간 굵은 빗금으로 처리했다. 측백나무는 침엽수로 분류하지만 날카로운 바늘 모양 잎이 아니다. 작디 작은 비늘잎이 여러 겹으로 포개지면서 한쪽으로 눌린 것처럼 전체적으로 납작하다. 그림에서 눈이 살짝 덮인 것처럼 보이는 납작한 잎은 측백나무 잎의 실제 모습 그대로이다.
예부터 왕릉의 둘레 나무는 주로 소나무를 심었지만 측백나무도 흔히 심었다. 무덤 주위에는 시신을 뜯어먹고 사는 ‘망상(魍像)’이란 괴물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망상은 호랑이와 측백나무를 가장 겁낸다고 알려져 있다. 호랑이는 무덤 앞에 석상으로 만들어두고 주위에는 망상을 물리칠 측백나무를 심었다는 것이다. 중국 베이징 근교, 명나라 역대 17황제 중 13명이 잠들어 있는 대규모 능묘군인 명13릉 주변은 온통 측백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측백나무는 중국의 사원이나 귀족의 묘지에는 반드시 심는 나무였다. 그렇다면 왜 우리의 절 앞에 하필이면 고목이 된 측백나무가 자리 잡게 되었을까? 절의 성격과 관계가 깊다고 생각한다. 문 옆으로 긴 행랑채가 달려 있는데 이런 절 건물 모습은 조선 왕실의 무덤을 관리하는 원찰에서나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절을 조포사(造泡寺)라고 했으며 나라 제사에 쓰는 두부를 주로 만들었다. 오늘날 수원 융건릉 가까이 있는 용주사가 대표적인 조포사라고 한다. 그림에서 소를 타고 절을 찾은 손님은 율곡 이이 선생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선비가 흔히 찾는 왕실과 관련된 사찰에 의미가 있는 나무라면 바로 측백나무를 들 수 있다.
#측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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