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종류
행복의 추구가 대다수 사람들의 삶의 목표이긴 하지만, 행복한 상태가 과연 어떤 상황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그리 확실하지 않다. 흔히들 행복이란 즐거운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대 다수 포유류의 두뇌 한가운데 쾌락중추라는 것이 있다. 그 부분에 전극을 장치하고 스위치를 누르면 그곳이 자극돼 즐거움을 느낀다. 대다수 동물에 그런 인위적인 장치를 하면 그 동물은 하루 종일 그 스위치만 눌러댄다. 그러다 결국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운동도 부족해 일찍 죽고 만다.
사람에게도 쾌락중추가 물론 있다. 마약이나 섹스, 많은 중독성 약물은 이런 쾌락중추를 직접적으로 자극한다. 사람 중에는 동물처럼 쾌락중추의 직접적 자극을 추구해 몸을 버리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는 이런 즐거움은 행복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을 빼앗는 것으로 간주하여 크게 경계한다.
이런 점에서 행복은 쾌락중추의 직접적인 자극에서 오는 즐거움 이상의 어떤 것을 의미한다. 즉 행복에는 쾌락중추의 직접적인 자극에서 오는 찰나적 즐거움뿐 아니라 기대와 목표의 달성, 희망과 소원의 충족, 또는 의미와 가치의 실현이 이뤄질 때 수반되는 즐거움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은 그 질적 성격에 따라 다음의 세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쾌락적 행복(pleasure happiness)이다. 이 행복은 쾌락중추의 다소간 직접적인 자극을 통해 느껴지는 행복이다. 식욕, 갈증, 성욕, 알코올, 진통제, 마약 등에 의존해 느끼는 즐거움이 여기에 해당된다. 쾌락적 행복은 순간적이고 찰나적인 즐거움일 때가 많다. 쾌락적 행복은 짜릿한 감각적 요소와 격렬한 정서적 요소를 지닌 즐거움으로, 철학자들이 말해온 원초적 감정들이다. 황홀경, 전율, 오르가슴, 희열, 환희, 안락함 등이 여기에 해당되는 즐거움이다. 그 강렬한 쾌락성 때문에 심리적 집착이 강해 중독성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는 성취적 행복(achievement happiness)이다. 이 행복은 쾌락중추의 자극을 통해 생기는 즐거움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통해 얻게 되는 즐거움을 말한다. 예컨대 오랜 연습 덕분에 훌륭한 공연을 마친 음악가의 행복, 가난했던 사람이 각고의 노력 끝에 부자가 됐을 때 느끼는 즐거움, 또는 긴 재수 끝에 합격한 고시생의 환희 같은 것이다. 우리 주변의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들은 결국 성취적 행복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각고의 노력으로 소질과 잠재능력을 발휘해서 자기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어서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다.
셋째는 온전한 행복(authentic happiness)이다. 성취적 행복에 머물지 않고, 사회나 인류가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미덕과 가치나 의미를 자기의 삶을 통해 실현할 때 밀려오는 즐거움이다. 사회·경제적으로 성공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 중 희생과 봉사, 자선에 유달리 앞장서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완전한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테레사 수녀와 같은 사람은 성취적 행복에 머문 사람이 아니다. 보편적 인류애라는 가치를 자신의 삶 속에 실현코자 한 온전한 행복을 추구한 사람이다. 자원봉사에 앞장서는 사람도 있고, 교회활동을 통해 높은 수준의 영성을 개발하고자 애쓰는 사람도 있다.
쾌락적 행복보다는 성취적 행복이 더 길고 깊고 넓은 긍정적 정서를 유발한다. 찰나적 쾌락과 향락보다 열심히 노력해서 성취한 사회적 성공이 더 길고 깊은 만족의 행복감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취적 행복은 개인적 출세나 성공에 기반을 둔 만족감이어서 온전한 행복에 비해 공동체적이거나 인류애적 만족과 행복감의 깊이가 아직 덜하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스티브 김과 같은 사람들은 온갖 심혈을 기울여 이룩한 부를 아낌없이 사회에 내놓았다. 재산은 줄었지만 의미 있는 일을 했다는 자부심의 앙금은 더 짙어졌을 것이다. 이게 온전한 행복감이다. 이미 개인적으로 충분히 성공한 청년 마하트마 간디가 그런 것을 포기하면서 인도 민중의 보편적인 기대를 위해 자기를 희생한 것처럼, 이들도 성취적 행복에서 찾지 못한 더 깊고 넓은 온전한 행복감을 찾고 싶어졌던 것이 아니었을까.
<문용린 교수의 도덕칼럼, 여성신문, 201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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